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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내가 지켜주면 되니까 (167/183)


167. 내가 지켜주면 되니까
2022.12.03.


예나가 바둑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은 만 하루 만에 널리 퍼졌다. 그 비결은 뉴스 기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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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대표, 잘 있나? 아니 일은 무슨. 그냥 안부 차 전화 한 거야. 황 대표 아들이 K대에 합격했다지? 축하하네. 그래 맞아. 지헌이가 거기 나왔지. 그럼 지헌이 후배가 되겠네. 우리 지헌이야 잘 지내지. 아니 어제는 우리 지헌이 딸이, 그러니까 내 손녀딸이 전국 바둑대회에서 1등을 한 거야. 일, 이, 삼학년을 다 제치고 일곱 살짜리가 1등을 했더라고.”

늘 닫혀 있던 세련그룹 정재광 회장 집무실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열린 문을 통해 시원시원하게 퍼지는 재광의 목소리에 부속실 직원들은 웃기도 하고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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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전무, 그제 기침을 하던데, 건강은 괜찮아? 그래, 항상 조심하고. 나도 어제 잠을 통 못 잤네. 아니 별일은 아니고, 우리 손녀딸 알지? 우리 손녀딸이 전국 바둑대회에서 1등을 했어. 일곱 살밖에 안 된 꼬맹이가 언니 오빠들을 다 이기고 금메달을 따왔지 뭐야. 벌써부터 이렇게 영특해가지고 너무 소문날까 봐 잠을 못 자겠더라고.”

재광이 지인과 임원들에게 먼저 안부 연락을 하는 건 1년에 두어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일인데, 오늘 재광은 스무 명에게나 먼저 전화를 걸었다. 일, 가족, 건강…… 어떤 화제로 시작하든 통화의 마무리는 언제나 손녀딸이었다.

정기 업무로 그룹 본사에 방문한 지헌은 회장실을 빼꼼 들여다보다가 재광에게 손목을 잡혔다. 재광은 지헌의 손을 끌어와 제 앞에 앉혀놓고서도 통화에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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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이사, 오늘 아침에 J일보 봤나? 아 그럼 우리 손녀딸이 바둑대회에서 1등 했다는 기사도 봤겠구먼. 아유 축하는 무슨. 그렇게 똑똑하니 사업을 다 물려줘야 하나 바둑기사가 되라고 지원해줘야 하나 아주 걱정이 태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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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태산이라며 눈도 입술도 웃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지헌의 입술 사이로도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통화를 끝낸 재광이 지헌을 바라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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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나는 필요한 거 없다니? 할아버지가 대회 1등 기념으로 선물 하나 해줘야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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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나 사탕이면 좋아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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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과자를 금메달 모양으로 만들어야겠어!”

재광은 눈을 빛내며 펜과 종이를 들었다. 손녀딸 덕분에 오랜만에 영감이 샘솟았다. 20여 년 전, 스낵 개발을 직접 하던 그때처럼 두근거렸다.

흥분한 재광에게 지헌이 넌지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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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너무 자랑하시면 안 돼요. 그리고 예나가 천재라는 건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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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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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자만하면 안 된다고 정오가 비밀로 하자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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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나도 언젠가 알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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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걱정이네요.”

아버지와 아들의 진지하고 심각한 고민에, 가까이 있던 재광의 수행비서는 웃지 않으려 입술에 힘을 주어야 했다.

아버지한테는 가볍게 주의를 주었지만 사실 지헌의 딸 자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바로 전날, 좋은 마음으로 축하해주러 지헌네 집을 찾아갔다가 친구의 자랑질에 지쳐버린 승규가 오늘도 일 때문에 지헌의 집무실을 방문했다가 딱 걸려버리고 말았다.

친구를 제 옆에 앉혀놓은 지헌은 중요한 일 얘기는 하지 않고 대뜸 예나의 결승전 대국 동영상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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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나 대국하는 거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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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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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봐봐.”

나는 분명히 싫다고 했는데.

승규는 흐린 눈으로 동영상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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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봐. 엄청 잘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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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안 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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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손만 봐도 돼. 이 결단력 있는 손 움직임을 봐. 놀랍지 않아?”

내 눈엔 네가 더 놀라운데.

나의 의젓했던 친구는 왜 이렇게 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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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내가 너의 소중한 친구로서 조언 하나 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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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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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 가서 이러면 안 돼. 특히 다른 직원들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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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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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네 친구고 예나를 잘 알고 있으니까 이런 거 보여줘도 되지만 직원들한테는 보라고 강요하고 감상 내놓으라고 다그치고 그러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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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러지. 나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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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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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내 소중한 친구라서 보여주는 거야.”

흐아아아. 이게 아주 여우라니까?

지헌이 ‘소중한 친구’라는 표현을 해줄 때마다 가슴이 울렁울렁하는 마음 약한 승규는 신음 같은 한숨을 내쉬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런 승규의 반응에 아랑곳없이 지헌은 휴대폰 화면을 거듭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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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거 봐봐. 잘 못 봤어? 내가 0.5배속으로 느리게 재생시켜볼게. 제대로 봐봐.”

다시 보는 건 1.5배속으로도 좀 고역인데 그걸 0.5배속으로 보게 하니,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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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제대로 보니까 정말 결단력이 대단한 움직임이다…….”

그러면서도 승규는 지헌의 딸 자랑을 너그러이 포용해주었다.

*

어제 잔뜩 흥분했던 정오는 그나마 조금 점잖아졌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정오에게는 함께 기뻐해줄 동료들이 있었다.

웬일로 고은주 대리까지 기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며 축하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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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는 정말로 다 가졌네요. 명석한 두뇌와 예쁜 얼굴과 천사 같은 엄마와…… 그냥 부자 아빠.”

은주는 지헌에게는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는 듯 오래 생각하다가 겨우겨우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그것이 진심이었지만 자신이 정지헌 이사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다시 재빨리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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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는 완벽한 어린이예요? 못하는 게 뭐예요?”

은주의 질문에 정오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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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못 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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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도 많으셔라. 일곱 살이 다 그렇죠. 못 그리면 얼마나 못 그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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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아빠를 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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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후. 이를 어째. 진짜 큰일이네요.”

정오만 옆에 없었어도 ‘정지헌 이사는 딸한테 물려줄 게 없어서 그런 걸 물려주냐’ 하고 구시렁구시렁 호박씨를 깠겠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은주는 험담을 속으로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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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짜리가 어떻게 1등을 하냐고, 바둑 사이트 게시판도 들썩들썩하네.”

평소에도 바둑 사이트 게시판을 눈여겨보는 박영광 차장도 놀라워하며 한마디 보탰다. 기훈도 영광이 들어가 본 바둑 사이트 게시판에 방문하여 글 몇 개를 눌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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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런데 어떡해요? 이사님이 인터뷰 사진을 막은 의미가 없네요. 개인 촬영 영상이 있나 봐요. 예나 대국을 멀리서 찍은 거요.”

그 말에 정오가 기훈의 자리로 달려갔다. 정말로 게시판의 어떤 글을 눌러보니 동영상이 있었다. 멀리서 촬영했는지 예나의 얼굴은 흐릿했지만 그래도 알아볼 수는 있었다.

혹시 다른 동영상이 있을까 하여 정오가 게시판을 살펴보는 사이에 이번에는 고은주 대리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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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대리님. 이것도 좀 보셔야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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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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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아빠가 정지헌 이사님이라는 기사가 올라왔어요.”

정오는 곧장 옆으로 건너갔다. 고은주 대리의 PC 화면에 기사가 크게 떠 있었다.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우승자, 알고 보니……>

지난 목요일 올림픽 핸드볼 경기장에서 열린 제30회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의 저학년부 우승자 정예나(7) 양이 화제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에서 만 6세의 미취학 어린이가 우승을 차지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 바둑계도 들썩이고 있다.

한편 정예나 양의 아버지는 세련 그룹 정재광 회장의 차남 정지헌 씨로, 정예나 양의 대국을 지켜보기 위해 아내 이 모 씨와 함께 경기장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지헌 씨와 이 모 씨는 올해 7월 혼인신고를 마쳤으나 아직 결혼식은 올리지 않은 상태다.」

*

여유로운 저녁 시간.

예나의 집에서 놀게 된 도빈이 뉴스 기사를 더듬더듬 읽어내렸다. 지헌이 오늘 아침에 크게 프린트해둔 예나의 바둑대회 기사였다.

몇 번을 읽어내린 도빈이 뉴스 기사의 한 줄을 짚어내며 예나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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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너 이거 조금 잘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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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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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경찰 되기로 약속했다고 하면 어떡해. 친구 박도빈이랑 경찰 되기로 약속했다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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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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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근데 다음에는 꼭 내 이름을 말해.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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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알겠어.”

도빈의 당부에 예나도 야무지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나의 굳건한 약속에도 도빈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직 의문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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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너 경찰 말고 바둑기사 될 수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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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잘 모르겠어. 엄마가 지금 안 정해도 된대.”

도빈은 골똘히 생각하는 듯 눈동자를 굴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나와 함께 경찰이 되는 것도 좋겠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서로 잘하는 게 다를 테니까.

예나가 넌지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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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경찰 말고 바둑기사 돼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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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괜찮아. 내가 경찰 돼서 지켜주면 되니까.”

주방에 가만히 앉아 꼬마들의 다정한 대화를 엿들으며 정오는 살그머니 미소 지었다. 코끝이 찡하기도 했다. 예나를 지켜주겠다는 도빈의 고마운 말이 먹먹했다.

저 어린아이도 내 딸을 지켜주겠다고 저렇게 멋지게 얘기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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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또 내 생각만 했던 것 같아.”

제 옆에 앉은 국순에게 정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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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까지 낳고 몸조리 다 하고 살도 빼고, 그러고서 결혼식을 하려고 했어. 그사이에도 우리 예나는 계속 자라고 있을 텐데.”

웨딩드레스를 예쁘게 입고 싶은 욕심에 예나를 생각하지 못했다. 조잡한 뉴스 기사를 확인하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나를 보통의 아이처럼 키우기 위해서는 크게 드러내지 말아야 할 특별한 것들이 있다. 7년 만에 아빠를 찾아 성이 바뀐 가정사, 엄마 아빠가 뒤늦게 혼인신고를 하게 된 사연.

결혼식 또한 그렇다. 이제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되는 예나가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왜 너희 엄마 아빠는 이제야 결혼식을 해?’와 같은 질문을 받을 필요는 없다.

예나는 그저 예나라는 존재만으로 특별했으면. 엄마 아빠의 절절한 사연이 예나의 인생에 그림자를 만들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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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올해 결혼식을 하는 게 좋겠어.”

결심한 정오가 국순에게 말했다.

재광은 두 사람이 빨리 결혼식을 치렀으면 했지만 국순이 반대했다. 정오가 시부모님께 하기 어려웠던 말을 대신해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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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님이랑 어머님한테 엄마가 기껏 어렵게 말해줬는데, 이랬다저랬다 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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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런 걸 가지고. 힘들지도 않은 일인데 뭘.”

국순은 언제나 그렇듯이 아무 일도 아닌 듯이 대답했다.

이번 역시 정오의 고민을 금방 이해했다. 웨딩드레스를 예쁘게 입고 싶어했던 딸아이의 욕심도, 아이 때문에 욕심을 포기하는 현재의 심정도 국순은 헤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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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 네가 마음을 열두 번 바꾼다고 해도 엄마는 대신 말해줄 수 있어.”

딸아, 너는 네 딸을 지켜라.

나는 내 딸을 지켜야지.

우리 그렇게 살면 되겠지.

국순의 가뿐한 대답에 정오의 고민주머니도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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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오빠 오면 말해야겠어.”

잠시 후 도빈과 놀던 예나가 정오에게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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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미술학원 다니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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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바둑학원도 다니고 미술학원도 다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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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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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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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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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더 잘 그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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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내가 잘하면 아빠도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아빠는 나를 닮았으니까!”

예나의 순수한 대답에 정오의 입술이 길어졌다.

변하는 마음들이 서로를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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