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화
<생존>
'홉고블린?'
싸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또 다른 적이 나타날 것 같았다. 이름이 다른 걸로 봐서 기존에 싸웠던 놈보다는 더 강렬할 것이 분명했다.
"호, 홉고블린은 또 뭐지?"
"대장격입니다! 고블린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를 홉고블린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누군가의 질문에 답을 한 사람은 권우철이었다.
김연희와 같은 일행이었던 자로 강준우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아난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죠? 여긴 도대체 어디에요?"
그런 그에게 다급히 질문이 쏟아졌다.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모습에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들이 많았지만, 그라고 이 상황을 납득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판타지에 나오잖아요. 판타지에 나오는 몬스터들 중에 있어요."
"파, 판타지?"
터무니없는 말에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지만, 강준우는 그들의 말에 관심이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앞서 나올 홉고블린이라는 놈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놈과 상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얻어야만 했다.
'상점창은 어떻게 만들어내는 거지?'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 눈앞에 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그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생소한 글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여러 항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것 같았다.
마치 게임에서나 봤을 법한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뭐가 필요할까?'
그는 신중하게 창을 둘러봤다.
살 수 있는 것은 많았다. 무기는 물론이고, 방어구와 음식까지.
모든 것을 포인트로 해결할 수 있었다.
고블린이라는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물건은 것은 무기와 방어구였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무기는 몽둥이와 조잡한 단검으로 충분했다.
'무기보다는…… 무공이 좋겠지?'
지금은 천마신공이라는 무공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천마신공의 성취를 늘리든지 또 다른 무공을 배우는 게 중요했다.
익힌 무공이 너무나 과한 무공이라 섣불리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점창을 바라보던 그의 눈이 커다래졌다.
'뭐, 뭐야? 천마신공이……'
지금 상황에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곳에 등재되어 있었다. 등급 별로 분류되어 있던 무공들 중에서 등급 외에 놓인 무공이 바로 천마신공이었다.
등급 외의 무공.
그곳에 있는 무공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신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무공들로, 너무나 유명한 것들이라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던 그조차도 이름을 접해봤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자물쇠 모양으로 잠겨 있는 무공들.
E등급부터 S등급과 등급 외에 놓인 것까지가 모두 잠겨 있었다.
[포인트를 이용해서 원하는 상위 등급의 카테고리를 해제할 수 있습니다.]
[E등급의 무공을 열람하기 위해서 10포인트가 필요합니다.]
'그냥 풀어내는 것만으로 10포인트가 필요하다고?'
새삼 포인트의 중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처음 얻은 무공이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무공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아직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직은 내 몸이 준비가 안 된 거겠지?'
과한 힘을 쏟아내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몇몇 사람들이 그것을 증명하면서 죽어 나갔다.
잘만 쓰면 엄청난 힘이었지만, 과하면 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머릿속에 각인시킨 강준우는 F등급에 있는 무공들을 살폈다.
육합심법 - 육합권법, 육합검법……
삼재심법 - 삼재권법, 삼재검법……
횡소천군, 독사출룡……
가장 기초적인 무공인 것 같았다.
기본이 되는 심법과 파생된 권법, 독자적인 초식이 나열돼 있었다. 하지만 딱히 끌리는 것은 없었다.
'모두가 10포인트라니.'
생각보다 필요한 포인트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이 당한 것을 보면 차근차근 익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육합심법.
육합(六合)은 사방(四方)과 상하(上下) 천지와 사방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삼재심법과 더불어 기본적인 심법 중에 하나로 기초적인 위력을 내지만, 안정적이다.
*10포인트 필요.
삼재심법.
천(天), 지(地), 인(人)이 합일되며 완성되는 심법이다.
육합심법과 더불어 기본적인 심법 중에 하나로 기초적인 위력을 내지만, 안정적이다.
*10포인트 필요.
가만히 두 심법을 확인해 봤지만, 크게 다른 것은 없었다.
고민하던 그는 삼재심법을 택했다.
10포인트를 사용해서 심법을 익히자, 구결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본능적으로 몸과 머릿속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뭐가 달라진 거지?'
가만히 눈을 감고 몸 안에 있는 기운을 확인하자, 단전에 있던 손톱만 한 기운이 전보다 더 수월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천마신공으로 움직였을 때는 곧장 손에 모여 들었는데. 삼재심법은…… 다른가?'
원하는 내공을 끌어내는 것에는 삼재심법이 더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끌어 올린 기운을 움직이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기존에 10의 속도로 움직였던 내공이 1로 떨어진 것과 같았다.
답답한 느낌은 당연했지만, 그래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적어도 가지고 있는 무공에 자멸할 걱정은 줄어들었다.
"심법을 익히면 같은 계열의 무공이 반으로 줄어드는데?"
"마나 운용법을 익히면 같은 계열의 마법도 반으로…… 흐읍!"
놀라서 소리치던 그들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이런 정보를 쉽게 밝힐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이었지만,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마법이나 무공이나 비슷한 형태인 것 같았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에 강준우는 다시 상점창을 확인했다. 그들의 말처럼 다른 무공을 얻는데 필요한 포인트가 반으로 줄어 있었다.
'삼재검법과 삼재권법. 삼재보법까지.'
가진 포인트라면 모든 것을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이제 겨우 F등급의 무공만 열린 상황이었다. 당연한 말이었지만, E등급의 무공은 지금 있는 무공보다 더 강력할 것은 분명했다.
'욕심을 버리자. 어차피 지금 천마신공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 하고 있는 마당에.'
등급 외의 무공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은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무리를 한다면 오히려 그가 위험했다. 지금은 어린 아이에게 보검을 쥐어주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스스로의 상황을 정확히 인지한 강준우는 남은 포인트로 삼재권법과 검법, 보법을 익혔다.
강준우(23세)
별호 : 無.
삼류 무인.
〈무공〉
천마신공(1成) - 8.31%.
삼재심법(1成) - 0.02%.
-삼재권법(1成) - 0%.
-삼재검법(1成) - 0%.
-삼재보법(1成) - 0%.
포인트 : 5.
새로운 무공이 생겨났다. 하지만 상태는 그가 생각했던 것과 차이가 있었다.
'뭐야? 숙련도가 올랐잖아?'
삼재심법을 얻자 천마신공의 숙련도가 8.3%나 올랐다.
그저 기본적인 심법을 익힌 게 전부였다. 생각지도 못한 효과가 놀라웠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가만히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던 그는 삼재심법을 운용하려고 했다. 이것과 천마신공이 어떻게든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들려오는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춰야만 했다.
"미쳤어? 이런 곳에서 심법을 운용하게?"
"왜? 뭐가 이상한데?"
"이런 건 안정적인 곳에서 혼자 익히는 거라고! 주화입마. 못 들어봤어?"
권우철의 목소리였다. 정민국을 일깨우는 그 말에 강준우는 쓰게 웃으며 마저 휴식을 취했다.
새로운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에 기초적인 것을 잊은 것이다.
지금은 심법을 운용하는 것보다 체력을 비축할 때였다.
생각이 있는 자들은 그와 비슷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몇몇을 눈여겨 본 그는 근육을 풀며 앞으로의 상황에 대비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길지만은 않았다. 예의 소리가 적의 등장을 알려왔다.
[홉고블린이 무리를 이끌고 나타났습니다.]
[수하들이 쓰러진 것을 인지한 홉고블린이 분개합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였다.
먼저 공격을 한 놈들이 수하들이 죽었다고 분개했다는 말에 모여 있던 사람들 중 일부가 불만을 토로했다.
"미친 새끼들. 먼저 죽이자고 달려든 놈들이 누군데!"
"씨발! 무공도 익혔겠다. 이번에는 완전히 조져줄게."
"내 신검이 피 맛을 보는 건가?"
나름 자신감을 얻은 자들이 허세를 늘어놨다. 일부는 무공 대신 무기를 손에 넣은 것 같았다. 기껏해야 평범한 철검이었지만, 나타난 놈들에 비해 살아남은 사람들의 수가 월등히 많았다.
수적 우위에 앞선 그들은 자신만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준우는 불안한 눈으로 놈들을 살폈다.
'뭔가 다른데?'
제대로 된 심법을 익혀서인지, 그게 아니면 천마신공의 공능인지 모르겠지만, 앞선 놈들은 왠지 모를 위험함이 느꼈다.
그 수는 많지 않았다. 대략 세어 봐도 두 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고블린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가장 큰 덩치를 가진 놈을 필두로 지팡이를 든 두 놈과 제대로 된 무기를 가진 세 놈이 함께 하고 있었다.
'저놈이 홉고블린인가?'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키를 가지고 있었다.
홉고블린이라고 추정되는 놈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놈들도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의 덩치였다.
묘한 위화감이 느껴지는 놈들.
모든 포인트를 투자해서 이제 막 무공을 얻었지만, 쉽게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은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무리 중에 꼭 튀는 놈들이 존재했다.
"미친 고블린 새끼들. 포를 떠서 죽여줄까?"
"먼저 잡은 놈이 임자지? 포인트는 내 거다!"
"씨발, 같이 가자고!"
무리를 이루며 제법 잘 싸웠던 자들이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제법 많은 포인트를 얻었는지 그들의 손에는 남다른 무기가 쥐어져 있었다. 더군다나 몸놀림도 그렇게 무겁지 않았다.
'무공을 익히고 무기까지 얻은 건가?'
그들의 움직임에 동조하며 남은 사람들도 움직였다. 만에 하나라도 앞에 있는 자들이 홉고블린과 일행을 처리하면 포인트를 얻을 수 없었다.
이미 포인트의 중요함을 알고 있던 자들이 뒤를 따랐고, 강준우도 그 무리에 끼어서 천천히 움직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급한 외침이 그들을 일깨웠다.
"피, 피해!"
"마, 마법이다. 마법이……"
콰아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마법이 날아든 곳과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그곳에서부터 강한 열기가 전해졌다.
'마법까지 쓸 수 있는 놈들이었어?'
아마도 지팡이를 든 놈들이 마법을 사용한 것 같았다.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에 홉고블린 측도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막무가내로 달려들던 고블린과는 또 달랐다.
놈들은 대열을 갖추면서 달려드는 사람들을 상대할 생각인 것 같았다.
홉고블린의 앞에 지팡이를 쥔 두 마리의 고블린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대로 된 무기를 쥔 세 놈이 앞을 가로막았다.
"사, 산개해! 다시 마법이 날아든다."
콰아앙. 화르르르.
다시 강력한 화염구가 날아들었다. 그 공격에 적중당한 한 명이 까만 재로 변하며 쓰러져 나가자, 호기롭게 나섰던 사람들의 표정에 두려움이 어렸다.
그러던 그때, 모두를 일깨우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모두 흩어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마법을 날려!"
"흐, 흩어져요! 흩어져서 공격해요!"
다시 한 번 만들어지는 고블린의 마법에 머뭇거리던 사람들이 산개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반격이 시작됐다.
포인트로 마법을 익힌 자들이 마법을 날렸다. 고블린 샤먼으로 불리는 놈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한 위력이었지만, 생각보다 날아가는 마법의 수가 많았다.
퍼엉. 퍼엉. 퍼엉.
몇몇 마법은 애먼 바닥을 때렸지만, 일부는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검을 쥔 놈들에게 날아들었다.
불을 가득 머금은 마법 화살이 그들의 면전에서 터져나갔다. 하지만 정작 공격을 받아낸 놈들의 모습은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뭐, 뭐야? 왜 아무런 피해도 없어?"
손에 쥔 검으로 마법을 쳐낸 것이다.
무시무시한 힘에 달려들던 자들이 걸음을 멈췄다.
"쿠아아아아!"
동시에 전방에서 커다란 포효가 터져 나왔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그 목소리에 일부가 겁을 집어 먹었다.
존재감을 드러내는 외침.
홉고블린의 포효와 함께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품 후기]
코멘트, 추천, 선작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