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강원도 공략(1) >
17화
“지금쯤 바깥세계는 며칠이나 지났겠군.”
튜토리얼 공간은 바깥보다 빠르게 시간이 흘러간다.
타다닥. 탁.
조그마한 모닥불이 어둠을 밝히며 불꽃을 키웠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영광과 핀이 옹기종기 앉아 으적으적 고기를 씹어먹고 있었다.
튜토리얼 공간이라고 해서 몬스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동식물들이 존재하기에 식량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다.
영광은 덫을 설치하여 토끼 몇 마리를 사냥했다.
토끼의 털과 뼈들을 발라 살코기로 꼬치로 만드는 일쯤은 어렵지 않았다.
“맛있냐?”
“마시써요.”
핀이 오물오물 고기를 씹으며 말했다.
조그마한 체구였지만 먹는 양은 영광과 비슷할 정도다.
“잘 먹었어요.”
다리를 꼬며 나뭇가지로 이를 쑤시는 핀의 모습에 영광은 기가 찰 뿐이었다.
“놀랍군. 요정이라면 당연히 채식이 기본인 줄 알았는데.”
“무슨 소리여요? 단백질은 어느 종족을 막론하고 필수적인 영양분인데 그것도 몰라요?"
둘의 관계는 대폭 개선된 상태였다. 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빠른 현실에 순응하는 요정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이 한몫했다.
“많은 시간을 소모했군. 여긴 오늘만 머물고 내일 되면 바로 떠나자.”
이곳 튜토리얼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모두 얻었다.
아이템, 엘릭서, 그리고 핀의 조력까지.
‘이제부터가 시작이지.’
튜토리얼 공간에 체류하고 있을 동안에도 대창길드의 마영우는 세력확장을 도모하고 있을 것이다.
서울을 거점으로 밑 지방까지.
‘냉정하게 본다면 난 아직 삼류능력자 수준이다. 일단은 힘을 길러야 함과 동시에 하나둘씩 차례대로 마영우의 수족들을 잘라낸다.’
영광은 고기를 씹으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마영우를 처치하기 위해선 그를 위시한 부하들을 모조리 쓰러뜨려야 할 것이다.
그 중엔 귀성들도 포함되어 있다.
‘녀석들은 강하다. 한 명 한 명이 인간의 수준을 넘어섰지. 대창길드를 대적하려면 나만의 독자적인 세력구축이 필수적이다.’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체계적인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핀. 대한민국의 전역을 비춰봐.”
“넵.”
핀의 능력 중 하나인 천리안은 지정한 장소를 축소화하여 자세한 정보를 살펴볼 수 있다.
슈아앙ㅡ!
영광의 눈앞엔 홀로그램 같은 지도가 펼쳐졌다. 지도 옆엔 수치화된 대략적인 능력자들의 숫자. 길드. 인구수와 던전 정보가 간략히 기록돼 있다.
“이거 범위가 너무 넓어서 고작 5분밖에 시현을 못 해요. 빨리 봐요.”
“알았어. 기다려 봐.”
영광은 찬찬히 지도를 살폈다.
예상대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일대는 모조리 대창 길드의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지금 당장 대창길드를 치는 건 무리가 있어. 일단은 조용한 곳에서 힘을 기를 필요가 있지.’
“으음··· 단기 정착지를 정하고 싶은데 어디가 좋을려나···.”
“충청도 밑으로 전라도와 경상도 쪽은 아직 대창길드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이네요. 제주도도 괜찮은 것 같은데요?”
그 말은 정론이었다. 대창길드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천천히 힘을 기르고 후일을 도모하자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영광의 눈길이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강원도]
“강원도? 여긴 던전이 빈번하게 생성돼서 위험해요. 게다가 귀폭 길드라는 악명 높은 길드로 인해 거의 무정부 상태거든요. 이들은 자체적으로 주민들을 통제하여 다른 지방으로 못 빠져나가게 막고 있어요. 한번 발을 들이면 빠져나가기 힘들걸요?”
핀은 튜토리얼의 진행자였지만 나름 바깥세계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영광은 고개를 저었다.
“강원도는 다른 지방보다 3배 이상 던전이 리젠되고 있다. 실력을 키우긴 더없이 좋은 곳이지.”
“거긴 귀폭길드라고 악명높은 길드가 있다고요. 한번 발을 들이면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게다가 당신 성격으로 봐서 그들이랑 분명 마찰이 일어날 텐데 뒷감당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핀의 말대로 귀폭길드는 강원도를 장악한 이후 주민들을 억압하고 외부로부터의 이동을 금지했다.
한마디로 섬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아니. 강원도로 간다.”
영광의 뜻은 확고했다.
강원도를 가는 이유는 명확했다.
‘강원도는 많은 던전을 통해 단기간에 실력을 키우는데 가장 적합한 곳이다. 게다가···.’
귀폭길드의 길드장 전상영.
그는 훗날 대창길드에 투항하여 마영우의 행동대장으로 많은 공로를 세우게 된다.
다시 말해 지금 제거하지 않으면 훗날 복수에 많은 차질이 생긴다는 뜻이다.
‘크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해. 다행히 지금의 전상영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아.’
귀폭길드의 전상영은 능력자의 힘을 받기 전부터 강원도 일대의 유명한 조폭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래서 일반인 조직원들이 많았다.
타 대형길드보다 능력자의 숫자가 부족한 대신 많은 조직원을 통해 순조롭게 강원도를 점령하고 있었다.
‘어차피 일반 조직원 따윈 논외로 치고···.’
견습 능력자 한 명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중화기로 무장한 일반인 10명이 덤벼들어도 이길까 말까다.
‘문제는 능력자들이다. 자그마치 50명이나 되니··· 하지만 못 이길 것도 없지. 일단 강원도에서 빠르게 힘을 기른 뒤 귀폭길드를 친다.'
일기당천으로 모두를 쓰러뜨리긴 힘들어도 각개격파를 통한 게릴라 작전을 펼친다면 충분히 승산 있다고 판단했다.
“정말 자신 있는거에요? 그곳은 가시밭길이라고요."
“가시밭길이라··· 맞는 말이야. 하지만 핀. 나에겐 시간이 없어. 대창길드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훨씬 빨리 성장해야 해. 남들이 1시간 노력할 동안 난 10시간을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지. 그러기 위해선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 돼.”
많은 산악으로 구성된 강원도는 타지방보다 던전 리젠 확률이 높다. 그만큼 위험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빠른 성장이 가능한 곳이다.
많은 이득을 차지하기 위해선 언제나 위험천만한 리스크를 감내해야 한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단순한 법칙이다.
"알겠어요. 어차피 당신을 따라가기로 마음 먹었으니까."
핀은 불안감을 지울 수 없지만 일단은 영광을 믿기로 했다.
* * * * *
강원도에 도착한 영광은 인근 매직샵에 도착했다.
매직샵은 능력자와 무기와 방어구등을 구입할 수 있으며, 동시에 몬스터에게 얻은 물품들을 매입할 수 있다.
“어서 오세요.”
종업원 한 명이 반갑게 영광을 안내했다.
가게에 들어선 영광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허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세련되어 보이지도 않은 흔하디흔한 가게였다.
“아이템을 처분하러 왔습니다.”
영광이 유리관에 비치된 도검을 구경하며 말했다.
“아이템들을 한번 볼까요?”
종업원이 말했다. 영광은 인벤토리에 있는 모든 아이템을 꺼냈다.
쩌렁쩌렁.
떨어진 아이템들은 자그마치 20여 가지나 되었다.
그중엔 전정길의 대검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호. 제법 괜찮은 물건들이로군요.”
돋보기로 이리저리 물건들을 바라본 종업원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흡족스러운 표정이다.
“모두 합해서 74만 5천 골드 정도 되겠군요.”
“반올림해서 75만 골드 합시다. 꽤나 희소성 있는 물건들이니까. 그리고 나머지 5만 골드로 소형화 장비를 구매하고 싶은데···. 중갑주 말고 로브 계열로.”
영광은 어깨에 붙어있는 핀을 가리켰다.
핀을 바라본 종업원이 다소 부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요. 소형 사이즈라도 클 텐데··· 일단 한번 가져와 보겠습니다.”
능력자들의 장비는 세분화된 일반인들의 옷 치수와는 다르다. 심플하게 대형, 중형, 소형 사이즈로만 나뉘어있으며 착용하면 설정된 오차범위만큼 알아서 크기가 줄어들거나 늘어난다.
종업원이 몇 가지 로브들을 주섬주섬 들고 왔다.
전부 유아용 사이즈 크기였다.
“워낙에 작아서 이것도 클 것 같은데 괜찮을지 모르겠군요.”
“핀. 급한 대로 이거라도 걸쳐라.”
“저런 조잡한 장비 따윈 필요 없어요.”
핀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한눈에 봐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먼지투성이였다.
“쪼잔하게 5만 골드가 뭐에요. 하나뿐인 사역마에게 10만 골드 정도는 쓰시죠?”
“시끄럽고 이거나 한번 입어봐. 음. 이거 괜찮아 보이는걸?”
영광은 몇 가지 장비 중 가장 봐줄 만한 로브 하나를 들었다. 그리고는 억지로 핀에게 입혔다. 유아용 사이즈조차 커서 거의 이불을 덮고 있는 수준이었다.
쫘아악.
다행스럽게도 로브가 꿈틀거리더니 핀의 사이즈에 맞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신속 룬 한 개 추가로 구매할 수 있을까요?”
룬은 장비에 착용할 수 있는 부속 아이템이다. 속성마다 제각기 다른 힘을 발휘한다.
“신속 룬? 그건 갑자기 왜요? 이래 봬도 스피드라면 자신 있어요.”
“다 쓸데가 있으니 그냥 입어둬. 어차피 한 번만 입고 버릴 거니까.”
체력포션과 해독제까지 구매를 마친 영광이 밖을 나왔다.
“한 번만 입고 버릴 거면 왜 샀어요?”
불만보다는 궁금함이 앞섰다.
영광의 행동엔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갑자기 장비를 사준다고 하질 않나··· 그리고 신속룬은 왜 필요한 거지?’
핀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물어본들 영광이 대답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핀은 영광의 성격을 대략 파악한 상태다. 튜토리얼 공략 때도 그랬듯이 영광은 자신의 진의를 숨기면서도 최종적으로 이득은 모조리 챙겼다.
결과적으로 영광은 언제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사실 이것만 사주긴 좀 미안해서 목걸이 하나 샀다. 옜다. 가져가라.”
영광이 뾰로통한 핀에게 목걸이 하나를 건넸다. 가게 종업원이 핀의 사이즈에 맞게끔 핀셋으로 정교하게 제작한 목걸이였다.
“언제 이런걸······ 정말 받아도 되는 거 맞죠!?”
핀이 동그랗게 눈을 뜨며 목걸이를 날름 집어 들었다.
종족만 틀릴 뿐이지 핀도 여자다. 감성이 풍부한 소녀다운 면이 있었다.
“이건 무슨 목걸이에요? 진주목걸이? 사파이어나 에메랄드? 설마 다이아 목걸이는 아니겠죠? 헤헷.”
핀은 들뜬 마음에 아까의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수다스럽게 떠들어댔다.
이리저리 목걸이를 만지작대던 핀을 보며 영광이 조용히 말했다.
“아니. 그거 개목걸이야.”
* * * * *
쩝쩝.
“우와. 이거 진짜 맛있는데요?”
핀은 아까 놀림당한 것도 잊은 채 자신의 머리만 한 막대사탕을 연신 할짝거렸다.
요정은 단 것을 좋아한다. 영광은 아까의 장난에 사과라도 할 겸 노점상에서 팔고 있는 막대사탕을 건네줬다.
‘단순해서 다루기가 편하군.’
언제 그랬냐는 듯 핀은 기분이 풀어진 상태였다. 마치 여동생이 생긴 기분이었다.
“류영광씨. 그것보다 이제 어떡할 거에요?”
“류영광씨?”
뭔가 어색한 호칭에 영광이 쓰게 웃었다.
“그럼 님이라도 붙여드려요?”
“아니. 그럴 필요까지야···.”
“서, 설마···! 오빠라는 호칭은 염두에 둔 건 아니죠?”
“징그럽게 무슨. 너 나이도 많잖아.”
요정의 평균 수명은 500살이다.
외형은 소녀지만 실제로 핀은 100살이 넘었다.
“대장이라고 불러. 옛날 내 부하들도 다 그렇게 불렀으니까.”
“알았어요. 대장. 그건 그렇고 이제 어쩌실 거에요?”
“어쩌긴. 차례대로 던전을 클리어해야지."
“그럼 길드나 클랜에 가입하시려고요?”
던전에 진입하는 방법은 먼저 던전관리원에서 던전 입찰 진행을 해야 한다. 당연히 돈이 많으면 유리하다.
돈만 있으면 스스로 파티장이 되어 파티원들을 모아 입찰 진행을 해도 된다.
하지만 대부분 클랜이나 길드들이 던전입찰을 진행한다. 아무래도 개인이 감당하기엔 입찰금은 고가였고, 하급 던전이라도 7명 정도는 되어야 공략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만약 개인 혼자 던전입찰을 진행한다?
어지간히 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발상이다.
그래서 대부분 능력자는 길드나 클랜에 가입하여 동료들과 함께 던전에 진입한다.
길드와 클랜의 차이점.
그것은 바로 규모의 크기다.
규모가 작으면 클랜, 크면 길드로 분류한다.
“난 욕심쟁이라 눈앞의 이득을 누군가와 나눌 생각이 없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여요 그게?”
“조만간 알게 될 거다. 먹음직한 파이는 혼자 먹는 게 더 맛있는 법이거든.”
영광은 미래를 알고 있다.
어느 던전에서 어떤 아이템이 나오는지, 혹은 어떤 던전이 경험치 효율이 좋은지.
'계획한 루트가 있다. 몇번만 돌면 빠르게 성장이 가능할 터. 그 루트대로 가면··· 몇 주만에 원래의 힘을 찾을 뿐만 아니라 더 강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혼자서 던전을 독식해야 돼.'
영광과 핀은 어느세 던전관리원에 도착했다.
내부는 일반 은행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문을 열자 직원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내부는 많은 인원으로 번잡했다.
중갑주 차림의 전사들과 로브를 착용한 마법사들, 활시위를 만지작대는 궁수들까지.
“많이 기다리셨죠?”
1시간 남짓 기다리자 영광의 차례가 왔다.
영광이 카운터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던전 입찰을 하려고 왔습니다.”
“성함이랑 소속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인원까지요.”
“이름은 류영광. 소속은 없고 개인입니다.”
“네?”
던전관리인이 놀란 표정으로 영광을 쳐다보았다.
개인이 던전 입찰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제가 잘못 들었죠? 방금 뭐라고···?”
“혼자 던전에 들어가겠다는 말입니다.”
< 17화 - 강원도 공략(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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