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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아이에게도 비밀이 있다 (105/183)


105. 아이에게도 비밀이 있다
2022.04.30.


지헌이 떠난 후, 영미는 정말로 앓아누웠다.

아들이 이럴 줄은 몰랐다. 여자 때문에 제 엄마를 버리겠다고 할 줄은.

하늘이 무너진 것만 같았다.

너는 나의 전부였는데.

영미는 지헌을 낳아 키우는 내내 외로웠다. 1년에 몇 마디 나누지 않는 남편과 이에 못지않게 무뚝뚝한 친아들, 그리고 자신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남편의 전처 아들까지.

세 남자의 기를 세워주느라 자신은 평생 어깨도 못 펴고 살았다. 헌신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그저 보물 같은 친아들의 행복한 결혼을 바랐을 뿐이다. 집안 좋고 참한 여자를 신부로 맞아 평생 든든하게 호강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친구처럼, 그리고 어떤 때는 딸처럼 애교 많고 사근사근한 며느리와 오순도순 지내는 소박한 미래를 희망했을 뿐이다. 겨우 그 정도였다. 그녀의 소망은.

그 소박한 꿈이 이정오 하나로 완전히 무너졌다. 이제 인생의 보물이었던 아이까지 돌아섰다. 다시는 자신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막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서 떠난 아이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어…….

영미의 머릿속으로 추억의 장면들이 지나갔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기르며 힘들었던, 때로는 뿌듯했던 순간들, 그때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 과거의 추억들은 산처럼 쌓여 있는데도 텅 빈 미래가 모든 것을 압도했다.

새까만 밤의 사막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지헌에게 연락을 받고서 회의를 끝마치자마자 귀가한 재광이 빼꼼 문을 열고 영미의 침실로 들어왔다.

엄마와 절연한 아들의 독한 모습에 호통을 쳤지만, 재광은 한편으로 아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들은 이제 하루빨리 새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 아들이 새 가정을 이룰 때는 그 어떤 장애도 없어야 하고.

그러니 잠깐 동안은 제 엄마와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결국 영미의 마음을 돌리는 일은 재광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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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지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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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부르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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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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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헌이한테 전해. 엄마가 살고 싶지도 않다고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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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마음에 그렇게 못을 박으면 쓰나.”

아내가 날을 세우고 있으니 재광의 목소리는 절로 조심스러워졌다. 서로 대화는 별로 없지만 부부간의 균형은 깨지지 않는다. 30년이 넘게 부부로 살아온 이들의 암묵적인 규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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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헌이도 절대 당신 못 떠나. 언젠가 돌아올 테니까 너무 앓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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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헌이가 얼마나 독하게 쏘아붙였는지 못 봐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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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헌 엄마.”

재광은 나긋한 목소리로 재차 영미를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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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녀딸이 정말 예뻐. 우리 지헌이를 닮은 구석이 좀 있는데, 지헌이를 닮아서 그런지 당신도 닮은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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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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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랑 우리 손녀딸 옷도 고르고 정원에 같이 나무 심고 꽃 심고 그네 하나 만들어서 종일 밀어주고. 아이 재롱 보고 같이 박수 치고, 그랬으면 좋겠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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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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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우리 그럽시다. 응?”

재광의 반대편으로 등을 돌리고서 누운 영미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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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혼자 둬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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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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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키운다고 당신 매일 혼자 있게 했던 거, 집안일은 나 몰라라 했던 거. 전부 내가 잘못했어.”

흑흑흑. 영미의 흐느낌은 더욱 거세어졌다.

아무리 울어도,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

회의와 회의 사이. 정오는 막간을 이용해 인터넷 서칭에 열을 올렸다. 공황에 대해서, 불안증에 대해서, 트라우마에 대해서.

아무래도 지금의 지헌에겐 심리치료가 필요할 것 같았다.

모든 심리치료의 기본은 감정을 발견하여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오는 지헌의 감정 상태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헌은 세상의 모든 일에 무감한 듯이 타인을 보는 때가 많았다. 큰 사업을 하는 집안이라 어려서부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훈련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단련의 결과라면 할 말이 없지만 그로 인하여 감정의 통로 어딘가가 꽉 막혀버린 거라면 고쳐주고 싶었다.

그의 심연에는 많은 기억과 더불어 많은 감정이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7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더라도 그의 감정만은 꺼내어주고 싶었다.

감정의 주인이 되는 법을 알려주어 기쁨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즐거움이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참 여러 가지 자료를 읽어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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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작 2팀 이정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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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오 대리님. 집무실로 오세요.]

지헌의 목소리였다.

짧은 지시만 남기고 뚝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며 정오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걸음을 옮기는 내내 구시렁거린 정오는 집무실에 들어와 문을 닫자마자 새침하게 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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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렇게 불러대면 확 이직해버리는 수가 있어요. 이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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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정오의 충격적인 경고에 지헌의 한쪽 눈썹이 크게 휘었다. 그녀에게 한 발짝 다가서는 발걸음이 묵직했다. 정오는 더럭 겁이 났다. 그의 눈빛을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그녀가 그의 어떤 스위치를 눌러버린 것이다.

정오가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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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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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안 되지. 누구 마음대로.”

그러나 물러나는 만큼, 아니, 그 거리의 두 배로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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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라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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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농담을 왜 해. 사람 심장 철렁하게.”

아니, 내 심장이 더 철렁하는데?

두 사람 사이의 틈이 사라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러고서 다가오는 정지헌은 너무나 뻔하지.

꽉 막힌 공간이 원망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그를 불안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 할 거면 빨리해라.

정오의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갔다. 입술도 조금은 마중을 나왔다. 그러나.

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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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왜 이래!”

키스를 예상했는데 헤드록이라니.

역시 정지헌은 종잡을 수 없는 남자였다. 뒤에서 목을 끌어안고는 허리를 간지럽히니 몸이 절로 뒤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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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하지 마! 하지 마!”

몸을 비틀어도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집도 아니고 집무실이라 마음껏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정오는 괴로움과 간지러움에 몸부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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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고 해. 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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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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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쉽게 말하면 재미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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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말했어. 내가 미안하단 말을 얼마나 어려워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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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넌 쉽게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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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믿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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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안 되지.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그의 말투에 어쩐지 한이 서린 것 같아 정오는 의심을 품고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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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어제 내가 했던 말 때문에 여태 그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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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와. 뒤끝 작렬.

어제 다 해결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소심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감정의 표현. 정오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심정으로 정지헌의 레슬링에 협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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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데도 안 가겠다고 맹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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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합니다. 아무 데도 안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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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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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 아무 데도 안 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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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내 옆에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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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있어주면 될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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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여기 서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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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정오를 끌어안고 뒤뚱뒤뚱 움직인 지헌이 테이블 위의 종이를 툭툭 두드렸다. 거의 가려져 있어 내용을 알 수 없는 문서였다. 그 공란에 서명하라는 뜻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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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서명하라고. 아무 데도 안 가겠다는 서약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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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알겠어. 놔. 할 테니까.”

그제야 결박이 풀렸다. 정오는 펜을 집어 들고 문서를 가린 것들을 젖혀 보았다.

아. 혼인신고서.

지헌의 사인만 담긴 혼인신고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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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인 시키겠다고 그렇게 요란을 떠셨어? 내가 안 해줄까 봐?”

지헌은 대답을 회피하듯 돌아섰다. 정오는 피식 웃고는 혼인신고서에 사인했다. 정오는 더 쳐다보고 싶은데, 그녀가 번복이라도 할까 무서운 듯 지헌은 날름 낚아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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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제출은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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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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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서명도 받아야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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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규 차장님이나 우리 팀 사람들한테 서명받으면 되잖아.”

정오가 따지니 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문제가 있나 싶어 그녀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그가 잠시 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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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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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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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이거. 고소장 초안 미리 작성했어. 한번 읽어보고 수정할 거 있으면 수정해줘. 이것 먼저 다 해치워버리자.”

지헌은 혼인신고서를 덮고 있던 또 다른 문서를 내밀었다. BJ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장이었다. 이 역시 정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 잠자코 문서를 받았지만, 정오는 지헌이 재빨리 화제를 돌린 것 같아 계속 의아했다.

*

일이 일찍 끝난 금요일. 정오가 예나와 도빈을 데리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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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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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공주!”

예나가 먼저 정오를 발견하고서 달려왔고 도빈도 뒤따라 뛰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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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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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빈이 안녕. 도빈아, 오늘은 아줌마 집에서 예나랑 같이 저녁 먹고 놀자.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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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진서에게 신세를 많이 졌는데 갚을 기회가 왔다. 정오는 아이들과 함께 택시를 탔다.

예나의 집을 처음 방문하는 도빈은 조금 긴장한 표정이었다. 이 와중에 예나는 휴대폰만 계속 만지고 있었다. 도빈이 그런 예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중얼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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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휴대폰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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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사달라고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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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사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안 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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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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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을 안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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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왜 엄마 말을 안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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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나는 엄마 말을 듣긴 듣는데 행동이 잘 안 되는 것뿐이야.”

도빈의 변명이 우스워 정오는 몰래 웃었다. 도빈은 계속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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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도 엄마한테 맨날 혼나봐. 나처럼 행동이 잘 안 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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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왜 맨날 혼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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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그러는데 내가 하루 종일 혼나는 건 엄마 탓인 것 같대. 엄마가 나를 잘못 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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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잘못 키웠으면 엄마가 혼나야지 왜 네가 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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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나도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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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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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하루 종일 엄마가 잘못한 걸 용서하고 있어. 엄마는 나를 용서 안 하지만 나는 엄마를 용서해.”

아아. 요 귀염둥이.

도빈의 진지한 이야기에 결국 정오는 웃음이 터져버렸다. 푸흡 내뱉었다가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정리하는 동안 도빈에게 들켰다. 하지만 도빈은 정오가 웃었다고 생각하진 않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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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이거 비밀이에요. 우리 엄마한테 얘기하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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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알았어. 도빈아.”

정오는 웃음을 꾹 참고서 진지하게 끄덕여 보였다.

멀지 않은 거리라 택시는 금방 집 앞에 닿았다. 예나가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에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제 아빠랑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 같은데, 대체 무슨 비밀 얘기를 저렇게 긴히 하는 건지 요즘 내내 휴대폰을 보며 싱글벙글이다. 하지만 한번 주의를 주었던지라 정오의 목소리는 엄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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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나. 엄마가 걸어가는 동안에는 휴대폰 보지 말라고 그랬지.”

이제 벌칙이었다. 정오는 예나가 들고 있던 휴대폰을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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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내 휴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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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가 돌려줄 거야. 지금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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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만지고 그냥 목에 걸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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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안 돼.”

정오의 엄한 말에 예나는 삐죽 입술을 내밀고서 깜찍하게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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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대신 내 휴대폰 보면 안 돼. 알았지?”

그토록 엄마한테 보여주는 게 싫단 말이냐.

네가 자꾸 그러니까 더 신경 쓰이잖아.

아이의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는 정오와 국순, 지헌, 진서의 전화번호뿐이다. 그 외에 다른 번호를 아이가 저장하면 엄마에게도 알림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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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빠랑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는 건 확실한데 말이야.’

정오는 꽤 골똘해졌다.

대체 아빠와 딸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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