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 태산길드 통일 전쟁(5)
66화
영광은 먼저 남인호에게 투항을 종용했다.
“너희들은 이제 승산이 없다. 조용히 항복할래? 아니면 피를 볼래? 난 한다면 한다. 만약 끝까지 저항한다면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
“와아아아아ㅡ!”
영광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정읍 대원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대규모 전투에서는 이러한 행동 하나하나가 사기 진작의 요소로 적용된다.
안덕면 대원들은 그 기세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겁먹지 마라! 놈들은 숫자가 많을 뿐 전부 오합지졸이다! 나를 믿어라!”
남인호가 맞대응하듯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부하들은 마지못해 호응했다.
이미 압도적인 군세와 사기가 대정읍쪽에 있었다.
‘허장성세가 제대로 먹혀들었군.’
영광이 항복한 대원들을 바라보며 조소했다. 애초부터 그들은 전투 의지가 없었다. 그저 병풍 정도로만 세워놓고 숫자로 밀어붙여 적들의 전의를 깨뜨릴 생각이었다.
영광의 계책이 훌륭히 먹혀들어가고 있었다.
애써 티를 내진 않지만 남인호의 표정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항복한 자들을 저런 식으로 활용할 줄이야···.’
대인전에 노련한 백전노장 박기용마져 영광의 계책에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적들의 기세는 땅바닥으로 기어들어 갈 지경이었다.
‘우리의 승리가 확실하다.’
박기용은 자신도 모르게 힘이 잔뜩 들어갔다.
꿈에 그리던 안덕면 지부와의 승리가 눈앞에 있다.
며칠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 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적들의 사기가 땅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총공격합시다.”
박기용이 말했다.
영광은 살며시 웃을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앞을 나아갈 뿐이었다.
저벅저벅.
영광은 계속 앞을 계속 나아갔다. 적들과의 거리는 불과 20m도 되지 않았다.
박기용이 당황하며 만류하려 했지만 남인철이 그를 막았다.
“대장에겐 다른 뜻이 있을 겁니다. 그대로 놔두시죠.”
영광이 어느 지점에 멈춰 서서 남인호를 쳐다보았다.
남인호도 지지 않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말하마. 항복해라. 항복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개소리 집어치워라! 네놈이야말로 항복해라!”
“항복할 뜻이 없다는 거로군.”
“당연한 소릴!”
남인호가 콧김을 뿜으며 거대한 검을 한 손으로 치켜들었다.
그의 검은 투 핸드 소드(two hand sword).
양손 무기를 한 손으로 들 정도의 괴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영광의 눈동자가 차분히 투 핸드 소드를 좇으며 생각했다.
‘퀘스트의 조건은 놈을 사로잡으라는 조건이었지. 운이 좋은 녀석이군. 죽진 않을 테니.’
영광이 찬찬히 머리를 굴렸다.
지금 당장 병력을 이끌고 전면전을 한다면 무조건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최악의 방법이다.
최고의 방법은 전력을 보존하면서 상대의 항복을 받는 방법.
‘이긴다 하더라도 상당한 출혈을 각오해야 할 터다.’
이후가 문제였다. 다음 상대인 서귀포는 안덕면보다 강한 병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세력을 온전하게 보존해도 이길까말까 한 상대다.
영광은 이미 서귀포와의 전쟁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다음 계획을 향한 그의 발걸음이 차분히 앞을 나갔다.
“우리가 서로 싸운다면 가장 이익을 보는 세력은 서귀포일거다. 너도 그걸 염두에 두고 있겠지?”
영광의 말에 남인호의 눈가가 일렁거렸다.
영광은 정확하게 남인호의 심정을 읽은 듯 말했다.
“그래서 뭘 어쩔건데?"
남인호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도 그것이 고민거리였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할까 한다. 너와 나 일대일 대결을 통해 이기는 쪽이 지는 쪽의 세력을 모두 접수한다. 어떠냐?”
차분한 말투였다.
남인호를 바라보는 눈동자에선 투지가 넘쳐 흘렀다.
“좋다. 그런 제안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지.”
남인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멍청한 새끼. 전면전이었으면 무조건 우리가 졌을 텐데 무덤을 스스로 파는군.’
남인호가 대검을 치켜든 채 앞을 걸어 나왔다.
그 표정만으로도 영광은 다 알겠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널 사로잡음과 동시에 안덕면의 모든 병력을 철저히 합병해주마.’
바야흐로 두 사내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 * * * *
스겅ㅡ!
묵직한 대검이 허공을 갈랐다. 영광이 허리를 굽혀 대검을 피했다. 대검을 움켜쥔 남인호의 손아귀가 휘두를 때마다 빛이 생성되었다.
‘무기마스터의 효과인가?’
남인호의 능력치 합계는 3천이 조금 안된다. 이미 S급 반열에 오른 영광에 비해 500 정도나 낮은 상태.
하지만 능력치는 어디까지나 전투력의 보조를 의미한다.
노련한 전투센스로 충분히 능력치를 뒤집을 수 있다는 말이다.
‘확실히 표기된 수치보다 훨씬 강하군.’
검로를 차단한 영광이 남인호를 쳐다보았다.
남인호는 난도질하듯 대검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가해지는 물리력.
발군의 속도.
집요할 만큼 약점만 파고드는 정확한 명중력.
남인호는 3박자의 균형이 잘 갖춰진 훌륭한 능력자였다.
‘단순 능력치 총합은 예전의 키메라 전철호와 비슷하다. 하지만 실제 전투력은 남인호가 훨씬 강해.’
남인호는 동레벨의 능력자들보다 훨씬 강한 실력자다.
영광이 마력을 끌어올려 다음 공격을 대비했다.
“입만 살아있는 놈이었나? 제대로 된 공격을 해봐라.”
승기를 잡은 듯 떠들어대는 남인호를 보며 영광이 조소했다.
잘 갈린 칼날을 숨긴 암살자처럼 때를 노리고 있었다.
‘적들의 기대감을 일시에 무너뜨린다.’
영광은 연신 함성을 질러대는 안덕면 대원들을 흘낏 바라보았다.
그들은 남인호가 패배한다는 일말의 의심조차 없었다.
전투는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간의 팽팽한 공방의 양상으로 흘러갔다.
채앵!
그때였다.
남인호의 대검을 맞닥뜨린 핏빛 칼날이 밀리더니 영광의 전신이 허물어졌다.
“끝났어!”
“죽여버리십시오!”
안덕면 대원들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실제로 보이는 전투의 우위가 남인호에게 있었다. 그에 반해 영광은 점점 밀리는 형세였다.
“이제 끝이다!”
남인호는 부하들의 호응에 더욱 분위기를 만끽했다.
손아귀에 든 대검을 하늘 높이 올라갔다.
‘지금이다.’
영광이 눈매를 가늘게 떴다.
눈 틈에선 강렬한 빛이 새어 나왔다.
기대감을 완벽히 무너뜨리는 적합한 시기가 다가왔다.
챙!
“흠!?”
대검이 오히려 핏빛 칼날에 튕겼다. 이번 한 번의 공격으로 끝장을 낼 줄 알았던 기대감이 보기 좋게 무너졌다.
"······!"
표정이 일그러지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환호하던 안덕면 대원들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스각!
핏빛 칼날이 붉은 이펙트를 그리며 남인호의 갑옷 중앙으로 향했다.
강도 높은 오리하루콘 재질과 마력을 두른 갑옷이 한순간에 잘려나갔다.
“크윽···!”
남인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호흡이 불안정하고 자세가 흐트러졌다.
반면 영광은 고요함 그 자체였다.
돌부처의 석상처럼 어떠한 미동조차 없었다.
‘이때까지 힘을 숨긴 건가!’
승기에 취해 냉철한 판단이 부족했다. 실상 영광에겐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공격만 퍼부었던 자신의 마력만 소모되었을 뿐이다.
“좋은 실력이긴 하지만 그 정도론 안 돼.”
“뭐라고!?”
“날 이기려면 네가 가진 최고의 패를 꺼내야 할 터다. 지금이라도 당장 그걸 꺼내라.”
영광이 말했다.
한파가 몰아칠 것 같은 싸늘한 어조에 뼈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았다.
“크으으으.”
인정해야만 했다. 남인호는 전력을 다해 공격했었다. 영광은 어떤 피해도 없었다.
남인호가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전신무장!”
전신무장. 남씨세가 대대로 이어지는 궁극 스킬.
자신이 낼 수 있는 능력치 한계를 최대한으로 끌어내 리미트를 해지한다.
우우우우웅.
대기가 공명한다. 남인호의 주위 반경으로 폭풍 같은 마력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저게 바로 전신무장···!”
멀리서 전투를 지켜보던 남인철은 전신무장의 휘황찬란한 모습에 감화되듯 쳐다보았다.
전신갑주는 남씨세가 중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남인호와 태산길드장 남용두만이 가진 기술.
남인철도 전신무장 스킬을 개화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다.
아버지 남용두가 제주도의 절반을 제패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전신무장에 있었다.
휘이이잉.
전신을 휘감은 폭풍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폭풍은 흑빛 장갑 형태로 변해 전신을 뒤덮었다.
머리에는 아멧 형태의 투구가 장착되었다.
'앞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모든 능력치가 비약적으로 상승했군.’
영광은 관찰자를 통해 남인호의 능력치 목록을 살폈다.
확실히 궁극 스킬답게 굉장한 효과를 지녔다.
전신무장을 지켜보던 안덕면 대원들이 무기를 불끈 움켜쥐고 힘차게 들어 올려 함성을 질렀다.
“이 빌어먹을 대정읍 새끼들아! 뭐라고 말 좀 해봐!”
“현재 길드장님을 이길 자는 아무도 없다!”
땅바닥을 기던 사기가 순식간에 천장을 뚫듯 치솟아 올랐다.
함성이 메아리치며 온 필드를 울렸다.
반면 대정읍 대원들은 침묵했다.
관찰스킬을 사용하던 레인저들이 눈을 비비며 기겁했다.
“어, 엄청난 수치입니다··· 대장께서 감당해내실 수 있을지···.”
레인저의 말에 남인철은 물론이고 유태승마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대정읍 대원 모두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영광이 지면 모든게 끝장이다.
불안감의 불씨가 그들사이로 넘나들었다.
씨익.
충격의 도가니 속에 단 한 명. 영광의 옆에 있던 핀이 웃었다.
그녀는 영광의 생각을 읽은 듯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여기서 놈을 한 방에 쓰러뜨릴 생각이시죠?”
“그래. 조건은 충족되었다.”
영광이 핏빛 칼날을 두 손으로 움켜쥐며 낮게 자세를 취했다.
그는 망막에 흔들리는 메시지를 읽으며 미소지었다.
[뇌신강기의 발동이 완료되었습니다.]
‘과도한 기대감을 한방에 무너뜨려 적들의 마음속 깊이 공포를 각인시킨다.’
영광의 술책이었다. 모두의 이목이 남인호에게 집중된 상태다.
이러한 남인호를 단 한 방에 제압하여 압도적인 힘을 과시한다.
그렇다면 그 절망은 배로 가중될 터!
“자. 이제 2라운드를 시작해볼까?”
남인호가 한층 거들먹거리며 대검을 움켜잡았다.
그 기세만으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이 저렸다. 완벽히 승기를 잡은 지금이 기회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방심은 패배로 직결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숫하게 전투교본에 나온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덧없이 여기는 이들이 많다.
승리란 올바른 마음가짐과 기본에서부터 시작된다.
영광은 그걸 알고 있었고, 남인호는 그것을 망각했다.
승부의 결과는 뻔했다.
“글쎄. 2라운드를 하기 전에 이것부터 막아봐라.”
파쓰쓰쓰쓰.
영광의 핏빛 칼날 끝에선 뇌전의 힘이 깃들여져 있었다.
휘몰아치는 폭풍의 힘이 남인호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양이었다.
‘설마··· 놈도 다른 비장의 수가 있다는 건가?’
아멧 뒤에 숨겨진 남인호의 눈빛이 흔들렸다.
시각적인 외형뿐만 아니라 가슴을 옥죄일 것 같은 공포감이 스멀스멀 뇌수를 타고 흘렀다.
‘남인호의 전신무장 스킬도 굉장하지만··· 저건 그 이상이다!’
대정읍 대원들이 영광의 뇌신강기를 보며 입이 쩍 벌어졌다.
전신무장을 소환했을 때만 해도 패배를 예견했었지만, 오히려 영광은 그에 응수하듯 한술 더 떠 비장의 수를 꺼냈다.
‘저 정도라면······.’
‘대장이 이기고도 남겠는데!?’
“와아아아아ㅡ!”
대정읍 대원들이 소리를 높여 함성을 질렀다.
안덕면 대원들은 그 기세에 자신도 모르게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내가··· 떨고 있나?’
남인호는 움츠러드는 어깨를 잡았다. 쾅쾅 뛰는 가슴이 도통 진정되지 않았다.
파지지지지지직ㅡ!
뇌전으로 휘감긴 핏빛 칼날이 괴성을 지르는 듯했다.
안덕면 대원 전부를 쓸어버릴 듯한 거대한 마력 파장이 홍수처럼 남인호에게 덮쳤다.
콰콰콰쾅ㅡ!
남인호가 대검을 움켜쥔 채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마력을 모조리 끌어 내여 마력 장막을 펼쳤다.
본능적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섬뜩한 느낌과 함께 그의 전신이 뇌신강기에 휩쓸렸다.
“끄, 끄아아아아ㅡ!”
차디찬 비명과 함께 흑빛 장갑이 파편이 되어 휘날렸다.
펼친 마력장막은 거대한 힘에 짓눌린 듯 일시에 사그라들었다. 뇌신강기의 파동이 끝날 무렵 전신무장이 깨져버린 남인호는 처절한 몰골과 함께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 이런일이······."
철퍼덕.
아직도 전기충격이 사그라지지 않았던지 짜릿짜릿 몸 주위를 번쩍였다.
쓰러진 남인호의 눈동자가 믿기지 않다는 듯 부릅떠졌다.
"좋은 승부였다."
영광이 조용히 호흡을 하며 칼날을 검집에 넣으며 좌중을 바라보았다.
“······.”
적, 아군 구별없이 모두가 붕어처럼 입만 뻐끔댈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휘날리는 장갑의 파편만이 덧없이 바람에 날려 땅바닥을 뒹굴었다.
"길드장님이··· 졌다···."
안덕면 대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제야 패배를 인정했다.
“대, 대장이 이겼어?”
“으아아아! 이겼다! 이겼어! 그 안덕면 놈들을 우리가 이겼다고!!”
대정읍 대원들이 하늘이 떠나라 목청 높여 승리를 만끽했다.
“대장!”
“대장님!”
“대자아앙ㅡ!”
남인철을 포함하여 박기용과 유태승이 기쁨을 참지 못하고 와락 영광에게 뛰어들어갔다.
대정읍은 최초로 안덕면에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