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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퀘스트의 보상이 특별하다-71화 (71/216)

71화 - 머더 프린세스 한승아(4)

71화

“무,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냐! 내가 한승아가 아니라면 누구···.”

“개수작 부리지마. 진짜로 작살내기전에.”

흠칫.

한승아가 영광의 살기에 겁을 먹고 물러섰다.

둘 사이에서 급격한 냉기가 흘렀다.

“패왕격권은 너처럼 딱딱한 움직임으로 이뤄진 부정확한 자세가 아냐. 끊어치듯 쾌속을 토대로 자유분방한 움직임이 갖춰진 무공이지. 넌 단지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다.”

“뭐···?”

한승아의 동공이 지진처럼 흔들렸다.

영광이 어느새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진짜 한승아는 뼛속까지 무투사다. 너처럼 조잡한 마법 따위를 행하지 않지. 극한까지 몰아붙인 태승이를 상대로 저주마법을 건 이유는 어설픈 패왕격권으로는 숨통을 끊지 못해서잖아?”

영광은 한승아와 무수한 대련을 통해 그녀의 습성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잠깐 사이에 그녀의 사소한 움직임까지 모두 꿰뚫었다.

“크크큭··· 어떻게 그걸···.”

한승아, 아니 흑마법사가 자조 섞인 웃음으로 영광을 바라보았다. 상대는 진짜 한승아를 잘 아는 상대다. 더는 속일 수도 없다.

‘이렇게 된 이상 내 저주마법을 모조리 퍼부어서···.’

흑마법사가 분주히 머리를 굴렸다.

가짜든 진짜든 간에 영광만 쓰러뜨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암운의 속박.”

흑마법사가 주문을 읊조렸다. 유태승을 곤경에 빠뜨린 저주마법이었다. 제아무리 날렵해도 저주마법에 걸린다면 움직이기 힘들 터다.

휘리릭.

암운의 기운이 영광을 속박했다.

단 속박만 했을 뿐이었다.

[절대방벽으로 인해 저주마법의 성공확률이 극도로 낮아집니다.]

[절대방벽에 가로막혀 마법이 무효화되었습니다.]

“무슨···?”

저주마법은 효율이 좋은 만큼 많은 마력을 소모한다.

이미 절반이나 마력을 쓴 까닭에 저주마법의 사용빈도가 현저히 낮은 상황.

‘한 번이라도 명중시키기만 한다면!’

흑마법사는 더 이상 영광을 상대로 이길 생각을 접었다.

목숨만 보전하고 여길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절대방벽에 가로막혀 마법이 무효화되었습니다.]

[절대방벽에 가로막혀 마법이 무효화되었습니다.]

[절대방벽에 가로막혀 마법이 무효화되었습니다.]

"젠장! 어떻게 된 일이야!"

마법 실패 메시지가 연이어 이어졌다. 흑마법사는 안간힘을 썼다.

체내에 있는 마력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암운을 형성했다.

“다크 컨퓨즈.”

꾸물꾸물 공해같은 먹구름이 영광을 사방팔방으로 포위한다.

이번에는 명중했다.

[적중에 성공하였습니다.]

“드디어···!”

흑마법사의 표정이 모처럼 밝아졌다.

다크 컨퓨즈.

적중된 상대의 시야를 거꾸로 만들게 하는 저주마법이다.

영광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둔해졌다. 앞을 가면 뒤로 움직여지고 오른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가지면서···.

“흠···.”

보통 사람이라면 혼란스러운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할 것이다.

하지만 영광은 다르다. 그가 몇 번 움직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하나, 변한 건 없었다. 온갖 사물이 거꾸로 변해 있었다.

“푸하핫! 개자식아! 어떠냐!”

흑마법사가 생각을 바꿨다. 도망가기보다는 영광을 처치할 생각이었다.

그는 흑마법사지만 놀라운 무투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흉내만 내는 실력이었다면 이공길드를 여기까지 속이는 게 불가능했을 터였다.

실력 자체만 놓고 본다면 정말로 뛰어난 무투사다. 혼자서 대정읍 대원들을 상대하고 남인호마져 격파한 실력은 확실히 칭찬할 만했다.

“뛰어난 저주마법이긴 하지만···.”

영광이 눈가에 짙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날아오는 흑마법사의 주먹을 단숨에 피했다.

어설픈 주먹이 허공을 뒤흔들었다.

“피했다?”

당황한 흑마법사가 몇 번이나 영광을 공격했다. 영광은 그럴 때마다 간발의 차로 피하는 묘기를 선보였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거꾸로 된 세상에 적응하듯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세상에······ 그 짧은 시간에 적응했다고!?’

흑마법사가 당황하는 사이 핏빛 칼날이 날아왔다.

등을 돌려 가까스로 피했지만, 옆구리가 찢겼다.

“카악!”

흑마법사가 피를 흘리며 비틀거렸다. 적응을 마친 영광의 공격이 매서웠다.

게다가 마력까지 고갈당한 상황에 영광을 이길 가능성은 전무한 상태.

촤아악ㅡ

핏빛 칼날이 다리와 팔을 내리지르며 피를 흠뻑 마셨다.

반면 흑마법사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출혈이 심한 까닭에 움직일수록 기력이 소진되었다.

[지속시간이 지나 다크 컨퓨즈 마법이 해지되었습니다.]

“크으으···.”

흑마법사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반쯤 감긴 눈을 억지로 떠보니 목덜미엔 시뻘건 칼날 끝이 살짝 닿아있었다.

조금만 더 움직여진다면 목이 잘려나갈 터다.

“내··· 내가 졌다.”

흑마법사가 쥐어짜듯 말하며 기절했다.

한계까지 마력을 끌어낸 까닭에 정신력이 더는 버티지 못한 것이다.

“놈을 포박해라.”

영광이 대원들을 향해 턱짓했다.

대원들이 명을 받고 흑마법사를 포박했다. 기절했음에도 얼굴은 여전히 한승아였다.

“빌어먹을! 저 자식이 가짜였을 줄이야··· 후퇴해라!”

먼발치서 상황을 지켜본 유창형이 대원들을 이끌고 달아나려 했다. 더 이상의 전투는 의미가 없었다.

남은 병력이라도 보존해야만 했다.

“어딜 도망가려고!”

남인철이 병력을 이끌고 이공대원들을 포위했다. 아직 병력이 우위였지만 여긴 대정읍이다.

또 다른 원군이 오면 지금 남은 병력마저 전멸당한다.

“제길.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유창형이 검을 들었다. 이공대원들이 병장기들을 들으며 포위망을 뚫으려 했다.

저벅저벅.

영광이 매섭게 다가왔다. 이공대원들이 겁에 질려 무기를 떨어뜨렸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이공대원들의 등줄기를 넘나들었다.

“여길 뚫었다고 쳐도 너희들은 살아 돌아갈 수 없다. 한경면 쪽으로 가는 길목에 우리 대원들이 매복되어 있거든.”

영광이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이공대원들이 완벽히 전의를 상실했다.

물론 영광의 말은 거짓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저런 거짓말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자들은 없었다.

“유창형을 넘겨라. 그렇다면 너희들은 살려주겠다.”

웅성웅성.

영광의 회유가 시작되었다. 이공대원들이 멈칫하다 유창형을 쳐다보았다. 알아서 투항하라는 눈빛이었다.

‘이··· 이 자식들이······.’

더 이상 자신의 통제가 듣지 않았다. 이공대원들에겐 유대관계가 없었다. 안덕면의 남인호는 그래도 간부들의 충성심이라도 있었지만, 유창형에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털썩.

유창형이 땅바닥을 주저앉았다. 이공대원 몇 명이 유창형을 포박하여 영광에게 인계했다.

“유창형 길드장. 돈이 중요하긴 해도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서로 간의 유대관계다. 넌 가장 중요한 걸 망각했어. 진정한 유대관계는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거든."

영광이 설교하듯 말했다. 유창형이 눈을 감은 채 말이 없었다.

“나머지는 약속대로 살려 주겠다. 다만 한 번 더 적대한다면 그땐 용서치 않겠다.”

영광이 이공대원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죽을 줄만 알았던 이공대원들이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 아무렴요 다시는 대정읍을 적대하지 않겠습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영광이 손짓하자 대정읍 대원들이 포위를 풀었다.

이공대원들이 쏜살같이 달아났다.

“대장. 그래도 저렇게 살려 보낸다면 나중에 우리를 적대할지도 모르잖아?”

남인철이 걱정스럽다는 말투로 말했다.

영광이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런 걱정은 안해도 돼. 유창형이 없는 이공길드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오히려 녀석들을 죽이려 든다면 죽자살자 덤벼들 거다. 그럴 바에 무분별한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여 서귀포를 치는데 주력을 다 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우리의 최대 적은 서귀포니까.”

영광의 말에 남인철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대장의 힘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상 다시 공격해올 일은 없겠지.’

영광은 모든 가능성을 종합하여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할 줄 안다.

상황이 정리되자 영광이 포박당한 흑마법사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들을 일이 남았다.

* * * * *

영광의 놀라운 활약에 대원들은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이번에는 정말 끝장날 줄 알았어.”

“가짜 한승아라도 남인호 길드장마져 박살 낼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건 S급의 수준이라는 거잖아?”

“그런 괴물을 대장이 어렵지 않게 쓰러뜨렸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야.”

“이제 한경면까지 우리 수중에 넘어가겠지.”

“와우! 그럼 이제 우리 길드가 정말로 제주도를 통합하는 거 아냐?”

대정읍 대원들이 삼삼오오 밥을 먹으며 아까 있었던 대결을 반찬 삼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들은 침이 마르도록 영광의 무용을 칭찬하기 바빴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남인철이 식판을 가져와 말했다. 대원들이 말을 멈추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가짜를 잡았긴 해도 아직 진짜가 남았다는 말이지.”

“네? 가짜를 잡은 거랑 진짜랑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오히려 가짜를 잡아줘서 진짜가 고마워해야 하는 상황 아닙니까?”

대원 한 명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남인철이 한숨을 쉬며 답했다.

“가짜와 진짜는 서로 적대관계가 아닐 거다. 오히려 협력 관계라는 뜻이지. 방금 조사해본 바로는 가짜 행세를 한 흑마법사가 한승아로 사칭하여 여러 차례 타 길드들을 도와준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사전협의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진작에 한승아가 흑마법사를 잡혀 죽었을 거다.”

“그렇다면···?”

“만약 둘이 정말로 손잡고 있는 사이라면··· 조만간 한승아가 우리를 치려 들겠지.”

남인철이 숟가락을 놓았다.

화기애애하던 대원들의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 그런······.”

“아무튼, 방비를 게을리하지 마라. 지금쯤이면 한승아도 상황을 파악했을 거다.”

“그, 그래도··· 대장이라면 한승아라 할지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글쎄다···.”

밥을 절반이나 남긴 남인철이 그대로 식판을 들고 사라졌다.

밥맛이 싹 사라졌다.

‘진짜 한승아라면 아무리 대장이라도 해도 정면전을 상대로 이기긴 어려울 터···.’

본부 밖을 나온 남인철이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치익.

그가 담배 한 대를 물었다.

몇 달 전에 끊은 담배였다.

‘하지만 대장이라면 무슨 수가 있을 거다. 과연 어떻게 이 난국을 타개해 나갈 것인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영광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자신의 머리로는 도저히 현 상황을 바로잡을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

그렇게 남인철은 담배 몇 대를 연달아 피며 석양을 바라보았다.

* * * * *

“면목이 없소. 류영광 대장··· 아무리 가짜라도 내가 패배할 줄은···.”

휠체어에 몸을 뉜 남인호가 부하들의 부축을 받고 들어왔다. 포션으로 치유되지 않은 고통에 아직도 전신이 욱신거릴 지경이었다.

여긴 대정읍 본부의 사무실.

영광을 포함하여 여러 간부가 기절한 흑마법사를 놓고 처분을 논의하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가짜라고 해도 S급의 실력자니··· 아직 당신의 실력이라면 버거운 상대인 건 사실입니다.”

영광이 괜찮다는 듯 손짓했다.

남인호가 고개를 한번 꾸벅 숙인 뒤 밖을 나갔다.

“대장. 그나저나 이 자식을 어떻게 할까요? 생긴 걸로 보면 영락없는 여자인데··· 여자를 상대로 심문을 하는 건 야만인들이나 하는 짓이잖아요."

유태승이 축 늘어져 있는 흑마법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영광은 한심하게 지껄이는 유태승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핀. 넌 저 흑마법사를 알고 있지?”

영광은 핀에게 시선을 옮겼다. 핀이 수심에 잠긴 얼굴로 답했다.

“알고 있다기보단···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어요.”

“익숙한 기운? 흑마법사가?”

“네. 일단 자초지종 설명을 들어봐야 할 듯하네요.”

영광은 흑마법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놈은 폴리모프 마법으로 정체를 숨기고 있다. 녀석의 진짜 정체를 파악할 필요가 있어.’

폴리모프 마법은 변신 마법이다. 고급 스킬로서 해지하기 위해선 신전에 데려가 마법을 강제적으로 지운다든지, 혹은 자신이 스스로 푸는 방법밖에 없었다.

“날이 밝은 대로 놈을 신전에 데려갈 수 밖에요.”

박기용이 말했다.

조금 전 흑마법사를 몇차례나 물을 뿌려 깨운 뒤 폴리모프 마법을 해지하라고 윽박질렀으나 흑마법사는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마력링크를 끊어 스스로 기절하는 수법으로 영광과의 대면을 피했다.

“난감하군. 죽일 수도 없고···.”

영광도 흑마법사와 한승아와의 모종의 협약이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 상태였다.

‘어차피 제주도 통일을 위해선 한승아와 한번은 부딪혀야 한다. 이대로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불안요소는 조기에 제거해야 해.’

한번은 싸워야 할 적이다. 영광이 흑마법사를 죽이지 않고 놔둔 이유는 녀석을 미끼로 삼아 한승아를 끌어들일 계획이었다.

“저 혹시··· 어쩌면 신성한 선율로 폴리모프 마법을 해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핀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신성한 선율은 지정 대상의 HP를 모두 회복시켜줄 뿐만 아니라 걸려 있는 마법까지 제거할 수 있다.

“확실히···.”

영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한 선율은 득도한 신관들의 신성력이 담긴 디스펠 마법과 맞먹는 효력을 지니고 있다.

“그럼 시작해볼게요.”

핀이 두 손을 모아 마력을 끌어모았다. 신성한 선율은 회복계열의 최고봉 스킬로서 많은 마력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샤르르르.

보기만 해도 뇌가 정화되는 듯한 신성력에 모든 이들이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기절한 흑마법사 주위로 많은 빛무리가 쏟아졌다.

“으으···.”

흑마법사가 눈을 비비며 떴다. 그가 온몸에 감긴 빛들을 보며 화들짝 놀랐다.

“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흑마법사가 몸을 비틀며 포박을 풀려고 했다.

그때 그의 몸에서 이상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아··· 안 돼···!”

흑마법사의 몸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여성의 얼굴에서 소년의 얼굴로 변했다. 뾰족한 뿔과 검정 날개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잠시 후 크기가 손바닥만큼 작아졌다.

딱 핀과 비슷한 체형으로 변했다.

“너, 넌···!”

핀이 흑마법사, 아니 소년요정을 잘 안다는 반응을 보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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