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화
<두각>
채앵. 채앵.
"막아!"
"크아아아!"
괴성과 함께 다시 휘둘러진 고블린의 검이 앞을 가로막은 자를 튕겨냈다.
힘을 이기지 못한 사내가 꼬꾸라졌다. 처음에 호기롭게 나섰던 자들 중에 한 명이었다.
지금 나타난 놈들은 기존에 상대했던 놈과는 차원이 달랐다. 고작 고블린에 불과했지만, 기존에 상대하던 놈들보다 배는 더 강한 느낌이었다.
"고블린 워리어와 고블린 샤먼입니다."
"워리어? 샤먼?"
"샤먼은 마법을 써요. 먼저 놈들을 제거하는 게 좋아요!"
권우철의 외침은 계속됐다. 그 와중에도 치열한 싸움은 계속 이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홉고블린이라는 놈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고블린 워리어와 샤먼만이 힘을 쏟아내며 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점점 뒤로 밀려났다.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우고, 무기를 갖춘 자들의 자신감은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지 오래였다.
그 와중에 뒷걸음질을 치며 도망가려는 자들도 존재했다. 일부가 그렇게 움직이자, 주변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러난다고 살 수 없어요! 모두 다 죽을 겁니다."
"씨발! 지금 저런 괴물을 상대하라고?"
"모두 죽는다고!"
"……."
누군가의 외침에 일부가 소리쳤지만, 큰 소용이 없었다. 이미 겁을 집어먹은 자들은 물러나기 바빴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대신해야만 했다.
콰앙. 콰앙.
뒤에 있던 고블린 샤먼은 간간이 마법을 쏘아대며 그들을 괴롭혔다. 하지만 놈들의 마법이 무한한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법을 날리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고블린 워리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앞에 있는 사람들이 놈들을 막아내는 사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놈들을 공격했다. 점점 협력을 하면서 놈들을 상대하기 시작하자 얼추 균형이 맞아가는 것 같았다.
모두가 앞에 있는 놈들을 상대하고 있었지만, 강준우의 시선은 홉고블린에게로 향해 있었다.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는 홉고블린의 모습이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놈이 움직이기 전에 다른 놈들을 쓰러뜨려야 할 것 같은데.'
콰아앙.
다시 들려오는 굉음에 한 사람이 튕겨져 나갔다.
폭발에 휘말리며 화상을 입은 그는 강준우의 근처에 떨어지며 힘겨워했다.
"끄윽. 사, 살려……"
"……."
그는 힘겹게 입을 뗐다. 하지만 지금은 그를 도울 여력이 되지 않았다.
강준우는 그를 지나치려고 했다. 그때, 한 사람이 쓰러진 자를 향해 다가왔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힐(heal)!
쓰러진 자를 치료하는 사람은 강준우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얼마 전까지 뒤에서 사람들을 독려하며 저들의 정체를 알려온 사람으로, 김희연과 일행이었던 권우철이었다.
그가 힘을 쏟자, 곧 죽을 것 같던 자가 겨우 숨을 몰아쉬며 살아났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뒤로 물러나 있으세요. 힘을 회복하면 그때……"
"뭐, 뭐야? 당신 뭐 하는 거야? 그건 내 거야!"
"잠깐 빌리죠."
"미친! 누가 빌려준다고 했어? 내 허락도 없이……"
강준우는 쓰러진 사내의 손에서 떨어진 검을 손에 쥐었다. 평범한 철검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든든하게 느껴졌다.
당연히 자신의 물건을 넘긴 자는 화를 냈지만, 그런 그를 권우철이 진정시켰다.
"지금은 놈들을 처리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래도……"
"치료 값이라고 해두죠. 어때요? 그냥 잠깐 빌리는 거잖습니까?"
"……."
치료 값이라는 말에 사내는 입을 닫았다.
강준우는 그런 권우철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권우철은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대신하며 말했다.
"부탁합니다."
"…… 힘을 아껴요."
"예?"
"나중에 필요할 것 같으니까."
"아, 알겠습니다."
권우철은 그가 가지지 않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앞으로 꼭 필요한 사람인 것은 분명했다.
그와의 인사를 뒤로한 강준우는 검을 쥔 채로 앞으로 뛰어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퍼엉. 퍼엉.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고블린 워리어를 집중적으로 노렸다. 마음 같아서는 고블린 샤먼을 상대하고 싶었지만, 그 앞을 세 마리의 워리어가 가로막고 있었다.
샤멀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우선 워리어들을 쓰러뜨려야만 했다. 하지만 놈들의 맷집이 평범하지 않았다.
"쫌 죽어라! 이 개 같은 놈들아!"
"커헉."
앞에 있는 사람들이 놈들의 검을 막아냈다. 그들 역시 무공을 사용하며 마법사들의 앞을 지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자들은 계속해서 밀려났다. 그나마 간간이 날아드는 마법에 겨우 버티고 있었지만, 그들도 지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들이 워리어를 상대하는 사이, 강준우는 놈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기회를 노리며 옆으로 내달렸다.
콰아앙. 콰아앙.
고블린 샤먼이 마법을 쏟아냈다.
그 간극을 노린 강준우는 삼재심법으로 기운을 끌어 올리며 샤먼을 향해 달려들었다.
앞을 가로막고 있던 워리어들이 그의 존재를 눈치챘다. 하지만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절묘한 순간에 놈들을 노리며 마법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퍼엉. 퍼엉.
"크아아아!"
위급함을 알리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고블린 워리어들의 입에서 거친 포효가 들려왔지만, 고블린 샤먼들은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이미 마법을 쏟아내며 힘을 소진한 놈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잘하면…… 응? 저놈들은 뭐야?'
무방비에 가까운 샤먼을 향해 뛰어들던 강준우는 반대편에서 뛰어드는 무리를 확인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했다. 무리를 이루며 움직이는 놈들의 모습에 씁쓸해하던 그는 한 놈이라도 제대로 처리할 요량으로 철검을 꽉 쥐었다.
하지만 그 순간 요란한 괴성이 주변을 뒤흔들었다.
"쿠와아아!"
홉고블린의 포효였다. 마력이 깃든 놈의 포효에 샤먼에게 달려들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전과 다르게 홉고블린의 포효에는 제대로 된 힘이 실렸다.
다만,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강준우는 멀쩡했다. 천마신공이 예상치 못한 도움을 줬다.
[천마신공의 공능이 홉고블린의 마력을 이겨냅니다.]
마공에서 무조건 우위를 점한다는 천마신공의 공능은 그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남은 사람들이 머뭇거릴 때, 그는 여전히 움직일 수 있었다. 홀로 움직인 그는 목표로 한 고블린 샤먼을 향해 철검을 휘둘렀다.
'삼재검법!'
뛰어난 위력을 가진 검법은 아니었다. 그저 여러 방향으로 검을 휘두르는 게 전부였지만, 무작정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는 강한 위력을 낼 수 있었다.
촤아악.
"꺄아아악!"
피가 튀었다. 몸이 베인 샤먼이 발악하며 뒤로 물러났지만, 강준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삼재보법.'
그것을 떠올리기 무섭게 그의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단전에 있던 기운이 깨어나며 다리 쪽으로 향했다. 내공이 모이자마자 그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그저 몇 발자국 걷는 게 전부였지만,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며 순식간에 물러나는 고블린 샤먼을 따라잡은 것이다.
동시에 휘둘러지는 일격.
서걱.
"커억. 끄르륵!"
날카로운 일격에 목이 베인 놈이 목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차오르는 핏물에 숨을 쉴 수 없었는지 놈은 거친 기침을 토해내며 피를 뿜어댔다. 마지막 발악을 하며 발버둥쳤지만, 그런다고 무사할 수는 없었다.
[고블린 샤먼을 처치했습니다. 1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10포인트!'
일반적인 고블린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10배가 넘는 포인트에 깜짝 놀랐지만, 그 시간이 길지만은 않았다.
"쿠와아아아!"
수하가 쓰러졌다는 사실에 분노했는지 홉고블린이 그를 노려보며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강준우는 급히 몸을 돌리며 뒤로 내달렸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놈과 부딪쳐봐야 좋을 건 없었다.
'지금 싸워봐야 결과야 뻔하겠지.'
아무리 그래도 놈을 혼자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빼는 강준우의 행동에 홉고블린은 분개했다. 하지만 놈의 시선은 근처에 있는 또 다른 고블린 샤먼에게로 향했다.
간신히 굳은 몸을 풀어낸 자들이 남은 고블린 샤먼을 공격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수하를 죽인 놈을 찢어죽이고 싶었지만, 지금은 남은 수하를 돕는 게 우선이었다.
강준우를 뒤쫓던 놈은 아직 살아 있는 고블린 샤먼을 향해 뛰어갔다.
'후우. 다행히 놈을 따돌린 건가?'
뒤늦게 놈의 행동을 확인한 강준우는 안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고작 고블린 샤먼 한 놈을 처리했을 뿐이었다.
아직도 세 마리의 워리어와 한 마리의 샤먼이 존재했다. 무엇보다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는 홉고블린이 남아 있었다.
"막아! 우선 이놈을 먼저 처리한다!"
"아아악!"
뒤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
다른 샤먼을 살리기 위해 홉고블린과 또 다른 무리가 부딪치는 소리였다.
강준우는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 홉고블린을 상대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놈이 얼마나 강한 힘을 내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했다.
콰앙.
놈이 휘두르는 거대한 몽둥이에 앞을 가로막은 자가 튕겨져 나갔다. 다행히 즉사는 면했지만, 충격을 떨쳐낼 수 없는 것 같았다.
그가 비틀거리며 몸을 추스르는 사이, 남은 사내가 홉고블린을 상대했다. 하지만 그 역시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콰앙.
먼저 튕겨나가 사람처럼 그도 무기력하게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만은 않았다.
그들의 노력으로 시간을 번 자들이 고블린 샤먼을 공격했다. 특히, 개중에 한 명은 익숙한 얼굴을 한 놈이었다.
"비켜! 하압!"
크게 소리친 그는 손가락을 세우며 고블린 샤먼을 가리켰다.
'저놈은?'
처음 울타리 밖에서 고블린을 처리하던 권현수였다. 그의 손에서 한 줄기 섬광이 터져 나왔다.
일양지였다. 양강의 기운이 곧장 고블린 샤먼을 향해 날아갔고, 정확히 놈의 눈을 꿰뚫었다.
"쿠와아아!"
통나무 쓰러지듯이 뒤로 넘어가는 고블린 샤먼의 모습에 홉고블린이 포효했다.
분개한 놈이 주변에 있는 자들을 향해 화를 풀어냈고, 그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하지만 일양지를 사용한 권현수는 쉽게 움직이지 못 했다.
가진 힘을 모두 사용하고 탈진한 모습이었다.
'저런 병……'
대책 없는 그의 행동에 절로 혀를 찼지만, 그도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인 것 같지는 않았다.
홉고블린이 남은 자들을 상대하는 사이, 그와 함께 왔던 일행들이 그를 부축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그가 빠져나갔고, 그 모습을 확인한 강준우는 쓰게 웃었다.
'10포인트가 날아간 건가?'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고블린 샤먼은 쉬운 먹잇감이었다.
그 먹이를 놓쳤다는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저들 덕에 홉고블린의 마수를 피할 수 있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자들을 향해 홉고블린이 화를 푸는 동안,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강준우는 다시 몸을 돌렸다. 하지만 무사히 빠져나가려던 그는 걸음을 멈췄다.
그의 눈에 익숙한 뒷모습이 가득 들어왔기 때문이다.
'고블린 워리어들!'
다른 사람들과 상대하고 있는 놈들의 뒤통수가 가득 들어왔다.
그대로 뚝배기를 깨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뒤를 돌아보고 있는 놈들은 마치 죽여 달라는 것처럼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이대로 지나치기는 너무 아쉽잖아?'
한 놈만 쓰러뜨려도 10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얼마나 강한 놈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지금, 10포인트는 너무나 매력적인 숫자였다.
잠깐 고민을 했지만, 그 시간이 길지만은 않았다.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강준우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면서 남은 힘을 가늠했다.
삼재검법과 보법을 사용했지만, 내공을 모두 소진하지는 않았다. 비슷한 등급의 심법을 사용하면서 힘을 아낄 수 있었다.
'대략 세 번의 무공을 펼칠 정도는 되는 건가?'
삼재검법이든, 보법이든 세 번 더 사용할 정도의 내공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뒤통수를 내보이고 있는 놈을 충분히 잡을 수 있었다.
'기습적인 공격이라면 한 놈은 처리할 수 있겠지.'
마음을 다잡은 그는 곧장 놈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퍼엉. 퍼엉.
워리어들은 여전히 앞에 있는 자들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은밀히 접근하는 그의 모습에 앞에서 놈들을 상대하던 사람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꽤나 신경을 써서 움직였지만, 오히려 그들의 반응이 그를 방해했다.
'염병! 이러다가는 놈들한테 들키겠는데?'
아군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의 놀란 표정에 그는 곧장 바닥을 박차며 고블린 워리어를 향해 달려들었다.
제때 밟은 삼재보법이 그의 움직임을 더욱 빠르게 만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강준우는 힘을 아끼지 않으며 삼재검법을 펼쳤다.
푸욱.
내공이 실린 일격이 정확히 고블린 워리어의 뒷목에 박혀들었다.
놈은 잘게 몸을 떨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 모습에 분개한 또 다른 놈이 괴성을 지르며 강준우를 노리며 달려들었다.
그의 눈동자에 검이 가득 찼다. 옆에 있던 다른 고블린 워리어가 그에게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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