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 남인철과의 대결(4)
58화
“으아아악ㅡ! 대장! 살려줘요ㅡ!”
유태승이 몬스터 떼거리들에게 쫓겨 달아나고 있었다.
몬스터들은 마치 피냄새에 홀린 좀비마냥 하나의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내달렸다.
“털보인간! 조금만 버텨요!”
핀이 유태승의 머리위에서 열심히 신속 버프를 걸어줬다.
다리가 느려질때쯤이 되면 기가 막히게 버프가 걸렸다.
"······!"
그 놀라운 광경에 태산 대원들은 입이 쩍 벌어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중 남인철만이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그, 그런 건가···.”
1층부터 4층까지 몬스터가 한 마리도 없었던 이유.
그것은 토벌도 뭣도 아니었다. 그저 작정하고 몹몰이를 했던 것이다.
“너··· 제정신으로 이런 짓거리를 하는거냐?"
남인철은 당최 이해를 못 했다.
전부 다 죽자는 것도 아니고 저런 또라이 같은 짓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저 털보놈의 스킬중에 강력한 어그로 기술이 있다는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놈들의 꿍꿍이는 대체 뭐란 말인가···?'
힘으로 안 되니 난전을 유도해 자폭이라도 하겠다는 것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쿠워어어ㅡ!”
쿵쿵쿵쿵.
몬스터들이 귀신에 홀린 듯 유태승만을 쫓아갔다.
다른 이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대자아아앙-!"
유태승이 돌연 몬스터들을 몰고 태산길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태산 대원들이 혼비백산하며 당황했다.
"노, 놈이 이쪽으로 옵니다!"
"오, 오지마! 오지마! 이 새끼야!"
태산길드원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들은 저 많은 몬스터들과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다.
쿵쿵쿵쿵쿵.
이미 거리가 상당히 좁혀졌다.
남인철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오, 옵니다! 당장 공격하겠습니다!"
태산대원들이 즉각적으로 전투태세를 갖췄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안 돼! 공격하면 놈의 계략에 속는 거다!"
남인철이 손을 저으며 대원들을 만류했다.
"몬스터들은 저 털보놈에게 어그로가 끌린 상태다! 절대로 공격하지말고 피하기만 해라!"
남인철은 상황파악을 냉정하게 했다. 다른 대원들처럼 분위기에 휩쓸리는 짓따윈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의 말대로 유태승과 몬스터들이 시야에서 벗어났다.
"하아... 길드장님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큰일날뻔 했어..."
태산대원들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남인철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보기좋게 영광의 계획에 놀아나는 꼴이었다.
"제법인데? 역시 길드장이라 그런지 졸개들이랑은 다르군."
영광이 남인철을 보며 대견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이 내가 그딴 개수작에 놀아날 것 같냐!"
고성을 내지르는 남인철을 보며 영광이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중얼거렸다.
"뭐 그럴 줄 알고 다음 대비책을 준비해놨지."
“무, 무슨···?”
남인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영광이 훌쩍 몸을 날려 유태승에게 달려갔다.
유태승의 뒤엔 아직도 몬스터들이 미친 듯이 쫓아왔다.
1층부터 4층, 그리고 5층의 몬스터들을 싹 다 긁어모았으니 어림잡아도 200마리가 넘는다.
“태승아. 이제 피식자의 포효를 풀어라.”
피식자의 포효는 귀폭의 전상영을 무찌르고 대량의 레벨업을 통해 얻은 유태승의 궁극스킬이다.
사용 시 넓은 반경 주위로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끌 수 있으며, 그 시간 동안 자체 회복력을 증가시키는 유용한 스킬이다.
“으아아! 지금 스킬 풀면 어그로가 풀릴 텐데요!?”
유태승은 도망치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영광이 힘차게 말했다.
“어차피 그걸 노린 거다. 피식자의 포효를 푸는 즉시 내 손을 잡아라!”
“일단 알았어요!”
몬스터들의 날카로운 무기들이 뒷덜미를 스쳤다. 유태승은 대꾸할 새도 없이 영광이 하라는 대로 피식자의 포효를 풀었다.
풀자마자 어그로 걸린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이 사고가 정지되듯 갑작스럽게 멈춰섰다.
“모두 나에게 붙어!”
"넵!"
"컹컹!"
"악!"
핀과 차우차우, 유태승이 동시에 영광에게 딱 붙었다. 정신을 차린 몬스터들이 태산대원들과 영광일행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쿠오오오!”
몬스터들이 광분하듯 포효했다. 영광이 입꼬리를 올리며 남인철을 쳐다보았다. 태산대원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은신.”
주문을 읊조리자마자 영광과 일행들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두리번거리는 몬스터들이 남아있던 태산대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노, 놈이 없어졌습니다!”
“길드장님! 몬스터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영광이 왜 사라졌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럴 정신조차 없었다.
몬스터 떼거리들은 타겟이 된 태산대원에게 달려들었다.
쿵쿵쿵쿵쿵쿵.
눈 앞에 펼쳐진 무수한 몬스터들. 태산 대원들이 경악하며 무기를 들었다.
남인철이 크게 당황하며 소리쳤다.
“노, 놈들을 막아라!”
대원들은 죽을 힘을 다해 몬스터들을 막았다. 닥치는 대로 베고 찌르고··· 비명소리가 아비규환을 이뤘다.
‘꽤 힘들 거야. 재주껏 잘 막아봐라.’
은신했던 영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차우차우의 아공간을 열어 몸을 숨겼다.
영광이 없어지자 태산길드와 몬스터들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영광은 유유자적하게 천리안을 통해 바깥상황을 살폈다.
보는 내내 입가를 실룩거렸다.
‘녀석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을 거다.’
애초부터 몬스터들과 싸울 생각이 없었다. 몬스터들을 이용해 태산길드와 싸우게 만들 계획이었다.
“헉헉··· 하마터면 저승 갈뻔했다고요.”
유태승이 대자로 뻗어 누웠다. 아직도 몬스터들이 쫓아 오는 것 같아 정신이 멍멍했다.
“수고했어. 이번 계획은 네 활약이 컸다. 끝나면 한턱쏘마.”
영광은 바깥의 상황을 천리안으로 확인했다.
몬스터들과 싸우는 태산대원들은 처절하다 못해 동정심마저 들 정도였다.
태산대원들은 몬스터들과 뒤엉켜 사력을 다해 싸웠다.
특히 남인철의 활약이 인상적이었다. 창이 번득일 때마다 몬스터들의 머리통이 터져나갔다.
‘전력이 평균 B+급 정도인데도 꾸역꾸역 잘 막고 있군. 평소 체계적인 훈련없이는 저렇게 움직이기 힘들지.'
영광의 눈매가 예리하게 변했다. 일거수일투족 빠짐없이 전투 모습을 관찰했다.
‘던전 등급에 비해 대원들의 등급이 열세인데도 저 정도로 분투하는 건 지휘관의 역량이 뛰어나다는 거다. 역시 인철이··· 과거나 지금이나 넌 역시 대단한 놈이다.’
시간이 지나자 전투의 양상이 서서히 드러났다.
열세라고 여겨졌던 태산길드가 의외의 선전으로 몬스터들을 대부분 처치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태산길드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슬슬 시간이 어느 정도 됐고 몬스터들도 거의 처치했군.’
영광이 차우차우의 아공간을 빠져나왔다.
무수한 몬스터들의 시체와 피투성이가 된 태산대원의 모습이 보였다.
“헉··· 헉··· 헉···.”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갑옷이 깨져 너덜너덜해졌고 이음새 부분에선 피가 뚝뚝 떨어졌다. 쌍도끼를 들며 휠윈드를 돌려대던 박기용의 모습은 혈인 그 자체였다.
입고 있던 황금갑주는 핏빛갑주라 해도 믿어질 정도였다.
콰직ㅡ!
남은 한 마리의 몬스터의 머리통에 창을 꽂아 넣은 남인철이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는 영광이 다가오는 것도 모른 채 부하들을 살폈다.
부하들은 모두 중상이었지만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몬스터들을 처치한다고 수고가 많았다. 덕분에 고스란히 우리는 전력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어.”
영광이 팔짱을 끼며 교만하게 미소 지었다.
남인철은 그 모습을 보며 거칠게 땅바닥을 내려쳤다.
“빌어먹을··· 그런 거였나?”
이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영광이 왜 자신들을 도발하고 S급 던전으로 내몰았는지에 대해.
‘놈은 애초부터 우리랑 전투할 생각이 없었던 거다. 결국 우린 저놈의 수중에 놀아난 꼴인가···?’
남인철은 분통이 터져 미칠 지경이었다.
죽 쒀서 개 준 꼴이었다.
그의 의중에 쐐기를 박는 영광의 말이 이어졌다.
“S급 보스몹은 우리가 접수한다. 너희들은 여기서 푹 쉬고 있어.”
“개자식들···.”
“죽여버리겠다···!”
그 말을 들은 태산 대원들이 울분을 터트렸다. 던전 공략은 보스몹을 처치함으로써 그 가치가 있다. 잡몹 수백 마리를 잡는 것보다 보스몹 한 마리 처치하는 게 훨씬 가치가 컸다.
태산 대원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히익! 대장. 빨리 가죠. 저 사람들... 우릴 죽일 눈으로 보고 있어요.”
유태승이 겁을 먹곤 영광의 옆에 바짝 붙었다.
위이잉.
태산 대원들의 눈빛이 불구대천지원수를 보는 것처럼 살기가 일렁거렸다.
몸 상태만 정상이었다면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을 것이다.
영광이 태산 대원들을 향해 씩 웃어주곤 등을 돌렸다.
“이 개새끼아아아ㅡ! 거기 서지 못해!”
“비겁한 새끼ㅡ!”
태산 대원 몇 명이 바락바락 악을 쓰며 땅바닥을 기었다.
그 말을 들은 영광이 순간적으로 멈춰섰다.
“비겁하다고?”
영광이 천천히 걸어갔다.
조금 전 비겁하다고 고함을 지른 대원의 얼굴 앞까지 왔다.
“뭐, 뭐냐···?”
갑작스럽게 다가온 영광이 기세에 지레 겁을 먹은 대원이 입을 다물었다.
“설사 몬스터들을 이용하지 않았더라도 너희들은 날 이기지 못해. 난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몬스터들을 이용한 건 전력보존을 하여 S급 몬스터들을 치기 위함이지. 즉, 애초부터 너희들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는 말이다.”
“다, 닥쳐라··· 내 몸만 정상이었으면 너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남인철이 분개하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들었다.
영광이 남인철에게 다가가 머리를 쿡쿡 찔렀다.
“너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만약에 나랑 붙어서 지면 그땐 어떡할래?”
“맘대로 해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진다면 네놈의 종놈이 되라고 해도 받아들이겠다.”
“아~ 그래? 그러면 지금 당장 붙어보면 되겠네.”
영광이 환하게 웃으며 핀에게 말했다.
“핀. 녀석에게 신성한 선율을 걸어줘라.”
“후후. 알겠어요.”
핀이 영광과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남인철에게 다가갔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듯 그녀는 영광의 의중을 알고 있다.
‘대장은 상대의 심리를 이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덴 정말 도가 텄어.’
핀이 혀를 내두르며 정신을 집중했다.
신성한 선율을 시전하기 위해선 고도의 집중력과 대량의 마력이 필요하다.
‘몹몰이를 통해 S급 던전 공략은 물론이고 남인철까지 자신의 수하로 둘 생각이겠지. 처음부터 저럴 생각이었던 거야. 대장은.’
파쓰쓰쓰쓰.
남인철의 전신이 파랗게 빛나더니 HP바가 순식간에 꽉 찼다.
흩어졌던 에너지가 한곳에 집중되는 느낌이었다.
“굉장하군. 이제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남인철은 손목을 둘리며 허리를 좌우로 비틀었다.
오히려 몸이 정상일 때보다 가벼웠다.
‘저 요정의 스킬··· 정말 대단해. 털보놈이 계속 달릴 수 있었던 것도 저 요정 덕택이었겠지. 저런 서포터만 있으면 우리 길드가 한층 강해질 텐데.'
남인철은 주먹을 꽉 쥐며 핀을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소유욕이 샘솟았다.
“뭘 그렇게 쳐다봐요. 기분 나쁘게.”
남인철의 강렬한 눈빛에 핀이 불쾌하듯 쏘아붙였다.
남인철이 시선을 돌려 영광를 쳐다보았다.
“만약 네놈이 지면 저 요정을 받아가겠다.”
“에엑!?”
뜬금없는 소리에 핀이 기겁했다.
더욱 기가 막힌 건 영광의 반응이었다.
“그러던지.”
“대장!”
“설마 내가 진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건 아니지만··· 어쨌든 전 물건이 아니에요!”
핀이 방방 날뛰고 있을 때 이미 영광과 남인철이 서로 마주 섰다.
남인철이 찬찬히 영광을 훑어보았다. 능력자들이 처음 전투에 임할 때 행해지는 탐색전이었다.
‘이상하군. 최소한의 마력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남인철의 반응은 당연했다.
영광은 절대방벽 패시브 스킬로 인해 어떤 기척도 외부로부터 새어 나오지 않는다.
‘그렇군. 녀석은 잘 쳐줘도 E급 수준의 초짜다. 털보녀석과 요정의 조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놈이지. 붕대 같은 조잡한 스킬이나 쓸 줄 아는 요술사 따위에게 이 내가 질 리 없다!’
남인철은 큰 착각에 빠졌다.
그 착각이 불행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곤 전혀 알지 못한 채.
“네놈을 죽이고 요정을 받아가겠다. 죽어서도 원망하지 마라!”
“눈썰미가 좋군. 핀은 최고의 서포터다. 가지고 싶다면 전력을 다해 덤벼야 할 거다.”
“개자식이!”
바야흐로 영광과 남인철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검과 창의 불꽃 튀는 접전이 이어졌다.
"이봐. 움직임이 너무 단순하잖아. 거기선 그렇게 휘두르는게 아니라 끈어치듯 쳐야 돼."
표면상 대등함은 잠시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 차이가 월등하게 났다.
창의 잔상을 그리며 영광을 집요하게 노렸지만 유유자적하게 피했다.
"하악... 하악..."
남인철은 전력을 다했다. 모든 힘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영광에게는 자신이 갖지 못한 여유가 있었다.
‘이, 이럴 수가··· 허풍이 아니었잖아!'
남인철의 동공이 지진처럼 흔들렸다.
그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