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투자.(6)
오후 6시.
회의가 끝나고 직원의 반 이상이 퇴근했다.
나는 책상을 정리하면서, 남은 직원들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수호씨. 이리 와보세요."
퇴근을 앞둔 윤 대리가, 갑자기 나를 호출했다.
그의 단호한 목소리에, 내가 뭔가 잘못한거라도 있나 싶었다.
"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윤 대리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윤 대리는 자신의 자리에 앉은채로,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보이시죠?"
그가 가리키는 화면에는, 보안 프로그램 업데이트 진행상황이 떠있었다.
업데이트는 이제 막 시작했는지, 1%를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보안팀에서 지침이 내려왔거든요?"
"네."
"부장님자리부터 연희씨 자리까지. 보안프로그램 싹 다 업데이트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표정하나 구기지 않고 대답했지만.
퇴근을 앞에 두고 생겨난 일거리에, 마음이 좋지않았다.
직원들이 쓰는 PC는 대략 30대 정도.
거기에다가 윤 대리가 이제막 시작한 업데이트는, 몇십 분으로 끝날 상황이 아닌것 같았다.
"완료되면 재부팅도 해놓으세요. 그래야 적용이 된다고 하네요."
"네. 알겠습니다."
주의사항을 알려주던 윤 대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난건지 박 과장을 불렀다.
"과장님!"
"왜?"
"모니터링 PC도 업데이트할까요? 따로 지침은 안내려왔는데.."
"하는김에 다 하면 좋지. 말 나올것도 없고."
"그렇겠죠?"
박 과장의 확인을 받은 윤 대리는, 나를 바라보며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니터링 PC들도 다 업데이트 해주시고요. 아! 수호씨 자리에 있는 PC도 다 업데이트 하셔야 돼요."
이것으로 모니터링 PC 8대까지, 업데이트 해야 할 목록에 추가.
아무래도 오늘 퇴근은, 일찍하기 그른것 같다.
* * *
"이건 왜 안되는거야.."
오후 6시 40분.
사무실에 혼자 남은 시각.
윤 대리로부터 미처 전달받지 못한 상황이 생겨났다.
잘 되던 업데이트가, 몇몇 PC에서 오류가 나서 멈춰버린 것이다.
[업데이트 진행 오류]
[오류내역 확인]
[중요 파일 업데이트 1개가 중지되었습니다.]
[확인 / 취소]
오류내역을 무시하고 진행해야하는 건지..
만약 그렇게 한다면 문제는 생기지 않는건지.. 현재 상황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어떡하지..'
윤 대리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이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전화해봤자 윤 대리도 잘 모를것 같았고.
퇴근중에 전화를 걸면, 짜증섞인 목소리를 들어야 했기때문이다.
'그래. 차라리 보안팀에 물어보자.'
나는 방향을 전환했다.
벽에 걸린 보안팀의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즉시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신호음이 갔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네. 보안팀 박경훈입니다."
혹시나 퇴근했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도 보안팀의 직원 중 하나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용건을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국금융투자 국내사업부 김수호입니다."
"네. 그런데 무슨일이시죠?"
"보안 프로그램을 업데이트 중인데, 중간에 오류가 나서요. 어떻게 해야하는지 여쭤보려고 전화했습니다."
보안팀 관계자는 오류내역을 카메라로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이윽고 돌아온 대답은..
"그냥 진행하세요."
해당 파일은 무시하고 진행해도 되는 것이었나보다.
나는 확인 버튼을 누르고, 나머지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 * *
오후 7시.
업데이트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루*웰스를 검색했다.
며칠전과 달리, 유튜브에는 루*웰스와 관련해서 많은 영상들이 업로드되어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썸네일과 제목이, 가장 마음에 드는 영상을 재생했다.
그러자 중저음의 목소리가, 영상속에서 흘러나왔다.
"여러분. 주식은 급등할때 사는게 아닙니다. 거래량이 완전 미미할때. 소위 말하는 바닦일 때. 모두가 무서워서 사지 않을 때. 그때 사는겁니다!"
유튜버는,루*웰스의 주가 차트를 화면에 띄었다.
그리고 마우스를 2021년 12월에 가져다대고 말했다.
"이때 샀으면, 지금쯤 1.5배 수익이 났을겁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주가가 급등하기 전에 사라니.
누가 그걸 몰라서 안하나싶었다.
이런걸 강의라고 하고 앉아있는게 신기했다.
나는 영상을 종료했다.
시간이 아까웠다.
시계를 보니 아직 7시 15분.
대다수의 PC 업데이트가 40%남짓 완료된 상태였다.
'아.. 축구나 볼까..'
미처 다 보지못한 프리미어리그 영상들이 있는데. 하이라이트나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아끼려고 노력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소소한 행복쯤은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 딱 하나만 보자..'
그 순간이었다.
축구 하이라이트 영상을 틀려고 하는데..
또각. 또각..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부서에도 퇴근 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으니, 그려러니 할 수도 있었지만.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하려던 행동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또각. 또각..
뚝!
그리고 사무실 앞에서 멈춘 구두소리.
그와함께 삐리리- 보안키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퇴근 한다고 나갔던 김연희 사원이, 미소를 지은채로 들어오고 있었다.
분명 아까 퇴근한다고 나갔었는데..
"어?! 연희씨.. 무슨 일로.."
"역시, 아직 계셨네요."
영하 6도에 달하는 저녁 기온.
볼이 빨개진 채로 돌아온 김연희 사원의 손에는, 하얀색 봉투가 들려있었다.
"수호 씨, 잠시만요."
그녀는 회의용 탁자에 봉투와 테이크아웃 해온 커피 두 잔을 올려 놓고는, 마스크를 벗었다.
그와함께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가 드러났다.
외투까지 벗어서 의자에 걸어둔 그녀는.
그제서야 준비를 다 마쳐다는듯, 고개를 나에게 돌렸다.
그리고 양 팔을 들어, 머리를 묶으며 말했다.
"수호 씨, 저녁 아직 안드셨죠?"
"네? 아.. 네. 아직 못 먹었습니다."
"잘 됐네요. 수호씨랑 같이 먹을려고 초밥 사왔거든요."
그녀는 흰 봉투에서, 커다란 초밥 세트와 우동 그릇을 꺼냈다.
그리고 자신의 노고를 알아달라는 듯, 칭얼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제가 이거 들고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수호씨가 제 이런 정성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 * *
저녁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서야, 나는 고시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걸어서 내방 앞으로 걸어온 뒤.
다른 사람들이 깨지않도록 문을 살짝 열었다.
불을 켜니, 아침에 출근하며 어지럽혀 놓은 방이 보였다.
침대 위에는 드라이기와 멀티탭이 뒤엉켜 있었고,
책상위에는 종이컵과 서류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나는 급한대로 쓰레기들을 주워서 고시원의 쓰레기장으로 가져갔다.
캔은 캔대로, 종이컵은 종이컵대로, 비닐봉투는 봉투전용 쓰레기통으로.
각각 분리수거를 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뭐지?..'
방으로 돌아오니.
책상위에 놓아두었던 스마트폰이 번쩍이고 있었다.
확인해보니, 엄마로부터 톡이 와있었다.
[퇴근했어?]
원래 이렇게 다정한 성격이 아니신데..
따로 떨어져 살게된 이후로, 가끔 이런 톡을 보내신다.
[네. 퇴근했죠.]
[밥은 잘 먹고 다니지?]
[네. 여기 밥 잘하는 가게 많아요.]
[그래. 밥 잘 챙겨먹고 다녀. 라면 같은거만 먹지 말고.]
뜨금했다.
이틀에 한 번은 먹는게 라면인데..
[라면이야 가끔 먹는거죠. 엄마는 잘 지내요?]
[엄마야 잘 지내지.]
엄마는 둘째를 출산한 동생네 집에 가 계신다.
얼굴을 못본지는 대략 두 달쯤.
오미크론이 터진 뒤로, 사회생활을 하고있는 내가, 동생네 집에 방문하는 것이 좀 꺼려졌다.
또 이천에 사는 동생네 집까지 가는것도 멀고..
그렇게 이런저런 핑계로, 못찾아 뵌지가 꽤 된 것 같다.
'그나저나 엄마 팔도 안좋으신데, 애 보느라 힘드시진 않을까..'
갑자기 걱정이 밀려왔다.
첫째 조카가 태어났을 때.
매일밤 안아주고 재워주었던 시절이 있었다.
안아주는 자세가 조금만 바뀌어도 잠에서 깨고.
심지어는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내려 놓아도, 등이 바닦에 닿는순간 울어버리는 탓에, 온가족이 피곤에 쩔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 혼자, 동생네 집에 가서 아기를 봐주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내가 없으니, 그때 보다는 더 힘들것 같았다.
[힘들면 다혜한테 말해요. 팔 무리하지 마시고요.]
[난 괜찮아. 다혜가 힘들지.]
[아무튼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세요. 명절때 찾아뵐게요.]
나는 엄마와의 대화를 간결하게 마무리지었다.
말이 더 길어져봤자, 딱히 할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명절때는, 선물이라도 하나 사드려야겠다.'
지금으로서는 내가 잘 돼서 효도하는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 * *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나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수많은 군중틈에 섞여 회사로 향했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을 타고 신길역에서 내려서, 여의도방면으로 한번 더 환승후.
걸어가길 십 여분.
띠리리-
마침내 도착한 사무실의 분위기는 오늘따라 맑았다.
첫 느낌이 중요한데, 아무도 없는 빈 사무실의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마치 루*웰스의 주가가, 오늘도 상승 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예감은 중요하다.'
예감은 내가 무엇을 수행하려 할때,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중 하나였다.
이성을 만나거나, 혹은 누군가와 협업을 해야 할 때.
대다수의 경험상, 나의 예감이 틀린적은 거의 없었다.
뭔가 일이 틀어질것 같으면, 정말 신기하게도 일이 틀어졌고.
안좋은 일이 발생할것 같으면, 정말로 안좋은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오늘 나의 예감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루*웰스의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라고 말이다.
'루*웰스. 작전세력 개입 가능성 높다. 들어가지 마라.'
'이미 고점. 지금 들어가면 다 물린다.'
'아직 2차 상승 가능성 충분함. 나는 올라탄다.'
수많은 의견이 주식갤러리를 뒤덮은 가운데.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껐다.
남들이 뭐라하든.
내가 갈 길은 내가 정한다.
* * *
2022년 1월 5일.
오전 8시 59분.
두근.. 두근..
장 시작 1분 전이 되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이 긴장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잃어도 되는 돈이 아니라면.. 그누구라도 마찬가지일것 같았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장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됐다..'
오전 9시가 되었다.
장이 시작되는 시간.
나는 서둘러 어플을 실행하고, 루*웰스의 주가를 확인했다.
그런데.. 보고도 믿기 힘든 주가가, 눈앞에 나타났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보게 된 주가창.
[루*웰스]
[시가 : 주당 464원]
[전일대비 ↑ 30% 상승중]
[총 매수금액 : 120만 원]
[총 평가금액 : 232만 원]
[평가손익 : + 112만 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루*웰스의 주가는, 전날 기록했던 주당 357원을 훌쩍 뛰어넘은 주당 464원을 기록중이었다.
장이 열리자말자, 상한가인 30%를 찍어버린.. 말로만 듣던 '점상'
주식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아른다운 붉은 색 점.
그것이 차트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너무 흥분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그래,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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