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 선포(3)
142화
“그 말이 사실입니까!? 지금 이 방송은 전국으로 송출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대창 길드와의 전면전을 할 예정입니까?”
“본인의 독단적인 행동입니까? 길드원 모두가 동의한 겁니까?”
예상치 못한 선언에 식었던 열기가 활화산처럼 터졌다. 대창 길드와의 전면전 선포는 엄청난 파급력을 불러왔다. 카메라맨들이 영광의 얼굴을 선명하게 담기 위해 앞으로 밀착했고 기자들은 마이크를 영광에게 뻗어 자신의 질문을 최대한 전달하려 했다.
웅성웅성.
일순 소란과 함께 집무실이 시끄러워졌다. 문성현과 남인철이 흥분한 기자들을 만류하며 영광에게서 떼어냈다.
실랑이를 벌이면서도 둘 또한 기자들처럼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대장은 대창 길드와 전면전을 하려는 걸까? 지금 당장 승산이 없을 텐데 어째서지?’
‘형님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저런 말을 내뱉진 않을 터다···. 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 전력으론 도저히 대창 길드와 싸울 여력이 되지 않아. 그런데 왜?’
둘은 나름대로 영광을 이해하려 했지만, 도저히 영광의 의중을 읽지 못했다.
‘지금껏 어느 정도는 추론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대창 길드와 싸워 이기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오히려 박형복과의 전쟁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그간 영광을 오랫동안 보좌한 문성현조차 이번만큼은 영광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왜?] 라는 반문만 이어져 머리가 지끈거릴 뿐이었다.
“다들 잠시만 조용히 하십시오.”
침묵하던 영광이 입을 열자 시끄럽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지금 이 순간 영광의 말 한마디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만큼의 파급력을 가진다는 걸 잘 알기에.
“저는 조금 전 발언을 철회할 생각도 없고 대창 길드와의 전쟁을 피할 생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객기로 대창 길드와 전쟁을 벌인다고 선언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궁금해하는 [대창 길드와 싸워 이길 방법]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말씀드리기보단 행동으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영광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자신감으로 차오른 기백이 표면적으로 발현됐다.
“지금부터 우리 길드와 함께할 능력자들을 모십니다. 능력치가 낮고 높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창 길드의 폭거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모두 다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방송을 보고 계신 전국의 길드장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저는··· 연합체를 만들 생각입니다.”
말을 마친 영광이 숨을 고르며 주먹을 뻗었다.
“목적은 오로지 대창 길드의 섬멸! 난세의 종말을 고하고 평화를 위한 시대를 만들기 위해선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저를 따라온다면 그 이상을 반드시 실현해 보이겠습니다.”
영광의 발언은 여과 없이 전국으로 송출되었다. TV를 시청하는 시민들, 길드 본부에 모여 TV 속 영광을 지켜보던 능력자들. 대형 전광판에 넋 놓고 지켜보는 길거리 수많은 인파.
대한민국 대부분의 국민이 지켜보고 있었다.
대창 길드는 대한민국 제1의 길드가 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을 짓밟고 올라섰다. 그렇기에 원한도 많았다. 단지 대창의 힘이 막강하기에 힘없는 자들은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로 승산이 있는 걸까? 대창 길드를 상대로?”
처음에는 의심했다. 영광이 최근 화재 인물이라곤 해도 아직까진 신출내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창에 원한을 가진 이들을 주축으로 하여 점점 대창 타도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지금껏 대창 타도의 선봉에 설 영웅을 갈구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토록 기다리던 영웅이 등장했다. 물론 그 영웅이란 허상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류영광은 대창 길드를 상대로 한차례 승리를 거뒀어. 그것도 흔해빠진 승리가 아닌 완벽한 대승리였지. 그자라면······ 어쩌면 대창 길드를 이길지도 몰라.”
누군가가 말했다. 행복회로가 섞인 발언이었지만 대창에 원한을 가진 이들에겐 희망을 품기 충분했다.
“영원한 강자는 없는 법이지. 역사가 그래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야.”
“류영광이라면··· 정말로 승산 있지 않을까?”
“류영광···.”
“류영광!”
“류영광! 류영광!”
대창 타도를 외치는 아우성과 영광의 이름이 대한민국 전역을 덮었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생긴 지금, 거대한 전광판에 주먹을 치켜든 영광을 바라보며 영광의 이름을 외쳤다.
대창이라는 이름에 짓눌린 그들의 억눌려진 울분이 여과 없이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 * * * *
“김선민 기자. 현재 서울 시민들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영광과의 인터뷰는 끝났지만 몇몇 기자들은 아직도 길드 본부 앞에서 서성이며 뉴스를 내보냈다. 기자들 입장에선 이토록 큰 파급력을 가진 사건이 없었기에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메이저 방송사 기자들은 아예 길드 본부 앞에 간이 막사를 설치하여 몇 날 며칠을 숙박할 예정이었다.
“네. 보다시피 적지 않은 인파가 류영광 대장의 발언을 지지하는 분위기입니다. 처음 소극적이었던 분위기와는 다르게 지금은 적극적으로 류영광 대장을 따르는 시민들이 많아진 상황입니다.”
“서창수 기자. 전라도는 지금 축제 분위기라죠?”
“그렇습니다. 전라도는 대창 길드에 적대적인 지역인만큼 류영광 대장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전라도 길드 상황은 어떻습니까?”
“대부분이 류영광 대장과 협력을 원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대창 길드와의 대규모 전쟁을 위한 연합체가 탄생할 것으로 예상하며······.”
앵커와 기자들이 서로 질문과 답변을 하고 있을 동안 영광은 본부 휴게실에서 느긋이 TV를 보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혹시 이게 바로 대장의 노림수였어요?”
영광의 어깨에 앉아있던 핀이 말했다.
“그래. 생각보다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 몰랐어.”
영광이 얼떨떨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 정도의 반응은 예상 밖이라는 표정이었다.
덕분에 길드 본부는 온종일 걸려오는 전화로 시달려야만 했다.
“예. 윤성길드 윤명수 대장이라고요? 저희야 당연히 좋죠. 그럼요. 조만간 뵙겠습니다······. 아! 여보세요. 예 예. 그러니까 가입조건이···.”
남인철은 전화를 받느냐 정신이 없었다. 전화기 한 대로는 턱도 없어 여러 대의 전화기를 설치하고 길드원 몇 명이 직접 전화응대를 해야만 했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연합가입뿐만 아니라 언론사들의 인터뷰요청도 모두 받아들여. 지금은 내 얼굴을 최대한 TV에 많이 비쳐야 해.”
길드들의 연합가입 문의가 끊이지 않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아직도 숨죽이며 중립을 유지하는 길드들도 제법 있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의 지원을 이끌어낼 필요성이 있었다.
“전라도에 있는 길드 대부분은 우리와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대창과 가장 적대적인 곳이기 때문이죠.”
문성현이 노트북으로 타이핑을 치며 말했다. 그는 연합가입을 희망한 길드들과 능력자들의 이름과 세부능력들을 일일이 엑셀로 정리하고 있었다.
“다른 지방의 길드들은 어떻습니까?”
“경상도, 충청도 쪽의 길드 절반가량은 우리와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경기도, 서울 쪽은 대창의 입김이 심한 지역이다 보니 가입 문의가 현저히 적은 상황입니다.”
“눈치를 보고 있는 거겠죠. 앞으로 우리가 대창과의 전쟁을 몇 번 이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도 합류 의사를 표명할 겁니다.”
영광이 자신 있게 말했다. 지금껏 모든 일이 순탄하게 이어졌다.
‘대단하군···. 객기라고 여겼던 전면전 선포가 이런 식의 결과로 이어지다니···.’
문성현은 영광의 혜안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대창 길드와의 충돌만을 염두에 둔 자신의 일차원적인 생각과는 확실히 다른 결과였다.
‘단순한 계략이나 전술뿐만 아니라 대국을 볼 줄 아는 시야마저 출중하다. 대장이 회귀자라서 저렇게 뛰어난 걸까? 아니···. 대장이라는 존재 자체가 애초에 규격 외의 존재다. 회귀자니 신족의 기연이니 그런 건 부가적인 것일 뿐···.’
만약 자신이었다면 어땠을까? 문성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영광과 같은 똑같은 상황에 주어졌다고 해도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대창과 대등한 세력권을 형성하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했을 터다.
“그러고 보니 한승아는 지금 어딨지?”
“또 어디 가서 술이나 처먹고 있겠지. 본인은 머리 쓰는 일은 질색이라면서···. 얼마 전에 던전에서 사로잡은 그 여자애랑 같이 말이야.”
남인철이 전화를 받다 말고 한승아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한숨을 쉬었다.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허구한 날 놀기만 하는 한승아의 모습이 짜증 날 법도 했다.
“여자애라면 유수연을 말하는 거냐?”
“어. 요즘 둘이서 아주 그냥 죽이 잘 맞던지 자매처럼 지내던데.”
“그렇다면 다행이군. 그냥 내버려 둬.”
영광은 별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어차피 한승아에게 이런 사무적인 일은 맞지 않았다. 차라리 심적으로 혼란스러운 유수연을 달래며 멘토를 자처하는 게 더 나았다.
“대장. NTV랑 인터뷰 시간이 다 됐어요. 지금 바로 준비하셔야겠는데요?”
벽시계를 바라보던 핀이 말했다. 영광은 여러 메이저 언론사들의 인터뷰요청을 수락한 상태였다. 오늘만 벌써 3건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어. 나머지 인터뷰는 싹 다 내일로 미뤄둬.”
피곤함에 찌든 영광이 엉거주춤 소파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문밖에서는 기자로 보이는 여성과 카메라맨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류영광 대장이시죠? NTV의 이혜선 기자입니다.”
오피스룩 차림의 30대 여성이 활짝 웃으며 영광을 반겼다. 군더더기 없는 단아한 미모의 여성이었다.
“반갑습니다.”
짧게 인사를 마친 영광이 이혜선과 함께 집무실로 향했다. 복도를 걷는 도중에도 이혜선은 여러 가지 질문 공세를 퍼부으며 한껏 들떠있었다.
“TV에서만 보다가 실물로 보니 더 잘생기신 것 같아요.”
“대창 길드와 싸워 이길 자신이 있으세요?”
“향후 연합 방침을 선제공격으로 하실 건가요? 혹은 방어전으로···?”
영광은 미소를 지으며 일일이 이혜선의 말에 대답해줬다.
“저런···. 벌써 그런 걸 물어보시면 인터뷰 때 할 질문은 어쩌시려고요?”
“호호. 그건 그거고 당장에 궁금해 죽겠는걸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그들은 인터뷰 장소인 집무실에 다다랐다.
둘은 준비된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이혜선이 의자를 바짝 당겨 영광의 쪽으로 밀착한 뒤 마이크를 꺼내 들었다.
“흠흠···. 거리가 너무 가깝군요. 조금 떨어져서 인터뷰하시죠.”
뒤에서 따라온 남인철이 헛기침을 하며 이혜선에게 주의를 시켰다. 인터뷰하는 것 치고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앗! 미안해요.”
이혜선이 얼굴을 붉히며 앉은 상태로 철제의자를 살짝 들었다. 그러던 찰나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꺅!”
다행히 바닥에 넘어지기 직전에 영광이 번개같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으십니까?”
“아, 아 고마워요···.”
이혜선이 엉거주춤 부축을 받고 몸을 일으키려다 와락 영광의 품에 안겼다. 갑작스러운 행동이었다. 특히 찰나에 마주친 이혜선의 눈빛에 모종의 이질감이 느껴졌다.
평생을 전장에서 뒹굴던 영광에겐 가장 익숙한 감정이었다.
‘살기!?’
그런 감정이 들자 일순간도 주체하지 않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혜선이 들고 있던 마이크 끝부분이 쫙 갈라지더니 뾰족한 쇠붙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이크로 가장한 시퍼런 회칼이었다.
“흥! 이미 늦었어!”
이혜선이 코웃음을 치며 영광의 가슴팍에 회칼을 꽂아 넣었다. 손아귀에서 흐르는 은은한 푸른 물결이 일렁거렸다. 그녀의 정체는 단순한 기자가 아닌 능력자였다.
챙!
“이, 이럴 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영광이 마력을 이용하여 회칼을 튕겨냈다. 영광은 그대로 이혜선을 팔을 잡고 엎어치기 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꺄악!”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이혜선은 경악이 깃든 눈빛으로 영광을 쳐다보았다. 등뼈가 뒤틀리는 충격보다 영광의 신들린 대처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뭐 이런 습격 정도는 언젠간 일어날 줄 예상했었지. 그건 그렇고 누가 시켰지? 대창 길드인가?”
영광의 섬뜩한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그간 보여왔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살벌함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