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화
<갈등>
"후우."
"몸은 괜찮아요?"
"전보다 나아졌어요."
"놀랍네요. 혼자서 그런 괴물을 잡을 수 있다는 게……"
"뒤치기잖아! 다른 사람들이 힘을 빼놓고 나서야 겨우 잡은 건데, 뭐가 놀라워?"
"너! 정말……"
김연희의 말에 옆에 있던 정민국이 투덜댔다.
그런 그의 행동에 김연희가 쌍심지를 켜며 노려봤지만, 정작 그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김연희로서는 그런 정민국의 행동이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눈치가 없는 거야, 아니면 생각이 없는 거야?'
이 정도의 강자한테 잘 보여도 모자랄 판에 딴지를 거는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에 조금 이기적이었던 정민국이었다.
어차피 그저 알고 지내는 정도로만 선을 그어놨던 그녀인지라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지금 그게 문제를 만들고 있었다.
굳은 강준우의 얼굴에 그녀는 대신 사과의 말을 건넸다.
"미안해요.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너무 예민한 것 같네요."
"그쪽이 사과할 일은 아닌 것 같네요."
"그, 그래도……"
"조금 전에 도움은 고마웠습니다. 일전에 도왔던 걸로 대신하죠. 그럼."
"……."
말을 마친 강준우는 자리를 벗어났다.
나름 친분을 쌓으려고 했지만, 정민국의 행동에 좋은 기회가 날아간 것 같았다.
당연히 김연희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내가 틀린 말 했냐? 사실이잖아! 다른 사람들이 힘을 빼놓은 거, 막타를 친 놈이잖아!"
"하아."
질시에 가득한 그의 말에 김연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굳이 이런 놈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답답하다는 듯한 반응과 함께 김연희가 자리를 피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정민국은 이를 악물었다.
'씨발! 조금만 강하다 싶은 놈한테 잘 보이려고 아양을 떨기는!'
굳이 말을 내뱉지 않았지만, 그는 그런 김연희를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전부터 눈여겨 뒀던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달가울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불편한 것은 권우철도 마찬가지였다.
"크흠."
헛기침을 내뱉은 그도 지친 몸을 이끌고 자리를 피했다.
따로 자리를 옮긴 강준우는 곧장 상점창을 확인했다.
새로운 무공을 유용하게 사용한 만큼, 적당한 무공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는 우선 스스로의 상태를 확인했다.
강준우(23세).
별호 : 無.
삼류 무인.
〈무공〉
천마신공(1成) - 8.32%.
삼재심법(1成) - 12.43%.
-삼재권법(1成) - 18%
-삼재검법(1成) - 30%
-삼재보법(1成) - 33%.
피어(1成) - 0%.
〈상태〉
내상 상태.
포인트 : 57.
'숫자가 올라갔잖아?'
많이 사용하지 않았지만, 옆에 있던 수치가 빠르게 올랐다.
다만, 천마신공의 숙련도는 고작 0.01%만 올랐을 뿐이었다.
그만큼 난해한 무공이었다. 극악의 성장률을 보이는 천마신공의 모습에 그는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기본이 되는 다른 무공들의 성장은 비교적 빨랐다.
가만히 상태창을 바라보던 그는 새롭게 나타난 '상태'라는 항목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상 상태라니.'
내상.
단전에 손상이 가고 기맥이 망가진 상태.
작은 내상으로 내공의 흐름이 부연스러울 수 있음.
홉고블린과의 싸움으로 얻은 내상이 치유되지 않았다.
친절한 설명이 떠오르자, 강준우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제대로 된 힘을 내도 모자랄 판에 부상으로 가진 힘을 제약받는 다는 게 달가울 리가 없었다.
하지만 번뜩 떠오르는 생각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권현수는 어떻게 된 거지?'
그 역시 내상을 입었던 게 분명했다.
처음에 울타리 안에서 고블린을 잡을 때는 물론이고, 고블린 샤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몸을 가누지 못 했던 적이 있었다.
설명대로라면 그도 제대로 된 힘을 내지 못 해야 자연스러웠다.
'그런데도 놈은…… 홉고블린에게 비슷한 무공을 사용했잖아?'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권현수를 찾자, 멀쩡한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일행들에게 끌려가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상태는 멀쩡했다.
'내상을 치료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
정상적인 그의 모습에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힐을 이용해서 치료를 받았다고 하지만, 완치될 정도는 아니었다.
권우철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힐에 진전을 보였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직접 경험한 만큼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강준우는 의아해하며 상태창을 바라봤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포인트로 무공의 성취를 올릴 수 있나?'
그게 아니라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권현우가 앉은 자리에서 이용할 수 있는 거라고는 상태창뿐이었다.
고블린 워리어나 홉고블린 등과 상대하는 중간에는 상점창이 열리지 않았다.
강준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마신공의 성취를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예의 목소리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려왔다.
[등급 외의 무공은 포인트로 성취를 올릴 수 없습니다.]
'포인트로 성취를 올릴 수 없다? 등급외의 무공만?'
앞으로 중하게 쓰일 무공의 성취를 올릴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지만, 아직 남은 무공이 있었다. 기초적인 것들뿐이었지만, 앞으로는 주력으로 쓰일 거라는 사실에 그는 삼재심법의 성취에 관심을 가졌다.
[포인트를 소진하여 '삼재심법'의 성취를 올리겠습니까?]
[현재 성취에 따라 포인트로 올라가는 성취의 양이 달라집니다.]
'이건가?'
지금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았다.
어차피 위력이 높아져서 나쁠 것은 없었다. 마음을 먹은 그는 곧장 포인트를 투자해서 삼재심법의 성취를 높였다.
1성의 삼재심법은 1포인트당 10%를 올릴 수 있었다.
9포인트를 사용하면서 성취를 높이자, 그의 단전에서부터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쏴아아아.
단전에서부터 피어오른 미증유의 힘이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청량감이 온 몸을 가득 채웠고, 아릿했던 단전과 기맥의 고통이 사라졌다.
[삼재심법이 2성으로 올라섭니다. 심법의 안정성이 더욱 강해집니다.]
[하위 내공의 성취로 내공의 크기가 늘어나지 않습니다.]
[심법의 영향으로 천마신공의 이해도가 8.3% 상승합니다.]
계속되는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강준우는 마지막에 들린 소리를 확실히 인지했다.
'천마신공이?'
생각지도 못한 효과였다.
그저 삼재심법의 성취를 높인 것만으로도 천마신공의 이해도가 상승했다는 것은 그에게 기연이나 다름없었다.
눈에 도드라진 효과는 없었지만, 포인트로도 올릴 수 없는 천마신공의 성취를 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사, 상태창!'
흥분한 그는 곧바로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강준우(23세).
별호 : 無.
삼류 무인.
〈무공〉
천마신공(1成) - 16.62%.
삼재심법(2成) - 2.43%.
-삼재권법(1成) - 18%
-삼재검법(1成) - 30%
-삼재보법(1成) - 33%.
피어(1成) - 0%.
포인트 : 48.
정말로 천마신공의 숙련도가 높아졌다. 알 수 없는 알림은 다른 점들도 언급했지만, 그게 뭐든 상관없었다. 지금은 달라진 상태가 중요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내상이 나았다는 사실이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확인한 강준우는 흐뭇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권현수도 이런 식으로 내상을 치료한 건가?'
심법의 성취를 높이면서 돋았던 내상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
아무래도 운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치유가 될 것 같았지만, 지금은 운기를 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 걱정을 뒤로한 그는 아직 확인하지 않은 무공을 살펴봤다.
'이것도 무공이라고 할 수 있나?'
'피어'라는 능력이었다. 당당히 무공이라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그것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피어.
마력에 의지를 담아 대상에게 작은 공포를 심어줄 수 있다.
영향을 받은 대상은 공포에 휩싸여 패닉에 빠진다.
강도에 따라 소진하는 마력(내공)의 양이 달라진다.
순간 몸을 경직되게 만들었던 홉고블린의 능력이었다.
이런 것을 무공으로 얻는다는 게 놀라웠지만, 잘만 사용하면 상당히 유용할 것도 같았다.
대충 능력을 확인한 그는 남은 포인트를 확인하며 고심했다.
포인트를 이용해서 이대로 남은 무공의 성취를 올릴 것인지, 또 다른 무공을 얻을 것인지 쉽게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E등급의 무공들이라.'
그는 가만히 상점창을 바라봤다.
남은 41포인트로 잠긴 E등급의 상점창을 열고 새로운 무공을 얻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또 다른 무공을 염두에 두던 그였지만, 번뜩 스치는 생각에 다른 항목을 바라봤다.
'힐을 배울 수 있으면 위급한 상황에 잘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무공보다 몸을 회복시킬 수 있는 다른 이능을 손에 넣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마법으로 분류되어 있는 곳에서도 신성 마법에 힐이라는 스킬이 자리 잡고 있었다.
"흐음."
문제는 힐을 배우기 위해서 반드시 배워야하는 신성 마법을 배울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미 무공을 익힌 그로서는 마법을 얻을 수 없었다.
'이럴 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데.'
혼자서 싸우고 회복까지 할 수 있는 방법은 막아둔 것 같았다.
포인트는 충분했지만, 마법 계열의 힘을 얻을 수는 없었다. 달갑지 않은 사실에 아쉬워하던 그는 씁쓸해하며 남은 포인트를 사용했다.
우선 E등급의 무공을 얻을 수 있는 상점창을 해제하고, 삼재보법과 삼재검법을 2성까지 끌어 올렸다.
두 무공을 2성까지 올리자, 초식의 운용과 파괴력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기에 천마신공의 성취를 올리기 위해서 육합심법을 배우려고 했지만, 기본이 되는 심법은 하나밖에 익힐 수가 없었다.
몇 가지를 제외하고 다른 꼼수가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생각처럼 되지 않는 상황에 씁쓸해하며 남은 무공을 살폈다.
E등급 무공은 F등급과 다르게 효과적인 무공들로 채워져 있었다.
어설프게나마 들어봤던 무공들이 여럿 있었지만, 심법으로 보이는 무공은 나열되어 있지 않았다.
'대부분 20포인트네.'
등급이 올랐다고 익히는데 필요한 포인트도 배로 늘어났다.
강준우는 쓸만한 것을 찾기 위해서 고민했지만, 다른 무공들 중에 쉽게 손이 가는 것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일련의 무리들이 다가왔다.
"저기요!"
"…… 무슨 일이죠?"
혼자 떨어져 있는 그에게 찾아온 사람들.
개중에 한 명은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얼마 전에 철검을 빌렸던 자로, 그가 앞장선 채로 그와 마주했다.
"이 철검이요. 날이 나간 것 같은데. 어떡할래요?"
"……."
생뚱맞은 소리에 강준우는 황당해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여기! 날이 상했다고요."
"그래서요?"
"그래서요는 무슨 그래서요? 빌려간 물건을 손상시켰으면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필요할 거 아닙니까?"
"……."
터무니없는 말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강준우는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싸늘한 시선에 사내는 움찔거렸지만, 다행히 그와 뜻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았다.
"뭐? 그렇게 쳐다보면 뭐? 어쩌라고?"
"그냥 가세요. 이런 일로 다투고 싶지 않으니까."
"하아. 어이가 없네!"
"……."
"내가 괜히 왔겠냐? 이 철검이 없었다면 그 고블린들도 잡을 수 없었을 거 아니야? 거기에 빌려간 검을 상하게 만들었으면 그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지!"
사내는 큰소리를 내며 강준우를 몰아붙였다.
그가 멀쩡한 상태라면 이럴 일을 벌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꽤나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이후였다.
사내는 홉고블린을 쓰러뜨리면서 붉은 피를 게워내던 강준우의 모습을 확인했다.
내상을 입었다면 쉽게 회복할 수 없었을 거라는 지인의 말에 그들과 함께 강준우를 찾은 것이다.
'그 많은 포인트를 얻었다면 뭐라도 내놓겠지.'
그들도 현실을 자각했다. 지금 처한 상황은 꿈이 아니었다.
언제 다시 그런 적들과 만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작은 이점이라도 얻어야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록, 앞에 있는 자가 무시무시한 놈들을 처리했다지만, 그것 역시 지친 놈들을 공격하면서 간신히 얻은 승리였다.
그 사실을 염두에 둔 그들은 정상이 아닐 강준우를 압박했다.
최소한 동급의 검이라도 얻어낼 요량이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강준우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꺼져. 병신아. 뒈지기 싫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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