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역대급 희망 - 무료 마지막 >
44화
“크허헉···”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전철호의 헐떡이는 소리가 커졌다.
웅웅웅웅ㅡ
철공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으려니 머리가 팽팽 돌 지경이었다.
콰직!
“끄아아악!”
철공이 나머지 어깨뼈마저 부서뜨렸다. 전철호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너무 아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 이 내가··· 이렇게······.”
그는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쪽이었다. 자신이 고통을 받는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타인의 고통에 무덤덤했다.
‘내가 약한 것들의 고통을 왜 느껴야 하지? 난 강자다. 강자는 언제나 약자를 짓밟을 권리가 있다. 법? 도덕성? 윤리의식? 그런 건 강자에겐 필요 없는 것들이다.’
서서히 시야가 마비되며 정신이 몽롱해졌다.
뇌리에선 그간 과거가 플레시백처럼 스쳐 지나갔다.
"······."
능력자로 각성을 하기 전에도 그는 늘 사고뭉치였다. 형 전상영과 함께 조직폭력배의 일원으로 강원도 지하세계의 최강자로 군림했었다. 머리가 커지자 형의 존재도 성가셨다.
무엇보다 제재가 많아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 그가 능력자로서 각성했을 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마치 범에게 날개를 달아준 꼴이었다.
‘난 대한민국 최고의 재능 능력자였다.'
전투를 할수록 강해졌다. 특유의 전투 센스와 패시브 스킬 최대성장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줬다.
ㅡ넌 강하긴 해도 아직 전국구 레벨은 아니야. 어떠냐?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겠다.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만큼.
「키메라 프로젝트」
키메라의 성공확률은 10%도 되지 않는다. 실패하면 죽는다. 그런 사실을 숨긴 전상영은 그를 향해 끊임없는 키메라화를 종용했다.
키메라가 되면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흥미를 가졌었다.
ㅡ좋아. 강해지기만 하면 뭐.
하지만 그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전상영은 키메라화를 진행하면서 세뇌작업까지 시행했다.
결국, 전철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그러나 그는 불굴의 의지를 가졌다. 노력 끝에 가까스로 세뇌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무수한 귀폭의 능력자들을 상대로 이기긴 어려웠다. 그는 오랜 분투 끝에 패배하여 지하 철장에 썩은 고기처럼 내던져졌다.
ㅡ죽이진 마라. 목숨만 붙여놓고 격리시켜버려. 언젠간 쓸모가 있을 날이 있겠지.
육신은 움직이지 못했지만 사고는 깨어 있었다.
깨어 있는 동안 이를 갈며 다짐했다.
「전상영을 죽여버린다!」
그러기 위해선 과거처럼 무력만을 의존해서는 안 된다.
화가 나고 굴욕스럽겠지만 어떻게든 참고 때를 노려야 한다.
처음 깨어났을 땐 가증스러운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화가 나서 철편을 던지기도 했다. 욱하는 성격이 문제였지만 최대한 비위를 맞췄다.
그것이 그가 버틸 수 있는 최대한의 인내심이었다.
‘놈은 나를 필요로 한다. 어떻게든 세뇌시켜 도구로 쓰려 하겠지. 난 이제 세뇌 따위에 걸려들지 않아. 녀석을 따르는 척하면서 DNA 이식을 통해 온갖 스킬을 흡수하여 강해진다. 그리고 때가 되면··· 전상영을 죽인다.’
둘은 서로를 적대하면서도 이해관계가 맞았다.
그러한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짰다.
‘그런데··· 네놈이 모든 걸 망쳐놨다!’
류영광이라 했나? 분명 강한 놈이라고 했다.
전상영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로 강한 상대가 맞다.
류영광을 쓰러뜨려 최대성장 스킬을 통해 전투력이 성장함은 물론, 죽어서 흘린 마력 결정체로 하여금 일부 스킬까지 흡수하려고 했었다.
“그렇게··· 그렇게 모든 계획을 짰는데! 네까짓 게 모든 계획을 망쳐놨다ㅡ!”
동공이 터질 듯 벌겋게 달아올랐다. 살의로 가득 찬 전신이 파르르 떨리며 핏대가 섰다.
작살 난 두 어깨에선 너덜너덜하게 팔이 흔들렸다.
그는 팔을 못쓴다.
‘팔이 없으면 이빨로 물어뜯으면 그만이다!’
괴성과 함께 날카로운 어금니로 세우며 영광에게 돌진했다.
마치 광기로 지배된 좀비처럼.
“대장! 저놈이 달려와요!"
핀이 소스라치게 놀라 영광의 뒤에 숨었다.
영광이 철공을 윙윙 돌리더니 그대로 전철호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빠각!
“끄아아아악ㅡ”
인간이 낼 수 있는 최악의 비명이 던전을 메운다.
반쯤 으깨진 머리에선 붉은 뇌수가 흘러내렸다.
철퍼덕.
전철호가 바닥에 쓰러졌다.
“깜짝 놀랐잖아? 새꺄.”
담이 높은 영광도 전철호의 돌발적인 행동에 살짝 놀랐다.
“확실히 넌 강하다. 능력치도 압도적이었고. 처음부터 방심하지 않고 싸웠으면 내가 졌을지도.”
죽어가는 전철호를 향해 영광이 무심한 투로 중얼거렸다.
그도 이번 전투를 통해 가장 기본적인 전투 자세에 대해 되새김했다.
「어떤 상대라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영광은 축 늘어진 전철호를 바라보았다. 반쯤감긴 눈동자에선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바닥엔 질퍽한 핏물로 가득했다.
‘이 비참한 꼴이 나의 최후인가···.’
전철호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방심이니 능력치 차이니 그런 소린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과정은 중요치 않다. 결과가 모든 것을 증명한다.
영광이 승리했고 자신은 패배했다.
“이봐··· 이제 어떡할 거냐?”
다 죽어가는 전철호가 마지막 기운을 짜내 말했다.
“어떡하긴. 전상영을 처리하러 가야지.”
“그래··· 다행이군···.”
전철호는 그 말에 다소나마 마음이 놓였다.
“저쪽으로 쭉 가서··· 500m 지점에서 지하를 파라··· 비상 게이트가 나올 거다.”
전철호는 함몰된 얼굴을 들어 턱짓으로 왼쪽 길목을 가리켰다.
영광이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글쎄. 그 말을 어떻게 믿지?”
“큭큭··· 믿지 않아도 돼.”
영광이 빤히 전철호를 쳐다보았다.
넝마 같은 육신 앞에 황량한 바람만이 공허하게 불었다.
“형이랑 사이가 좋지 않은가 봐?”
“형? 풉······.”
전철호는 시뻘건 이를 드러내며 크게 웃었다. 웃는 내내 콜록콜록하며 목구멍에 피가 들끓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웃었다.
영광이 모닝스타를 들었다. 쇠사슬 끝에 달린 철공이 본래의 색을 잃은 것처럼 시뻘겋다.
세상을 하직할 마지막 시간이 왔다.
영광이 말했다.
“유언은?”
“···전상영을 죽여라.”
퍼억ㅡ
무심한 철공이 뿔 달린 머리통을 터트렸다. 차가운 던전바닥에 목 없는 시신이 축 늘어졌다.
전철호는 죽는 내내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간 상대한 귀폭 능력자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네놈이 말하지 않아도 전상영은 내 손에 죽는다.”
영광이 시신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전철호가 죽자마자 모닝스타가 핏빛 칼날로 변했다.
영광과 핀의 몸이 몇 번이나 번쩍거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수, 수고하셨습니다.”
문성현이 듬성듬성 일어섰다. 곧이어 유태승이 다가왔다.
“와, 대장··· 결국 저 괴물 같은 놈을 이겼네요.”
유태승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아는 전철호는 괴물 중 괴물이었다. 이때까지 살면서 만난 능력자들 단연 최강이었다.
영광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대원들은 대기 중이었다. 폭뢰일격때 던전이 뒤흔들리는 충격으로 깜짝 놀라 이곳으로 몰려왔었다.
“이곳에 왔을 땐 이미 대장이 완벽한 승기를 잡고 있을 때라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영광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명령했다.
“지상에 있는 대원들을 데려오세요. 이제 위협할만한 적은 없습니다. 그들에게 각자 지시를 하달하십시오.”
영광은 던전 내부에 있는 모든 재화나 문서들을 모조리 지상으로 옮겨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려면 많은 인원이 필요했다.
“태승이랑 문성현씨도 같이 가세요.”
“아··· 네네.”
영광과 핀을 제외한 모든 대원들이 사라졌다.
던전의 분위기가 고요했다.
“보는 눈들도 없고 조용하네. 이제 보상을 확인해볼까?”
“네. 한번 살펴봐요."
영광이 핀의 눈앞에 똑같은 메시지가 떴다.
[궁극 연계스킬 역대급 희망(SSS급 : 1단계)을 습득하였습니다.]
* * * * *
“역대급 희망이라··· 분명 에르메니아에게 들어본 것 같은데. 혹시 알고 있는 거 없어?”
“아녀. 저도 몰라요.”
“연계 스킬이라는 걸 보니 너랑 나와 함께 있어야 발동되는 것 같다.”
영광이 상태창을 열어 스킬목록을 살폈다. 역대급 희망의 상세정보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
[역대급 희망(SSS급 : 1단계)
[파트너와 함께 있어야 발동되는 궁극 스킬입니다. 파트너에 따라 서로 다른 기술이 주어집니다. 성장스킬로서 본인의 능력치와 파트너와의 유대관계가 높아질수록 등급이 올라갑니다. 최대 3단계까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시전조건 : 일정 전투를 통한 고조상태]
[마력 소모량 : 마력 스텟에 관계없이 절반 소요.]
[시전자: 류영광]
[세부 스킬명 : 뇌신 강기(SSS급)]
[시전자 : 핀]
[세부 스킬명 : 앱솔루트 베리어(SSS급)]
*
“그러니까 일단 우리가 같이 있어야 최소 발동조건이 성립된다는 말이지?”
“그리고 파트너에 따라 서로 다른 스킬로 나뉘나 봐요.”
영광과 핀이 서로의 세부 스킬내역을 살펴보았다.
*
[시전자 : 류영광]
[세부 스킬명 : 뇌신 강기(SSS급)]
[신의 힘을 빌린 벼락을 일으켜 상대에게 강력한 타격을 가합니다. 상대는 일시적으로 뇌사 상태에 빠집니다. 마력 스텟에 비례하여 데미지가 증가합니다.]
*
*
[시전자 : 핀]
[세부 스킬명 : 앱솔루트 배리어(SSS급)]
[신의 힘을 빌린 절대 배리어를 생성하여 지정 범위 내에 10초간 모든 공격을 차단하며 모든 아군의 체력회복 증대와 디버프를 완벽히 제거합니다.]
*
“이거 굉장히 좋은 스킬인 건 분명한 것 같아요.”
핀이 스킬내역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영광도 그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 소모가 심한 것 빼곤 괜찮네. 하긴 이쯤 되면 나도 제대로 된 궁극기가 필요할 테지.’
이때까지 스킬을 카피하여 활용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스케일이 큰 스킬은 처음이다.
“너와 나의 유대관계가 중요하다고 쓰여 있는데?”
“간단히 말해 우리가 신뢰할 만큼 친해져야 한다는 거 아녀요?”
“그래. 그 말이 정답이네.”
영광과 핀이 서로를 보며 실없이 웃었다.
문득 튜토리얼 당시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참 어쩌다 애를 만나서.’
‘지금 생각해보면 대장과 같이 지낸 지도 꽤 됐지.’
생각지도 못한 인연이었다. 원래는 서로 각자 다른 길을 가야 했을 터다.
“그리고 약속은 지켰다.”
“아···.”
튜토리얼 공간에서 영광이 호언장담했던 약속.
「5개월안에 너를 A급 능력자로 만들어주겠다.」
그때만 해도 헛소리라고 치부했었다. A급 능력자는 타고난 재능이 없고서야 단기간에 올라가는 건 불가능하다.
처음엔 기대감도 없었다. 주종관계 때문에 억지로 영광을 따라갔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현재 핀의 능력치 총합은 천을 훌쩍 넘었다.
그녀도 이제 어엿한 A급 능력자다.
“왜 말이 없어?”
“하하··· 현실감이 없어서요.”
“그래서 아직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냐?”
영광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미 핀이 무슨 말을 꺼낼지 답은 예상했다.
알고 있는 것보다 직접 듣는 건 또 다른 느낌이다.
“아녀. 떠나라고 윽박질러도 끝까지 붙어 있어야죠. 대장도 제가 없으면 곤란하잖아요?”
핀은 능구렁이처럼 실속은 챙겼다.
하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론 지금보다 힘들지도 몰라. 귀폭의 멸망은 끝이 아닌 시작을 의미한다. 우리의 앞엔 무수한 적들이 기다리고 있어. 대창의 귀성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실력자들이다. 그들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자가 바로 마영우지.”
“그래서 겁이라도 난다는 거예요?”
“아니. 지금의 성장 속도로 본다면 놈을 쓰러뜨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영광이 말을 끊었다.
잠시 뭔가를 계산하더니 힘찬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1년이면 충분하다.”
“1년이라··· 이 고생도 1년만 하면 끝난다는 거죠?”
“그래.”
과거를 바꾸고 새로운 시대를 만든다.
그것은 오로지 영광만이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대장과 함께하면 뭐든지 가능할 것 같아.’
핀은 확신으로 가득 찬 믿음을 가슴속에 새겼다.
영광이 있다면 어떤 불가능도 없다.
그녀는 영광이 가진 목표와 함께 하여 마지막 엔딩을 보고 싶었다.
이제 마영우를 없애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은 비단 영광만의 꿈이 아니었다.
꿈을 공유한다.
그리고 함께 나아간다.
“이제 슬슬 가볼까? 놈을 만나러.”
“네. 가요.”
강원도 마지막 인물.
이제 전상영만 남았다.
< 44화 - 역대급 희망 - 무료 마지막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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