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 첫 귀성을 쓰러뜨리다(5)
167화
* * * * *
"흠···."
염려와는 달리 간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예상외의 허술한 감시체계였다.
남인철은 모퉁이를 따라 한참이나 내부를 배회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코를 막았다.
'으윽, 뭔 냄새가 이렇게 역겨워?'
음습한 습기와 오물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허물어진 벽면엔 이끼가 지저분하게 잔뜩 끼어 있었다.
"후우···."
숨을 참고 지하속으로 깊게 들어갔다. 들어갈수록 간간이 걸려 있는 횃불의 수가 점점 줄었고, 급기야 한치도 분간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21세기에 이런곳이 있다니 참으로 기가찰 노릇이군.'
지하 내부는 정말이지 중세시대를 연상케 했다. 횃불로 실내를 밝히는 것만 봐도 현대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영화에서 나올법한 비문명국가의 건물들도 여기보단 나을 터다.
뚜벅뚜벅.
마음이 조급하지만,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어둠 속에선 언제나 주의가 필요하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위험에 한시 긴장을 늦춰선 안된다.
쉬이이이.
“음?”
남인철은 자신의 몸에 변화를 감지했다.
단전에 흐르는 마력의 움직임이 불규칙하게 움직이더니 점점 기운이 얕아지고 있었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닌, 무언가에 의한 인위적인 억압.'
급기야 전신무장이 스르르 풀렸다. 마력의 기운이 현저하게 떨어진 탓이다.
‘하긴, 워낙에 무방비 상태라 이상하긴 했어. 아마 이곳 지면엔 마력을 봉인하기 위한 무언가의 장치가 두루두루 설치되어 있는듯하다.'
그는 단번에 4층의 비밀을 알아차렸다. 핀의 말대로 지하 4층은 능력자들을 가둬논 곳이다.
어찌보면 이러한 조치는 너무나 당연한 처사였다.
그러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벽면에 걸린 횃불을 발견했다.
어둠에 묻혔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음?"
남인철이 먼저 본 장면은 지하 대공동의 광활한 광경이었다.
"감옥이 어마어마하게 많군. 3층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대공동은 수많은 감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감옥마다 대략 4~5명 정도 갇혀 있고, 그런 감옥이 수백 개나 있었다. 갇힌 사람들의 숫자만 대충 계산해도 최소 500명은 넘는다.
‘미칠 노릇이군. 이건 뭐 월리를 찾아라도 아니고···.’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숫자에 남인철은 당황했다.
이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
감옥과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남인철를 극도로 경계했다. 힐끗힐끗 보거나 혹 일부는 노골적으로 적의를 보이는 자들도 있었다.
‘날 태산길드원으로 착각하는 건가?’
유태승의 구출이 시급했기에 그들을 향해 일일히 해명하는 짓은 시간낭비였다.
그저 묵묵히 사람들의 얼굴만을 확인할 뿐.
“오, 오지마ㅡ!”
여자 한 명이 남인철을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손사래쳤다.
손목을 구속한 쇠사슬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아으으···.”
여자가 얕은 신음을 냈다. 녹슨 사슬에 의해 손목이 벌겋게 패여 있었다. 자칫하다간 파상풍이나 세균에 감염될 위험이 크다.
‘어쩔 수 없군.’
치이이익.
남인철은 포션을 꺼내 여자의 손목에 부었다. 부글부글 연기가 끓으며 상처가 깨끗이 아물었다.
여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제서야 경계하던 눈빛을 거뒀다.
“전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들을 구하러 온 사람이니 안심하십시오.”
그 말에 사람들이 눈을 크게 떴다. 곧 그들이 아우성을 치며 살려달라 소리쳤다.
남인철이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주의를 줬다.
“너무 떠들면 놈들이 올지도 모릅니다.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은 당신을 구출해드릴 순 없으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아, 알겠어요···.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여자를 진정시킨 남인철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줬다.
“혹시 이 자를 아십니까?”
별달리 기대하지 않고 물었는데 여자의 대답은 남인철이 그토록 원하던 답변이었다.
“나 이 사람 알아요! 그러니까 이름이···.”
“유태승.”
“그런 이름은 모르겠고 그냥 털보 아저씨라고 불렀어요. 짧은 시간었지만 같은 감옥에 있어봐서 잘 알거든요.”
유태승은 한 번만 봐도 강하게 인상이 남는 강렬한 외모의 소유자다. 그래서 그런지 여자는 유태승을 확실히 기억했다.
남인철이 크게 반색하며 다시 물었다.
“이 녀석, 어디 있는지 알아요?”
“저기 오른쪽 끝에 있는 감옥 보이시죠. 아마 저기에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여자가 가리킨 손가락을 따라 남인철이 빠르게 그곳을 향해 달렸다.
어찌나 빨리 달렸던지 머뭇거리던 여자의 머리가 세차게 흔들렸다.
*****
어느 감옥 안에서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찌나 서글프게 우는지 듣는 이의 마음이 뒤숭숭할 지경이다.
“흐흑··· 흐흐흐흑······.”
덩치가 펑퍼짐한 남자가 무릎을 끌어안으며 서럽게 흐느끼고 있었다.
그런 그의 발밑에선 꼬리를 흔드는 개 한 마리가 위로하듯 손바닥을 핥았다.
남자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금 울먹였다.
“엄마, 아빠······. 대장···. 무서워요······.”
남자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어찌나 두들겨 맞았는지 얼굴 전체가 멍투성이였다. 퉁퉁 부은 눈덩이는 시퍼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코와 입은 주먹만 하게 부어 있었다.
“털보. 몸은 좀 괜찮은가?”
중년의 남자가 안타깝다는 얼굴로 털보 유태승에게 다가갔다.
그들 말고도 여러 명이 위로의 한마디들을 던졌다.
“천벌을 받을 놈들···. 어찌 사람을 이 지경이 되도록 때리는 것인지···.”
중년 남자가 혀를 차자 옆에 있던 청년이 물었다.
“대체 놈들은 왜 털보만 구타하는 겁니까?”
청년의 말대로 김인수를 위시한 간부패거리들은 다른 죄수들을 배제하고 오로지 유태승만을 끌어내서 때렸다.
“그, 그게 말이지···.”
중년은 슬그머니 유태승의 눈치를 보더니 말을 할까말까 고민했다.
사실 이유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죄수들 중에 타격감이 제일 좋다더군.”
“그, 그렇군요.”
이유를 들은 청년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유태승의 비대한 살덩어리는 보기에도 젤리처럼 물컹물컹했다.
상대로 하여금 때리는 손맛이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런 데다가 회복력까지 좋으니 가히 인간 샌드백이라 할만하다.
“흠···. 남 일이 아니야. 우리도 언제 저렇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중년의 비관적인 말에 감옥의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그의 말대로 여기 갇힌 이들의 미래는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아저씨는 여기 오래계셨다면서요. 그러면 탈옥시도는 안해보셨어요?"
청년의 말에 중년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있긴 있었지. 물론 지금은 그런 생각을 깔끔히 접었지만."
그도 몇 번이나 탈옥을 시도하려 했었다. 하지만 쇠창살을 부수는 것조차 버거웠다. 영화에서 나오는 기가 막힌 탈옥방법 따윈 없었다. 촘촘하고도 단단한 쇠창살을 빠져나가는 것도, 구부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대 능력자용 특제 미스릴로 제작한 쇠창살이라 온전히 마력을 보유하더라도 부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정말로 우리 모두 여기서 갇혀 죽는 걸까요···?”
침울하기 그지없는 사내의 목소리.
“그렇겠지.”
중년 남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빠져나갈 수 있다.”라는 희망찬 대답을 듣고 싶었는데 역시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아니, 아니에요.”
어느새 울음을 멈춘 유태승이 말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목소리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대장이 구해줄 거에요. 반드시······!”
“또, 또 그 소린가?”
중년 남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혀를 찼다.
그는 지겹도록 저 소리를 들어왔다.
“대장이라는 자가 누군진 몰라도 여태껏 오지 않은 걸 보면 자네의 존재를 잊어버렸던지, 혹은 구출할 생각이 전혀 없는 거겠지. 혹시 아나? 밖에서 호의호식하며 계집질에 정신이 팔려 있을지도.”
“대장을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유약하던 순둥이의 모습은 없었다. 유태승이 벌떡 일어나 험상궂은 얼굴로 중년 남자를 노려보았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동자가 중년 남자를 잡아먹을 듯 했다.
“아, 알겠네. 그만하지. 내가 잘못했네.”
사과는 했지만, 전혀 미안하지 않은 말투. 중년 남자는 이런 분쟁이 귀찮았다. 어차피 평생 감옥에서 썩을 인생인데 구태여 싸움 같은 귀찮은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허황된 꿈에 빠진 유태승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몇 년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터지.’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도는 와중 청년이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잠시만요. 멀리서 누가 오고 있어요.”
로그 출신인 청년은 마력을 잃었음에도 뛰어난 청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젠장. 또 간수 놈인가? 털보를 팬지 몇 시간도 안 지났는데···.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어.”
중년의 말에 유태승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또 얻어맞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괴롭다.
뚜벅뚜벅뚜벅.
묵직하면서도 빠른 발걸음. 발걸음을 보니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화가 단단히 난 발걸음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저렇게 빠르게 올 리가 없지 않는가? 저런식으로 이곳을 자유자재로 활보 할 수 있는 자는 간수들 밖에 없었으니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크흐흑······.”
유태승이 또 다시 몸을 웅크리며 몸을 떨었다.
“크르르릉!”
차우차우가 대견스럽게 유태승의 곁을 지켰다. 한날은 간수가 억지로 유태승을 잡아끌려고 하다 차우차우에게 여러 차례 물린 적도 있었다.
“털보!”
희미했던 발걸음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가슴이 두방망이 치듯 온몸이 떨려왔다.
"이익!"
맞을 땐 맞더라도 항변은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유태승은 눈을 질금 감으며 소리쳤다.
“으아악! 하루에 두 번 때리는 게 어딨어요! 오늘은 좀 봐줘요!”
"······."
간수의 쩌렁쩌렁한 호령을 예상했는데 어째서인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쯤되면 으레 차우차우가 컹컹 짖어대는데 이상하게 짖지도 않고. 아니, 오히려 반갑다는 듯 헥헥 거리며 상대의 다리를 비비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털보. 장기간 감옥에 갇혀 지내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어······?”
익숙한 목소리에 유태승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졌다.
“이, 인철아! 흑, 흐허허허헝······.”
남인철을 보자마자 눈물샘이 왈칵 터졌다. 만났다 하면 매번 싸움박질만 하던 사이였지만 지금만큼은 남인철의 존재가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터, 털보. 자네와 아는 사이인가!?”
중년을 포함하여 옆에 있던 사람들도 휘둥그레진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잠시만 좀 떨어지십시오."
철컥!
쇠창살을 잘라낸 남인철이 억류된 자들의 쇠사슬을 창으로 가볍게 끊어냈다.
“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감격에 벅차오른 중년이 말을 흐렸다. 그 모습을 본 유태승이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가슴을 쳤다.
“거봐요. 제가 뭐랬어요? 날 구출하러 온다고 했죠? 물론 대장은 아니지만요.”
“그래그래···. 자네의 말이 맞군. 정말로······. 너무 기뻐서 눈물도 안 나오는군. 하하···.”
꼼짝없이 죽을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런 행운이 올 줄 꿈에도 몰랐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
“길게 말할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여길 빨리 나가야 합니다. 털보. 일단 나가자. 나머지 분들은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조만간 동료들이 와서 구출해줄 겁니다.”
“와아아아ㅡ!”
남인철이 말에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모두가 기뻐하던 그때였다.
기쁨의 해후도 잠시, 일렁거리는 횃불에 비친 거대한 그림자가 남인철을 덮쳤다.
쿠쾅ㅡ!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남인철이 본능적으로 자리를 피했다.
원래 밟고 있던 지면이 대검 자국이 찍혔다.
“후욱, 후욱······. 미꾸라지 한 마리가 여기까지 와서 물을 흐리는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인철이 굳은 얼굴로 창대를 잡았다.
“김인수. 아직도 살아있을 줄이야.”
“그 정도로 죽기엔 너무 억울해서 말이지.”
괴기스러운 얼굴에선 상대를 짖찢어 죽이겠다는 살의가 넘쳐 흘렀다. 뭉개진 한쪽 눈에선 핏물 섞인 파쇄된 황금 눈알이 시신경에 매달린 채 흔들리고 있었다.
“네놈을 죽이지 않겠다. 한 올 한 올 살겹을 벗겨내고 소금으로 데쳐 죽을 때까지 고통을 맛보게 해줄 것이다.”
섬뜩한 목소리가 지하 내부를 흔들었다. 불안에 떤 사람들이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봤다.
‘김인수. 저 악마 같은 새끼···.’
김인수에 대한 존재는 사람들에겐 공포의 상징이다. 오랜 기간 감옥에 갇힌 자 중 놈에게 얻어맞지 않은 자가 없었다.
그 대상이 남자든 여자든, 심지어 노인이나 어린아이들까지.
‘희망이 없군. 아마 저자도 결국 도망치는 선택을 하겠지.’
지켜보던 중년이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만약 자신이라면 주저 없이 도망쳤을 것이다.
그가 본 능력자들 중에 김인수는 단연 최강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끝났군. 잠깐이나마 행복한 꿈을 꾼 것처럼···.’
허무한 감정이 공허하게 가슴을 맴돈다. 김인수가 온 이상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씁쓸한 음성과 함께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아, 아니······!”
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남인철은 여유가 넘치다 못해 김인수를 도발하고 있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무슨 고어물매니아도 아니고······. 주접떨지 말고 덤벼라. 시간 없으니까.”
남인철이 창을 빙글빙글 돌리며 자세를 잡았다.
“겁대가리를 상실한 모양이군. 이곳에선 마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건가?”
김인수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마력 사용이 불가능하다면 오히려 자신이 훨씬 유리하다는 걸 뽐내는 듯한 말투였다.
하나 그 말에 오히려 남인철이 크게 웃었다.
“오히려 잘된 일인 것 같은데? 마력이 없다면 순수 무술로 우위를 가려야 한다는 거잖아? 그런 거라면 넌 죽었다 깨어나도 내 상대가 될 수 없어.”
남인철은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순수 무술만으로 자신을 상대할 자는 몇없다고 감히 자부할 만큼.
그가 S급 능력자로 발돋움한 원동력은 창술이다.
마력은 그저 부가적인 요소일 뿐.
[인철아, 무술이란 누군가를 지키고자 할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그런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득 영광의 말이 생각났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승리를 염원하는 이들이 기도하듯 지켜보고 있다.
‘내가 놈을 이기지 못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죽는다.’
그런 분위기에 감응하듯 창대를 쥔 손아귀에선 절로 힘이 솟구친다.
"남을 해치기 위한 무술은 지키는 무술을 이길 수 없다."
묵직한 그 한마디가 순식간에 사람들을 전율시켰다.
그리고 그는 그 말을 증명할 준비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