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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퀘스트의 보상이 특별하다-188화 (188/216)

188화 - 마지막 퀘스트

188화

“으윽······!”

한승아는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형언할 수조차 없는 미증유의 빛이었다. 어두컴컴한 사위가 일순 태양이 뜬 것처럼 밝아졌다. 빛무리들이 축복하듯 영광의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후우······.”

영광이 숨을 가다듬고 감았던 눈을 떴다. 그 누구도 제대로 눈을 뜨지 못했지만, 영광만이 빛에 면역이 된 듯 자유로웠다.

‘저 장면··· 들어본 적이 있어.’

최민정은 어린 시절 아버지 최도현이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ㅡ한동안 빛무리에 휘감긴 채 아주 가까이에서 태양을 보았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눈이 부시지 않았었지.

ㅡ에이, 거짓말! 어떻게 가까이에서 태양을 봐요?

ㅡ하하. 들켰나?

그 당시 아버지는 단순히 거짓말로 치부했지만, 그녀는 비로소 아버지의 말이 진실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류영광이 당대 최강의 반열에 오른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최민정은 조심스럽게 팔을 걷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빛들이 눈동자에 스며들며 일순 시야가 새하얗게 변했다. 시야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백지장이 된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샤아아아아ㅡ!

거대한 빛의 파도가 주위를 잠식했다. 영광을 제외한 모두가 시간이 멈춘 것처럼 굳어버렸다. 놀란 표정, 찌푸린 인상, 입을 벌려 경악하는 모습. 그 모든 것이.

“또 심상세계인가?”

영광이 빛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자신의 몸체에 요동치는 빛무리들은 확실히 SSS급의 반열에 올랐다는 이펙트인건 맞다.

다만 주위 사람들이 모두 멈췄다는 건, 그거와는 별개로 현재 이 상황은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상황임이 틀림없었다.

“아니. 심상세계가 아냐. 정말로 시간이 멈췄군.”

심상세계에 진입하면 특유의 환각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마치 꿈속을 헤매는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터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선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설마 또 드뤼어스가?’

하지만 시간을 멈춘다는 건 심상세계의 구현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의 고난도 기술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러한 짓을 할 수 있는 존재가 과연 누가 있을까?

‘최상급의 신족이라면 가능하겠지.’

스르륵.

멈춰있던 핀이 몸을 꿈틀거리더니 이내 영광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영광의 눈높이에 맞춰 날아왔다. 넋이 나간 표정에선 눈동자 초점이 흐릿했다. 눈 틈에선 무수한 빛이 쏟아졌다.

“핀?”

영광이 핀을 불렀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젓곤 인상을 굳혔다.

“넌 누구지?”

영광은 눈앞의 존재가 핀이 아님을 눈치챘다. 그가 마도를 들어 전투태세를 갖췄다.

“적대 행위를 멈추세요. 저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류영광.”

핀, 아니 미지의 존재가 입을 열었다. 그 존재가 핀의 몸을 빌려 말하고 있었다.

“에르메니아인가? 그간 분신체가 현현하여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셨군.”

“분신체라는 걸 알다니··· 그간 많은 경험을 하신 모양이군요.”

핀에게 빙의한 에르메니아가 놀랍다는 듯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지간하면 과거처럼 분신체로 모습을 드러내라. 지금의 모습은······ 썩 기분이 좋지 않군.”

영광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핀의 모습을 한 에르메니아가 보기 싫어 고개를 돌렸다.

“실례했습니다. 하지만 분신체보다 이 아이의 몸을 빌려 현현하는 것이 훨씬 현계에서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이 길답니다.”

“그렇다 해도 핀의 몸에 마음대로 빙의하는 짓거리는 앞으로 삼가라. 그러다 혹시 핀이 무슨 일이 생길 때에는······ 너라도 용서치 않겠다.”

영광은 노골적으로 에르메니아를 적대했다. 물론 그녀가 영광에게 특전을 부여한 후원 신족임은 틀림없었지만, 신족이 아무 대가 없이 후원하는 경우가 없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몰라도 난 너의 광대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신족의 목적은 능력자들을 마기로 삼아 현계를 제2의 에덴의 영역으로 만든다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결국 최후에 이르러선 에르메니아도 호적수인 퀴르켈을 처치한 이후 숨겨왔던 본성을 드러낼 터.

“오해하지 마시길. 저는 언제나 당신의 편입니다.”

“공교롭게도 그런 소리는 최근에 한 번 들어 봐서 별 감흥이 들지 않는군.”

“최근에 한 번이라면 대체?”

“드뤼어스와 만났었다.”

그 말에 에르메니아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 녀석도 너의 이름을 언급하니 그런 표정을 짓더군. 사이가 좋지 않나 봐?”

“그는 저급한 신족입니다. 신족이라는 명칭조차 아까운 자죠.”

“뭐 그건 인정. 하지만 그 녀석에게 좋은 정보를 얻었지. 그뿐만 아니라 난 여태껏 제법 많은 신족을 만났었다.”

“당신은 대체..... 어디까지 알고 계신 거죠?”

영광은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신족이 어째서 현계에 눈독 들이는가에 대해. 그리고 그 결과 때문에 인류가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까지.

“너희들은 인류에 마력을 제공한 이유가 인류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건 개소리에 지나지 않아. 마력을 사용하는 인간이 영혼이 되어 마기가 늘어나는 순환구조를 통해 현계를 제2의 에덴의 영역으로 만들려는 속셈이라는 것까지 안 이상. 즉, 능력자가 죽을 때마다 이득을 보는 건 너희 신족들이지.”

“거기까지 알고 계셨군요.”

에르메니아는 딱히 영광의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에르메니아가 정확히 어떤 목적인지는 모르지만, 영광이 알고 있는 신족의 목적에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터다.

‘최후에는 에르메니아도 적이 되겠지. 그 전까진 신족에 대항할만한 힘을 키워야 해, 아니, 그 이상······.’

영광은 자신의 말에 부정하지 않는 에르메니아를 보며 더욱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부정하지 않는다는 건 결국 긍정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그 정도까지 안 이상 이제 숨기는 건 무의미하겠군요. 숨긴다고 해도··· 필연적으로 인류의 멸망은 기정사실화일 테니까요.”

“기정사실이라니?”

“자넨의 결계가 절반 이상 소멸한 상태입니다. 머지않아 완전 소멸이 될 때쯤 신계에 있던 신족들이 완전체의 상태로 현계에 강림하겠죠. 그리고···. 당신들 능력자들이 마력을 사용할수록 결계의 붕괴는 더욱 가속화될 겁니다.”

“너희들이 인류에게 마력을 전수해준 이유 중 하나가 자넨의 결계 붕괴를 촉진하기 위한 것도 포함된 건가?”

“그렇습니다.”

“젠장···.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인류는 끝이겠군.”

영광이 들었던 마도를 거둬 칼집에 넣었다. 그가 아무렇게나 자리에 턱 하니 앉았다.

‘짜증이 치미는군.’

영광은 당장이라도 에르메니아를 처단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독이 되는 행동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에르메니아는 영광을 필요로 한다. 만약 필요가 없다면 굳이 자신의 앞에 나서서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행동 따윈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내가 쓸모가 있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에르메니아와 협상의 여지가 있다.’

눈을 지그시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분노를 잠식한 마음을 다독였다. 지금은 사소한 감정을 버리고 냉철해져야 한다.

“한가지 묻고 싶군. 그렇다면 굳이 후원자를 통한 신족들 간의 대리전을 펼치는 이유는 뭐지?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자넨의 결계가 붕괴하기를 기다렸다가 현계로 강림하면 그만인데?”

그 말에 에르메니아는 대답이 없었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말하기 싫으면 어쩔 수 없지. 우리의 인연도 여기까지군.”

스르릉.

영광이 마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칼날에 목을 갖다 댔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몰라도 더 이상 광대 역할은 사양이다. 어차피 인류가 멸망할 텐데 그냥 여기서 깔끔하게 자결하겠다.”

칼날이 목덜미 가까이 닿았다. 금세 칼날이 피로 끈적였다.

“자, 잠깐!”

크게 당황한 에르메니아가 다급히 영광을 저지했다. 영광이 눈을 가늘게 치켜뜨며 마도를 거뒀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그런 짓은 다시는 하지 마시길······!”

몹시 당황했는지 에르메니아가 허둥지둥하며 말까지 흐렸다. 그 모습에 영광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내가 죽으면 에르메니아도 계획에 차질이 생길 테지. 이걸로 확실해졌군.’

영광이 에르메니아를 똑바로 바라봤다. 어느새 그의 표정은 질척한 살의 대신 미소가 번졌다.

‘앞으로는 내가 너를 이용해주마.’

* * * * *

“후원자의 대리전은 신족들이 현계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함입니다. 자넨의 결계가 완전히 없어지더라도 완전한 힘을 갖고 강림할 순 없습니다. 그러니 인간의 육신을 가진 상태로 강림한다면 완전체와 가까운 힘으로 강림이 가능합니다.”

지금 말하는 내용은 영광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광은 그 어느 때보다 에르메니아의 말에 집중했다.

“그러면 너도 내 육신을 차지하기 위해 나를 후원하는 건가?”

“······결론만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에르메니아가 담담하게 말했다.

신족은 인간의 육체에 빙의하기 위해 후원이라는 명목으로 계약된 인간에게 여러 특전을 준다. 신족의 방대한 정신력을 수용하기 위해선 인간이라는 ‘그릇’을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S급 이상은 돼야 신족의 정신력을 수용할만한 그릇이 될 수 있지.’

그간 여러 신족과 계약된 능력자들과 몇 차례 부딪혀본 영광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사실을 추론했다.

‘에르메니아에게 있어 SSS급이 된 나의 육체는 굉장히 매력적일 터.’

SSS급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건 그에게 있어 축복이자 또 다른 시련이다. 에르메니아가 영광의 육체에 빙의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내가 순순히 육체를 넘겨줄 것 같나?”

“넘겨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만간 닥칠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왜지?”

“저의 목적은 오로지 퀴르켈입니다. 그를 소멸시킨 뒤 다시 당신에게 육체를 돌려드릴 생각입니다.”

영광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진 않았다. 다만 여기선 그냥 수긍하는 척했다.

‘지금은 에르메니아의 힘이 필요하다.’

어찌 됐든 에르메니아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후원 신족이다. 그 이유가 뭐가 됐든 간에.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건 가장 멍청한 짓이지.'

영광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 담으며 다시금 질문을 이어나갔다.

“만약 내가 너에게 빙의 당한다면 내 자아는 어떻게 되지? 소멸하는 건가?”

“그렇진 않습니다. 단지 자아는 의식 세계의 구석에 갇힌 상태겠죠. 인간들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식물인간 상태라 할 수 있겠네요.”

“신족의 빙의를 막을 방법은 없는가?”

“신족의 방대한 힘을 한낱 인간이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지금은 자넨의 결계로 인해 신족의 힘이 완벽히 현계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지만, 결계가 사라진다면 더더욱 인간은 신족에게 대항할 방법이 없겠죠.”

영광이 턱을 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가 힐긋 핀에 빙의된 에르메니아를 쳐다봤다. 자신감에 찬 눈빛과 표정. 신족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

영광은 잔잔히 미소를 지었다.

‘자신만만하군. 하지만 신족과 인간이 관계가 역전된 사례가 없진 않아.’

에르메니아조차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영광은 문득 태산길드의 남두홍과 데브라의 관계에 대해 떠올렸다.

‘남두홍은 오히려 자신의 육신에 빙의한 데브라를 의식 세계의 구석에 처넣은 뒤 신족의 힘을 마음껏 사용했었지.’

이건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었다. 어쩌면 이 사례를 토대로 현재 처한 영광과 에르메니아의 갑을 관계를 역전시킬 수 있는 키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

“저를 믿으십시오. 류영광. 퀴르켈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이 세계를 무려 23번이나 생성하고 붕괴하길 반복했습니다. 이대로 그를 놔뒀다간 우주가 그의 지배에 놓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된다면 신족뿐만 아니라 당신들 인류 또한 사라질 위기에 놓일 겁니다.”

“그러고 보니 드뤼어스도 이 세계가 23회차라는 말을 했었지.”

영광은 드뤼어스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껏 상황을 놓고 보면 1회차부터 23회차까지 붕괴와 생성을 거듭할 때 동안 온전히 자아를 유지할 수 있는 존재는 상급 신족 이상의 존재들밖에 없는 듯한데···. 그렇다면 그 많은 시간 동안 넌 퀴르켈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거군.”

영광의 날카로운 질문에 에르메니아가 부끄럽다는 듯 조용히 말했다.

“안타깝지만 신족들 사이에서도 퀴르켈을 지지하는 자들이 많은 상황입니다. 그에 반에 저의 지지기반은 미미한 실정이죠. 당신이 언급한 드뤼어스 또한 퀴르켈의 최측근 신족입니다.”

“퀴르켈의 목적이 궁금하군. 어째서 세계를 리셋시키는 무의미한 행동을 하는 거지?”

“인류가 죽은 뒤 영혼이라는 개체가 마기를 생성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죠?”

“그래.”

“퀴르켈은 세계를 창조한 뒤 어느 정도 인류가 마력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그때부터 인류를 멸망시킨 뒤 대량의 마기를 추출하여 자신의 보고에 저장합니다. 그 뒤 또 다시 세계를 창조하고 똑같은 짓을 벌이는 것이죠. 그렇게 23회차 동안 그가 인류로부터 얻어낸 마력은 어마어마합니다. 회차가 늘어날수록 그가 가진 마기는 상상을 초월한 양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그를 저지할만한 존재는 아무도 없게 되겠죠.”

에르메니아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23번이나 세계의 리셋이 계속될 동안 그녀는 부단히 퀴르켈을 저지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얼마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치지지직.

“으으···.”

에르메니아가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의식 세계에서 핀의 자아가 서서히 눈을 뜬 것이었다.

“핀이 깨어났군요. 더는 빙의를 유지하지 못할 듯하니 그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류영광.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적이 인류에 피해 입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히려 그 반대겠죠. 그리고···. 반드시 당신의 육체를 다시 돌려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뭐, 어쩔 수 없군. 퀴르켈을 저지하는 게 시급한 건 확실하니까.”

영광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건넸다. 에르메니아는 조그마한 두 손으로 그 손을 맞잡았다.

“떠나기 전 당신에게 마지막 퀘스트를 드리겠습니다. 이 퀘스트를 클리어한다면 SSS급을 넘어 그 어떤 인간조차 도달하지 못한 전설이라 불리는 EX급의 경지에 도달할 것입니다.”

에르메니아의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그러자 영광의 몸 주위에선 빛으로 된 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

<마지막 퀘스트 발동>

클리어 조건 : 상급 신족 이상, 혹은 그들의 후원을 받은 존재 4명의 결정체를 습득하시오.

제한 시간 : 30일.

보상 : EX급으로의 등급 상향.

현재 습득한 결정체

1. 드뤼어스의 결정체

2. 없음.

3. 없음.

4. 없음.

*

핀의 몸이 들썩이듯 경련이 일었다. 그것은 에르메니아의 자아가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에르메니아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간 저는 1회차부터 23회차까지 수많은 인간과 계약하고 그들을 후원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단기간에 SSS급의 경지에 이른 건 류영광 당신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SSS급은커녕 SS급도 다다르지 못한 자들이 부기지수였죠.”

에르메니아는 과거를 상념하듯 진하게 영광을 바라봤다.

“인류···. 아니 이 세계의 희망은 당신입니다. 부디 마지막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클리어하시길.”

털썩.

핀이 육체가 축 늘어지더니 바닥으로 추락했다. 영광이 살포시 손바닥으로 조그마한 몸을 감쌌다.

핀의 눈 틈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빛들도 그때쯤에 사라졌다. 영광은 핀의 헝클어진 머릿결을 조용히 쓰다듬었다.

“에르메니아. 뭔가 착각하고 있군. 난 신족들을 믿지 않아. 너도 퀴르켈도. 모두.”

영광이 고이 누워있는 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눈동자에선 반드시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짙게 배어 있었다.

“종말에 이르러 퀴르켈을 처치하는 건 네가 아냐. 다름 아닌 내가 될 것이다.”

영광은 에르메니아와의 대화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거기에는 신족에 대항할 만한 단서를 그는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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