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 삼척시 최후의 작전(3)
102화
전류가 흐르는 강물이 반딧불처럼 반짝였다. 물과 전류가 일체화되어 대창대원들의 사지를 갈아먹듯 전신을 타고 흐른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치이이익.
흡사 고기 익는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대창대원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450명 가량 되는 대원들이 150명도 되지 않는 상황.
"헉··· 헉···."
너무나 참혹한 광경이다.
간신히 살아남은 자들은 기뻐할수도 없었다. 방금 전 함께 웃고 떠들던 동료들이 모조리 죽음을 맞이했다.
“크으윽······.”
박형복이 간신히 물 위로 빠져나왔다. 주저앉은 그의 얼빠진 얼굴에선 핏기조차 없었다. S급 능력자인 그조차 물에 추진력을 얻은 뇌신강기는 참으로 버거운 공격이었다.
하물며 부하 대원들은 오죽하랴.
‘이렇게 된 이상······ 나 혼자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박형복이 표정이 서늘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산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입술을 깊게 깨문 그가 좌중을 둘러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여기서 최대한 버티십시오. 지원군을 이끌고 오겠습니다. 아직 각 시, 군에 주둔한 병력이 있으니···.”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박형복은 최후의 방법으로 부하들을 고기 방패로 사용하기로 했다. 시커먼 의중을 알 길이 없는 부하들은 철석같이 그 말을 믿고 무거운 마음으로 무기를 들었다.
* * * * *
“······.”
연합군들의 반응 또한 대창 대원들만큼이나 다를 바 없었다. 본질은 다르지만, 표현의 형태는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영광의 압도적인 무용에 모두가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괴, 굉장해···."
"적들을 한순간에 궤멸시켰어."
대원들이 무기를 하늘높이 치켜들며 성과를 자축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해볼만하고 남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놈들마져 처치해야 진정한 승리라 할 수 있겠지."
전황을 지켜본 영광이 담담히 말했다.
빠지직!
영광이 마도를 들었다. 청명한 검날엔 아직도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 그렇게 말을 하듯 칼끝이 적들을 향했다. 대원들이 전의를 가다듬고 무기를 곧추세웠다.
“모두 진군해라!”
영광이 소리쳤다. 대원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지르며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강은 아직도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연합군 대원들에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역대급 희망 : 뇌신강기의 진면목이지.’
문자 그대로 희망이 담긴 스킬. 철저히 악을 멸하는 스킬 그 자체.
여기서 선악의 구별이란 영광을 적대하는 자와 아닌 자로 구별된다. 희망의 신 에르메니아의 절대적 후원을 받은 영광 그 자신이 바로 절대 선으로 치부되기 때문.
그와 적대하는 모든 세력은 악으로 간주한다.
반면 영광의 뜻을 받든 연합군 대원들에게는 어떠한 해를 끼치지 않는다.
“마, 막아라! 무조건 막아야 한다!”
대창 간부들이 악을 쓰며 부하들을 독려했지만 이미 승기가 기운 상태였다.
대창 대원들은 제대로 손도 쓰지 못하고 연합군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저리 비켜라! 내가 선봉으로 나서겠다!”
거구의 대창 간부 한 명이 나섰다. 오함마를 든 바바리안 클래스 대원이었다.
바바리안 답게 묵직한 둔기를 깃털처럼 휘두르며 연합군 대원 몇 명을 아작냈다.
기세등등했던 연합군들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연합군이라고 해봤자 피라미들의 집합체지."
바바리안은 적진을 제집처럼 휘젓고 다녔다.
칼과 창도 오함마에 부딪히며 형편없이 휘어졌다.
챙!
그때 날아오는 장창이 오함마를 막아섰다.
"호오?"
바바리안이 오함마를 추스르며 물러섰다.
눈앞에선 장창을 묘기처럼 휘두르는 건장한 사내가 보였다.
“제법이군. 이름이 뭐냐?”
바바리안이 다소 놀랍다는 듯 물었다.
“여기서 죽을 놈이 이름을 알아서 뭐하게?”
사내가 냉소하며 창을 휘둘렀다. 창날이 바바리안의 투구와 부딪혔다.
투구가 빛을 내며 마력막이 형성되었다.
깡!
“큭큭.”
놀랍게도 투구는 멀쩡했다. 오히려 바바리안이 기세를 몰아 더욱 날뛰었다.
사내를 옥죄듯 오함마의 연타가 이어졌다.
“흠?”
사내는 창을 비껴 오함마의 공격 일부를 상쇄시켰다. 손목을 틀어 순간적으로 힘을 흘려낸 기교였다.
그 하나만으로 상대의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자식······.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바바리안이 오함마를 두손으로 움켜쥐었다. 여태까지와 다른 공격태세였다.
위이이이잉.
두 손에 들린 오함마가 팽이처럼 회전하며 전진했다. 주위에 있던 몇 명 연합군 대원들의 사지가 믹서기처럼 갈려 나갔다. 피와 살점들이 빗물처럼 쏟아졌다.
“물러서라! 놈은 나 혼자 상대한다!”
사내가 대원들을 밀치며 직접 회전 공격을 막아섰다. 끼이이익! 이명이 들릴 정도로 쇠 긁는 소리가 청각을 자극했다. 사내는 마력을 창날 끝에 집중하여 쾌속으로 회전하는 바바리안을 타격했다.
불꽃이 튀며 창을 든 사내의 몸이 휘청거렸다.
‘절대로 물러서면 안 돼.’
손아귀가 마비되는 얼얼한 감각. 당장이라도 창을 놓고만 싶었지만 사내는 오히려 온 마력을 창에 집중하며 냉정함을 유지했다.
전신이 비 오듯 흥건한 땀방울로 흥건했다.
‘창을 놓으면 죽는다.’
사내의 생각.
‘회전하지 않으면 내가 당하고 만다.’
바바리안도 그렇게 생각했다.
회전하기 위한 오함마와 그 움직임을 멈추려는 창. 서로의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둘 중 하나라도 움직임을 멈춘다면, 패배는 자신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서로의 운명을 건 도박같은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전투중이던 양 대원들도 싸움을 멈추고 두 사나이들의 전투를 쳐다보았다.
“끄, 끄으응···.”
지칠 줄 모르는 회전이 천천히 멈추기 시작했다. 바바리안이 힘에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 사내가 눈이 맹수처럼 반짝였다. 동력을 잃어버린 바바리안의 회전이 더 이상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음을 눈치챈 것이다.
써걱!
창이 바바리안의 어깻죽지를 갈랐다. 회전공격에 모든 마력을 쏟아부은 바바리안에겐 방금 공격은 치명타였다. 덜렁거리는 팔과 손아귀에서 떨어지는 오함마.
"······!"
바바리안의 얼굴빛이 당황한 기색으로 역력했다.
오함마를 줍기 위해 빠르게 허리를 숙여 들었건만.
“이미 늦었어 인마!"
사내의 벼락같은 고함이 이어졌다.
콰득!
창이 정확히 바바리안의 머리통을 꼬치처럼 꿰뚫었다. 투구가 깡통처럼 찌그러지며 핏물이 터져 나왔다.
쿠웅.
“끄어윽···.”
머리를 관통당한 바바리안의 거구가 형편없이 무너졌다.
비릿한 피비린내와 혼미해진 정신. 바바리안이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머리가 꿰뚫렸는데도 아직도 생명이 끊기지 않았다.
패배 했지만 확실히 강인한 능력자였다.
“네놈의··· 이름을···."
살아있는 동안 쥐어짜듯 목소리를 냈다.
"알고싶다······."
바바리안은 알고 싶었다.
저승에 가기 전 자신을 죽인 사내의 이름 석자를.
“내 이름은 남인철이다. 지옥에 가기 전에 잘 기억해둬라.”
남인철이 중얼거리듯 말하며 머리에 박힌 창을 회수했다.
피분수와 폭포수처럼 터지며 한차례 경련을 한 바바리안은 고개를 떨구며 축 늘어졌다.
* * * * *
"고생했다. 인철아."
영광은 후미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바리안이 쓰러졌을 때부터 전황의 흐름이 급격히 연합군쪽으로 쏠렸다.
“항복해라. 너희들은 이미 졌다.”
저벅저벅.
부하들의 호위를 받은 영광이 걸어나오며 적들에게 말했다.
덜덜덜.
영광의 기세에 주춤한 그들은 공격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영광은 수백명의 대창 대원들을 홀로 학살했다. 영광을 본 그들은 자신들이 대한민국 정점에 선 일류 길드원이라는 것도 까맣게 잊어먹은 듯 했다.
"하, 항복을···."
대한민국 최강의 길드원이라는 명성은 죽음 앞에선 허울 좋은 명패에 불과하다.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다.
“다, 닥쳐라! 놈의 말이 속지 마라! 으아아압!”
간부급으로 보이는 대창 대원 한 명이 괴성을 지르며 영광에게 달려들었다.
이에 영광의 부하들이 대창 대원의 돌격을 저지하려 했다.
영광이 한차례 손짓을 하며 좌우를 물린 뒤 마도를 치켜들었다.
뎅겅!
마도의 핏빛 잔상과 함께 그대로 대창간부의 목이 육신과 분리되었다. 목덜미를 보호하던 보호구가 핏물과 함께 땅바닥에 떨어졌다.
'다, 단 한번의 일격으로 백부장이 당했다···.'
대창 대원들은 완벽히 전의를 상실했다. 물론 백부장이라 불려오는 대창 대원은 그간 전투로 인해 마력소모가 심했다.
하나, 한번의 공격에 당했다는 건 큰 충격이었다.
“저렇게 반항하면 죽는다."
영광이 말했다. 날카로운 기백이 실린 눈빛이 좌중을 훑으며 지나갔다.
“다만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챙그랑.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창대원들이 무기를 떨어뜨렸다. 지금으로선 목숨을 부지하고 훗날을 도모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대장. 이놈들을 죽여버려야 합니다! 이 자식들은 우리 대원들을 죽인 놈들입니다!”
용진 백부장 김일도가 울분을 토했다. 많은 용진 대원들이 대창 길드에게 살해당했다. 혹 저들 중에서 용진대원을 죽인 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놈들을 죽여도 아무런 이득도 없어.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미래를 위해서라면 놈들을 살려주는 편이 나아.”
영광이 울먹이는 김일도의 어깨를 살포시 잡곤 말했다.
김일도는 처음으로 영광에게 항명했다.
“어째서입니까! 대장은 분하지도 않으십니까!?"
“아직 도처엔 대창놈들이 많다. 만약 이놈들을 다 죽인다면 다른 도시에 주둔한 대창놈들은 죽기 살기로 덤벼들 거다. 지금은 오히려 자비를 베풀어 항복을 유도하는 편이 전력을 보존하는 길이지.”
영광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그는 누구보다 대창놈들을 싸그리 죽여버리고 싶었다. 다만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러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는 걸 안다.
조금의 분노만 참는다면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을 터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김일도가 고개를 떨구며 영광의 의중을 이해했다.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놈들을 돌려보낼 생각은 없다."
영광이 항복한 대창대원들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너희들의 그간 악행을 용서할 순 없는 일이지. 그래서 결정했다. 너희들의 힘을 강제로 빼앗도록 하겠다."
흠짓.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저 말의 뜻을 모두가 알고 있다.
먼발치에 있던 남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안에 있는 결정체를 뽑아버릴 셈이군.'
마력의 원천인 결정체. 모든 능력자들은 결정체를 가지고 있으며 결정체를 잃어버리면 능력자로서의 능력을 상실한다.
이제 이곳에 붙잡힌 대창대원들은 일반인으로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
대창대원들은 고개를 떨궜다. 능력자로서의 삶을 포기한다는 것. 그것은 지금까지의 부와 명예를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항변하지 않았다.
죽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이쯤에서 마무리를 짓고··· 핀 천리안을 펼쳐라. 놈을 처치하러 간다.”
아직 할 일이 남았다.
마지막 적. 박형복을 쓰러뜨리기 위해 영광이 움직였다.
* * * * *
칠흑 같은 어둠 속 이름 모를 산등성이.
“헉··· 헉···.”
박형복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신없이 달렸다.
우거진 숲을 헤집으며 달리고 또 달렸다.
“제, 제길···.”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어찌나 달려댔는지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와들와들 떨렸다. 더 이상 움직이기가 곤란했다.
“꼴이 우습게 됐군··· 이 내가 이런 굴욕을 겪다니···.”
마침 동굴이 보였다.
한 사람이 들어가기 충분한 곳이었다.
“후우······.”
박형복이 동굴에 들어가 몸을 기댔다.
그가 눈을 감으며 조금 전 일을 상기했다.
영광의 모습이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이가 갈렸다.
‘놈은 내 성격을 파헤치듯 분석하여 완벽한 승리로 이끌었다. 도대체 녀석의 정체는 뭐지? 어떻게···?'
전체적인 전략에서도, 소규모 전술에서조차도 완벽한 패배다.
강원도를 통일할 절호의 기회를 류영광이라는 놈이 나타나고부터 모든 게 뒤집혔다.
‘일단은 한시라도 흩어진 병력들을 규합하여 다시 한번 놈과 일전을 겨뤄야 한다. 한번 패배했지만, 아직 완벽히 패배하진 않았어.’
자신을 어루 달래듯 스스로 세뇌했다.
죽지만 않으면 언젠간 복수의 기회도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반드시 죽여버리겠다··· 반드시···!”
스슥. 스슥.
풀 소리가 들렸다. 박형복이 숨까지 참으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뭐지? 설마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
동공이 지진처럼 흔들렸다. 쫑긋 세운 귀에 모든 마력을 집중했다.
다행인 건 사람의 발걸음은 아닌 듯 했다.
토끼나 노루 같은 짐승일까?
'빌어먹을! 내가 고작 동물따위에게 겁을 먹다니!'
철렁이는 가슴을 진정시켰지만, 몹시 화가 났다.
그가 몸을 일으켜 동굴을 빠져나왔다.
역시나 토끼 한 마리가 보였다.
“그럼 그렇지.”
안도의 한숨을 쉬곤 화염구를 소환했다. 배가 고팠었는데 마침 토끼가 있어 잘됐다고 생각했다.
화르르륵.
박형복이 화염구를 집어던졌다. 토끼가 한순간 잘익은 고기로 변했다.
화력이 좋아 조금만 그을려도 먹음직한 웰던으로 구어진다.
“혼자 먹으면 쓰나? 맛있는 건 같이 나눠 먹어야 제맛이지.”
"······!"
누군가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박형복의 목이 기름칠하지 않은 목각인형처럼 삐딱하게 옆으로 움직였다.
“어, 어떻게······?”
털썩.
토끼고기가 떨어졌다. 박형복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눈앞에선 서슬퍼렇게 비친 마도의 칼날이 자신의 목젖까지 닿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