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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퀘스트의 보상이 특별하다-96화 (96/216)

96화 - 위험한 설득(2)

96화

“중립파의 설득에 왜 대창길드까지 오라고 하는 겁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은 행동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저런 명령을 내리는지 당최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대창길드에게 정식으로 대화를 하고 싶다고 요청을 보내십시오. 이를테면 4개 정도의 시, 군을 우리 쪽으로 보장해준다는 내용만 잘 지킨다면 그쯤에서 만족하겠다고 말이죠.”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 말은 항복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이 정도는 돼야 놈들의 귀가 솔깃해질 터이니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대창에겐 중립파와의 회동은 비밀로 해주십시오.”

영광이 창가를 열어젖혔다. 따스한 햇볕을 바라보는 영광의 생각이 깊어져만 갔다.

“중립파들은 그렇다 쳐도 대창길드까지 끌어들인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가뜩이나 중립파들의 설득이 잘 먹히지 않는 와중에 대창길드까지 회동에 참석한다면 역효과가 올 수 있는 상황이다. 아직까지의 승기는 대창길드쪽에 있다. 그들은 고압적인 태도로 더욱 옭아멜 것이다.

문성현의 애타는 마음도 모른 채 영광은 유유자적하게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잠시 뒤 그가 말했다.

“그건 그렇고 영진길드의 이광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정리하여 저에게 주십시오. 그와 연대하여 해법을 찾겠습니다."

* * * * *

“왜 날 보자고 한 거요?”

영진길드의 이광수는 테이블에 앉아 있던 영광을 만나자마자 대뜸 말했다. 목소리는 퉁명스럽기 그지없었다. 툭 튀어나온 배와 두 개로 접힌 턱살이 인상적이었다.

‘무슨 수작인진 몰라도 날 설득하려는 거겠지!'

그는 물욕이 많은 인물이었다. 금전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는 건 관심이 없었다. 중립파에 가담한 이유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이익을 챙기기 위함이었다.

“당신은 중립파의 이인자 격이라 들었는데 그게 맞나?”

“그렇다고 치고 날 부른 용건부터 말하시오.”

“성격 한번 급한 사내로군. 커피부터 마시고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계속 시간을 끌거라면 그냥 가겠소.”

이광수가 씩씩대며 밖을 나가려 했다.

영광의 서늘한 목소리가 그를 멈춰세웠다.

“최근 중립파에서의 입지가 불안정하다던데 나에게 묘책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지 않겠소?"

영광이 말했다.

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이광수가 그 말에 흠칫 멈춰섰다.

“중립파에서 입지를 견고히 해드리겠소. 내가 힘을 빌려준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힘을 빌려준다?”

이광수로선 매혹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최근 뜻을 함께했던 중립파 내의 여러 길드장마저 자신과 척을 지고 있는 터라 입지가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놈의 술책이다. 꿍꿍이가 있어.’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자신도 모르게 영광에게 끌리고 있었다.

“쳇! 어디 한번 이야기나 들어 봅시다.”

이광수가 씩씩거리며 자리를 박찬 의자에 앉았다.

들어서 나쁜 제안일 경우 거절하면 그만이다.

“간단하오. 이번 중립파 회동 때 내 편을 들어주는 발언만 해주시오. 이거 하나면 족하오.”

"고작 그게 끝이오?"

기나긴 설명이 이어졌다. 설명을 들을수록 이광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10분 정도가 흘렀을까? 입에 대지도 않던 커피를 쭉쭉 빨더니 얼음까지 털어 넣은 이광수는 영광의 말이 끝나자마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지 않은 부탁이군. 하지만 일이 끝난 뒤 날 배신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의심의 눈초리가 영광의 전신을 훑었다. 영광의 편을 들어주는 발언 하나만으로 자신에게 힘을 빌려준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가 어려웠다.

노력에 비해 보상이 후했기 때문이다.

“정 의심스러우면 최근 유행하는 저주의 속박이라도 걸어두던지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속박 종류는 자결의 속박으로 하겠소. 언약의 형태는 ‘배신 시 저주 발동.’이라는 형태로 말이지."

이광수가 한차례 영광을 바라보았다. 한점 흐트러지지 않은 영광의 눈빛은 변함이 없었다.

'정말로? 놈은 정말로 날 도와줄 속셈인가? 좋아. 허세인지 아닌지 한번 보자고.'

이광수는 바깥에 있는 부하들을 시켜 속박 주문서를 가져오라고 명했다.

저주의 속박을 거는 건 간단하다. 속박 주문서를 통해 마력링크 후 5분간 주문서에 마력을 주입한다. 흔히 능력자들간 협약을 통해 사용되곤 했다.

“이건 당신이 먼저 제안한 거요. 속박이 이뤄지면 후회해도 소용없으니 날 원망하지 마시오.”

"물론. 난 언제나 진심이지."

잠시 뒤 이광수가 부하들에게 건네받은 자주 주문서를 통해 영광을 속박하는 데 성공했다.

배신시 저주 발동.

영광은 이제 이광수를 배신할 경우 자결의 속박이 발동되어 죽고 만다.

이광수는 아직까지도 믿겨지지 않은 듯 힐끔힐끔 눈치를 살폈다.

‘정말로 꿍꿍이가 없는 걸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군. 하지만 속박을 걸 정도로 순종적이라면··· 어쩌면 정말로?’

[이광수를 배신할 시 자결의 속박이 이행된다.]

영광의 몸에서 검붉은 마력이 피어오르다 사라졌다. 완벽히 속박에 걸렸다는 의미였다. 이제 영광은 이광수를 배신할 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터다. 이광수는 속박이라는 보험을 걸어둬서인지 그제야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좋소. 이제 우린 서로 한배를 탄 사이오."

“하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잘 부탁합니다.”

둘은 손을 마주 잡으며 웃었다.

'멍청한 놈.'

영광이 속으로 웃으며 이광수를 쳐다보았다.

입이 귀까지 걸린 표정과 하나의 메시지가 겹치듯 영광의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절대방벽의 효과로 인해 모든 저주계열의 마법을 차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 * * *

다음날.

어둠이 짙어지는 시간대.

고급 세단들이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득이는 번화가를 누비다 어느 한 고급뷔페 앞에 차를 세웠다.

철컥.

세단 차량의 뒷문이 열리고 중세시대를 연상케 하는 갑주들로 무장한 사내와 그를 호위하는 부하들이 뷔페 안을 향했다.

그 무리는 약 20여 명가량.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이 떼거리로 무리지어 길을 걷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겁을 지레 먹곤 길을 비켰다.

“여기가 오늘의 회동 장소인가?”

말을 한 사내가 코트를 벗으며 옆에 있던 부하에게 건넸다. 비쩍 마른 체격에 볼품없는 외모였지만 눈매만큼은 날카롭기 그지없다.

업영길드의 박정석. 그는 중립파 우두머리격의 남자다.

“네. 길드장님.”

부하들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뒤이어 오는 차량에선 그와 뜻을 함께하는 여러 길드장들이 차량에서 내렸다.

“박정석 길드장!”

길드장들이 박정석을 보며 아는 체를 했다.

그들도 영광의 회동참석요청을 받고 이곳에 찾아왔다.

치익.

뷔페 입고 앞에서 길드장들이 모여 담배를 물었다. 소소한 대화들이 오갔다.

“류영광이 무슨 이유로 우리를 보자고 한 거죠?”

“듣자하니 대창을 박살 낼 비책이 있다고 하던데요?”

“그럴듯하게 우릴 설득하려 들 겁니다. 박정석 길드장께서는 신중히 선택하셔야 할 겁니다.”

타 길드장들이 말했다. 박정석이 담배를 비벼끄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얄팍한 술수에 놀아날 생각이 없소. 내가 이번 회동에 참석한 건 어디까지나 1%라도 놈이 말했던 가능성을 보려 온 거요. 최근 용진이 잘나가는 건 사실이니까.”

박정석은 신중한 남자다. 지를 땐 지르고 뺄 땐 빼는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잴 줄 안다. 그런 신중한 성격으로 중립파들을 이끌어왔다.

그는 대창과 용진이라는 두 세력의 팽팽한 현 대결구조에 만족하고 있었다.

‘둘 다 우리의 힘을 원하지. 우린 그저 이기는 쪽에 가담하면 그만이다.’

강원도의 정점이니 뭐니 그런 건 중요치 않다. 어느 세력이 강원도를 평정하든 간에 자신은 그저 떨어지는 콩고물만 주워 먹을 뿐.

그는 스스로의 분수를 잘 안다.

‘난 한 도시를 대표하는 우두머리의 그릇이 못 된다.’

그렇기에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중립파 세력을 구축했다. 훗날 강원도를 지배할 차기 길드의 비호 아래 이인자의 자리만을 견고히 지키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어느 길드가 강원도를 지배하든 중립파들을 홀대하진 못할 것이니까.

“용진이든 대창이든 우리에게 가장 이득이 큰 길드를 선택하겠소.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나만 믿으시오. 큭큭."

박정석이 혀를 날름거리며 킬킬 웃었다.

그가 소매에 담긴 협상 문서를 만지작거렸다.

“아무렴요. 박정석 길드장만 믿겠소!”

길드장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소인배나 다름없는 그들에겐 박정석은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었다.

“어이. 다들 여기 있었군. 안 들어가고 뭐 하나?”

그때 누군가가 길드장들에게 다가왔다. 뚱뚱한 체격과 넉살 좋은 표정을 짓는 사내. 같은 중립파였지만 업영길드와 사이가 좋지 않기로 유명한 영진길드의 이광수였다.

길드장들은 마치 불청객이라도 보듯 이광수를 흘겨보며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렸다.

‘저 자식까지 왔군.’

‘기분 나쁜 자식.’

이광수의 영진길드는 중립파에선 업영길드 다음으로 세력이 강한 길드다.

하지만 욕심이 많은 성격으로 많은 원성을 샀다.

“흥. 네놈도 왔냐?”

“왜? 난 오면 안 되나?”

“오든가 말든가 맘대로 해라. 단 이번 회동에서 네놈의 발언 따윈 없을 것이니까.”

“뭐 그러던지.”

사이가 좋지 않아 만났다 하면 얼굴을 붉히는 사이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이광수의 얼굴에 한층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이 자식. 낮술을 먹었나? 왜 이렇게 자신만만한 거지?'

살짝 불길한 촉이 왔지만, 박정석은 내색하지 않았다.

겉으로 한차례 으름장을 놓던 그가 획 고개를 돌려 계단을 향했다.

저벅저벅.

단체로 계단을 오른 그들이 3층에 다다랐다. 문을 열자 대형 홀이 그들을 반겼다.

고위급 손님을 모시기 위한 갖가지 고급요리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어서 오시오.”

상단에는 영광이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는 실질적인 용진길드장인 문성현이 있었다.

각 길드장들이 일일이 영광과 악수를 했다.

“업영길드장 박정석이오.”

“반갑습니다. 류영광입니다.”

마지막으로 영광이 박정석과 악수를 했다.

삐쩍 마른 손이었지만 묵직한 악력이 제법이었다. 힘보다는 세치혀의 능한 그의 입담이 영광의 귀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일단 축하드립니다. 류영광 대장께서 용진에 오신뒤로 대창과의 전투에서 매번 승승장구하시고 있다지요? 이거 조금 있으면 대창의 본거지까지 싹 다 밀어 부칠 수도 있겠습니다그려.”

박정석이 덕담을 건넸다. 입꼬리는 올라갔지만, 눈매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영악한 놈이군.’

영광은 단번에 박정석이라는 인간을 파악했다.

물론 감정을 숨기는 건 영광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영광은 내색하지 않고 차분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창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강하다고 합니다만 상대해보니 오합지졸도 그런 오합지졸이 없었습니다.”

“글쎄요. 이때까지 싸운 대창은 본부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마 박형복이 직접 나선다면 상황은 반대였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중립파가 용진을 지원해준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요.”

박정석은 은연중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는 발언을 하며 영광을 압박했다.

“우리를 부른 이유를 대충 알겠소. 아마 용진에게 협력하라는 것이겠지. 우리도 이제 슬슬 한쪽 세력에 가담해야할 시기가 온듯 하오."

"그렇다면?"

"더도말고 이 정도 조건을 승낙해주면 힘을 빌려주도록 하겠소.”

품속을 뒤적인 박정석이 뭔가를 꺼네 영광에게 보였다. 협정서였다.

영광이 협정서를 건네받은 뒤 찬찬히 읽어나갔다. 옆에 있던 문성현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통일 강원도 수립 시 80%의 던전 배분권을 자신들에게 양도하라고? 이런 날강도 같은 놈들을 봤나!'

문성현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화가 치밀어올라 견딜 수 없었다. 던전의 80% 배분권과 아이템을 내놓으라는 협상은 애초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대장. 볼 것도 없습니다. 당장 찢어버리십시오!”

문성현이 고성을 지르며 협상서를 찢으려 했다. 그때 박정석의 경고가 이어졌다.

“찢는 순간 우리를 적대세력으로 간주하고 대창쪽으로 붙겠소.”

“이, 이 자식이···!”

입가를 실룩거리는 박정석의 표정은 사악하기 짝이 없었다. 극단적인 선택지를 휙 던지곤 희롱하듯 음흉하게 웃는 얼굴.

문성현은 저 얼굴을 갈가리 찢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때 턱을 괴며 노려보는 영광의 눈매가 빛에 반짝였다.

“80%의 던전 지분을 넘겨주면 우리 쪽으로 붙겠다?”

“그렇소. 난 성미가 급하니 빠른 시일 내에 현명한 선택을 기다리겠소. 더 이상 할 이야기는 끝난것 같구려."

탁!

박정석이 탁자를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협상은 끝났다.

애당초 협상 자체는 없었다. 일반적인 통보만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애가 탄 문성현이 우르르 자리를 뜨는 중립파 인원들만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대창과의 전면전에서 중립파의 힘은 절대적이다. 그들이 없다면 대창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그들과 손을 잡게 된다면 추후 던전 배분권의 80%를 양도해야하는 독소조항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뭐 50%정도는 예상했지만 80%는 정도가 지나치군.'

한데 영광은 무슨 일인지 그런 상황 따윈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휴대폰 시계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대장. 이렇게 된 이상 이놈들부터 처치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문성현이 허리춤에 걸린 레이피어를 뽑아들려했다. 영광이 손을 들며 만류한 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슬슬 올때가 됐습니다."

"네?"

영광이 뜬금없는 소릴 중얼거렸다.

문성현이 반문하려는 찰나에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쾅!

중무장한 여러 인원이 거칠게 문을 걷어차며 들어왔다.

붉은 태양과 푸른 별들이 양각된 갑주가 눈에 보였다.

영광이 손꼽아 기다렸던 대창인원들이었다.

“아, 아니 다, 당신네들이 어찌···?”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에 놀란 박정석과 중립파 길드장들이 기겁하며 주춤거렸다.

의자에 앉아 예의주시하는 영광의 눈동자만이 즐겁다는 듯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다.

“류영광. 우릴 부른 이유가 뭐지?”

대창 인원 중 한 사내가 오만하게 영광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 회동의 종지부를 찍은 인물들의 등장이었다.

휙.

영광이 대답 없이 손을 들며 누군가와 눈빛 교환을 했다.

끄덕.

그 신호를 기점으로 이때까지 잠자코 있던 영진길드의 이광수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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