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 첫 귀성을 쓰러뜨리다(8)
170화
“그렇습니다. 영광 대장께서는 반드시 그들을 응징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송준배가 잔뜩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넌 황진환의 직속 부하이지 않나? 갑자기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좀처럼 믿기지 않는군.”
영광이 송준배를 쳐다보며 반응을 살폈다. 의심의 눈초리가 송준배의 얼굴을 샅샅이 훑었다.
“그의 부하이기 이전에 전 태산길드의 대원입니다. 대창길드는 우리의 불구대천지원수. 그들에게 투항하면서까지 비굴하게 부귀영화를 누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말을 마친 송준배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쉽사리 믿지 않을 것 같아 녹취록을 가져왔습니다. 들어 보시겠습니까?"
영광이 고개를 끄덕이자 송준배는 녹음된 음성을 재생했다. 음성은 황진환과 권기주의 목소리었다.
[대창길드에 투항하시죠.]
[우리는 태산길드의 핵심 수뇌부. 그런 우리들이 투항한다는데 그들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겁니다.]
[대관식 행사 때 류영광의 자리를 상석으로 배치한 뒤 그곳에 미티어 좌표를 세기는 겁니다.]
그들의 역적모의가 휴대폰 스피커를 통해 여실히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이 정도면 믿으시겠습니까?"
“아니. 한 가지 더 확인할 게 있어. 녹취록의 조작판별이 필요할 듯 하군."
녹취록도 충분히 조작이 가능하다. 그런 의심을 해결하기 위해 영광은 스페셜 파티 채널 창을 열어 핀을 소환했다.
“어, 어어···. 대장?”
다짜고짜 소환된 핀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영광과 주위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영광이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가리켰다.
“급한 일이다. 음성 조작 여부를 판별해줘.”
영광이 휴대폰을 터치하여 녹음된 음성을 다시 한번 재생했다. 영광의 진지한 표정을 본 핀이 상황이 심각성을 알곤 군말 없이 귀를 쫑긋 세워 조작 여부를 판별했다.
핀은 인간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청각이 뛰어나다.
요정 특유의 뛰어난 청각으로 대번에 녹음된 음성이 조작됐는지 판단 할 수 있다.
“이건 진짜예요. 음역폭도 일정하고 황진환 본인의 목소리도 맞아요.”
감정을 마친 핀이 말했다.
영광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 그러면 우리가 선두를 쳐야 하지 않을까요? 먼저 당할 순 없잖아요.”
유태승의 말에 한승아도 거들었다.
“털보 말이 맞아. 싹 다 쓸어버리자고.”
벌떡 일어선 한승아가 장비를 챙겨 들었다. 녹취록이 있는 이상 황진환을 죽인다 해도 문제 삼는 이는 없을 것이다.
“아니. 당장 놈들을 치는 건 바보같은 짓이다."
“그러면 그냥 당하자는 거야?"
한승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영광의 말에 눈을 치켜떴다.
“그래. 일단은 녀석들이 뭘 하든 그냥 놔 둬. 그리고 난 놈들의 공격을 그대로 다 맞아줄 생각이다.”
영광은 한술 더 떠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했다. 듣는 입장에선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곧 한승아는 영광에 대한 의구심을 지웠다.
‘또 무슨 신묘한 계책이라도 있는 거겠지.’
피식 웃은 한승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는 영광의 엉뚱한 소리가 정겹게 들릴 지경이었다.
다만 옆에서 이야기만 듣고 있던 유태승은 격렬히 반대했다.
“대장. 제가 알기로는 미티어 마법은 엄청 강하다던데요. 그것도 수십 발이나 날아오면 아무리 대장이라도 엄청 아플 걸요? 아니. 어쩌면 죽을지도···.”
유태승은 인터넷 영상으로 미티어 마법을 본 적이 있었다. 화염으로 달궈진 운석들이 마을 전체를 초토화시키는 영상이었다.
그것들을 정통으로 맞는다면······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으스스 떨릴 지경이었다.
“대장이 무슨 계책을 떠올렸는진 몰라도 이번만큼은 반대에요. 대장은 탱커 클래스가 아니잖아요. 아니면 차라리 제가 맞을게요. 버티는 거라면 오히려 대장보단 제가 더 낫잖아요."
“내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
"의미라니요?"
"김명철을 바깥으로 끌어낼 방법."
"아··· 전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대장이 미티어를 얻어맞는 게 김명철을 바깥으로 끌어내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영광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김명철을 밖으로 끌어낼 방법은 나를 미끼로 한 고육지계(苦肉之計)뿐이다.”
“교육··· 지계? 그게 뭔데요?”
유태승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교육이 아니라 고육지계. 자신의 몸을 상해가면서 꾸며내는 계책이지.”
영광 대신 한승아가 대답했다.
“으응? 너 그런것도 알고 생각보다 똑똑하구나?"
“뭐, 나도 심심풀이로 중국 고서 정도는 읽어봤으니까."
한승아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는지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이제 대충 알겠군! 아마 류영광은 미티어를 진짜로 맞을 생각이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혹사시켜 김명철을 유인해낼려는 계책임이 분명해.'
류영광이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상 김명철은 반드시 태산본부를 급습할 터다.
영광은 오히려 황진환의 공격을 역이용하여 김명철을 끌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티어의 위력을 모를리 없을 텐데··· 이건 단순 부상으로 끝날 문제가 아냐. 까닥하면 정말로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승아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영광의 의도를 알겠지만, 미티어 급의 마법을 미치지 않고서야 수십발이나 얻어맞는 발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설사 영광이라도 중상, 혹은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죽을지도 모르는 행동이란 걸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니··· 너랑 녀석은 정말···.’
한참이나 창가에 기대어 밖을 바라보고 있던 영광의 시선이 한승아에게 향했다. “드디어 내 생각을 읽었구나.”라는 듯한 표정으로 흐뭇하게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 정말로 버틸 자신은 있는 거야?”
그 질문에 영광은 미소로 짧게 화답했다.
“물론이지.”
* * * * *
다음날 오전.
태산본부는 대관식 행사로 분주했다. 도열 중인 태산대원들 앞에 단상에는 영광을 포함한 여러 핵심 간부들이 앉아있었다.
촤르르르.
레드카펫이 깔리자 저 멀리서 남인호가 등장했다.
그의 모습에 우레 같은 박수 갈채가 터졌다.
“앞으로 우리 태산길드를 잘 부탁하오. 남인호 길드장.”
황진환이 능글맞은 미소로 남인호에게 인장를 건넸다.
“고맙소.”
짧게 대답한 남인호가 길드장의 인장을 받았다.
이제 남인호는 명실공히 태산길드의 길드장이 되었다.
짝짝짝짝!
쩌렁쩌렁한 박수 소리와 함께 남인호가 인장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환호성과 팡파르가 연이어 터져 흘렀다.
‘군말 없이 길드장의 인장을 건네다니···. 역시나 수상하군.’
분명 황진환과 그의 부하들이 훼방을 놓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미소를 지으며 태산 대원들의 축하를 화답하던 남인호는 표정과는 달리 속내는 심란하기 그지 없었다.
[내일이면 황진환이 정식으로 길드장의 자리를 양보할 겁니다. 거절하지 말고 받으십시오. 그리고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즉시 자리를 뜨셔야 합니다.]
영광이 어제 귀띔해준 말이었다.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그저 무슨 일이 터질 것이라는 암시만 줬을 뿐이다.
“황 부길마. 잠시······.”
권기주가 객석으로 이동한 황진환에게 살포시 눈치를 줬다.
황진환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영광에게 다가갔다.
“남인호 길드장의 취임사가 끝나면 영광 대장께서도 가볍게 인사말 차원으로 대원들에게 한마디 해주십시오. 자자 이쪽으로···.”
황진환이 실실 웃으며 영광에게 상석을 권했다.
“그렇게 하지.”
영광은 군말 없이 황진환이 안내해준 상석에 자리를 옮겼다.
그 모습을 본 유태승은 불안한 눈길로 영광을 바라봤다.
‘대장께서 부디 잘 버텨야 할 텐데···.’
영광은 태연하게 상석에 앉아 남인호의 취임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황진환이 눈빛으로 장막속에 숨어있던 마법사들에게 눈을 두 번 깜빡이며 신호를 보냈다.
‘시작해.’
이미 몇 시간 전에 미티어 좌표를 영광의 앉아있는 상석쪽에 지정해둔 상태였다.
이제 마법 시전만 남았다.
우우우우웅.
취임사를 경청하던 대원들 일부는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다.
뛰어난 능력자일수록 마력의 흐름에 빨리 반응한다.
“으음?”
그들이 느낀 불안감은 허상이 아니었다. 거대한 마력의 흐름 속에 지면이 흔들리고 단상에 배치된 화환들이 넘어지기 시작했다.
“미, 미티어다! 누가 이쪽으로 좌표를 설정했어!”
군중들 속에서 로브를 입고 있던 대원들이 소리쳤다. 마법사 클래스답게 마력의 움직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그 말에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들 우왕좌왕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작됐군.”
한승아가 다급히 유태승에게 눈길을 줬다. 그들 모두 불안한 눈빛으로 영광을 한번 바라보더니 황급히 자리를 떴다.
“대장. 부디 무사하길.”
이미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던 그들은 곧 단상을 벗어났다.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영광만이 홀로 상석에 앉아있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영광은 바인드(Bind) 마법에 묶여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황진환 쪽을 쳐다봤다. 힐끗 한차례 눈빛을 마주한 것만으로 황진환이 화들짝 놀라 시선을 피했다.
‘꽤나 거창하게 준비해뒀군. 휘하 마법사들은 적어도 A급 인가? 아니, 몇 명은 S급에 근접한 수준이다.'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영광을 구속하고 있었다.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바인드를 푸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미티어 마법을 정면으로 맞기로 각오한 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을 땐 창창한 햇살 대신 어두컴컴한 먹구름이 짙게 배어 있었다. 어둑어둑한 하늘에서 무언가가 빛을 늘어뜨리며 빠르게 하강했다.
쿠르르르르릉.
곧 하늘에선 수십 덩어리의 화염 운석이 맹렬히 쏟아지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난장판이 된 태산본부는 경악과 비명으로 뒤덮였다.
최하의 명중률이지만 위력만큼은 그 어떤 마법보다 강하다고 알려진 미티어 스크라이크.
그것들의 정체를 파악한 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비, 빌어먹을! 미티어가 갑자기 왜 튀어나오는 거야!"
혼비백산한 대원들이 자리를 이탈하며 달아났다. 다행스럽게도 화염 운석들은 산개형식으로 떨어지지 않고 오로지 한곳에 집중하여 떨어졌다. 이미 도망치긴 늦었다는 걸 깨달은 대원들은 마력실드를 전개하며 충격파에 대비했다.
“와라.”
영광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화염 운석을 쳐다봤다. 온 힘을 다해 마력을 끌어올려 육체의 맷집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야누스의 코트도 어젯밤 온종일 화염 내성이 담긴 주문서를 통해 수십 번이나 강화질을 했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내 육신이 버텨주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아무리 영광이라도 미티어를 연달아 얻어맞으면 무사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그 영광은 가능성을 믿었다.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며 희생한 이번 계책이 성공한다면 그만큼 수많은 아군의 목숨을 건질 수 있게 된다.
그런 생각이 영광의 의지를 더욱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쿠구구구구쿵.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이 시작됐다. 성공한다면 어마어마한 대가를 이어지지만 실패한다면 자신의 목숨이 날아간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길 뿐이다.”
영광이 머리 앞에 놓인 미티어를 보며 억지로 웃었다.
식은땀조차 나지 않았다. 자신의 육신에 수십 배나 큰 화염 운석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땀들이 수증기처럼 증발했다.
마력 장막이 타들어 가며 운석이 영광의 육신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콰르르르르릉.
이윽고 이어진 운석들이 연이어 영광을 공격했다. 영광이 사력을 다해 이를 악물고 버텼다. 마력 장막이 산산조각나자 업화의 열기가 온몸을 태웠다. 끔찍한 고통에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야누스의 코트는 걸레짝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끄, 으으으······.”
각오는 했지만 정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었다.
모든 세포 조직들이 열기에 타들어 갔고 벌겋게 익은 피부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일반적인 능력자들이었다면 진작에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렸을 것이다.
[절대로 굴복하지 않겠다.]
그 와중에도 이성의 끈은 놓지 않았다. 강렬한 화염 빛에 의해 망막이 파열되어 시야가 캄캄했지만, 끊임없이 마력 장막을 펼쳤다.
장막이 파훼 되면 또다시 장막을 형성하여 최대한 피해를 막았다.
화륵, 화르르르르······.
고통이 점점 멎어 들었다. 운석의 충돌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털썩.
기진맥진한 영광이 정신을 잃었다. 공격을 막아냈다는 확신이 선 순간 긴장감이 사라져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쭉 빠져버린 탓이었다.
* * * * *
태산본부는 정말이지 참혹한 상황이었다. 화염 운석의 충돌 여파로 인해 건물들이 반파됐고 불똥 파편들로 인해 화재로 번졌다. 오리하루콘 재질인데다가 내진설계가 탄탄한 탓에 이 정도 피해로 끝나 망정이지 일반적인 건물이었다면 형체도 없이 폭삭 내려앉았을 터다.
“끄, 끝났어···? 끝난 거 맞지?”
“그래. 하마터면 불지옥에 모두 휩싸였을거야···."
놀랍게도 인명피해는 크게 없었다. 대부분 그을림이나 화상 정도에 그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멀쩡히 있을 수 있는 거지?”
누군가가 궁금하듯 물었다. 이에 어떤 이가 대답했다.
“아마 그건 영광 대장 때문일 거다. 난 봤어. 영광 대장이 사력을 다해 마력처리를 하여 피해를 최소화한 걸 말이야···.”
그 말에 대원들 모두가 숙연해졌다. 어느 정도 사태가 수습되자 다들 영광의 생사가 궁금해졌다.
“영광 대장은 어떻게 된 거지?”
“아까 급하게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된 걸 보긴 했는데···.”
“아마 돌아가셨을 거야···. 신이 아니라면 그 공격을 어떻게 막겠어?”
모두가 영광의 죽음을 기정사실화 했다. 목격자들은 그 사실을 의심치 않았다. 끔찍하게 익어버려 형체조차 알 수 없는 시체가 된 영광의 모습을 똑똑히 봤었다.
“크, 크크큭···. 그런단 말이지?”
대원들의 반응을 보며 한 사내가 소리 없이 웃었다. 슬픔에 잠긴 분위기와는 달리 사내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꾹꾹 막기 급급했다.
“황 부길마. 류영광이 정말 죽었을까요?”
옆에 있던 황진황의 부하가 말했다. 그렇게 말은 했어도 그도 영광의 죽음에 대해선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당연하지. 신족이라면 모를까 그런 공격을 어느 누가 버티겠어? 그건 그렇고 권기주는 대창길드로 출발했나?”
“네. 류영광이 미티어에 공격받는 장면과 그의 시체를 확실히 영상으로 녹화한 뒤 대창길드로 출발했습니다. 아마 몇 시간 안에 연락이 올 겁니다.”
“그래그래. 아주 좋군. 류영광이 이 지경이 됐다면 이제 거리낄 게 없지. 한승아나 남인철 같은 놈들이 남았다곤 하나 대창길드의 지원을 받는다면 놈들을 처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류영광이 실려 간 병원으로 가보시죠. 혹시나 살아있으면 확실히 죽어야겠죠.”
“죽이는 건 내가 한다. 자네들은 여기서 대기하게. 내가 끝을 볼 터이니.”
“알겠습니다.”
신이 난 황진환이 부리나케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가니 영광의 담당 신관이 황진환을 맞이했다.
“회복에 최선을 다했지만, 의식은 없는 상태입니다. 포션 처리를 통해 녹아내린 피부들을 재생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마 다시 깨어나긴 어렵겠죠.”
“그, 그렇다면 식물인간이이라도 됐단 말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정상으로 돌아가긴 어려울 듯합니다.”
신관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영광을 흠모하는 대원 중 한 명이었다.
"일단은 영광 대장을 상태를 보고 싶네. 어디로 가면 되나?”
“204호 병실에 계십니다.”
황진환은 쾌재를 지으며 단번에 2층으로 뛰어갔다. 입가에 걸린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조금 뒤 영광을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약같은 물질이 뇌속을 마구 해집는 듯 했다.
‘큭큭. 식물인간 상태라면 녀석을 죽이는 건 손쉬운 일이다.’
황진환은 영광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릴 심산이었다.
병실 앞에는 한승아와 남인호가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간단한 인사치레가 오갔다. 한승아와 남인호는 보는 둥 마는 둥 건성건성 대답만 했다.
“들어가 봐. 오래 있진 말고.”
한승아가 말했다. 황진환이 고개를 까닥인 뒤 문을 열었다.
딸깍.
병실 안에선 침대에 누워있는 류영광이 죽은 듯 눈을 감고 있었다. 한땐 영웅으로 칭송받는 이였지만 이제는 산소호흡기에 생명을 맡긴 채 경각에 달린 목숨을 지탱하는 것조차 버거운 모습이었다.
‘이제는 그저 하루살이일 뿐이지.’
스르륵.
황진환이 품속에서 단검을 뽑았다. 미스릴로 제련된 S급 단도였다. 잘 벼린 칼날에선 영광이 얼굴이 거울처럼 비쳤다.
“이날을 위해 얼마나 학수고대해왔단 말인가······.”
영광을 죽인 뒤 곧바로 권기주에게 연락하여 대창길드의 협력을 받고 태산길드를 침공할 계획이었다.
영광이 없는 태산길드는 오합지졸이나 다름 없다.
“모든 게 완벽하다. 이제 이놈만 죽이면 끝이다!”
황진환의 눈동자가 희번들하게 변했다. 기쁨을 주최하지 못한 듯 어깨가 들썩들썩 움직였다.
"자, 이제 조용히 죽어라."
오른손에 쥔 단검을 역수로 쥐어 영광의 심장을 향해 맹렬히 급습했다.
곧 심장이 해집는 감각이 칼날을 타고 손아귀로 전파될 터다.
꾸욱.
한데 칼날 끝이 영광의 심장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것은 누군가에 의한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였다.
류영광의 손이 단검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허, 헉!”
아까까지 피식피식 웃던 황진환의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즐거운 망상은 끝나셨나?”
청랑한 목소리와 함께 죽은 듯 누워있던 영광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눈과 마주치는 순간 황진환이 헛숨을 들이쉬며 뒤로 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