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다섯 번째 투자.(2) >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우리는 곧장 본관으로 향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서울시의 야경을 잠시 감상하기 위함이었다.
대한민국 3대 고깃집으로 알려진 명*관은, 한강뷰가 일품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반짝이는 고층빌딩과 함께 펼쳐진 한강이.
마치 영화속 한 장면을 연상케했다.
"와. 예쁘다."
"그렇네요. 너무 아름답네요."
"수호씨랑 같이 보니깐 더 예쁜거 같아요."
김연희 사원은.
그대로 지나치기가 아쉬웠는지.
가방에서 폰을 꺼냈다.
그리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리 찍어보고 저리 찍어보고.
또 난간에서 찍어보고 계단에서 찍어보더니.
이내 나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평소 사진을 찍는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김연희 사원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제안에 응했다.
그러자 김연희 사원은 자연스럽게 내 팔짱을 낀 뒤.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지었다.
찰칵- 찰칵-
수십 차례 촬영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왔는지.
김연희 사원이 사진찍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나에게 폰을 내밀며.
잘 나오지 않았냐며 물어보았다.
하는 행동을 보아하니. 확실히 이번 사진은 잘 나온듯 하였다.
나는 김연희 사원이 건네준 사진을 확인해보았다.
그러자.
남자라면 누구나 한 눈에 반할 정도의 여성이.
사진 속에서 환히 웃고 있는것이 보였다.
어플에 깔린 보정능력 탓도 있었지만.
김연희 사원 자체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호씨한테도 보내줄까요?"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죠."
"풉..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김연희 사원은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환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곧장.
방금전에 찍었던 사진을 나에게 전송해 주었다.
그리고 그와함께.
예전에 찍었던 셀카 사진들까지 함께 보내주었다.
그렇게 총 여섯 장에 이르는 사진을 나에게 보내준 김연희 사원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호 씨."
"네?"
"분명히 마음에 드신다고 하셨죠?"
"네.."
"그럼 이 사진. 배경화면으로 저장해 주세요."
* * *
명*관은.
본관 하나와 별관 세 개로 이루어진 고깃집이다.
하지만 김연희 사원이 있었기에.
길을 헤맬 필요는 없었다.
이곳을 여러차례 방문해 보았던 그녀는.
너무나 익숙하게.
본관 건물을 찾아서 걸어갔다.
그리고 입구에 서있는 매니저에게.
예약자명을 불러주었다.
잠시 후.
예약 목록을 확인한 직원이 다가와서.
활짝 웃으며 말했다.
"특별실로 예약해 두셨네요."
"네. 맞아요."
"이렇게 방문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금부터는 저희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단정하게 유니폼을 차려입은 매니저는.
우리를 특별실로 안내해 주었다.
족히 수백 평은 될 법한, 넓은 홀을 지나서.
긴 복도로 들어서니.
룸 형식으로 만들어진 특별실들이 보였다.
매니저는 통로의 중간 쯤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왼쪽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입니다."
그와 동시에.
이곳이 목적지가 맞다는 듯.
방안에서 한 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다른 직원들과 함께.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인지.
껄껄 거리며 웃고 있었다.
"수호 씨. 우리도 얼른 들어가요."
"네."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나란히 구두를 벗은 우리 두 사람은.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 * *
저녁 6시 10분.
황 부장이 참석한 가운데.
회식이 시작되었다.
최고급 음식점답게.
음식 하나하나 나오는것이.
일반 음식점들과 수준이 달랐다.
우리는 코스별로 나오는 음식을 맛있게 맛보았다.
호박죽을 먹고 나니.
타이밍이 끊기지 않게, 밑반찬들이 세팅되었다.
김치, 버섯볶음, 명태회무침, 도토리묵,가오리무침,샐러드를 비롯하여.
테이블마다 대여섯가지의 기본 반찬들이 올라왔다.
그리고 곧이어 육회가.
사람 숫자에 맞춰서 한 접시씩 올라왔다.
눈으로 보아서는. 한 젖가락이면 끝날 양이었다.
하지만 다들 입맛에 맞았는지.
한 젖가락으로 끝내지 않고. 조금씩 나눠서 먹고 있었다.
"음.. 맛있네요."
"나도 그래. 여기 육회가 제일 맛있어."
쩝쩝 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가운데.
나도 육회를 한 젖가락 집어서 먹어 보았다.
그러자.
입안에 들어간 육회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술을 경험하게 되었다.
육회 시식만으로도.
이곳의 고기 품질이, 얼마나 좋은지 감이 잡혔다.
그렇게 에피타이저를 즐기고 나니깐.
흐름이 끊기지 않게.
메인 음식인 고기가. 접시에 예쁘게 담겨서 들어왔다.
고기는 삼겹살, 갈비살, 양념갈비, 생갈비 정도의 구분만 할 줄 알던 나였기에.
지금 들어오는 고기의 이름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작은 역시 안심이죠."
라는 한 차장의 말에.
그제서야 지금 들어온 고기가.
소고기의 안심부위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고기를 굽기 위해 테이블로 다가오신 도우미 분을 향해.
황 부장이 괜찮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고기는 우리가 직접 구워먹겠다고 말씀을 하셨다.
고기를 먹을 때.
옆에서 누군가 계속 구워주는게 부담이 된다는 이유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황 부장이 상석에 앉은 자리는 강은우 사원이.
박 과장이 상석으로 앉은 자리에는 내가.
전담을 맡아서 고기를 굽게되었다.
나는 도우미분에게 집게와 접시를 건네 받은 후.
곧장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스테이크 느낌이 나는 안심 부위는.
한 번도 구워 본적이 없었기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봐야 고기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자신감있게 고기를 불판 위에 올려 놓았다.
불판에 닿은 고기가 치이익- 소리를 내는 가운데.
윤 대리가.
술병을 들고 황 부장을 향해 말했다.
"부장님. 제가 한 잔 따르겠습니다."
황 부장이 빈 술잔을 들어올리자.
윤 대리가 팔을 쭉 뻗어서.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한 차장에 이어 박 과장까지. 차례대로 따라주었다.
"김 사원도 한 잔 받아."
"네. 감사합니다."
나는 고기를 굽다말고.
잔을 들어서, 윤 대리가 건네주는 술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윤 대리에게 술병을 건네 받아서.
윤 대리의 잔에도 술을 따라주었다.
그렇게 모든 직원들의 잔에 술이 채워지자.
황 부장이 술잔을 들고 말했다.
"오늘은 참 기분이 좋은 날이야. 이렇게 완전체로 회식을 즐길 수 있으니깐 말이야."
술잔을 들고 있는 황 부장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는 소리때문에.
빨리 뒤집어야 할 것 같다는 강박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술잔을 내려놓고 고기를 뒤집을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황 부장은 그런 내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술잔을 든 채 말을 이었다.
"그런 의미로 오늘 첫 건배사는. 김수호 사원."
그의 입에서 갑자기 내 이름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우측으로 향했던 직원들이 시선이.
일제히 왼쪽에 있는 나에게 향했다.
모든 시선이 내게 쏠린 가운데.
황 부장이 말을 이었다.
"자네가 한 번 해보는게 어떤가?"
황 부장은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직장생활이라면 이곳이 처음이었기에.
건배사를 어떤식으로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드라마를 통해 본 것이 있기는 한데.
그대로 해도 될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일단 들이박는게. 빼는것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자신감있게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황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김연희 사원이 슬그머니.
테이블 아래로 뭔가를 전달했다.
무엇인가 보았더니.
다름 아닌 그녀의 스마트폰이었다.
그녀의 스마트폰에는.
'직장인 건배사 TOP3'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나는 3초도 되지않는 짧은 시간에.
세 줄에 이르는 문장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해당 글은.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아.우.성.이라는 초성과 함께.
가장 많이 쓰는 건배사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아 : 아직 최고의 순간은 오직 않았습니다. 모두 최고의 순간까지 함께 달립시다!
우 : 우리의 꿈과 미래를 위하여! 건배!
성 : 성공을 위하여. 모두 잔을 높이 듭시다!"
하지만 빠른 시간에.
건배사를 훑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드는 건배사는 없었다.
나는 드라마에서 본 대로.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시선처리와 함께.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했다.
"저는 우리 사업부가 최고가 될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까전에 부장님이 말씀하신대로, 아직은 만족하기에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한민국 1등을 향하여라고 말하면. 다같이 국내사업부를 위하여!라고 재창해 주시면 됩니다."
"대한민국 1등을 위하여!"
"국내사업부를 위하여!"
그렇게 건배사가 끝나자.
직원들은 일제히 술잔을 들이켰다.
처음해보는 건배사라 그런지.
잘했는지 못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눈 앞에 앉아 있는 김연희 사원의 미소를 통해.
내 건배사가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술잔을 내려놓고.
서둘러 고기를 뒤집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건배사를 하는데 10초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새 고기의 끝부분이 타버리고 만것이다.
그것을 발견한 윤 대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 탔네..."
"죄송합니다."
"수호 씨. 이게 얼마짜리 고기인줄 알아?"
"..!"
"100그람에 13만원짜리야. 13만원."
"··· ···"
"13만원이면 수호씨 일당보다 비싼거 아니야?"
황 부장의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면박을 주는 윤 대리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연희 사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대리님, 사람 무안하게 왜 그래요? 탄 부분은 잘라내고 먹으면 되잖아요."
"아까워서 그렇지. 아까워서."
우리 테이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황 부장은 도토리묵 하나를 안주로 집어먹고는.
이어서 말했다.
"그래. 우리 김수호 사원 말대로. 대한민국 증권사를 통틀어서. 1위 한 번 찍어보자고. 다들 그정도 포부는 가지고 있어야지. 안그래?"
"네. 맞습니다. 부장님. 그리고 지금같은 추세라면. 올해안에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한 차장 생각도 그래? 나도 그런데. 하하하하."
황 부장의 웃음에.
회식분위기는 최고조를 향해 달렸다.
그와함께.
혀에만 닿으면 사라져버리는 최고급 한우가.
불판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는.
안심에 이어 등심과 채끝살까지.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그렇게 즐거운 회식이 이어지고.
저녁 8시 40분에 다다라서야.
황 부장이 회식을 마무리 지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가게의 영업시간이 길지 않은 이유때문이었다.
"자. 그럼 다들 이만 일어나자고."
취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어느정도.
주량을 조절하는듯 했다.
그렇게 고기 위주의 즐거운 회식이 마무리되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아까보다 한 결 더 차가워진 밤공기가.
산마루까지 내려앉았다.
"한 대 피러 가지."
"네. 부장님."
명*관의 위치때문에, 대리기사들이 오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는 터라.
황 부장을 비롯하여 흡연자들은.
별도로 마련된 흡연실로 담배를 피러 갔다.
그리고 김연희 사원과 나는.
호출한 택시를 기다리며.
다시 한 번 더.
서울시의 야경을 감상했다.
술까지 먹었겠다. 평소보다 조금 더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나는 뻥 뚫린 한강을 바라보며.
한 마디 내뱉었다.
"연희 씨."
"네?"
"오늘.. 고마웠어요."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여러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그 말에.
정면을 응시하던 김연희 사원이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바람에 찰랑이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왼 뺨의 일부를 가리며.
아름다운 눈동자를 부각시켰다.
김연희 사원은 그런 눈동자로, 나를 가만히 응시하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도 고마워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고마워 하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고마워 하는 사이라.
뜻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굳이 더 캐묻지 않았다.
그냥 지금은.
이정도로 마음을 확인하는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호출한 택시가 도착할 때까지.
서울시의 야경을 함께 감상하였다.
* * *
[2022년 2월 12일. 토요일.]
나는 평소의 루틴대로.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았다.
어둡고 좁은 고시원 방안에서.
스탠드 불을 켜고.
김연희 사원이 건네준 찌라시들을 바탕으로.
열 다섯번째 투자처를 찾아나섰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불현듯 번뜩이는 감각과 함께.
한 종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관련 종목을 빨간색 펜으로 체크 한 후.
자그맣게 혼잣말을 했다.
"그래. 이번엔 너다."
좋은 차.
좋은 집을 사고.
부모님께 효도를 하는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