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멸망전(4) >
39화
귀폭을 치기 위해 강원도의 길드들은 연합체를 만들었다.
이렇게 대규모로 이뤄진 연합체는 전례가 없을 정도였다.
대규모의 인원이 모인 만큼 유능한 지휘자가 필요하다.
인원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영광에게 갔다.
“실례를 무릅쓰고 잠시 여러분들을 지휘하겠습니다.”
영광도 원하는 바였다.
지휘자가 되면 많은 이들의 목숨을 책임져야 한다. 무거운 책임감이 어깨를 누르는 듯했다.
“대장. 레인마켓에서 보급품들을 보내왔습니다.”
용진대원이 보고를 마쳤다.
보급품이 담긴 차우차우의 아공간에선 무수한 아이템들이 쏟아졌다.
“역시 마파할멈. 일 처리가 빨라서 좋군.”
보급품은 넉넉했다.
이 정도면 며칠을 싸워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많았다.
“이제부터는 각자 클래스를 고려하여 조를 배정하겠습니다."
보급을 마친 영광이 능력자들의 상세 능력치를 확인하여 한 명씩 호명했다.
“백동호, 이성진, 오경환···.”
많은 인원을 통솔하기 위해선 유능한 부관들이 지휘자의 손발 구실을 제대로 해줘야 한다.
영광은 2천 명의 인원들을 100여 명으로 나누고 방금 호명된 자들에게 백인 대장의 직책을 맡겼다.
병력을 쪼개 부대편성을 한 이유는 부대마다 맡은 바가 달랐기 때문이다.
'능력치가 낮은 자들은 전투보단 치안유지나 주민구조를 맡기는 게 낫겠지. 어설프게 희생당할 바엔.'
보통 대규모 편제구성은 오랜 시간을 허비한다.
능력치, 클래스, 스킬등을 파악하여 적절한 조합을 구상하는 일은 베터랑급 지휘자가 아니면 오랜 시간이 소모되기 마련.
영광은 적재적소 인원들을 배정하여 백인대를 구성했다. 한번 흘깃하는 것만으로 능력치를 확인했고 조합구성의 지명도 망설임이 없었다.
‘힘만 강한 게 아니라 통솔력도 수준급이다.’
경험 많은 길드장들은 영광의 신속성에 혀를 내둘렀다.
얼핏 보면 대충대충 편제구성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조합이 완료된 백인대를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벨런스가 치중되지 않게끔 다양성을 살렸으며 개개인의 스킬 효율을 최대화시킨 조합이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이 주민들의 구조입니다. 아마 궁지에 몰린 놈들이 인질극을 펼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럴 땐 최대한 순응하면서 놈들의 요건을 들어주십시오. 감정에 휩쓸려 본보기식 처형은 안 됩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자극을 배제하십시오. 우리의 목적은 오로지 전상영입니다. 전상영만 없어지면 떨거지들은 알아서 흩어지거나 투항할 겁니다."
영광은 현재 인원 중 70%가량을 인명구조나 치안유지에 공을 들였고, 나머지 30%의 인원은 전투대로 배정하여 귀폭의 근거지와 주변 잔당들을 공격하기로 했다.
‘놈들은 죽기 살기로 달려들 거다.’
강 대 강의 대결로 많은 출혈이 발생 될 터다. 능력치가 낮은 자들은 전투 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교적 강한 능력자들로 하여금 속전속결로 전쟁을 치르는 방법이 가장 희생을 줄이는 전투 방법이다.
“아무래도 여러분들이 가장 힘든 일을 도맡아야 할 듯싶습니다.”
영광이 용진의 원년멤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은 치약산 A급 던전을 클리어한 경험으로 현재는 전원 B급 이상의 반열에 오른 상태다.
“우리가 선봉이죠? 바라던 바입니다.”
원년멤버들이 이구동성으로 자신감을 표했다.
사실 이들에게 선봉을 맡긴 이유는 효과적인 전투를 위한 목적뿐만은 아니었다.
비교적 많은 공을 세워 훗날 용진 주도의 강원도 통일을 이룩하기 위함이었다.
「공로가 많은 길드가 강원도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한 명분을 만들어 모든 길드를 납득하게 만들면 어렵지 않게 강원도를 주도할 수 있게 된다.
“대장. 준비되었습니다.”
준비를 마친 문성현이 말했다.
단상에 선 영광이 능력자들을 굽어보며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이번 전쟁을 마지막으로 귀폭놈들은 강원도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모두 마음을 단단히 다잡으십시오. 전진!”
출진 명령이 떨어졌다.
연합길드의 힘찬 발걸음이 이어졌다.
* * * * *
“큰 형님! 놈들이 이곳을 향해 떼거리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귀폭 대원 한 명이 숨을 헐떡이며 사무실에 들어왔다.
책상에 다리를 올려 담배를 피우던 전상영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놈들의 병력이 몇 명이냐?”
전상영의 옆에 있던 간부가 말했다.
“2천 명이 넘습니다. 얼마 전 우리 편에 가담했던 인원들을 포함하여 추가로 인원을 모집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저쪽 편에 섰다는 거냐?”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새끼들이···.”
“일단 여기선 후퇴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겐 승산이 없습니다!”
귀폭대원들이 삐딱하게 의자에 앉아 있는 전상영을 쳐다보았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연합길드와 싸워 이기더라도 상당한 출혈을 각오해야 한다. 어쩌면 제기조차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감이 귀폭대원들 사이에 팽배해져 있었다.
“뭘 그렇게 허둥지둥하냐? 이 쓸모없는 새끼들아!”
분노를 참지 못한 전상영이 와인잔을 잡아 던졌다.
날아간 와인잔이 후퇴하자는 귀폭대원에 머리에 부딪히며 깨졌다.
“한 번만 더 그딴 소릴 지껄이면 머리통을 부숴버리겠다.”
“죄, 죄송합니다.”
귀폭대원이 흐르는 피를 닦으며 뒤로 물러섰다.
“이렇게 된 이상··· 놈을 꺼내라.”
뒤숭숭한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그는 인생 최대의 도박을 감행하기로 했다.
“노, 놈이라니요? 서, 설마···!”
전상영의 의중을 알아차린 간부들이 바들바들 떨었다.
“그래. 전철호를 꺼내라. 그리고 녀석에게 키메라 부대의 지휘권을 줘라.”
전철호라는 말에 모든 귀폭대원들의 얼굴빛이 사색이 되었다.
“철호형님은 아직 위험합니다. 안정화 테스트도 끝마치지 않은 상태라 통제가 될지···.”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 아무리 망나니 같은 새끼라도 내 말은 들을 거다. 당장 놈은 꺼내라.”
전상영이 열쇠를 던졌다.
간부 한 명이 떨리는 손으로 열쇠를 주워들었다.
‘미쳤어··· 아무리 그래도 그 개망나니를 꺼내겠다니··· 제정신이 아니야.’
‘그만큼 급한 상황이라는 거겠지.’
간부들이 지하실로 이동했다.
진입하자마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간부들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지하감옥에 섰다. 뼈가 서릴 한기가 불어닥치는 듯했다.
끼이익.
간부들이 쇠창살을 열었다. 단순한 쇠창살이 아니라 마력켄슬러효과가 있는 3중 쇠창살이었다. 모두 열고 들어가자 천장 사슬로 휘감겨 축 늘어진 청년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 전철호···.’
반년만이었다.
간부들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사슬들을 풀어냈다.
덩굴처럼 얽히고설킨 사슬들이 녹이 슬어 있었고 풀어내는데도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해체작업이 완료되자 청년의 팔에 다량의 프로포폴을 주사했다.
‘이 정도면 갑자기 일어나진 않겠지.’
이 정도면 오우거 수십 마리를 마취해도 남을 정도의 양이었다.
파쓰쓰쓰.
순간 청년의 전신에선 스파크가 튀었다. 간부들이 허둥지둥하며 물러섰다.
번쩍!
청년이 눈을 크게 떴다. 귀기 서린 눈동자가 뱀처럼 간부들을 흘겨보았다.
“커, 커어억!”
청년이 눈을 뜨자마자 팔을 뻗어 간부 한 명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우드득.
간부가 와들와들 떨더니 목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축 늘어졌다.
“큭큭. 빌어먹을 새끼들아. 깨우는 게 늦었잖아?”
청년이 눈을 떴다. 이름은 전철호. 한때 대한민국에 손꼽히는 유망주이자 역대급 능력자들의 계보를 이어나갈 천재 능력자.
다만 그러한 수식어를 묻어버릴 만큼 성품이 잔혹했으며 살인에 주저가 없었다.
그는 더 강한 힘을 얻고자 스스로 키메라가 되길 자처했고 이는 잔혹한 성미에 불을 지피는 격이었다.
결국, 전상영은 통제가 먹히지 않는 상황까지 왔다.
그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전철호를 반영구적으로 격리시켜버렸다.
“이럴 줄 알고 왔는데 역시나···.”
전상영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걸어 나왔다. 간부들이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전상영에게 후다닥 붙었다.
휘릭ㅡ!
날카로운 철편들이 날아 들어왔다. 전상영이 채찍을 휘둘러 철편들을 쳐냈다.
그중 하나가 콧등에 생채기를 내며 벽에 꽂혔다.
“이, 이이··· 이 개새끼야! 나를 죽일 셈이냐!”
지하 공간에서 살기 어린 노성이 터졌다. 죽일 것처럼 노려보는 시선을 향해 전철호가 이를 드러내며 피식 웃었다.
“오 형. 오랜만이라 장난 한번 쳤는데 너무 한 거 아냐?”
전철호가 몸을 일으켰다. 탄탄한 상체엔 온갖 도깨비 문신들이 새겨져 있었다.
등에는 가시 달린 날개와 머리엔 뿔이 달려 있었다.
자이언트 벳과 인간의 혼종.
어찌 보면 진정한 귀폭의 의미가 잘 맞아떨어지는 외형이었다.
‘더 강한 힘을 얻기 위해 나 전철호는 키메라로 다시 태어났다. 인간? 신족? 키메라? 종족으로 생명체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이지. 강해지면 그만이다. 힘을 가진 자가 모든 생명체의 생살여탈권을 쥔다. 그 대상이 설령 신이라도 말이다.’
전철호의 키메라화는 완벽했다.
이민규같은 어설픈 양산형 캡슐 따위의 부작용도 없었다.
‘저 새끼를 감금시키는 데만 수십 명의 능력자들이 희생당했지. 아직도 이가 갈리는군. 비상사태만 아니었다면 적당히 키메라 실험체로 사용하다 버리려고 했는데···.’
전상영이 이를 깨물며 끓어오르는 노기를 진정시켰다.
지금은 급한 불을 끌 때다.
세뇌화도 먹히지 않는 전철호는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
남은 방법은 어떻게든 설득하여 전장으로 끌어내는 방법뿐.
“읏챠!”
전철호가 발목의 묶긴 쇠사슬을 끊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가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오며 전상영의 앞에 섰다.
살짝만 움직여도 코가 닿을 정도였다. 길쭉한 뱀 허리와 유연한 신체. 전상영보다 머리가 하나 더 컸다.
‘긴급 상황만 아니었다면 저딴 쓰레기를 깨울 이유도 없었을 텐데.’
전상영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 상대는 언제든지 해주마. 다만 지금은 아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마. 밖에 있는 적을 해치워라.”
“으음? 내가 왜?”
전철호가 고개를 반쯤 비틀며 혓바닥을 쭉 내밀었다.
죽이고 싶다는 살기가 치솟았지만 전상영은 끝끝내 참았다.
“강한 녀석이다. 아마 너와는 좋은 상대가 될 것이다.”
“오호. 그래?"
강하다는 말에 전철호가 모처럼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이때까지 상대한 놈 중에선 가장 강할 거다.”
“와우!”
전철호가 휘파람을 불었다.
강한 상대와 싸우고 싶다는 욕망.
그 짜릿함 하나를 느끼기 위해선 목숨조차 아깝지 않다.
“이름은 류영광. 검정 코트를 입고 있고 요정을 대동하고 있다. 당장 놈을 죽여라. 그 대가로 놈의 DNA를 이식시켜주겠다.”
키메라화의 가장 큰 장점. 끊임없는 DNA 이식으로 인한 힘의 증강.
전투광 전철호를 도발시키기 충분한 재료였다.
“그래? 그렇다면 당장 가야지. 부디 쓸만한 스킬을 가진 녀석이었으면 좋겠는데.”
전철호의 눈빛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그는 역설적이게도 사람을 죽일 때 가장 순진무구한 청년으로 변한다.
오로지 살육을 위해 태어난 살인병기가 모처럼 바깥세상을 만끽하는 순간이었다.
* * * * *
“항복해라! 너희들은 이미 포위되었다. 지금이라도 순순히 투항하면 목숨은 뺏어가지 않겠다!”
춘천시에 진입한 연합길드들은 확성기를 통해 투항을 종용했다. 귀폭길드는 현재 능력자들이 대부분 궤멸한 상태.
능력자가 아닌 일반 귀폭조직원들이 곳곳에서 저항하며 인질극을 벌였지만 손쉽게 진압했다.
“류영광 대장. 춘천시의 남부와 북부쪽은 연합군에 평정된 상태입니다. 서부는 현재 잔당들과 교전 상태지만 머지않아 진압될 것으로 보입니다.”
“수고하였습니다.”
백인대장 황성필이 영광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영광은 자신이 자체 편성 부대원들과 함께 귀폭길드의 본거지인 봉의동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춘천시의 주민들이 삼삼오오 몰려와 연합군이 나눠주는 식량을 받았다. 그들은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귀폭의 통제로 인해 타 도시의 이동도 막힌 터라 어딜 가지도 못했다. 그런 데다가 귀폭 조직원들의 잦은 약탈로 풀뿌리를 뽑아 끼니를 때워야 하는 판국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연합길드들이 기적처럼 나타나 그들을 보살폈다.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개선장군을 맞이하는 것처럼 환호했다.
“하하. 이거 좀 어색하네요.”
유태승이 머리를 긁적이며 환호하는 인파들에게 일일이 손을 흔들어줬다.
‘마치 내가 영웅이 된 것 같아.’
유태승은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약체로 평가받던 그가 이젠 연합군의 수장인 영광의 최측근으로 활약했다.
‘능력치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졌어. 대장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
유태승은 물끄러미 영광을 바라보았다. 영광은 환호하는 인파 속에서 불쑥 뛰쳐나온 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남자가 영광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평화로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영광이 거느린 20명의 대원은 연합군중 뛰어난 능력자들을 추리고 추려낸 인원들이었다.
영광은 이들과 함께 최전선에서 적들을 쓰러뜨릴 임무를 직접 도맡았다.
시간이 흐르자 귀폭의 근거지로 보이는 아지트가 보였다.
“놈들의 아지트입니다.”
맨 앞에 자리 잡던 대원이 말했다.
영광은 귀폭의 아지트를 쳐다보았다. 삐쭉 솟아오른 탑들과 거미줄처럼 치장된 가시철망이 그 어떤 무리의 침범을 막겠다는 의지가 서려 있었다.
“와··· 아지트가 아니라 완전 무장요새인데요?”
유태승이 눈을 크게 뜨며 영광에게 말했다.
‘바깥엔 경비조차 없군. 녀석들은 모두 안으로 숨은 건가? 적의 병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쳐들어갈 순 없는 노릇이지.’
잠깐 생각에 잠긴 영광이 핀을 불렀다.
“핀. 천리안으로 아지트의 내부를 관찰해봐.”
“알겠어요.”
핀이 천리안을 시전하여 아지트 내부모습을 홀로그램으로 구현했다.
10층 높이의 커다란 아지트였지만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영광이 찬찬히 시선을 낮췄다. 텅 빈 위층과는 달리 지하엔 붉은 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지하는 개미굴처럼 깊었고 층수는 대략 5층 정도였다.
‘수련던전을 개조하여 아지트를 만든 건가? 발상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는군. 실상 10층으로 된 지상은 허장성세에 불과하다. 놈이 진짜 있는 곳은··· 지하 5층.’
영광은 차근차근 지형을 살펴보며 결론을 내렸다.
전상영은 자신의 근거지를 쉽게 함락시키지 못하게끔 상당한 공을 들였다.
저 정도면 과거 대창길드 본진급의 방비 수준이었다.
“핀. 저 붉은 점들은 뭐길래 꿈틀꿈틀 움직이는 거야?”
유태승이 붉은 점들에 시선을 옮기며 핀에게 물었다.
“저건 살아있는 생명체에요. 아마 귀폭놈들이겠죠. 붉은 색깔이 선명할수록 능력치가 높다는 거예요.”
“어 그러면 저기 시뻘건 점은 엄청 강한 녀석이라는 거겠네?”
유태승이 점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아깐 없었는데 갑자기 생성된 점이었다.
“저, 저건······.”
핀이 말을 하다 말았다. 조그마한 날개가 파르르 떨려왔다.
“왜 그래?”
“강해···.”
“뭐가 강한데?”
핀은 대답이 없었다. 굳게 다문 입술을 옴짝달싹하다 영광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장.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이때까지 상대한 자들 중에··· 가장 강한 자일 거예요.”
천리안을 통한 적의 능력치를 구체적으론 알 순 없지만, 대략적인 힘의 척도는 파악할 수 있다.
“제일 강한 자라면··· 아마 저 붉은 점이 전상영이겠군요.”
문성현이 손가락으로 지하 층수를 헤아렸다.
“3층 정도에 있군요.”
“아닙니다.”
“1, 2, 3······ 3층이 맞습니다만?”
“그게 아니라 저 붉은 점이 전상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영광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아는 전상영은 언제나 부하들에게 선두에 서게 하고 자신은 후방에서 몸을 사리는 겁쟁이 같은 녀석이다.
“아마 저건 다른 자일 겁니다. 전상영이 아닌 다른 누군가라는 말이죠. 어찌 됐든 저것보단 전상영을 쓰러뜨리는데 집중하셔야 합니다."
영광은 대원들을 둘러보며 주의를 줬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 떨어져선 안 됩니다. 지하엔 생각지도 못한 변수나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을 겁니다. 제 지시가 떨어지기 전까진 함부로 행동하지 마십시오.”
말을 마친 영광이 아지트에 진입했다. 대원들도 따라 움직였다.
마지막 귀폭토벌을 위한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 39화 - 멸망전(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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