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법(1) >
30화
“빨리빨리 걷지 못해!”
치악산 3호 A급 던전.
이곳에선 귀폭과 타 길드로 구성된 연합 파티원들이 던전 클리어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물론 연합파티라는 말은 허울일 뿐이다.
선두에 선 타 길드원들은 몬스터들의 공격을 온몸으로 버텨냈다.
반면 뒤에 있던 귀폭대원들은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니며 지시만 했다.
‘어차피 놈들은 소모품일 뿐이지.’
이들을 지휘하는 귀폭 대원 박용찬이 앞에 있던 타 길드원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소리쳤다.
“꾸물대지 마라. 뒤지기 싫으면.”
엉덩이를 걷어차인 타길드원은 싫은 내색 없이 앞을 곧장 걸어나갔다.
조금이라도 귀폭길드의 심기를 건드리면 목숨을 장담하지 못한다.
‘이 지옥 같은 곳을 하루빨리 빠져나갈 방법은 던전 클리어뿐······.’
18명으로 구성된 파티원.
귀폭대원은 8명이었고 나머지 10명은 타 길드원이었다.
‘이미 우리 대원들은 많은 죽임을 당했어···.’
‘악마가 아니고서야 어찌 저런 짓을···.’
타 길드원들은 강원도 내에서 제법 입지가 탄탄한 오성길드와 신성길드.
그들은 귀폭길드의 지원요청을 받아 차출된 대원들이다.
처음 던전에 투입된 인원만 자그마치 40여 명.
반면 귀폭길드는 8명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던전 공략은 효율성을 위해 파티원의 숫자를 7명에서 10명 정도로 구성한다.
안정적이면서도 개개인별 돌아가는 몫을 최대화할 수 있는 효율적인 숫자였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그런 건 필요 없어. 30명이든 50명이든 어차피 아이템은 우리 거니까.’
귀폭대원들은 자기네들끼리 히죽히죽 웃으며 떠들어댔다.
타 길드원들을 방패 삼아 알맹이만 쏙 빼먹으면 그만이다.
“전방에 고스트 20마리가 보입니다!”
신성길드 출신의 레인저가 손을 들어 경계를 표시했다.
“자자. 너희들. 이번에도 실력 좀 보여줘 봐. 아까 케르베로스 방에선 10명 정도 죽었지? 음. 이번에는 몇 명이나 죽어날까?”
“몇 명 죽는지 내기 한 번 해볼래? 오늘 룸빵 콜?”
“콜~”
귀폭대원들은 희희낙락하고 있을 때 이미 전방에선 고스트와의 충돌이 이어졌다.
몬스터 도감에 표기된 고스트는 B등급.
이름을 진한 빨간색으로 표기할 정도로 위험 등급의 몬스터다.
고스트들의 공격에 전방부대가 이를 악물고 싸웠다.
살기 위해서는 어쨌든 던전 공략을 해야 해야만 했다.
“끄으으······.”
시간이 지나자 죽는 인원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모든 힘을 짜내 고스트들과 사투를 벌였다.
스르르르르.
고스트들은 영리했다.
죽음을 불사한 대원들의 발악에 서서히 모습을 감췄다.
“헉···. 헉···.”
“사, 살았다···.”
살아남은 자들은 잠깐이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위에는 어젯밤만 해도 같이 웃고 떠들던 대원들의 주검이 나뒹굴었다.
그들을 보며 잠시나마 감격에 찼던 마음이 무거워졌다.
“쯧쯧. 기껏 고스트들 몇 마리 처리한 것 가지고 좋아하기는. 너희들이 살아 돌아가려면 보스몹을 처치하는 방법밖엔 없어.”
박용찬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악마보다 더한 미소였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타 길드원 한 명이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다.
동료를 잃은 절망과 사람 같지 않은 귀폭대원의 조롱에 감정이 폭발해버린 것이다.
“이런 이런.”
“꼭 저런 놈들이 한두 명씩 있지.”
귀폭대원들이 어깨를 으쓱했다.
파티 연합의 던전 공략 도중 늘 있는 일이었다.
스르릉.
귀폭대원들이 자연스럽게 검을 뽑았다.
남자의 충혈된 눈은 귀폭대원들을 잡아먹을 기세였다.
푸욱.
“아악!”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대굴대굴 굴렀다.
실룩대던 귀폭 대원 한 명이 말했다.
“이놈이 몇 분간 버티는지 내기 한 번 해볼까?"
날카로운 칼날이 남자의 사지를 수차례 찔렀다.
축 늘어진 남자의 입에선 가녀린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끄으으윽···.”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힘 잃은 눈동자로 바위 천장을 쳐다보았다.
한없이 어둡고 낯선 천장색이 마치 자신의 마음과 같았다.
“재미없군. 그만 뒤져라.”
귀폭길드원이 칼을 높이 들었다.
칼날의 빛을 머금고 번쩍였다.
피슛!
순간이었다.
날카로운 화살 한발이 칼을 들고 있던 팔을 관통했다.
“악!”
슈슈슈슝.
이윽고 갑작스럽게 화살들이 날아왔다.
칼을 휘두르려던 귀폭대원이 팔에 화살이 깊숙이 박혔다.
“누, 누구냐!”
뚝뚝 피를 흘린 귀폭대원이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악에 받친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반응하여 누군가가 말했다.
“누구긴. 니들 조지러 온 저승사자지.”
멋쩍인 검정 코트를 펄럭이는 남자.
그를 보좌하듯 용의 문양이 그려진 갑주를 착용한 이들이 어둠속을 해집고 등장했다.
* * * * *
“미친놈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이곳에 올 줄이야.”
귀폭 대장 박용찬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라고···. 제정신인가?”
박용찬은 용진 대원들을 하나둘씩 훑어보았다.
그중 익숙한 얼굴 하나를 발견했다.
“문성현. 네놈이 스스로 뒤지고 싶어 여기까지 왔구나. 설마 너희들 따위가 우릴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박용찬이 레이피어를 들고 있던 문성현을 향해 말했다.
눈동자에선 살기가 소용돌이쳤다.
‘저 자식이 저렇게 멍청했나? 아니면 실성한 건가?’
박용찬은 이해할 수 없었다.
‘놈은 영리하다. 자신의 분수를 그 누구보다 잘 알 텐데 고작 저 전력으로 우릴 치러 왔다고?’
용진길드의 평균 전력은 C급.
그런데 B+급인 자신들의 향해 전면전을 펼친다?
C급과 B+급을 굳이 따지자면 중학생과 대학생의 차이다.
통상적으로 C급 10명이 B급 하나를 상대하기도 벅차다.
그만큼 전력상 엄청난 우위를 보인다.
‘믿고 있는 녀석이 있다는 건가? 그러고 보니···.’
박용찬의 눈엔 낯선 이의 얼굴이 보였다.
아까 호기롭게 목소리를 낸 녀석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가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영광이 검을 들었다.
핏빛 칼날이 오늘따라 유난히 붉었다.
“넌 누구지? 아. 네놈이 바로 류영광이라는 놈이군. 검정 코트에 요정과 개를 데리고 다니는 걸 보니.”
으득.
박용찬이 이를 박박 갈았다.
그는 인벤토리를 열어 그레이색의 가죽장갑을 꼈다.
화륵ㅡ
장갑을 낀 손엔 화염이 피어올랐다.
장갑과 화염.
마공술사의 상징이다.
‘저놈이다. 저놈을 믿고 전면전을 선택한 거다.’
그제야 이해됐다.
소문의 이레귤러가 눈앞에 있었다.
“날 알고 있다니 영광인걸? 참 내 이름이 영광이었지.”
영광이 입꼬리를 올리며 여유를 부렸다.
이런 여유로운 태도 하나하나가 아군의 사기를 진작시킨다.
“대장. 지금 그거 개그라고 떠드는 거예요?”
핀이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용진 대원들도 덩달아 소소한 미소를 지었다.
잠깐이나마 긴장감이 사라졌다.
영광은 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제가 알려준 진형대로 당황하지 말고 무조건 버티세요. 그리고.”
잠시 말을 끊은 영광이 전방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도 죽지 마십시오. 길드장으로서의 명령입니다. 이번 고비만 잘 넘기면 귀폭길드의 멸망을 가속화 시킬 수 있습니다.”
불끈.
용진대원들은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귀폭길드의 멸망.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그들의 소망.
“돌진!”
“와아아아ㅡ!”
바야흐로 귀폭과 용진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영광은 선두에 서서 적들의 마법공격을 피해 전진했다.
목표는 바로 귀폭의 박용찬.
“관찰자.”
*
이름 : 박용찬
LV : 1,023
직업 : 마공술사
힘 : 217
마력 : 354
민첩 : 361
체력 : 325
능력치 총합 : 1,257
패시브 스킬 : 화염의 용사(C급)
엑티브 스킬 : 필살의 권(C급) , 파이어 블레스트(B급) , 혼돈의 질주(B급) , 화염 강화(C급)
궁극 스킬 : 업화의 권(A급)
*
영광은 회귀하고 처음으로 A급 상대를 만났다.
박용찬은 능력치 총합이 무려 4자리 수를 넘어선 강자다.
‘게다가 마공술사는 희귀 클래스다. 마법과 권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클래스지. 만만한 상대가 아니긴 하지만···.'
A급은 보통 상대가 아니다.
그런데도 영광은 고양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강자를 만날수록, 그들과 싸울수록 영광은 한없이 강해진다.
그 누구에게도 없는 유일무이한 최대보상이라는 스킬을 영광만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보상을 톡톡히 받을 차례가 왔다.
*
<메인 퀘스트 발동>.
클리어 조건 : A급 능력자 박용찬과 그의 부하들 전부를 처치하시오.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대량의 경험치, 박용찬이 가지고 있는 스킬 1개
*
‘이번 퀘스트는 박용찬뿐만 아니라 놈들을 전원 처리해야 하는 퀘스트인가?’
영광이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는 사이 어느새 박용찬이 코앞까지 접근해왔다.
“전투중에 한눈을 팔다니.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군.”
박용찬의 육중한 주먹에서 화염의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힘과 속도 모두를 겸비한 주먹세례가 연이어 이어졌다.
파파파팟ㅡ
단순한 주먹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묵직한 공격이다. 한방 한방의 공격이 그 어떤 무기보다 강하고 날카로울 정도로.
챙!
영광은 핏빛 칼날을 들어 사정없이 내려치는 박용찬의 주먹을 막았다.
확실히 박용찬은 허울뿐인 A급이 아니었다.
“제법인걸? 확실히 문성현 따위와는 다르구나. 그렇긴 해도 내 적수로서는 훨씬 부족해!”
박용찬의 주먹이 정면으로 치고 들어왔다.
영광이 고개를 숙여 피했다.
쾅!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영광이 있었던 자리엔 바위들이 파편을 튀며 박살 났다.
안면을 허용했다면 제아무리 영광이라 할지라도 무사하지 못했을 터다.
“대장!”
유태승이 허겁지겁 달려오려 했다.
영광이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면서 다급히 유태승을 바라보았다. 진한 눈썹에 가린 눈동자가 확실한 메시지를 던졌다.
‘오지 말고 진형을 지켜라!’
귀폭대원들에 비해 능력치가 낮은 용진대원들에게 내린 영광의 특명.
탱커 유태승을 위시한 방어진형을 펼쳐 어떻게든 버티는 것.
용진대원들은 무조건 버틴다.
그 사이 영광은 적의 대장을 쓰러뜨린다.
어떤 전투든 적의 우두머리만 없어지면 자연스럽게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
이것이 간략한 작전내용이었다.
“아, 네넵!”
유태승이 영광의 메시지를 이해하곤 황급히 자리로 돌아갔다.
“좋은 판단이다. 저 털보놈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면 필시 내 손에 죽었을 것이다.”
박용찬이 장갑을 고쳐 끼며 말했다. 친절히 조언해 줄 만큼 자신만만했다.
‘놈은 강하다. 하지만 이길 수 없는 상대는 아니야. 무분별한 산개공격이 까다롭긴 하지만 시간만 주어지면 충분히 패턴을 읽을 수 있다.’
영광의 생각은 탁월했다. 처음에는 까다로웠지만, 박용찬의 공격패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채로운 권법과 각법의 눈에 익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피하기만 하다 이따금 반격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무슨 이런 막돼먹은 적응력이!?’
박용찬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날카로운 공격도 언젠간 무뎌지기 마련.
체력이 고갈되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헉···. 헉···. 이 빌어먹을 새끼가!”
몸이 둔해진다.
육체가 낡은 기계처럼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영광이 모든 오감을 집중했다.
시각으론 움직임을,
청각으론 발걸음 소리를,
촉각으론!
‘맞받아친다.’
쾅!
영광의 검과 박용찬의 주먹이 서로 충돌했다. 영광이 순식간에 검을 세워 박용찬의 복부를 내질렀다. 재빨리 피하던 박용찬의 손아귀에선 파이어 블레스트가 생성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원거리 마법전을 유도한다!’
박용찬이 거리를 벌려 파이어 블레스트를 소환했다.
혼돈의 질주를 통한 속도를 우위로 원거리에서 마법을 퍼부을 생각이었다.
‘놈은 근접 클래스. 거리를 벌리고 원거리로 공격하면 아무런 대처도 못 할 터다.’
화르륵.
영광은 곧이어 파이어볼을 생성했다.
서로의 파이어 스킬이 부딪히며 폭음을 일으켰다.
화염을 화염으로 상쇄시킨다.
“무, 무슨···!”
박용찬이 처음으로 인상이 일그러졌다.
단순 파이어볼 스킬이 상위급 마법인 파이어블레스트와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어째서 근접클래스 따위가 파이어볼 스킬을? 게다가 저건 또 뭐야!?’
촤르르르르.
지면과 하늘 양쪽으로 솟구친 붕대들이 코브라처럼 구불구불 박용찬의 주먹을 모조리 피해버리는 것도 모자라 온 전신을 꽉 조였다.
이미 모든 마력을 고갈한 박용찬의 기세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이제는 붕대를 포박할 마력 한 방울조차 남지 않은 상태.
마력이 없는 능력자는 일반인과 마찬가지다.
푸욱!
"끄, 끄어억!"
영광의 검이 어느새 박용찬의 심장을 파고 들어갔다.
박용찬은 단말마와 함께 픽 쓰러졌다. 유리한 전황은 언제나 한 번의 실수로 판이 뒤집힌다.
영광에겐 그런 경험이 무수하다.
반대로 박용찬에겐 그러한 경험이 부족했다.
털썩.
축 늘어진 박용찬의 시체가 쓰레기처럼 뒹굴었다.
영광은 박용찬을 확실히 끝마무리했다.
"바, 박용찬 대장님이 죽었다···?"
귀폭대원들이 박용찬의 주검을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절망했다.
반면 용진대원들은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대장이 박용찬을 죽였어! 저 박용찬을 해치웠다고!”
"적의 대장이 죽었다! 모두 어린진(魚鱗陣)으로 바꿔 돌진하라!"
"와아아아ㅡ!"
용진대원들의 함성이 던전이 무너져라 울려댔다.
전의를 상실한 귀폭대원들이 궁지에 몰린 쥐처럼 뒷걸음쳤다.
"죽여라!"
"저 자식들을 죽여야 해!"
뒤늦게 합류한 타 길드원들까지 공격에 가세했다.
죽음, 원망, 분노······. 이 모든 감정이 한데 폭발하여 새로운 에너지를 만든다.
영광은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귀폭대원들이 악을 쓰며 저항해보지만 한두 명씩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웅웅웅.
영광의 몸이 여러 번 빚을 냈다.
능력자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레벨업의 증거.
이윽고 귀폭대원들마져 용진연합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툭.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귀폭대원의 목이 잘려나가는 순간.
그와 동시에 퀘스트 보상 정산 메시지가 보였다.
[레벨이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박용찬의 스킬 중 하나를 랜덤으로 획득합니다.]
[당신의 능력치 총합이 4자리수로 진입하였습니다. 보너스로 스킬창 하나를 얻게 됩니다.]
‘스킬창이라···. 이제 스킬을 총 4개나 등록할 수 있게 되었군.’
영광은 만족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박용찬에게 얻을 스킬보상을 확인하기 위해 메시지를 살폈다.
< 30화 -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법(1) > 끝
ⓒ 명협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