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 남씨세가 막내아들
52화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용진대원들과 여러 길드장들이 모인 가운데 영광과 유태승은 제주도로 갈 채비를 마쳤다.
“성현이 형. 염려 놓으세요. 대장이 누구예요? 불가능하다고 여긴 귀폭놈들을 박살 냈잖아요. 제주도 공략도 금방 할거에요.”
유태승이 팔뚝에 불끈 솟은 알통을 보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자네.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보지 않겠나?”
대원들 사이에 있던 마파할멈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영광의 어깨를 잡았다.
‘씁쓸하게 됐군. 좋은 말동무가 됐었는데.’
마파할멈은 그간 영광에게 정이 많이 들었다. 영광은 강원도 재건사업을 하면서 자주 그녀의 사무실에 들락날락하며 말 상대가 되어 주었다.
영광은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내면은 그 누구보다 따뜻한 남자였다.
과거 부하들이 목숨을 바쳐 그를 따르는 이유가 있었다.
‘때로는 엄격하게, 끝나면 다정하게.’
영광이 부하들을 다루는 방법이었다.
한명 한명을 친구로 대했다.
“이 전쟁이 끝나면 지겹도록 말 상대가 되어 드릴게요. 그동안 체스연습이나 해두시고요. 좀 전까지 제 승률이 아마 90% 정도였죠?”
영광이 너스레를 떨며 마파할멈과 마주했다.
마파할멈이 머리를 긁적였다.
“후후. 다음엔 절대 지지 않을걸세.”
“얼마나 성장하셨을지 그때를 기대하겠습니다.”
영광과 유태승은 일일이 일행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그들의 얼굴에서 과거 고생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겹쳐 보였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처음 회귀하여 튜토리얼부터 시작하여 강원도 공략까지.
지금까지의 일들이 필름처럼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귀폭이 없어진 강원도는 평화를 찾았다. 주민들은 활력을 되찾았고 그 동력으로 재건사업에 소매를 걷었다.
폐쇄사회가 사라지고 개방정책으로 타 도시를 넘나들 수 있는 자유를 찾았고.
영광은 그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웃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업적이었다.
‘이들의 미소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복수에 성공하고 대업을 이루겠다.’
영광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늘따라 하늘이 바다물결처럼 푸르렀다.
“컹컹!”
차우차우가 차량 뒷좌석에서 영광을 향해 짖었다.
영광이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며 차에 탔다.
“대장. 빨리 가요.”
“왜 인마.”
“여기 더 있으면 눈물 날 것 같아요.”
강한척했지만 소녀처럼 마음이 여린 유태승이었다.
부르릉.
차에 시동이 걸렸다.
운전수가 기어를 D로 맞추고 악셀을 밟으려 했다.
“이보게. 잠깐만!”
마파할멈이 뛰어와 품속에서 자줏빛이 나는 호리병을 꺼내 영광에게 건넸다.
“이건···?”
“가져가게. 나에겐 필요 없는 걸세.”
마파할멈이 억지로 호리병을 떠밀다시피 했다.
영광이 얼떨결에 받으며 아이템 상세목록을 살폈다.
*
[고대신 켄조로스 타오르는 숨결]
[고대신의 숨결이 담긴 영약. 사용 시 모든 불치병을 치료한다.]
*
켄조로스는 5명의 주신 중 2번째로 신도가 많은 명망 있는 신으로 유명하다. 그가 신계로 떠날 때 인간세계에 남긴 유물 중 하나가 바로 ‘타오르는 숨결’ 이었다.
“이 귀한 걸 저에게 주셔도 됩니까? 할멈의 나이를 생각하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다름 아닌···.”
영광이 눈을 크게 치켜뜨며 마파할멈을 바라보았다.
그도 이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잘 안다.
“에끼 이 사람아. 난 100살 넘어서도 건강하게 살 거니까 그런 걱정일랑 말게. 가지기 싫으면 말고.”
“아닙니다. 가지겠습니다.”
“유용하게 쓰일걸세. 이건 단순히 병만 치료하는 게 아니야. 신족들의 저주도 치유가 가능한 최상의 영약이지. 아휴. 미리 줬어야 했는데 내가 깜빡하고 하마터면 못 줄뻔했구먼.”
마파할멈은 아직도 여운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깜빡했다는 말을 어정쩡하게 넘기는 그녀의 말투엔 아쉬움이 듬뿍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나중에 100배로 갚겠습니다.”
“1000배로 갚게.”
마파할멈이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환영인파의 축복과 함께 영광을 태운 차량이 빠르게 도로를 달렸다.
* * * * *
영광과 유태승은 원주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했다.
“우리가 제주도에 왔다는 게 이제야 실감이 나네요.”
강원도에선 걸어 다닐 때마다 많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만큼 용진길드는 인기가 많았다.
“그렇긴 하네.”
영광이 주위를 살폈다.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그들을 상대하는 상인들이 시장바닥처럼 붐볐다.
“그건 그렇고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차우차우의 등에 앉아있던 핀이 말했다.
유태승도 궁금했던지 영광을 쳐다보았다.
“일단은 대정읍으로 간다.”
“대정읍이라면 제주도에서 가장 외곽이잖아요? 명물은 서귀포가 제일이라던데··· 그러지 말고 구경 좀 하다가요. 아. 마침 점심이니까 어디 가서 흑돼지 삼겹살이나 먹고 가시죠."
유태승이 툭 튀어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인상좋은 아저씨 처럼 웃었다.
영광이 손을 들어 유태승의 뒤통수를 때렸다.
"악! 왜 그래요?"
“우리가 놀러 가냐? 잔말 말고 따라와라.”
일행들이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 안에서도 영광이 팔짱을 끼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가 흔히 고민할 때 하는 버릇이었다.
‘이미 정보를 모두 분석한 상태다.’
제주도는 총 7개의 길드가 나눠서 행정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강한 길드는 두 군데로 꼽을 수 있다.
‘태산길드와 대창 제주도 지부.’
영광이 가려는 대정읍은 태산길드의 산하 지역이었다.
대정읍은 남씨세가 막내아들인 남인철이 관리하고 있었다.
영광은 대청읍을 중심으로 제주도를 점령할 생각이었다.
‘남씨세가의 태산길드는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다고 들었다. 3명의 형제가 원수처럼 사이가 좋지 않지. 이점을 이용하여 인철이를 차기 태산 길드장으로 옹립해야 한다. 그럴려면 녀석을 만나야 할 텐데··· 하지만 다짜고짜 만날 순 없는 노릇이지.’
현시대에선 남인철은 영광을 알지 못한다.
남인철은 의리에 죽고 사는 사내다운 면모가 있었지만, 성격이 불같고 다혈질인 데다가 처음 보는 사람이 다가가기 힘든 면이 있었다.
‘녀석은 전형적인 강자숭배 기질이 다분하다. 실력이 있다는 걸 먼저 입증해야 녀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지. 일단은 이목을 끌어야 한다.’
영광은 남인철을 누구보다 잘 안다. 벌써 그의 머릿속에 여러 방법이 떠올랐다.
눈을 감았던 그의 입가에서 미소가 번졌다.
옆에 앉아있던 유태승이 영광의 어깨를 툭툭 찔렀다.
“대장. 지금 야한 생각하시는 거죠? 대낮부터 그러면 안 돼요.”
딱!
택시가 목적지인 대정읍에 도착했다.
볼이 퉁퉁 부은 유태승이 울상을 지으며 택시기사에게 돈을 지불했다.
영광은 즉시 대정읍에 있는 던전관리원을 찾았다.
핀이 눈을 찡긋하며 영광의 어깨에 앉았다.
“대장. 이 상황은 강원도때와 데자뷰 아녀요? 또 던전 싹쓸이 하시려고요?”
“그때랑 비슷하긴 하지만 경우가 달라. 이번 던전 공략은 두 가지 목적이 있어.”
“그게 뭔데요?”
“하나는 우리들이 자유자재로 호흡을 맞춰 수 있도록 충분한 연습을 거쳐야 해. 앞으로 대인전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질 테니까. 그리고 두 번째는···.”
파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서로간에 호흡이라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현재 파티 포지션은 유태승이 탱커 , 핀이 서포터.
차우차우가 짐꾼이라면 영광은 전반적인 딜러 역할을 맡고 있다.
‘믿을만한 딜러 2명 정도만 있으면 좋겠는데···.’
한 명은 이미 남인철로 내정된 상태다.
‘나머지 한 명은 누가 좋을까?’
생각하는 사이 이미 던전관리원에 도착했다.
던전관리원은 강원도때보다 더욱 인파들로 북적였다.
어기적 어기적 줄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개미떼 같았다.
'일단 이곳 던전관리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해봐야겠지.'
오랜 기다림 끝에 순번이 영광의 차례로 돌아왔다.
영광의 뒤에도 많은 인원이 줄지어 서 있었다.
“어서 오세요. 던전 등록하러 오셨죠?”
“네. 제주도는 처음이라 제가 잘 모르는데 여긴 어느 등급부터 통제가 이뤄지고 있습니까?”
던전 통제.
각 지역마다 실세 길드들이 자행하는 악법 중 하나다.
지역마다 강도가 다르다뿐이지 어느 곳이든 통제가 있었다.
'대정읍의 통제 주체는 태산길드겠지.'
직원이 모니터를 응시하며 말했다.
“던전 통제는 S급부터 이뤄지고 있어요. A급 이하로는 자유롭게 입찰할 수 있고요.”
“꽤나 느슨하군요.”
평균적으로 A급부터 통제하는 게 흔한데 S급부터 통제라고 하면 나름 좋은 조건이었다.
“입찰가능한 던전은 어떻게 됩니까?”
“현재 A급부터 F급까지 총 10곳의 던전이 열려 있습니다.”
“잘됐군요. 그 던전 제가 싹 다 입찰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직원이 인상을 찡그리며 영광을 쳐다보았다.
마치 미친놈 보듯 쳐다보는 눈빛이 가관이었다.
“저기 손님··· 돈은 있으세요?”
“그럼요.”
영광이 직원에게 교환창을 열어 수중에 있던 골드를 보여주었다.
그 액수만 무려 억 단위가 넘었다.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 손님··· 대체 정체가···?”
“이 정도도 부족합니까?”
“아니에요! 충분해요!”
던전관리원은 던전수수료를 먹고 사는 기관이다.
금액이 클수록 수수료가 늘어난다.
직원이 싱글벙글하며 영광의 뒤에 줄 서 있는 능력자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 던전 입찰은 종료입니다!”
* * * * *
던전을 싹쓸이한 영광은 열흘 사이에 무려 9곳을 클리어했고 마지막 남은 A급 던전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F급부터 B급까지 도장 격파하듯 하나하나씩 클리어했다.
덕분에 영광의 파티는 그럴싸하게 호흡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대장.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유태승이 오우거를 방패로 짓누르며 말했다.
“뭔데? 야. 오우거 또 튀어나왔다. 조심해라!”
영광이 유태승에게 접근하는 오우거 2마리의 목을 베었다.
옛날 같았으면 오우거 한 마리도 잡기 힘들었지만, 지금의 일행들에겐 그저 고블린 수준이었다.
“호흡을 목적이라면 3~4군대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아요? 이렇게까지 던전 도는 건 쓰잘대기가 없이 보이는데···.”
방패에 짓눌린 오우거의 목이 꺾였다.
유태승이 어기적거리며 죽은 오우거의 가죽을 챙겼다.
“쓰잘대기 없긴 뭐가 없어. 이렇게 몇 번만 하면 녀석이 냄새를 맡고 접근해올 거다.”
“녀석이라뇨?”
“남인철.”
“아~ 대장이 말한 그 사람요? 그냥 직접 만나면 안 돼요?”
“안 돼. 녀석의 성격상 무작정 만난다면 반감만 살 거다. 녀석을 꼬드기려면 호기심을 자극해야 해. 녀석이 먼저 애가 타도록 말이다.”
“대장은 좀처럼 알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는다니깐.”
유태승이 투덜거리며 마지막 오우거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패대기쳤다.
오우거가 단말마를 내지를 틈도 없이 즉사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우거의 튼튼한 가죽을 얻었습니다.]
[오우거의 날이 선 발톱을 얻었습니다.]
[오우거의 광전사 도끼를 얻었습니다.]
“와. 대장의 최대보상 스킬은 보면 볼수록 사기 같아요.”
유태승이 탄성을 내지르며 오우거들이 드랍한 아이템들을 마구 쓸어 담았다.
“잡몹도 모이니까 경험치가 쏠쏠하네요. 게다가 아이템도 최상급으로만 드랍되고 있고요. 이 정도면 던전입찰금을 어느 정도 회수할 수 있겠는데요?”
“그래. 그런 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영광이 뭔가를 생각했던지 유태승을 쳐다보았다.
"너 내가 비행기에서 했던 말 기억나지?"
영광은 제주도를 오기 전부터 유태승에게 당부한 말이 있었다.
[앞으로 당분간 레벨업하면 절대로 스텟을 올리지 말고 그냥 모아놔. 나중에 쓸데가 있으니까.]
“기억나요. 근데 왜 그러시는데요?"
“저 앞에 보스방에 들어가면 알게 될 거다.”
영광이 영문모를 미소를 지으며 보스방 앞에 섰다.
서자마자 망막에선 퀘스트창이 생성되었다.
*
<협동 퀘스트 발동.>.
클리어 조건 : 서로간의 협동을 통해 오우거 로드를 쓰러뜨리십시오.
제한 시간 : 20분(파티구성원의 등급이 높아 난이도가 상향조정되었습니다.).
보상 : 힘 스텟 +10 , 오우거의 단단한 철퇴(A급) , 스킬 강화석 3개
※ 최소인원의 파티로 A급 보스몬스터 오우거로드를 만났습니다. 파티원 중 한 명이라도 깨달음을 얻을 시 히든 보상이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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