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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다정하지 마세요-101화 (101/110)

내게 다정하지 마세요 101화

“대학원……?”

의외의 단어에 유디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학원은 주로 고위 관료에 취직하고자 하는 평민들, 혹은 학술에 관심이 많은 귀족가의 차남, 삼남들이 지원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비교적 번듯한 집안 영애인 르데샤가 그곳에 지원을 하겠다니.

하지만 안경을 쓰고 연구에 몰두하는 르데샤의 모습을 떠올린 유디트는 이내 그럴듯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취직을 목적으로 공부했던 자신과는 다르게 르데샤는 정말 공부 자체에 열의를 보이던 학생이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르데샤가 진로를 정해서 다행이네.

지난번 대화를 나눴을 땐 고민이 많은 듯 보였는데, 다 잘 해결된 모양이지.

분명 부모님이 반대가 크실 거라고 걱정했는데, 대화가 제법 원만히 풀린 모양이었다.

유디트가 기쁜 얼굴로 축하를 하려는 찰나, 르데샤가 굳건한 눈빛으로 입술을 열었다.

“물론 부모님께서는 내가 아직 대학원에 가기로 결심한 걸 모르셔. 말씀을 드린 적이 없거든.”

“……응?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고?”

황당한 말에 유디트가 눈을 끔벅거렸다. 르데샤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일부러 숨기려고 한 건 아니야. 나도 부모님께 어떻게든 말씀드려 보려고 했지만…… 진로에 대해서 얘기할 때마다 내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시는 걸 어떡해.”

“…….”

“또 대학원에 가려면 이번 주까지 원서를 작성해서 교수님께 제출해야 하는데, 이 상황에서 내가 대학원에 가겠다는 말을 꺼내면 부모님의 반응은 안 봐도 뻔해.”

르데샤는 착잡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분명 내 말을 똑똑히 들었으면서도 못 들은 척 되물을 테고, 아버지는 말없이 나를 쳐다보시겠지. 그리고는 대학원은 절대 안 된다고 할 거야. 약혼자 명단을 건네면서 이 중에 약혼할 사람을 고르라는 말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겠지.”

“……그렇구나.”

“그렇지 않아도 맨날 하루라도 빨리 약혼해야 한다면서 재촉하시는데, 이번에 아카데미 졸업을 앞두게 되면서 그 재촉이 더욱 심해지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르데샤는 그동안 마음속에 쌓인 것이 많았는지 쉴 틈 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래서야. 부모님께 알리지도 못하고 원서를 제출하게 된 계기가.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 합격이겠지. 부모님은 내가 대학원 기숙사로 들어가는 날에야 모든 걸 알게 되실 거야.”

르데샤의 얘기를 모두 듣고 나니 유디트의 심경이 한층 복잡해졌다.

물론 르데샤가 대학원에 가기로 결정한 건 정말 축하해야 할 일이자, 말릴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학업에 열중할 때의 눈빛이 얼마나 반짝이는지는 매 수업 시간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부모님의 도움 없이 대학원에 다니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

아카데미의 복지 제도는 거의 평민을 위한 게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평민들이 대학원에 진학할 경우 학비 대부분을 감면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귀족들을 위한 그런 복지는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평민들보다 훨씬 비싼 학비를 내 가며 몇 년을 다녀야 했다.

생각을 끝마친 유디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보았다.

“만약 부모님이 네가 뒤늦게 알린 게 괘씸해서 널 지원해 주지 않는다고 하시면 아카데미 학비나 생활비는 어떻게 하게?”

“그거라면 나도 생각이 있어. 그동안 생일이다 뭐다 해서 가족들이나 친척들에게 받은 선물이나 용돈들이 꽤 많거든.”

“…….”

“서랍에만 모셔 놓은 장신구들도 있어서, 필요하면 전부 다 처분해 버리게. 그러면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의 학비와 생활비는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거야. 아니면 어린 학생들을 개인 교습해서 돈을 벌어도 되고.”

르데샤는 상당히 세심한 부분까지 이미 생각을 다 마친 뒤였다. 아마 대학원에 가겠다는 결심이 그만큼 단호하게 선 거겠지.

“부모님이 찬성하지 않겠지만, 내가 내 능력으로 대학원에 가겠다는데 더 이상 말릴 수도 없겠지. 어휴, 뭐 사실 이렇게 말을 하곤 있지만 나도 걱정이야. 특히 아버지가 뭐라고 말씀하실지 걱정이 크긴 하다. 가문에서 쫓겨나는 것만 아니라면 좋을 텐데.”

르데샤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꺼내는 르데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고 안정되어 보였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 하구나.

지금 당장은 르데샤의 부모님께서 그녀를 이해해 주시기는 어렵겠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면 르데샤의 마음을 이해해 주실 테다.

원래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유디트는 모쪼록 르데샤의 부모님이 하루라도 빨리 르데샤가 선택한 길을 이해해 주고 응원하시기를 바랐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금세 방학식 날이 당도했다.

아카데미의 강당 안에 선 유디트는 처음으로 맞이하게 될 긴긴 휴가에 살짝 들뜬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여유로운 방학이 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우선 카르단디 저택에 들러 백작님과 대화를 나눠 봐야 했고, 새로운 거주지도 알아보러 다녀야 했다.

또 카렐 교수님을 도와 함께 학회에도 출석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보충 수업도 꾸려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틈틈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여유도 넘치는 건 사실이었다.

유디트는 기쁜 표정으로 바로 옆에 서 있는 체이스를 돌아보았다.

“하암.”

대기하는 시간이 피곤했는지 체이스가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그는 기사단 입단을 앞두고 더욱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서, 함께 점심 저녁을 먹는 짧은 시간 외에는 대체로 바쁜 편이었다.

“많이 졸려?”

“음…… 조금? 그나저나 오늘 끝나고 뭐 할래, 유디트?”

“또 훈련하느라 바쁜 거 아니야?”

“훈련도 중요하지만 너랑 가끔 데이트도 해야지.”

‘오늘은 쉰다고 이미 말해 뒀는걸.’이라고 덧붙이며 체이스가 부스스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그때 막 강당으로 1학년들 무리가 이어 들어왔다. 그 속에 있던 르데인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유디트 선배님!”

체이스는 본체만체하며 르데인이 유디트의 앞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방학하면 이제 한동안 못 뵙겠네요. 아쉬워요. 선배님께 공부로 도움을 많이 받았었는데…….”

유디트는 보충 수업이 끝난 뒤에도 틈틈이 르데인의 수준에 맞추어 공부를 봐주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은 친구라 그런지 흡수하는 게 빨라 가르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르데인, 그렇게 겸손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차피 내가 아니었대도 네가 수석이 되었을 테니까.”

4년 내내 한 번도 빠짐없이 수석을 차지했었던 유디트처럼, 르데인도 입학을 한 이래로 줄곧 수석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아카데미의 몇몇 학생들은 제2의 유디트가 나오는 것 아니냐고 소곤거리기도 했었다.

그런 소문을 르네인 또한 파악하고 있었는지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 선배님이 아카데미를 졸업하시니까 제가 그 뒤를 이어서 계속 수석을 하도록 할게요.”

그때 체이스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네 누나는 어디다 두고 여기서 유디트랑 대화를 나누는 거야?”

“누나는 대학원 관련해서 잠시 교수님과 나눌 이야기가 있다고 바쁘시다나 봐요. 아마 기숙사 신청 관련된 이야기 같아요.”

르데인도 르데샤가 대학원에 지원한 사실을 알고 있었구나.

하긴 졸업이 코앞인데 계속 숨길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유디트는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레 운을 띄워 봤다.

“르데인, 부모님 반응은 어떠셔? 르데샤가 다 말씀드린 거야?”

“아…… 부모님은 아직 모르세요. 누나가 마지막의 마지막에 알리고 싶다고 해서요. 저는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누나로서는 마음 편하게 마지막 방학을 보내고 싶을 테니까요.”

“……그렇구나. 르데샤가 갑자기 대학원에 간다고 해서 너도 많이 놀랐겠다.”

“아, 아니에요. 누나가 망설일 때 처음부터 대학원에 진학하라고 조언한 게 저거든요. 솔직히 천방지축 누나가 결혼해서 귀부인으로 사는 모습은 잘 상상이 안 되지 않나요?”

르데인이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긴 했지만, 유디트는 내심 그의 말에 놀란 상태였다.

“네가 조언한 일이라고?”

“아, 네. 일단 무작정 원서부터 넣고 보라고 조언했던 것도 저였어요. 입학이 다 정해진 마당에 아무리 부모님이라도 다 뒤엎기란 힘드실 테니까요.”

“…….”

“그리고 누나에게 부모님은 어떻게든 제가 설득해 보겠다고 약속했어요. 물론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거 정말 다행이다. 르데샤도 너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을 거야.”

유디트는 늘 투닥거리면서도 사이좋아 보이는 형제의 모습에, 아주 조금, 그들의 관계가 부러워졌다.

한참 대화를 듣고 있던 체이스가 유디트의 어깨에 턱을 얹으며 끼어들었다.

“그런데…… 넌 내년에도 아카데미를 다닐 예정이니 계속 유디트를 만날 수 있겠네?”

“……? 그렇죠. 선배님께서 보충 수업이나 심화 수업을 운영하시면 꼭 수강할 테니까요.”

르데인의 대답을 들은 체이스가 안면을 구기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둘이 마지막인 것처럼 꼭 붙어 서서 떠들 필요는 없지 않아?”

때마침 주위에서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정렬시키느라 주위를 왔다 갔다 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체이스가 부러 목청을 높이며 소리쳤다.

“교수님! 여기 건방진 1학년생이 하나 있-.”

“저 선배는 하여튼…… 아무튼 방학 때 심심하면 불러 주세요! 또 저희 누나랑 다 같이 만나서 놀아요.”

눈치가 보였는지 르데인이 뒤를 연신 돌아보더니, 빠르게 인사를 마친 뒤 부리나케 1학년들이 있는 곳으로 사라졌다.

드디어 조용해진 것이 마음에 든다는 듯, 체이스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 옆에서 유디트 혼자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하여튼 유치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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