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 삼척시 최후의 작전(1)
100화
강원도 삼척시 하잔면에는 광동댐이 있다.
용진대원 몇몇이 광동댐의 저수율을 실시간으로 체크했다.
몇차례 탐사를 마친 그들이 백부장 김일도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다.
“광동댐에 저장된 물들이 심하게 불어나고 있습니다. 저수율이 일정치를 벗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용진길드의 백부장 김일도가 부하 대원의 보고를 들었다.
김일도는 마법사 클래스 대원 20명과 핀을 대동하여 광동댐의 저수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렸다. 핀의 천리안 스킬로 강줄기의 흐름을 빠르게 파악한 뒤 강물의 물꼬리를 인위적으로 틀어 광동댐으로 유입시킨 것이다.
쏴아아아아!
김일도가 광동댐을 쳐다보았다. 실시간으로 물이 불어나고 있는게 눈으로 보였다. 저수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면 둑이 무너질 가능성뿐만 아니라 인근 하잔면 근처 모두가 침수될 수도 있다.
“며칠 정도 버틸 수 있지?”
“일주일 정도는 버틸 듯하지만 그 이상은 힘들 것 같습니다.”
부하가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김일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이 열흘만 버티면 된다고 했으니 일주일 정도면 충분해요.”
김일도의 어깨에 앉아있던 핀이 대답을 대신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하가 나가자 김일도가 핀에게 물었다.
“대장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명령을 내렸을까?”
“글쎄요.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한가지 짐작이 되긴 한데···.”
“짐작?”
“네. 그쪽이 생각하는 거랑 같은 거요.”
적을 하잔면까지 유인한 뒤 물을 방류하여 적들을 침수시킬 계책.
그건 누구나 예상 가능한 범위였다. 다만 이 작전은 능력자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초인적인 육체와 각종 스킬로 무장한 능력자들이 고작 물에 빠진다고 타격을 입진 않으니까.
‘일반인들이라면 모를까 능력자들을 상대로 이런 짓은 그다지 효과가 없을 텐데.’
혹여나 물에 빠진 적들을 원거리로 조질 공격 계획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그런 계획도 없다.
그저 물꼬리를 틀어 강물을 광동댐으로만 유입시켜라는 영광의 명령만 있었을 뿐이다.
“에휴. 다 생각이 있겠죠. 대장의 꿍꿍이를 우리가 머리를 맞댄다고 알 수 있을까요?”
핀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김일도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 * * * *
“그렇군요. 네네. 수고했습니다.”
김일도와의 통화를 마친 영광이 뒷짐을 지며 생각했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남은 건 놈들을 유인하는 건데···.'
이번 작전이 성사시키기 위해선 어떻게든 광동댐이 있는 삼척시 하잔면까지 적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끼익.
문이 열리자 씩씩대는 남인철과 간부 몇 명과 들어왔다.
그들은 대창을 유인하기 위해 횡성군 본진 가까이 가서 도발을 시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대장님의 말대로 적진 앞엔 함정이 가득했습니다."
간부들이 무수한 함정들을 상기하며 혀를 내둘렀다.
로그들을 이용하여 함정을 해체하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고 토로했다.
"함정은 제거 한것까진 좋은데 문제는 놈들이 꿈쩍도 하지 않아. 작정하고 농성만 하더라. 아무리 약을 올려도 바리케이드 뒤에 숨어서 나올 생각이 없었어.”
남인철이 잔뜩 짜증을 부렸다.
적들은 방어만 할 뿐. 공격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럼 욕이라도 한바가지 퍼부어보지?"
영광이 농담처럼 말했다.
“소용없었어. 욕설을 퍼붓기도 하고 오물을 던져보기도 하고 하여튼 온갖 짓거리를 다 해봤지만 소용없던데? 여하튼 참을성 하나만큼은 지독한 자식들이었지."
남인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쨌든 수고했다. 아주 성과가 없진 않았을 거다."
드르릉.
한승아로부터 문자가 온건 그때였다. 영광이 휴대전화를 꺼내 문자 메시지를 살폈다. 내용은 없고 몇장의 사진이 첨부파일로 저장되어 있었다.
“역시 한승아답군. 기대이상이야."
영광이 사진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남인철과 간부들이 휴대폰 화면을 쳐다보았다. 사진속에선 붕괴된 양구군의 대창 사무실과 사로잡힌 적들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고가의 무장상태를 봐선 간부급은 되 보였다.
“한승아도 분발하고 있는데 우리도 힘을 내야지. 슬슬 다음 작전을 준비해야겠다."
영광이 남인철에게 지시했다.
"대형 확성기 하나 준비해라. 이제부터 내가 놈들을 끌어내겠다.”
“확성기라고? 갑자기 그건 왜?”
“걸쭉하게 욕설 한 바가지 내뱉으러.”
“소용없을걸? 어떤 욕을 해도 꿈쩍도 안 하던데?”
남인철은 갖은 욕설을 다 퍼부었다.
세간에 허용하지 못할 금단의 단어까지 언급하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적들은 목석처럼 미동조차 없었다.
“아니. 보기와는 달리 박형복은 잔뜩 흥분하고 있을 거다. 녀석은 굉장한 다혈질의 성향이지만 겉으로 내색을 하지 않는 것 뿐이지. 물론 그 정도로는 움직이게 하긴 힘들 거다. 하지만 방법이 아주 없진 않아."
“가능하겠어?"
“물론이지. 내가 말하면 놈은 무조건 움직인다."
영광이 뭔가를 생각한 듯 조용히 웃으며 말했지만 확신에 가까운 자신감을 내비쳤다.
* * * * *
“개자식들이 뭐가 어쩌고 저째!”
횡성군 대창 본부에선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박형복이 사무실에 있는 집기들을 집어 던지며 난동을 피웠다. 주먹을 들어 보이는 족족 모든 걸 박살 냈다.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던지 화염구를 소환하여 사무실을 통째로 불 질러버리려고 했다.
“참으셔야 합니다!”
간부들이 나서서 억지로 말렸다.
박형복의 고운 이마에선 지렁이보다 큰 힘줄이 돋아났다.
“크, 크크큭···.”
그런데 갑자기 박형복이 앞머리를 쓸어내리며 마구 웃어댔다. 광기 솟은 눈동자가 붉은빛을 내며 일렁거렸다.
부하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런··· 너무 흥분했군.'
박형복은 부하들의 겁먹은 표정을 보며 다급히 태도를 바꿨다.
방금 전 본심을 황급히 갈무리하듯. 마치 이중인격자 같았다.
“이로서 대강 놈들의 행동을 알듯 하군요. 어떻게든 우리를 유인하기 위한 수작질을 말이죠. 우리는 그저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오히려 지금쯤 놈들이 더 초조해 있을 겁니다."
현재의 연합체는 급조된 병력이다.
영광의 카리스마에 이끌려 잠시나마 힘을 합친 동맹 관계일 뿐.
그런 관계가 오래 갈리 없다.
"흐음···."
박형복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만약 자신이 영광이라고 가정하고 분석했다.
‘놈의 카리스마가 허울뿐이라는 걸 알면 과연 중립파들이 함께할까? 놈은 어떻게든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단기간내 성과를 내려 들 것이다.'
류영광이라는 놈이 무슨 수작질로 중립파들을 설득했는진 몰라도 아마 강원도 수복 이후 던전 분배권같은 보상을 약속했을 터다. 그런 상황에서 장기전이 지속될 경우 내부에선 성과없는 영광에 대한 불신이 높아질 것이다.
이익 관계로 급조된 조직은 조금의 충격으로도 와해하기 마련.
박형복이 자신의 생각을 간부들에게 말해줬다.
잠자코 듣던 간부들이 무릎을 탁 치며 감탄했다.
“역시 대장님의 판단은 정말이지 기가막힐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저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거군요!"
간부들이 박형복의 의중을 듣곤 비행기를 태웠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천장을 뚫을 지경이었다.
“대, 대장님! 큰일 났습니다!”
그 무렵 전령 한 명이 숨을 헐떡이며 나타났다.
박형복이 웃음을 멈추곤 그를 쳐다보았다.
“양양군과 속초시가 연합군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양구군에선 우리 대원들이 이를모를 괴한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믿기지 않는 소식들이 연달아 터졌다.
방금까지만 좋았던 분위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 말에 당황한 박형복이 말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입니까? 양구군에 주둔한 병력이 얼마인데 그깟 게릴라 하나 막지 못한다는 겁니까!”
“믿기지 않지만 괴한들을 통솔하는 우두머리가 SS급의 능력자라고 합니다."
“뭐!? SS급 능력자라고? 그걸 지금 믿어라는 겁니까?"
SS급의 능력자는 보기드문 존재다. 대창길드내에서도 몇 없는 능력자들이다.
'내가 모르는 SS급 능력자들이 있다고? 그럴리가 없다.'
박형복이 몇번이나 되물었다. 보고를 하는 부하가 확언하듯 대답했다.
"S급 부대장들이 제대로 힘도 쓰지 못했다고 당했다고 하니··· SS급이 맞을 겁니다···."
휘청.
박형복은 어찌나 놀랐던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괘, 괜찮으십니까!?"
간부들이 간신히 박형복을 일으켰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동요된 그들의 눈빛이 두려움으로 물들어갔다.
“SS급의 능력자가 어째서 연합군에 있단 말이지?”
그런 이레귤러가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진작 방어라인을 물리고 집중적으로 그를 견제했을 터다.
‘실책이다! 작전을 새로 짜야 한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웃음기가 사라진 사무실 분위기가 우중충한 암운으로 드리웠다.
박형복이 손톱을 씹으며 피를 토하듯 말했다.
“횡성군을 포기하고 춘천으로 가겠습니다. 방어라인을 홍천군으로 물리십시오······.”
뼈아픈 결단이었다.
하나 지금으로선 본거지부터 지켜야 한다.
쾅!
“대장님!”
또 다른 부하 대원 한 명이 허겁지겁 문을 열고 왔다.
망루에 보초를 서고 있던 대원이었다.
"하아, 또 무슨 일입니까?"
이제는 보고를 하려는 대원들만 봐도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표정을 보아하니 또 무슨 일이 터진 듯 했다.
역시나 불안감은 여과없이 적중되었다.
“류, 류영광이 왔습니다!”
끊이지 않은 악재가 연속으로 이어졌다.
가뜩이나 사기가 죽어가는 마당에 적의 대장이 직접 왔다고 한다.
“류영광? 병력을 얼마나 끌고 왔습니까?"
박형복이 초조하게 말하며 부하를 쳐다보았다. 옆에 있던 간부들의 시선도 부하의 입에 향했다.
한데 부하가 한참을 머뭇거리다니 말을 하려다 말기를 반복했다.
“어이! 답답하게 굴지 말고 말을 하란 말이야!”
보다 못한 간부 한 명이 목청을 높히며 다그쳤다.
책망받는 부하가 눈을 질금 감은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그, 그게 문제가 아니라··· 류영광이 대장님의 과거를 확성기를 통해 낱낱이 밝혀대고 있습니다. 원래는 전과 10범의 불량배며, 성형 괴물이라는 등의 막말을 일삼고···.”
"그, 그걸 놈이 어떻게···?"
쾅!
침착함을 유지하던 박형복이 탁자를 후려쳤다.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졌고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놈은 대체 누구지? 어떻게 내 과거를 아는 거지?’
그의 과거는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언제나 비밀유지를 1순위로 삼고 자신의 과거를 아는 모든 자를 잔인하게 죽였다.
한데 어째서 영광이 알고 있단 말인가?
‘더 떠벌리기 전에 어떻게든 놈을 죽여야 한다!’
이제는 냉정함이고 뭐고 다 사라졌다.
황급히 문을 박차고 밖을 달려가듯 나갔다.
웅성웅성.
이미 바깥이 시끄러웠다. 대치 중인 병력과 맞댄 적들이 10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서 시끄럽게 확성기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박형복은 소매치기와 사기꾼으로 유명한 잡범 출신이다! 너희들은 추악한 전과자를 대장으로 섬기고 있다!]
[박형복의 얼굴은 수십 번의 성형으로 이뤄진 결과물이다! 지금 얼굴은 진짜 얼굴이 아니다!]
적들 몇 명이 확성기를 대고 온갖 잡설을 쏟아냈다.
대치 중인 대창 대원들이 박형복의 눈치를 봤다. 몬스터보다 기괴한 표정이 보였다.
뚝.
이성의 끈이 끊겼다. 냉정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비밀이 탄로났다는 조급함이 그를 괴물로 만들어버렸다.
“노, 놈들을 쳐라! 당장 치란 말이다!”
박형복이 괴성이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뒤늦게 다가온 간부들의 만류에도 이성을 잃어버린 그의 귀에 제대로 들려올리 없었다.
사실 대창 대원들은 처음 적들이 떠벌리는 말따윈 믿지 않았다.
하지만 박형복의 반응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았다.
‘적들의 말은 사실이다.’
병력을 통솔하는 지휘관의 부끄러운 과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기가 곤두박질 쳤다.
* * * * *
“드디어 놈들이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레인저 클래스의 용진 대원이 말했다.
그간 꿈쩍도 하지 않는 적들이 움직인 것이다.
"어떻게 움직인거지?"
"고작 그런 조롱으로 적을 움직였다는 거야?"
용진 간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온갖 욕설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은 그들이 고작 저런 말로 움직인 것이다.
모든 게 영광의 예언대로였다.
“형님. 혹시 박형복이랑 아는 사이야?”
남인철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럼. 아주 잘 아는 사이지.”
영광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이제 남은 건 놈들의 삼척시까지 유인하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멍청한 녀석. 과거나 지금이나 본질은 똑같구나. 이제 슬슬 악연의 종지부를 찍을 시간이다.’
박형복은 사면초가였다. 그는 선택해야만 했다. 본진이 쑥대밭이 되는 걸 내버려 두고 그대로 병력을 밀고 엘리전으로 진행하느냐? 아니면 병력을 회수하여 본진 방어를 할 것인가?
박형복이 조금만 냉정했더라면 후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건 영광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박형복의 다음 행동이 훤히 보이는 듯 했다.
“모든 병력을 물리고 삼척시까지 후퇴한다. 놈들이 공격한다 해도 절대로 대응하지 마라.”
찌지직!
말하기 전부터 대원들은 이미 퇴각할 준비를 마쳤다.
고급형 신속 버프 주문서가 여기저기서 찢기는 소리가 들렸다.
‘박형복. 삼척시가 네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영광이 냉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입가는 표정과 달리 웃음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