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천마신공-4화 (4/254)

제 4화

<생존>

"허억. 허억."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언제 토악질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김연희는 떨리는 손을 간신히 붙잡으며 앞에 있는 고블린을 노려봤다. 이미 일행들도 그녀만큼 지친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포기할 수도 없었다.

끔찍한 상황을 몇 차례 마주하자 오히려 정신이 더 또렸해졌다. 이제는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적응이 됐다.

그만큼 지금 겪는 상황은 끔찍했고, 처절했다.

멀리서 도우라는 욕설이 들려왔지만, 모여 있는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과 달리 고블린이라는 생물체에게 저항하던 그녀는 점점 힘이 부치는 것을 느꼈다. 친구들과 힘을 합쳐서 두어 마리의 고블린을 잡았지만, 놈들도 이제는 무리를 지어서 움직였다.

'이놈들도 우리처럼 나름 생각을 하면서 움직이고 있다는 걸까?'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웃고 있는 놈의 모습에 그녀의 팔뚝에 소름이 돋아났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느끼기 무섭게 놈이 달려들었다.

몽둥이를 들어 올린 채로 달려드는 놈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빨랐다.

이미 이놈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던 그녀는 힘겹게 팔을 들어 올렸다.

터엉.

다행히 손에 쥔 몽둥이로 놈의 몽둥이를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고블린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크아아아!"

놈은 그대로 아가리를 벌리며 그녀의 목을 놀렸다.

희고 가녀린 목.

야들야들한 살점을 노린 놈이 곧장 몸을 날렸다. 하지만 달려들던 놈의 몸뚱이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커헉."

놈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무섭게 한 사람이 쓰러진 놈을 덮쳤다.

꽤나 기민한 움직임을 보인 그는 곧장 고블린의 목에 조잡한 단검을 꽂아 넣었다.

괴물 같았던 고블린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그녀가 멍한 눈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자, 강준우는 단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주변을 둘러봤다.

"고, 고맙습니다."

"……."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김연희는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강준우는 개의치 않은 채, 그녀의 동료를 도우러 움직였다.

"하아. 다행이야."

생각지도 못한 도움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움직임으로 고블린을 너무나 쉽게 처리한 사람이 돕는다면 남은 일행들도 안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꺄아악!"

"서, 선정아!"

익숙한 목소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놀란 그녀가 급히 시선을 돌리자, 고블린이 김선정의 목을 물어뜯고 있었다.

"어, 언니!"

안타까운 모습에 절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었지만, 김선정의 옷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누구도 쉽게 도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뒤늦게 김연희가 그 고블린을 향해 다가갔지만, 익숙해 보이는 몽둥이가 고블린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뻐억.

멀리서도 들려올 정도로 커다란 소리였다.

고블린은 그대로 꼬꾸라졌고, 놈을 후려친 사내는 다시 목덜미에 단검을 쑤셔 넣으며 몸을 일으켰다.

강준우였다. 일행을 도우는 그의 모습이 고맙게 느껴졌지만, 너무 늦었다.

'너, 너무 늦었어!'

지켜보던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강준우가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다면 김선정이 죽을 일은 없었다.

가까운 사람이 또 한 명 쓰러지자, 그녀는 눈시울을 붉혔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일행의 죽음을 슬퍼한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순식간에 두 마리의 고블린을 잡은 남자와 함께 일행을 도와야만 했다. 미력하나마 그의 도움이 될 생각이었다.

"후우. 저도……"

김연희는 강준우를 향해 다가가며 그를 불렀다. 하지만 은인이라고 여겼던 그는 이상한 움직임을 보였다.

아직 힘겹게 싸우고 있는 일행들이 많았지만, 그는 가만히 서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뭐, 뭐지? 너무 지친 건가?'

두 마리의 고블린을 처리한 거라면 지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지친 기색이 아니었다.

가만히 싸우고 있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또 한 명이 쓰러지고, 고블린이 그를 덮치는 순간 그는 고블린의 뒤를 잡았다.

'서, 설마?'

뻐억. 푸욱.

기계적인 움직임이었다.

처음 그녀를 돕고, 김선정을 물어뜯은 고블린을 잡았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미, 미끼? 우리를 미끼로 이용하는 거야?"

그는 일행을 미끼로 사용하고 있었다.

잠깐이나마 고맙게 느껴졌던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히려 그런 강준우의 행태에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저런 미친!'

그 행동에 놀란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강준우의 행태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하지만 가만히 그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그녀는 그런 생각을 버렸다. 지금은 이런 생각도 사치였다.

어찌 됐든 강준우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한 것은 사실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움직이는 게 더…… 효과적인가?'

저렇게라도 움직이지 않았다면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저 가만히 지켜봤다면 오히려 모두가 전멸을 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고작 생각이 달라진 것뿐이었지만, 강준우의 모습이 다르게 느껴졌다.

은밀히 고블린의 뒤를 잡으며 수를 줄여나가는 그의 모습에 그녀도 느끼는 바가 컸다.

경악이 감탄으로 바뀐 김연희였지만, 강준우는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가, 감사합니다."

"……."

감사의 뜻을 전하는 사내를 뒤로한 강준우는 호흡을 골랐다.

고작 몇 마리 처리했다고 호흡이 가빠졌다. 열 마리를 넘게 처리했을 때와는 다르게 상당히 지친 것 같았다.

'피로가 누적된 거겠지?'

꽤나 지친 스스로의 상태에 그는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다시 쉴 수 있을만한 곳을 찾았지만, 주변에는 아직도 많은 고블린들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이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무리였다. 간신히 살아남은 자들은 일행을 돕기 위해 움직였다.

'그나마 여기 남은 자들은 근성이 있는 사람들인가?'

한데 모여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자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도우면서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처럼 무작정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민국아 버텨!"

"끄으윽. 빨리!"

고블린의 입에 팔을 집어넣으며 치명상을 피하려던 자가 다급하게 외치자, 강준우에게 도움을 받은 사내는 고블린을 후려쳤다.

그 충격에 고블린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강준우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고블린에게 달려들며 놈의 목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끄르륵."

생각보다 얕은 일격에 그는 더욱 힘을 주며 단검을 찔러 넣었다.

포인트를 획득했다는 말과 함께 축 늘어진 고블린을 확인한 그가 몸을 일으키자, 뒤늦게 몸을 일으킨 사내가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미, 민국아?"

"뭔데 끼어 들어서……"

"왜 이래? 이분은 우리를 도와준 거잖아."

"도와?"

"연희도 그렇고, 선정이랑 나를 도와줬어!"

"……."

권우철의 말에 정민국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이 사람이 거의 다 잡은 놈을……"

"미안하군요. 괜한 오지랖을 부렸네요."

"……."

따로 마찰을 만들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강준우도 선의로 이들을 도운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마당에 적을 만들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지쳤어. 쉴 시간이 필요해.'

이미 다섯 마리나 더 잡은 상황이었다.

다시 휴식이 필요했고, 그는 곧장 사람들이 쉬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멀리서 그가 움직이는 모습을 확인한 사람들이 움찔거리며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마치 살인자를 대하는 느낌이 강했지만, 강준우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듯한 이들의 모습이 반가웠다.

'이제 최선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잖아?'

남은 내공도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찰나의 순간을 노리며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후우."

깊게 숨을 들이쉰 그는 소진한 내공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운기라는 방법을 떠올렸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행위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운기를 하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남아 있는 사람들도 이제는 적절한 반격을 가했다. 상당히 많은 사람이 쓰러졌지만, 살아남은 자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점점 힘을 모아가며 놈들을 상대하자 그들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몇몇은 간단한 마법을 사용하면서 도망가는 놈을 노렸고, 간간이 무공을 이용하며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는 자들도 눈에 띄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목숨이 달린 상황인지라 대부분이 빠르게 적응을 한 것이다.

개중에 몇몇은 강준우와 비슷하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사람들이 적절한 힘을 사용하면서 고블린의 수를 줄어나가자, 이제는 놈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놈들이 그들을 피해 도망갔다. 겁에 지린 듯이 물러났지만, 이미 당한 것이 있는 그들은 놈들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잡아! 놈이 도망간다!"

"크아아아!"

놈들의 손에 지인을 잃은 자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날카로운 바람과 불과 물로 된 화살이 놈들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헬파이어'와 같은 마법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기초적인 마법이 지금 상황에서는 큰 힘을 발휘했다.

촤아악. 콰앙. 퍼엉.

도망가던 놈들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마법과 같은 기술은 강한 위력을 내보였지만, 그것을 사용한 자들은 상당히 지친 듯한 모습이었다.

사용할 수 있는 기초적인 마법의 최대치는 고작해야 다섯 번이었다.

그것을 넘어가면 오히려 마법에 휘말리며 크게 몸이 상했다. 일부는 그 과정에서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다.

고블린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스스로의 힘을 제어하지 못해서 쓰러지는 사람들이 더 많을 지경이었다.

[주어진 조건이 완수됐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전체 보상으로 10포인트를 얻었습니다.]

[개별 보상으로 5포인트를 얻었습니다.]

[상태창이 개방됩니다.]

휴식을 취하던 강준우는 들려오는 소리를 반겼다.

상태창을 통해서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준우(23세)

별호 : 無.

삼류 무인.

〈무공〉

천마신공(1成) - 0.01%.

포인트 : 30.

'뭐야? 고작 이게 전부야?'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허접했다. 뭔가 특별한 거라도 있을 줄 알았지만, 그저 익힌 무공과 소소한 포인트가 전부였다.

1성의 천마신공.

옆에 나타난 수치는 아무래도 경험치인 것 같았다.

100%가 채워지면 성취가 높아지는 것 같았지만, 정작 이것만으로는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가만히 눈앞에 떠오르는 것을 확인한 그는 천마신공이라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자 새로운 정보가 떠올랐다.

〈천마신공〉

천마가 사용했던 독문심법.

마교를 세웠다던 천마의 무공을 펼칠 수 있는 기본 토대가 되는 심법이다. 모든 마공의 원류가 되는 무공으로, 같은 성취라면 다른 마공과의 경쟁에서 무조건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신공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심법은 익히는 것 자체만으로 다른 무공을 아우를 수 있다.

불친절한 설명이었지만, 천마신공 자체만으로도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지에 관한 것은 나타나 있지 않았다. 그저 본능적으로 사용하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더군다나 포인트 역시 의문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포인트를 줬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뭔가 다른 용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그런 생각을 가지기 무섭게 예의 낯선 소리가 그를 일깨웠다.

**

상점창이 나타납니다. 포인트를 이용해서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습니다.

이어질 홉고블린과의 전투에 대비하세요.

목표 : 홉고블린(Hobgoblin) 처리.

전체 보상 : 상점창 상시 개방.

개인 보상 : 기여도에 따른 보상 차등 지급.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