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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다정하지 마세요-39화 (39/110)

내게 다정하지 마세요 39화

* * *

드르륵.

예고도 없이 문이 열렸다. 변함없이 자습실에 앉아 내일 배울 강의 내용을 예습하고 있던 르데샤가 고개를 들었다.

이 시간에 자신 말고 또 공부를 하러 오는 사람이 있다니.

르데샤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문 앞에는 르데인이 서 있었다.

르데인을 보자마자 조건반사적으로 그녀의 미간에는 선명한 주름이 새겨졌다.

곧이어 제 동생이 터덜터덜 자신의 앞으로 걸어왔다.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또 왜 찾아왔냐며 타박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오랫동안 책을 보고 있었더니 눈이 피로해져서 이상한 걸 보는 건가?

르데샤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르데인을 쳐다보다가, 눈을 몇 번 깜박거리다가, 심지어 손등으로 비비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지금 르데인은-.

“르데인, 너…….”

“…….”

“우는 거야?”

울고 있었다.

커다란 주황색 눈동자에는 투명한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또르르,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르데샤는 황당해서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자습실에 남은 학생은 더는 없어 보였지만, 혹시 몰라 그녀는 서둘러 그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제 동생은 순순히 끌려와 제 옆자리에 앉았다. 그때까지도 그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기 바빴다.

“…….”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하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았지만 침착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르데샤가 르데인이 우는 걸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르데인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편이었고, 그것을 위해서는 눈물도 마다하지 않는 편이었으니까.

엄격한 아버지조차 그가 눈물을 흘리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부탁을 들어주시곤 했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좀 달랐다. 르데인이 도대체 무엇을 얻을 게 있다고 제 앞에서 눈물을 흘린단 말인가?

아니면 자신의 놀란 반응을 즐기기 위해서 일부러 우는 척하는 것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저와 피가 이어진 동생이지만 참 종잡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르데샤는 혀를 쯧 찼다.

“너 왜 울어? 내가 네 눈물에 약해질 거라는 생각은…….”

“울긴 무슨! 내가 그까짓 평민 하나 때문에 울 리가 없잖아!”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버럭 외치는 그 말에, 르데샤는 질겁했다.

“유디트 때문에 우는 거였어!?”

“…….”

르데인이 분한 듯이 주먹을 꽉 쥐며 입술을 짓씹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 보면 진짜인가 보다.

르데인 로지에나가, 유디트 때문에 울고 있었던 거라니. 르데샤는 입만 뻐끔거렸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유디트가 르데인을 울렸단 말인가?

아니, 울린다고 울 인물이긴 하나? 저 녀석이?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르데샤는 우아한 태도로 허리에 손을 얹었다.

로지에나라는 이름을 가진 이상 무슨 상황에서든 이성과 품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 르데인에게서는 체면도 교양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늘이야말로 누나로서의 권위를 보여 줘야지.

속으로 단단히 다짐하며, 르데샤가 위엄 있는 어조로 말했다.

“뚝 그쳐. 너 지금 굉장히 추한 거 알지? 이제 다 큰 애가 이렇게 엉엉 울면 어떻게 해.”

하지만 처량 맞게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르데인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훌쩍거리면서도 따박따박 누나의 말에 말대꾸하기 시작했다.

“우는 게 아니라 너무 화가 나서 그러는 거야. 머리끝까지 열을 받아서, 몸 안의 열을 발산하기 위해 눈에서 수분을 내보내는 거야.”

논리라곤 전혀 없는 엉터리 같은 말이었다.

평소라면 동생의 약해진 모습에 있는 대로 꼬투리를 잡고 놀려 댔겠지만, 르데샤는 이번만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내 그녀가 허리춤에 얹은 손을 내리고 가방을 뒤졌다. 그리곤 그 안에서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 르데인에게 건네주었다.

“그래, 그런 거로 하자.”

휙-.

그러나 싹퉁바가지 없는 르데인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르데샤가 건네주는 손수건만 가져갔다.

기가 찼으나 르데샤는 그의 무례한 행동도 꾹 참아 넘기기로 했다.

얼마나 울어 댔는지 흰자까지 발갛게 충혈된 르데인은 이제는 흡사 피눈물을 흘리는 것 같을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누나는 안 당해 봤으니까 모르지. 지금 내 마음이, 내 심정이 어떤지.”

“……무슨 심정인데?”

“너무 분하고 억울해. 불덩이를 집어삼킨 것만 같아.”

그렇게 말하며 르데인이 제 손수건에 대고 코를 팽 풀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런 그의 모습을 실컷 비웃어 줬을 텐데, 정말로 서럽고 슬퍼 보여서 그럴 수가 없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으나 르데인은 유디트에게 굉장한 상처를 받은 것만 같았다.

르데샤는 머뭇거리다 결국 부들부들 떨리는 동생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문은 사그라지지 않고 더욱 커져 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원래 르데인은 자존감이 하늘을 찌를 만큼 자신만만한 녀석이었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남들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아 온 만큼 웬만한 욕설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큼 담대하기도 했다.

르데샤조차도 어쩜 저렇게 정신력이 강철 같은지 종종 놀라곤 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르데인이 이렇게 나약한 모습이라니?

르데인의 실체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깜짝 놀라 자빠질 테다. 특히 어머니는 르데인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마물이 아니냐며 기겁을 하시겠지.

이런 기념비적인 일을 수정구로 기록을 해 둬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가지고 있는 수정구가 없었다. 르데샤는 안타까움에 입맛만 다셨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해하는 누나의 눈빛을 눈치챈 르데인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내가 그 평민을 이용하려던 걸 들킨 것 같아.”

“어쩌다가?”

“몰라. 나는 완벽했어. 그냥 그 평민이 이상한 거야.”

역시 유디트는 만만한 애가 아니라고, 빈틈을 보여 주지 않는다고 했던 자신의 충고는 듣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큰코다칠 거라고 했던 경고도 깡그리 무시한 게 분명했다.

신기하긴 했다. 유디트는 대체 어떻게 르데인의 목적을 알아챘을까?

르데인은 어렸을 때부터 영악하기 짝이 없었고, 남들을 속이는 것에 희열을 느꼈으며, 심지어는 알면서도 속을 만큼 뛰어난 연기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르데인의 연기를 간파해 낸 사람이 없었는데…….

“뭐, 어쨌든 그래서 유디트가 험한 말이라도 한 거야?”

“아니, 나한테 요점 정리 노트를 빌려준다고 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일부러 유혹하려던 걸 들킨 게 아니었어?”

요점 정리 노트가 여기서 왜 나오는 거지?

르데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르데샤가 덧붙여 설명했다.

“그 평민은 내가 요점정리 노트를 얻기 위해 자기한테 접근한 거라고 생각하던데.”

“그래……?”

도통 왜 그런 오해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는 르데인을 향해 르데샤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유디트는 자신에게 한번 데였던 적이 있기 때문에 르데인을 쉽게 믿지 못했나 보다.

어쩌면 르데인의 계획이 실패한 데에는 자신의 영향도 조금은 있는 걸까?

이 사실이 발각되면 제 동생은 길길이 날뛸 게 분명했기에 르데샤는 죽을 때까지 숨기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 르데인은 침울하게 말을 이었다.

“심지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어.”

“유디트가 정말 천사구나.”

르데샤가 못내 감탄하자, 르데인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듯 매섭게 반박했다.

“그게 어떻게 착한 거야? 매정하기 짝이 없는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어?”

그가 성을 내자 르데샤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체 뭐가 잔인하단 걸까?

그동안 졸졸 쫓아다니면서 보충반에 들여보내 달라, 문제 풀이 좀 도와 달라.

같이 점심을 먹어 달라 르데인이 졸라 대는 걸 유디트는 전부 다 받아 줬었는데 말이다.

게다가 그의 의도가 불순하다는 걸 안 뒤에도 선뜻 귀중한 노트를 빌려주겠다고 하고,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르데샤는 역시 제 동생의 심성이 프레첼보다 더 심하게 꼬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혀를 끌끌 찼다.

“심장이 찢어지는 것만 같아. 어떻게 이렇게까지 아플 수가 있는 거지? 어떻게 겨우 말 몇 마디로…….”

르데인이 들고 있던 손수건이 물기를 머금어 무겁게 축 처진 게 보였다. 그 손수건을 움켜쥐며 르데인이 중얼거렸다.

“사람을 만신창이로 만들 수가 있는 거야.”

그 정도란 말이야?

평상시 르데샤는 매사 자신만만한 르데인이 실패하여 좌절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늘 생각해 오긴 했다.

그런데 그게 설마 오늘일 줄이야.

저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누나로서 살짝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동정할 순 없었다.

어찌 보면 이 모든 결과를 초래한 건 결국 세상 사람들을 깔보던 르데인의 오만함이 원인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잘됐다 싶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인생의 쓴맛을 경험했으니, 더는 다른 사람들에게 오만방자하게 굴지 못하겠지.

그가 눈물을 그치면 그때 잘 타일러 주야겠다고 생각하며 르데샤는 말없이 동생의 동을 토닥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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