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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님 밀지 말고 당기세요 (82)화 (83/112)

쾅-!

그들의 대화는 듣지 못한 티타니아가 문을 거칠게 닫으며 제 방으로 돌아왔다.

온천으로 유명한 대표적 휴양지인 보네츠.

하지만 지금 티타니아에게 보네츠는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정갈하게 꾸며진 방을 보자 다시금 화가 치밀었다.

“로시에르 그년…, 그년 때문에 내가!”

티타니아의 목소리가 다시 격앙되었다. 간신히 가라앉혔던 화가 다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으아아!”

결국 그녀는 분풀이로 테이블 위 장식된 꽃병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하지만 꽃병은 깨지는 일 없이 온전한 상태로 데구루루 굴러갔다. 죄 없는 꽃만이 바닥에 불쌍하게 널브러졌다.

‘절대로 깨지거나 망가질 만한 물건을 티타니아의 방에 두지 마세요. 분명 전부 깨부술 테니까요.’

비비안의 조언에 따른 내부 인테리어의 결과였다.

“하!”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자 티타니아가 성마른 한탄을 내뱉었다.

처음부터 로시에르의 말을 들었으면 안 되었다. 보네츠에 와서도 안 되었고.

‘에밀리라는 이름에 깜빡 속아 넘어간 것이 잘못이었어.’

그녀가 손바닥에 손톱이 박힐 정도로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그녀가 과거 로건 황자를 독살하려 했던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남아 있는 물증이 없었다.

그렇기에 황후조차도 티타니아를 어찌하지 못한 것이고.

단 하나, 살아 있는 증거인 에밀리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로시에르가 에밀리를 발견할 리가 없는데.’

상대가 에밀리의 이름을 언급하고 심지어 자신이 침묵의 대가로 내민 보석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에 놀라 로시에르의 말을 그대로 믿고 말았다.

티타니아가 이곳에 에밀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챈 건 도착한 후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비비안은 미처 몰랐으나 에밀리의 대역은 쓰지 않느니만 못했다. 에밀리의 대역이 티타니아의 앞에 슬쩍 모습을 드러내고 사라진 순간 티타니아는 상대가 진짜 에밀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녀는 곧장 수도로 돌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은 보네츠에 갇힌 후였다. 기사들은 그녀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보네츠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비비안이 덫을 짜 놓은 보네츠에서 티타니아는 완벽히 고립되었다.

겉으로는 그녀를 극진히 모시는 척하지만 사실상 인질이었다.

티타니아는 황궁으로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아무리 서신을 보낸다 한들 황제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사이에 제 아들인 카일러스는 국경 지대로 떠나고 말았고.

길이 막힌 티타니아는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시도하는 족족 기사들에게 잡혀 이 호텔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거 놔라! 놓으라고!’

티타니아가 아무리 성을 내고 신경질을 부려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기사들은 그녀가 탈출을 감행할 때마다 이번에는 몇 시간 만에 잡혀 들어올 것인지에 대해 내기까지 한다고 했다.

그렇게 수치를 당하며 3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티타니아는 제 아들이 마침내 마물 소탕을 끝내고 국경 지대에서 돌아올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티타니아는 카일이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되면 곧장 자신을 수도로 부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카일에게서 도착하는 소식은 없었다. 이제 곧 황제의 탄신일이 다가오는데도 말이다.

분명 그 경사스러운 순간에 이 어미와 함께하고 싶어 할 텐데.

티타니아는 카일이 자신을 거부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카일과 이토록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 집배원도 기사들과 한통속인 것이 분명하다.

‘이곳을 탈출해야겠어. 어떻게든 다시 마차를 구해서….’

그녀가 조급하게 손톱을 깨물며 방 안을 서성였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열렸다.

“어머, 이게 뭐야!”

지배인이 시킨 티 세트를 전달하러 온 하녀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바닥에 널브러진 꽃병을 본 것이다.

‘그새 한바탕 한 모양이네.’

하녀가 한숨을 삼키며 쟁반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저 꽃병까지 치우고 가야 할 듯싶었다.

그런데 그때 티타니아가 하녀를 불렀다.

“너, 이리로 좀 와 보거라.”

“네에.”

딱히 예의 바르지는 않은 태도로 하녀가 티타니아에게 다가갔다.

티타니아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네가 내게 도움을 줘야겠다.”

하녀가 멀뚱히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깨달았다는 듯이 아, 하고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티타니아에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티타니아가 눈썹을 들썩였다. 하녀가 뭐 하시냐는 듯 손을 까딱였다.

“먼저 성의를 보이셔야죠.”

“뭐라?”

“저번에도 도와 드렸다가 부인께서 다시 잡혀 오시는 바람에 제가 큰일 날 뻔했잖아요. 부인을 잘 모시지 못했다고 지배인님께 얼마나 혼이 났는지 아세요?”

하녀가 과장되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번에는 저번에 제가 마음에 든다고 했던 그 노란 귀걸이를 주세요. 안 주시면 안 할래요.”

“하! 네년이 감히 건방지게!”

“싫으면 마시고요.”

흥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린 하녀가 바닥에 떨어진 꽃을 치우기 시작했다.

밀려오는 모멸감에 티타니아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감히 호텔의 하녀 따위가 황태자의 어머니를 이따위로 능멸하다니!

내가 제대로 된 위치에만 있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터인데!

당장 저 하녀를 매질하고 싶었으나 저 시건방진 아이가 아니면 탈출조차 시도할 수 없었다.

그녀는 호텔 직원 중 유일하게 티타니아가 준 뇌물에 슬쩍 마차를 준비해 준 사람이었으니까.

결국 티타니아는 화를 참으며 보석함에서 하녀가 노리던 노란 귀걸이를 꺼냈다.

“자, 여기 있다.”

“어머, 감사합니다. 부인께서는 참 아량이 넓으세요.”

“…마차를 구해라. 오늘 당장 여기를 떠날 수 있도록.”

“그럴게요. 이따 밤에 다시 올 테니까 준비하고 계세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청소를 마친 하녀는 신이 나서 티타니아의 방을 떠났다.

그녀가 다시 돌아온 건 날이 어둑해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깥이 깜깜해졌을 때였다.

하녀들이 식재료를 옮기는 쪽문에 준비된 마차에 티타니아가 올라탔다.

지난번에는 마차를 타고 산을 넘으려 했다 실패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강가의 배를 타고 이동해 볼 심산이었다.

하녀가 티타니아에게 미리 준비한 얼마간의 식량을 건네주며 말했다.

“꼭 성공하셔서 수도로 돌아가시길 빌게요.”

“수도로 돌아가면 당장 네년의 그 사특한 혀부터 잘라 낼 것이다.”

“어머나, 무서워라!”

내뱉는 말과 달리 하녀는 전혀 무섭지 않은 듯 싱글벙글 웃었다. 티타니아가 그녀를 매섭게 째려보고 쾅 마차 문을 닫았다.

곧 말의 투레질 소리와 함께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주 작은 점으로 보일 정도로 마차가 멀어지자 하녀의 등 뒤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티타니아를 감시하는 역할로 이곳에 보내진 기사 중 한 명이었다.

하녀에게 다가온 기사가 물었다.

“갔습니까?”

“후후, 네.”

“저 여자도 매번 실패하면서 잘도 똑같은 시도를 하는군요.”

“그 바보 같은 점이 좋은 거잖아요.”

하녀가 히죽거리며 주머니에서 귀걸이를 꺼냈다. 영롱한 노란색을 내뿜는 보석은 보석을 잘 모르는 이가 보아도 값비싸 보였다.

“귀걸이 한쪽을 드릴까요? 아니면 보석상에 판 후에 현금으로 드릴까요?”

“한 쌍으로 같이 파는 것이 더 비싸게 팔릴 듯하니 현금으로 주시죠.”

“그러면 조만간 보석상에 한번 찾아가야겠네요. 꺄아, 이번 물건은 굉장히 비싸게 팔릴 것 같아요. 정말이지 저는 저 여자에게 뽀뽀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이라니까요?”

하녀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두 사람은 일종의 공모자였다. 하녀가 티타니아에게서 뇌물을 받고 그녀의 탈출을 도우면 기사는 조금 후에 그녀를 다시 잡아 오는 형식이었다.

여태껏 티타니아의 감시 때문에 이런 한가한 지방에 처박혔는데 부수입이라도 짭짤하게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매번 그녀를 태워다 주는 마부 역시 한통속이었기에 티타니아가 도망에 성공할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좋았다.

모두들 황금 알을 낳는 멍청한 거위가 사라지는 걸 바라진 않을 테니까.

사실상 보네츠의 모든 인간들이 그들과 한편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멋진 기사님, 우리의 귀여운 바보가 잠시 자유를 만끽할 동안 따뜻한 차라도 마시지 않으시겠어요?”

하녀가 속눈썹을 팔랑이며 유혹적으로 제안했다. 그녀는 제법 어리고 귀여운 편에 속했기에 기사의 얼굴이 점잖지 못하게 붉어졌다. 그가 큼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차보다는 술이 좋을 것 같군요.”

“어머, 좋아요. 오늘 큰 수익을 올렸으니 함께 건배해요.”

그녀가 기사의 단단한 팔을 와락 껴안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기사의 입가가 째질 듯 올라갔다. 그날 술잔을 기울이는 시간은 평소보다 오래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정신을 차린 기사가 뒤늦게 티타니아를 회수하러 강가로 찾아갔을 때.

“그 여자가 강에 빠졌습니다! 수색을 하고 있는데 도무지 보이지 않아요!”

그는 배를 타던 티타니아가 갑자기 강물에 빠져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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