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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다정하지 마세요-45화 (45/110)

내게 다정하지 마세요 45화

* * *

모처럼의 휴일이었다.

평소 주말에도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기 바빴던 유디트지만, 오늘만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유디트! 어제도 도서관에 갔으면서 또 도서관에 가는 거야? 제발 쉬어! 너 그렇게 바쁘게 살다 간 골병 얻는다?’

그녀를 걱정하며 뜯어말리던 한나 때문이었다.

그녀의 제의를 받아들여 유디트는 모처럼 휴일에 미뤄 왔던 청소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빗자루를 손에 쥔 유디트를 본 한나는 또다시 기겁했다.

“아니, 유디트! 쉬라고 했더니 왜 그러는 거야?”

“응? 뭐가?”

“왜 또 빗자루를 드는 거냐구?”

“……그야 휴식 겸 청소를 하려고 하는 건데.”

한나는 기가 막힌 얼굴로 물었다.

“휴식이랑 청소가 같이 성립할 수 있어?”

“청소는 단순노동이니 그때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잖아. 그러니 쉬는 거지.”

“……그렇구나.”

한나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디트를 말리고 싶지만, 딱히 말릴 근거가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가 가만히 굳어 있는 틈을 타 유디트는 청소를 시작했다. 바닥부터 침대 밑까지, 구석구석을 빗자루로 쓸었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한나도 눈치가 보였는지 곧 옆자리에 소설책을 내려놓고는 마지못해 청소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사락- 사락-.

스륵-.

한동안 방 안에 비질 소리와 물건을 정리하는 소리만 울려 퍼질 때였다.

한나가 문득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유디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참, 유디트. 혹시 그 소식 들었어?”

갑자기 들리는 한나의 목소리에 유디트가 바닥을 빗자루로 쓰느라 굽히고 있던 허리를 폈다.

그리고는 한나를 바라보자 그녀가 턱을 매만지며 왠지 말하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아니, 너라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으려나? 어쩌면 나보다 더 빨리 알았을 수도 있겠다.”

“무슨 소식인데 그래?”

유디트는 언제나 아카데미의 소식들에 관해서는 무지했기에, 한나가 직접 알려 주지 않으면 모르는 일투성이였다.

그걸 알면서 저런 말을 하다니,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한편 한나는 무슨 일인지 아예 짐작도 못 하는 것 같은 유디트 표정을 보고는 놀라서 입을 벌렸다.

“설마…… 아직 못 들었어? 하긴, 요즘 네가 너무 바쁘고 정신없어서 못 들었을 수도 있겠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가지를 개서 정리하며, 한나가 입술을 머뭇거렸다.

그에 유디트가 빨리 말해 보라는 눈빛으로 그녀를 종용하자, 마지못해 입을 뗐다.

“그게, 아셀이…… 다쳤대.”

“…….”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왜, 여름 파티 때문에 파티 홀 리모델링 새로 시작했잖아. 그런데 천장에 달려 있던 커다란 샹들리에가 갑자기 위로 떨어졌대. 고정이 잘 안 되어 있었나 봐. 그래서 꽤 다쳤다고 그러던데…….”

한나가 뭐라고 설명해 주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진 않았다.

“유디트……?”

한나가 시시각각 변해 가는 유디트의 표정을 살피더니 심상치 않다고 느껴졌는지 들고 있던 옷가지를 내려놓고 유디트에게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는 유디트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서둘러 달래 주기 시작했다.

“미안, 오늘 아카데미에 소문이 쫙 퍼져서 너라면 알 줄 알았는데. 많이 충격받았어?”

“얼마나 다쳤는데?”

샹들리에가 위에 떨어지다니, 혹시 깔려서 크게 다치거나 한 건 아니겠지.

아니, 한나의 반응이 이런 걸 보면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왜 이렇게 초조하고 불안한 기분이 드는 걸까.

한나는 초조한 듯 입술을 짓씹고 있는 유디트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역시 아셀과 소꿉친구였던 만큼 유디트에게는 이 소식이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다쳤는지는 나도 잘은 몰라. 그래도 다행히 세드릭이 근처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에 아셀이 크게 다치지 못하도록 마법을 써 준 모양이야.”

“…….”

“그래서 목숨에 지장은 없다고 하는데, 문제는 아직 정신을 못 차려서 회복실에 계속 누워 있다나 봐. 나도 여기까지만 들었어.”

한나가 말을 끝맺자마자 다시 유디트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유디트는 목소리의 떨림을 감추지 못하며 계속 물었다.

“외상이 크지 않은데도 의식이 없다고? 어째서?”

“음……. 나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한나도 건너 건너 들은 이야기라서 정확하진 않았다.

“아셀의 몸 상태를 살펴본 의원이 말하길, 많이 지친 상태라고 했대. 어쩌면 학생회 일과 공부를 병행하느라 많이 피곤했었나 봐.”

그렇게 말한 한나는 잠시 아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사실 그녀는 오늘 아침에도 아셀을 마주쳤었다. 그때 보았던 아셀은 늘 그렇듯이 밝게 웃으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어디론가 바쁘게 걷고 있었다.

그의 아름다운 미소는 밝은 햇살 아래에서 더 빛을 발했기에, 아마 그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아셀이 체력적으로 힘든 상태였음을 몰랐을 것이다.

“전혀 피곤한 티가 안 났는데 신기하기도 하지. 어쩌면 그 정도 포커페이스는 유지할 수 있어야 학생회장을 할 수 있는 걸까……?”

“…….”

말을 잇다가 아직도 유디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다는 것을 눈치챈 한나가 다시 걱정스레 말했다.

“아무튼…… 많이 걱정되면 병문안이라도 가 보는 게 어떨까? 너라면 분명 회복실에도 들여보내 주실 거야.”

“아니야, 괜찮아.”

유디트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말했다.

아셀을 괴롭게 만든 원인들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일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앞에 뻔뻔하게 찾아갈 수 있겠는가.

참담해지는 기분에 유디트는 눈을 질끈 감았다.

* * *

하늘에서 하얀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겨울날.

유디트는 심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전날 목도리도 두르지 않고 신나게 눈싸움하고 눈사람을 만든 여파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목이 간지럽더라도 목도리를 할 걸 그랬다.

하지만 목도리를 하지 않은 건 아셀도 마찬가지였는데 왜 자신만 감기에 걸리고 만 걸까?

조금 불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둘 중 한 명이 아파야 한다면 아셀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아픈 게 훨씬 나았으니까.

마음이 아픈 것보다야 몸이 아픈 편이 훨씬 덜 괴로웠으니까.

그렇게 유디트가 방에서 혼자 골골대고 있을 때였다. 문득 방 밖에서 페델리안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셀, 유디트가 감기에 다 나을 때까진 저 방으로 들어가면 안 된단다.’

그렇지 않으면 감기를 옮길지도 몰랐기에 페델리안 부인은 아셀이 유디트의 방 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식사만, 하다못해 약을 건네주는 것만이라도 안 되겠냐는 아셀의 칭얼거림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에 페델리안 부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가 저 방 안에 들어가지 않는 건 유디트를 위한 일이기도 해. 혼자서 푹 쉬어야 유디트도 빨리 낫지 않겠니.’

그걸 끝으로 페델리안 부인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아무래도 아셀이 납득하고 돌아간 모양이었다.

아셀과 페델리안 부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자 사방은 고요하기만 했다. 유디트는 갑자기 닥친 적막함 속에서 눈만 깜박거렸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

아픈 유디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을 감고 얌전히 침대에 누워 있는 것뿐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가만히 누워서 푹 자야 빨리 낫는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한참을 감고 있던 눈을 다시 뜬 유디트는 천장의 화려한 무늬의 수를 세었다. 그러다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광경이 보였다. 바닥에 소복하게 쌓인 눈은 작은 동산 같기도 했다. 유디트는 그 광경을 가만히 구경하며 생각했다.

눈이 많이 오니까 밖은 춥겠지. 그러니까 아셀과 함께 만든 눈사람도 아직 녹지 않았을 거야.

유디트는 빨리 감기에 나아서 눈사람을 보러 가고 싶었다. 왜냐하면 눈사람은 아직 미완성이었으니까.

나뭇가지로 팔까지는 만들었지만, 아직 얼굴까지는 만들어 주지 못했다. 예상치 못하게 감기에 걸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유디트는, 결국엔 아셀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는 아셀 뿐이었으니까.

일부러 배제하는 것이 어려울 만큼, 아셀의 존재는 이미 그녀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열에 들떠 기침을 하면서도 유디트는 속으로 생각했다.

감기가 다 나으면, 아셀에게 다시 그 눈사람을 완성하러 가자고 해야지.

그러기 위해선 지금처럼 얌전히 자리에 앉아 푹 쉬는 것이 우선이었다.

조금 심심하긴 했지만, 아셀이 찾아오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셀을 보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아셀은 자신처럼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컸으니까.

그러나 모두가 잠든 새벽.

초승달만 어슴푸레하게 창가로 비쳐 드는 그 낯선 시간에.

아셀이 발꿈치를 들고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방 안으로 들어왔다.

꿈을 꾸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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