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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안녕 예나야 (57/183)

57. 안녕 예나야2021.11.13.

서울까지 오는 길에 해가 완전히 저물었다. 집이 가까워 올수록 정오의 얼굴은 상기되었다. 달려들었을 때는 그렇게도 조심스러워하며 철벽을 치던 여자가 내내 창밖만 바라보며 어깨를 들썩거리자 지헌은 조금 심술이 났다. 나는 당신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 아쉬운데, 당신은 그렇게나 반가운 얼굴이란 말이지.

16551150363265.jpg“그렇게 좋아요?”

16551150363275.jpg“당연하죠. 오랜만에 딸을 보는데.”

지헌과의 밀회도 물론 좋지만 예나를 볼 수 있단 설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딸과 떨어져 있어본 것이 처음이었다. 어서 빨리 가서 예나를 안아줄 생각에 벌써부터 정오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16551150363275.jpg“여기서 세워주세요. 여기서는 걸어가는 게 더 빨라요.”

길목에 위치한 편의점이 보이자마자 정오는 부리나케 말했다. 지헌이 차를 세우자 정오는 벌컥 문을 열었다.

16551150363275.jpg“오늘 고마웠어요. 모레 뵙겠습니다!”

연인 간의 애틋함 따위는 없는 담백한 인사. 한 시간 전 우리를 감싸고 있던 그 달달하고 끈적한 공기는 도로에 다 집어던진 것인가. 그의 인사를 기다리지도 않고 쌩하니 달아나는 그녀를 보며 지헌은 또다시 애가 달았다. 정오는 단숨에 계단을 올라 현관문 앞에 섰다. 너무 설레서 벌써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집 안에서 예나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주인공 캐릭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곧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16551150363275.jpg“예나 공주!”

16551150363294.jpg“엄마다아아!”

TV 앞에 이불을 펴놓고 오매불망 엄마를 기다리며 앞구르기를 하던 예나가 엄마의 목소리에 현관으로 다다다 달려왔다.

16551150363294.jpg“엄마아아아!”

아유 이쁜 것! 정오는 달려 나온 아기 공주님을 와락 끌어안아 둥개둥개 흔들었다. 엄마 국순도 이내 쫓아왔다. 국순이 어제도 보고 그저께도 본 듯이 평소처럼 안부를 물었다.

16551150363307.jpg“밥은.”

16551150363275.jpg“기내식 많이 먹었어.”

16551150363307.jpg“기내식 가지고 되겠어? 와서 더 먹어.”

16551150363294.jpg“엄마, 내 선물은?”

예나가 정오의 허리에 매달린 채로 물었다. 그새 국순은 정오가 끌고 온 가방을 받아다가 바퀴를 닦았다. 정오는 가방을 열어 예나에게 선물을 건넸다. 엄마 캥거루 주머니 안에 아기 캥거루가 들어 있는 인형이었다.

16551150363294.jpg“와아!”

예나는 인형을 받자마자 사랑에 빠진 듯이 꼭 끌어안았다. 잠시 후 인형을 옆구리에 낀 예나는 방으로 달려가 스케치북을 들고서 나타났다.

16551150363294.jpg“엄마, 나는 그림 그렸어!”

그림 속의 엄마와 딸 모습이 자신과 예나만큼이나 다정해 보여 정오는 오랜만에 감탄했다.

16551150363275.jpg“와! 엄마랑 예나 그린 거야? 너무 이쁘다!”

16551150363294.jpg“아니, 캥거룬데.”

16551150363275.jpg“와! 캥거루구나. 이렇게 예쁜 캥거루가 있네!”

정오는 곧장 말을 바꾸며 더욱 과하게 환호했다. 국순이 못 말리겠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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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 시각. 도빈의 집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바둑학원을 그만두라는 아빠의 분부에 도빈은 폭포수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16551150392941.jpg“학원 계속 다닐 거야아아. 바두욱. 바두욱.”

16551150392945.jpg“박도빈. 뚝 안 그쳐?”

16551150392941.jpg“바둑학워언! 바둑학워어언!”

승규가 엄하게 타일러도 소용없었다. 도빈은 거실에 드러누워 허공으로 포악하게 발길질하며 성을 냈다. 호환 마마도 이기지 못하는 도빈의 똥고집이 흉악한 이빨을 드러냈다. 진서도 서운한 마음에 승규에게 푸념했다.

16551150426805.jpg“예나랑 둘이 친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걸 꼭 그렇게 갈라놔야 해? 일곱 살밖에 안 된 앤데 학습능률 좀 떨어지면 어때. 애가 즐겁게 다니면 됐지.”

16551150392945.jpg“자기가 힘들잖아.”

16551150426805.jpg“안 힘들다니까. 내가 잘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알아서 하겠다는데 왜 그래.”

진서가 거듭 이유를 물어오니 승규는 고개를 돌렸다. 그것이 더 수상하게 느껴진 진서가 승규의 고개를 제 앞으로 돌려놓고 다시 물었다.

16551150426805.jpg“솔직히 말해봐. 나한테 미안해서 그래, 학원비가 아까워서 그래.”

16551150392945.jpg“…….”

16551150426805.jpg“얼른 말해. 뭐가 문제야.”

부인이 이렇게까지 추궁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승규는 기나긴 한숨과 함께 진실을 털어놓았다.

16551150392945.jpg“예나 엄마 이름이 이정오지.”

16551150426805.jpg“그래. 이정오.”

16551150392945.jpg“우리 회사 카피라이터야. 이정오 대리.”

16551150426805.jpg“오. 맥스기획?”

16551150392945.jpg“응.”

16551150426805.jpg“그럼 더 잘됐네! 그게 뭐가 문제야.”

승규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16551150392945.jpg“지헌이가 이정오 대리를 좋아해.”

16551150426805.jpg“지헌 씨 여자친구 있다며. 은빈지 까빈지 하는.”

16551150392945.jpg“아니야. 그건 가짜고.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은 이정오 대리야.”

진서가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기울이고서 물었다.

16551150426805.jpg“근데 왜?”

16551150392945.jpg“애기 엄마잖아.”

16551150426805.jpg“…….”

16551150392945.jpg“미혼모라는 걸 숨겼대. 지헌이한테.”

16551150426805.jpg“……그래서 지헌 씨가 앞으로 예나 엄마 만나지 말래? 자기한테?”

16551150392945.jpg“아니. 지헌이는 아직 몰라. 예나 엄마가 이정오 대리란 거.”

어느덧 승규의 세 번째 한숨.

16551150392945.jpg“지헌이가 더 빠질까 봐 걱정돼서 그러지. 미혼모랑 잘되길 바랄 수는 없잖아.”

16551150426805.jpg“야. 박승규.”

하늘 같은 부인이 아들 도빈을 부르듯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축 처져 있던 승규의 어깨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부인의 두 눈에서 번개가 번쩍거리는 게 보였다. 승규는 잠시 잊고 있었다. 부인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를.

16551150426805.jpg“정지헌 씨가 좋아한다며. 네가 뭔데, 왜 네 멋대로 평가질이야.”

사랑하는 남편. 남편이 하는 말은 웬만하면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가정의 평화로 이어지니까. 하지만 오늘 진서는 남편에게 크게 실망했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이 남자의 어리석음에.

16551150426805.jpg“예나 엄마가 얼마나 훌륭해, 얼마나 훌륭해!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하다고! 나는 멀쩡한 남편 있고 아빠 엄마 다 있는데도 셋째 낳을 생각하니까 이렇게 까마득한데, 예나 엄마는 남편 없이 혼자서 기운 차려가며 애를 낳았어! 당신이 애 낳는 고생이 어떤 건 줄이나 알아? 어?”

어느새 목소리가 커졌다. 셋째 임신의 설움까지 오늘의 분노에 더해져 감정이 북받쳤다.

16551150426805.jpg“내 배 속에 있었던 도빈이, 도윤이. 딱 하루만이라도 당신 배 속에 넣어주고 싶었어. 그 마음 당신 모르지. 죽을 때까지 모르지, 당신은.”

부인이 불같이 화를 내자 승규는 입술을 말아 감추었다. 그래도 호통치면 알아듣는 남자라 다행이랄까. 진서는 승규에게 엄하게 분부했다.

16551150426805.jpg“정지헌 씨한테 당장 사실대로 말해. 그리고 당신은 빠져.”

진서는 자신의 감을 확실하게 믿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이정오는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정지헌과 이정오가 친해진다고 해서 정지헌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장담할 수 있었다.

16551150426805.jpg“예나랑 예나 엄마 상처받게 하지 마. 그럼 내가 가만 안 있어.”

16551150392945.jpg“…….”

16551150426805.jpg“내 아들 눈에서 눈물 나게도 하지 마.”

  * 다음 날. 일을 급히 미뤄놓고 출장을 다녀온 터라 할 일이 많았다. 지헌은 이곳저곳으로 외근을 갔다가 오후에야 회사로 돌아왔다.

16551150392945.jpg- 회사 들어왔어?

  집무실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 승규에게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승규는 오늘 여러 번 지헌을 찾았다. 지헌은 답신을 보내놓고 승규를 기다렸다. 무슨 용건인지 짐작이 갔다. 아마도 이정오에 대한 조사를 마쳤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급하게 여러 번 찾을 만한 일인가 싶어 지헌은 긴장하게 되었다. 부디 끔찍한 이야기만은 아니길 바랐다. 이정오가 여전히 전남친을 만난다거나 하는. 그런데 또 아이가 걸려 있는 문제라면 아이 아빠를 계속 만나는 건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다. 아이도 아빠가 그리울 테고, 아이 아빠에게 양육비도 받아야 하는 것이니. 내가 그녀의 사연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은 본인의 마음에 대한 문제였다. 그러고 보면 그녀에게 어떤 끔찍한 사연이 있든 간에 그의 마음이 크게 달라질 리는 없을 테니 승규에게 굳이 조사 결과를 들을 필요도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는 사이에 승규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16551150392945.jpg“출장은 잘 다녀왔어?”

16551150363265.jpg“응. 덕분에.”

16551150392945.jpg“덕분은 무슨.”

대꾸하는 승규의 표정이 무거워 보였다. 지헌은 승규에게 자리를 권하고 그 앞에 앉았다. 질질 끌 필요 없이 바로 물었다.

16551150363265.jpg“알아봤어?”

16551150392945.jpg“응.”

16551150363265.jpg“남자는 없다지?”

16551150392945.jpg“남자는 없다는데…….”

16551150363265.jpg“애 아빠는, 전남친은 어떤 놈인지도 모르고?”

16551150392945.jpg“그것도 파악이 잘 안 되는 것 같고…….”

16551150363265.jpg“그럼 됐어.”

지헌의 얼굴 위로 금방 미소가 떠올랐다. 더 들어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승규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16551150392945.jpg“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친구야.”

16551150363265.jpg“…….”

16551150392945.jpg“예나 알지? 도빈이 친구 예나.”

멈칫했다. 입가에 그려 지은 미소가 툭 풀렸다. 아. 그 순간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심장께에서 가파른 파동이 일었다. 온 세상을 떠돌아 찾아 헤매던 파랑새를 바로 곁에서 발견한 기분. 집 안 곳곳을 뒤적이게 만든 퍼즐조각 하나가 책상 위에 놓여 있을 때의 기분.

16551150392945.jpg“……그 애 엄마가 이정오 대리라고 하네.”

지헌의 멍한 표정에 승규는 펄쩍 뛰며 크게 두 손을 저었다.

16551150392945.jpg“난 몰랐어! 진짜 몰랐어! 부인 말로는 예나 엄마가 접근한 게 아니라 도빈이 엄마가 먼저 접근했다고 하더라. 도빈이 엄마가 이정오 대리랑 친해지려고 노력한 거래. 예나가 너무 똑똑하고 야무져서, 도빈이랑 예나가 친구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오해받을까 싶어 흥분한 것이었다.

16551150392945.jpg“적어도 너한테 접근하려고 예나를 이용한 건 아닐 거야. 그건 확실해. 와이프는 나보다 더 확신하고. 너한테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지헌은.

16551150363265.jpg“그럴 것 같았어.”

16551150392945.jpg“뭐?

16551150363265.jpg“계속 생각났거든.”

그저 옅게 미소 지었다. 이제 알 것 같았다. 왜 그토록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먹먹했는지. 그녀와 너무 닮아서. 잠재된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판단을 마친 것처럼, 어쩐지 속이 후련했다.

16551150363265.jpg“좀 도와줄래?”

지헌은 친구에게 다시 한번 청했다.

16551150363265.jpg“도와줘.”

승규의 말이 맞았다. 그는 정말로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었다. * 길었던 경쟁 PT 준비에 주말 출장까지. 그간 쉴 새 없이 일했던 정오는 휴가를 명받았다. 하루짜리 짧은 휴가지만 정오는 오랜만에 느긋하게 쉴 수 있었다. 아니, 회사를 가지 않았을 뿐이지 쉬는 건 아니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점심때는 엄마 국순의 식당일을 도왔다. 손만 댔다 하면 음식이 맛없어지는 마법 같은 기술을 타고난지라 음식 만들기는 돕지 못하고 서빙만 했다. 그럼에도 무척 바빴다. 국순은 얼른 들어가서 쉬라고 했지만 정오는 꾸역꾸역 설거지까지 했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나니 예나가 바둑학원 갈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정오가 도빈과 예나를 학원에 데려다주기로 했다. 저녁때는 도빈과 도윤과 진서를 집에 초대할 계획도 세웠다. 그간 진서가 많이 고생했다는 것을 알기에 어떻게 해서든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예나의 어린이집에 먼저 들러 예나를 데리고 꾀꼬리 어린이집까지 걸어가 도빈까지 픽업하여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도 아이들의 정다운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도빈은 오늘따라 더 감격한 표정이었다. 예나의 손을 꼭 잡고서 놓지 않는 도빈을 보며 정오는 빙긋 웃었다. 학원 앞에 이르러 택시에서 내렸을 때, 진서에게 전화가 왔다.

16551150363275.jpg“네. 도빈 어머니, 지금 도빈이랑 예나랑 학원 앞에 도착했어요.”

진서가 걱정이 되어 연락을 한 줄 알고 정오는 전화를 받자마자 소식을 전했다.

16551150426805.jpg[정오 씨, 예나 어머니, 실은 할 말이 있어서요.]

그런데, 다른 용건이었다.

16551150363275.jpg“네. 말씀하세요.”

16551150426805.jpg[도빈이 아빠 친구 하나 있다고 말씀드린 적 있잖아요. 예나한테 혹시 얘기 들으셨나 모르겠는데, 그분이랑 예나가 많이 친해졌거든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화제라 정오의 눈이 커졌다.

16551150363275.jpg“아, 네. 예나랑 같이 바둑 했다는 분 말씀하시는 거죠?”

16551150426805.jpg[네네! 그분이에요. 그런데 그분이 이번에 해외 출장을 갔다가 선물을 샀나 봐요. 도빈이랑 같이 예나한테도 전해주고 싶다고 해서.]

16551150363275.jpg“아아니! 안 그러셔도 돼요. 괜찮아요.”

16551150426805.jpg[생각해서 선물을 샀다고 하는데, 됐다고 할 수도 없어서요. 난처하긴 하지만…….]

16551150363275.jpg“…….”

16551150426805.jpg[마침 그분이 바둑학원 앞을 지나간다고 하는데, 한번 만나보실래요?]

웬만하면 거절하고 말겠지만.

16551150426805.jpg[예나가 말하는 아저씨가 어떤 아저씨인지 예나 어머니도 궁금하셨을 텐데, 한번 얼굴 보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어떻게 하라고 할까요?]

정오는 진서의 설득에 마음을 바꾸었다. 크게 고민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고마운 사람이었다. 예나를 그토록 예뻐했다니 정오 역시 얼굴이 궁금하기도 했다.

16551150363275.jpg‘아, 엄마가 잘생겼다고 해서 호기심이 생긴 건 아니야.’

정오는 살짝 찔리는 마음을 감추고서 진서에게 대답했다.

16551150363275.jpg“네, 그럼 제가 여기서 뵙고 인사할게요. 아이들은 얼굴을 알 테니까 찾기 쉽겠네요.”

정오는 가볍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16551150363294.jpg“엄마, 왜?”

전화를 끊으니 예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물었다.

16551150363275.jpg“예전에 도빈이네 집에 놀러 오셨던 아저씨 있지?”

16551150392941.jpg“알아요! 바둑 삼촌!”

정오의 물음에 도빈이 먼저 대답했다.

16551150363275.jpg“그래. 바둑 삼촌. 그 아저씨가 여기 오신대.”

16551150363294.jpg“왜?”

16551150363275.jpg“선물 가져오신다는데?”

16551150363294.jpg“예나 선물?”

16551150392941.jpg“도빈이 선물은요?”

예나에 이어 도빈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서 물었다.

16551150363275.jpg“도빈이 거, 예나 거 둘 다 있대.”

1655115062393.jpg“와아!”

아이들이 제자리에서 콩콩 뛰며 박수 쳤다. 아무 부담감 없이 마냥 선물을 좋아할 나이. 정오도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았다. 아이가 귀여워서 주는 선물이라는데 고맙게 받자. 정오는 두 아이의 손을 잡고서 ‘그분’이 오길 기다렸다. 이윽고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차 한 대가 섰다.

16551150363275.jpg“어…….”

정오는 멈칫했다. 많이 보던 차. 어느새 눈에 익은 차량 표지판. 사람을 확인하기도 전에 코끝이 찡해졌다. 곧 운전석 문이 열리고 남자가 내렸다.

16551150392941.jpg“삼촌!”

16551150363294.jpg“아저씨이!”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가 부르기 쉬운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는데. 정오는 발이 땅에 박혀버린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지헌이 더 먼저 달려온 도빈의 어깨를 토닥이며 물었다.

16551150363265.jpg“도빈이 잘 지냈어?”

조금은 건조하면서도 나긋한 목소리가 여름날 저녁의 선선한 바람이 되어 정오의 귀에 닿았다.

16551150392941.jpg“네!”

그의 인사에 도빈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이윽고 지헌의 시선은 그 뒤편에 서 있는 예나에게로 옮겨갔다. 한 발짝 앞으로 나온 지헌이 예나의 앞에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아 키를 맞추었다. 언젠가. 언제나 ‘언젠가’라는 말머리를 달아야 했던 풍경. 눈을 감고서 그려볼 수는 있었지만, 눈을 뜨면 멀게만 여겨졌던 꿈 같은 풍경. 그 풍경이 지금 정오의 눈앞에 있었다. 그가 예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16551150363265.jpg“안녕, 예나야.”

하아. 뜨거운 탄성이 터졌다. 정오는 저도 모르게 제 입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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