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투자.(7)
[루*웰스]
[현재가 : 464 원]
[전일대비 : 30% 상승중]
주가창을 보는 순간.
그만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너무나 기뻤다.
좋은 예감을 믿고 뚝심있게 버티긴 했지만, 내심 두려운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신념대로 밀고 나갔고.
결국 그 결과물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대박.. 대박이다..'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 * *
장 시작 5분 후.
기뻐서 날아갈 것만 같은 내 기분과 달리, 사무실의 분위기는 안개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하아.."
한 차장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차장이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표정이 어두웠다.
'왜 저러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니터링 화면을 보니, 역시나 증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코스피 지수는 2,964. 코스닥 지수는 1,015. 두 가지 지수모두, 전일보다 크게 하락한 상태였다.
그와함께 우리 사업부의 실적 역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었다.
[제국금융투자 국내사업부]
[2022년 1월 5일자 현황]
[총 투자금액 : 984억]
[총 평가손익 : 마이너스 6억 2천만 원]
장이 열린지 5분만에 기록한 손실이었다.
창가 쪽 자리에 앉아있는 황 부장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거렸다.
"꿀꺽.."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럴때는 몸을 사리는게 최고다..
나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업무에 집중했다.
* * *
오후 3시 30분.
마침내 직원들의 트레이딩 시간이 끝났다.
그와함께 오늘자 실적이 현황판에 나타났다.
[제국금융투자 국내사업부]
[2022년 1월 5일자 현황]
[총 투자금액 : 927억]
[총 평가손익 : 마이너스 4억 2천만 원]
오전장 보다는 손실액을 만회했다.
다행히 멘탈을 회복했는지. 황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직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괜찮아. 뭐 이럴때도 있는거지."
이어진 그의 말은, 사무보조인 나조차 열 번 쯤은 들어본 말이었다.
우리는 주식을 거래하는 프로다.
잃을 때도 있고, 딸 때도 있는거다.
오늘은 장은 좋지 않았고, 우리는 손실액을 최소화했다.
그걸로 됐다. 다들 수고했다. 내일 잘하면 되는거다.
뭐 그런 내용이었다.
황 부장은 직원들의 기를 살려주려 했는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들 수고했다는 의미로, 박수치면서 마무리 하자고."
짝-짝-짝-
사무실에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와 함께, 직원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수호 씨. 잠시만요."
오후 6시 20분.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김연희 사원이었다.
이미 20분전에 퇴근하고 갔던 그녀였기에, 횡단보도 앞에서 마주친게 신기했다.
"위원님. 그럼 들어가세요."
그녀는 위원님이라 부르던 남자에게 손을 흔든 뒤.
곧바로 나에게 달려왔다.
"지하철 타러 가시는거죠?"
"네.."
"잘 됐네요. 같이 가요."
그녀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내가 소심한 건지.
아니면 그녀가 외향적인 건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건지 모르겠지만.
어제에 이어 오늘도, 그녀와 같이 걷게 되었다.
"오늘 많이 춥죠?"
"네. 오늘은 더 춥네요."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집은 어디냐.
그럼 몇시에 일어나서 준비하냐.
루*웰스 주식은 언제 팔거냐 등등.
김연희 사원은 수많은 질문들을 던졌고.
또 그런 질문에 답해주다보니.
어느새 지하철 탑승장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란히 서서, 5호선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문득.
김연희 사원의 옆에 있던 남자가 떠올랐다.
나이는 대략 40대 초반.
깔끔하게 빗은 머리와 스타일리시한 스타일.
그리고 어딘가 귀티나는 외모는..
분명 예사 사람이 아니었다.
거기다 위원님이라니.. 호칭까지 특이했다.
'국회의원을 말하는건가..'
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비록 1년이란 짧은 경력이지만.
여의도에서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던 사람이다.
나는 금융인들 특유의 느낌을 알고 있다.
옷차림도 그렇고 풍기는 분위기도 그렇고.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 그 특유의 느낌이 있다.
그리고 방금전에 보았던 남자는 분명..
그 특유의 느낌이 배어있는 사람이었다.
"저기..."
"수호씨.."
"연희씨, 먼저 말씀 하세요."
"아니에요, 수호씨 먼저 말씀하세요."
남자의 정체를 물어보려다가, 말이 겹쳐버렸다.
계속해서 미루는것도 아닌거 같아서,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방금전에, 옆에 있던 남자는 누구에요?"
"방금 전이요?.. 아.. 전문위원님 말씀하시는거에요?"
김연희 사원은 뭔가 눈치 챘는지, 미소를 지어보였다.
"연구소 전문위원님이에요. 얼마전까지 건향증권 애널리스트로 재직하시던 분이신데.. 박건호 애널이라고 이쪽에서 유명하셨던 분이에요."
"아.. 그러셨구나."
"그런데, 그게 왜 궁금했던 거예요?"
"아.. 그냥 궁금해서요."
김연희 사원은, 뭔가를 눈치챘는지 묘한 미소를 띄었다.
"사실, 부탁을 드릴게 있어서 잠시 만나자고 했었어요. 그리고.."
"...!"
"이거 받으세요."
김연희 사원은, 나에게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안을 들여다보니, 수십 장의 서류가 들어있었다.
"이게 뭐에요?"
"선물이예요."
"선물이요?"
"네. 집에 가서 한번 확인해 보세요. 선택에 도움이 될 거에요."
선택에 도움이 될거라니..
그녀의 말에 나는 당장, 내용물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곧바로 도착한 지하철로 인해, 확인 작업은 미룰 수 밖에 없었다.
* * *
오후 7시 40분.
평소보다 조금 일찍.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나는 옷도 벗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곧장 김연희 사원이 준, 서류를 읽어나갔다.
서류는 루*웰스와 관련된 정보였다.
보고서의 작성자는, 경제연구소의 전문위원이자, 전 건향증권 애널리스트인 박건호씨.
그의 분석 자료는 루*웰스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2017년.
- 루*웰스는 회사명을 한 차례 변경했다. 그리고 정관도 변경한 기록이 있다.
- 루*웰스는 신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하고.
- 곧바로 유상증자를 시작했다.
- 하지만 주가는 곧바로 하락했다.
- 이후 상장폐지 공포가 휘몰아 치고,
- 세력이 물량을 대거 수집했다.
- 작전세력들이 물량을 다 가진 후에야,
- 호재성 기사가 터졌다.
- 이것이 지난 4년간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박건호 전문위원은 여기까지 정리한 후.
루*웰스의 지난 과거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이것은 작업의 정석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그리고 현재 2022년.
'루*웰스가 2조짜리 계약을 체결했다는 건에 대하여.'
- 매출액 120억대 회사가, 2조원짜리 계약을 체결했다는게 의심된다.
- 루*웰스가 체결했다는 계약의 내용은, 중국 내부 기사 전체를 찾아봐도, 단 2건만 나온다.
- 중국 기업의 내부 상황은 우리가 알 수 없다.
- 지금까지 한국 시장에 상장했다가, 상폐한 중국기업은 13곳이다.
- 계약규모에 연연해 하지 말고,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
결론.
'루*웰스. 지금 투자하는것은 적절한가?'
'이미 루*웰스의 주식을 보유중이라면, 언제 파는 것이 좋은가?'
- 현 시점에 진입하는 것은 위험하다.
- 목표 주가는 있을 수 없다.
- 대응만이 있을 뿐이다.
- 그들이 언제 물량을 던질지, 그들(세력)만이 안다.
- 물론 2차 상승이 발생할 가능성은 있다.
- 하지만 그곳에 베팅하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다.
총 52페이지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서류는. 이외에도 다각도로 루*웰스의 위험성을 분석했다.
- 글로벌 경기와 루*웰스의 관계
-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 축소 위험
- 중국 정책 변동에 의한 실적 악화 위험
- 미중 무역 갈등에 대한 위험
- 특수관계자간 거래 위험
- 관리감독 관련 위험
나는 서류를 덮었다.
유상증자, 정관변경.
그리고 목표주가는 없고 대응만 있을 뿐이라니.
한번에 이해할 수 없는 단어와 문장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맥락.
그러니깐 요점만큼은,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루*웰스가 발표한 계약이. '허위공시일 가능성이 크다' 는 것이다.
'무엇이 최선일까..'
나는 생각에 잠겼다.
과거에도 루*웰스가, 지금처럼 대규모의 계약을 따냈다고 발표한 후에.
주가가 급등했던 사례가 있었다니.
그것은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언제 또 주가가 급락할지 모른다는 건데..'
문제는 어디까지 고점을 찍고, 내려올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결정 해야 돼..'
이제 내가 결정할 차례다.
미룰 수 없다.
내일 보유주식 전부를 매도 할지.
아니면 한 번 더 기다려 볼지.
지금당장, 결정을 내려야했다.
째각- 째각-
탁상용 시계로 샀던 캐릭터 시계가, 정감가는 시계추 소리를 내는 가운데.
생각에 잠겼던 나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래. 그게 최선이다.'
나는 내일 아침.
루*웰스의 보유주식 전량을, 매도하기로 결정했다.
* * *
2022년 1월 6일.
오전 6시.
평소보다 한 시간 가량 일찍, 사무실에 도착했다.
새벽 3시에 잠에서 깼는데, 이후로 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일찍 와서 공부 하는게 낫지.'
어제 박건호 전문위원이 작성한 보고서를 읽고서, 많은 것을 느꼈다.
내가 직접 보고서를 작성하지는 못해도, 읽고 이해 할 수 있는 수준은 되고 싶었다.
나는 구글을 켜고, 경제 기사들을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美 연준. 금리인상 앞 당길수도.]
[연준 금리인상 검토소식에 뉴욕증시 출렁]
[칼을 뽑은 연준. 증시 이제 어떡하나.]
각 경제 신문사의 헤드라인은, 연준 기준금리 인상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연준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이 금리를 인상 하는데, 왜 우리나라 증권사들이 초비상이 걸린단 말인가.
나는 모르는 단어들은 하나씩 검색해 가며, 개념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결과.
[미국은 세계경제의 대장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세계 각국에 퍼져나갔던 자금들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되면 한국 기업에 투자했던 외국자본도 빠져나가고.
국내 기업들의 주가는 하락하게 된다.]
"훗.. 나 좀 똑똑한데?.."
성취감이 생겼다.
무려 한 시간동안 노력한 끝에,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누군가 연준 기준금리 인상과 국내 기업의 주가를 언급한다면.
그 흐름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美 연준 기준금리 인상 - 미국으로 자본 빨려 들어감 - 국내 기업에 투자했던 자본도 빠짐 - 국내 기업 주가 하락.'
나는 다시한번 수첩에 간략히 요점을 정리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10분.
슬슬 직원들이 올 시간이었다.
물티슈 한 장을 빼서, 황 부장 자리부터 닦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삐리리-
보안키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김연희 사원이었다.
그녀는 밝은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네며 들어왔다.
"수호 씨, 좋은 아침이에요."
"네. 좋은 아침이에요. 연희 씨."
"어제 보고서는 읽어 보셨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감있게 말했다.
"네. 읽어 봤죠."
"어떠셨어요?"
"좋은 보고서였어요. 유익한 자료였습니다."
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현재 내 어휘력은 이게 한계였다.
뭐, 어쨌든 말이 통하면 된거 아닌가.
나는 내가 할 일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 * *
오전 8시 59분.
제국금융투자 국내사업부의 사무실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직원들은, 간밤에 나온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소식에.
나는, 루*웰스 종목에.
각자의 관심이 집중된 곳에, 촉각을 곤두세운 채로 장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오전 9시 정각.
[장이 시작되었습니다.]
장이 시작되었다는 기계 알림음과 함께.
나와 국내 사업부 직원들은, 각자가 원하는 정보에 접근했다.
두근.. 두근..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어플을 실행시킨 후, 루*웰스의 주가를 확인했다.
그러자.
[루*웰스]
[시가 : 주당 603원]
[전일 대비 : 30% 상승중]
놀라운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루*웰스는 이틀 연속으로 점상을 찍었다.
"대박.."
이것이 세력의 속셈이든, 진짜 호재든 간에.. 이제는 나와 상관없다.
내 몫은 여기까지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보유 주식 전량을 매도했다.
그러자 쉴 틈도 없이 곧바로.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라는 알림음이 울려왔다.
나는 즉시, 거래내역을 확인했다.
[루*웰스]
[매도 수량: 5,000주]
[총 매수금액 : 120만 원]
[총 매도금액 : 3백 1만 5천 원]
[실현손익 : + 181만 5천 원]
세금과 거래수수료를 제외하고도, 대략 180만 원 남짓한 순이익을 거두게 되었다.
그와함께 내가 굴릴 수 있는 투자금의 규모는, 이제 300만원이 되었다.
[계좌 잔액]
[예수금 : 3백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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