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화
<갈등>
"뭐, 뭐라고? 병신?"
"이 새끼가 미쳤나!"
강준우가 이들의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다른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그를 향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앞으로가 피곤해질 게 분명했다.
"그래서? 어떡하자고?"
"씨발! 말이 짧다?"
"먼저 말을 짧게 한 건 너였어."
"대가를 내놓으라고. 이 새끼야. 이걸 망쳤으면 그에 따른 대가를……"
"내 덕에 산 것 같은데, 그럼 너는 뭘 내놓을 거지?"
"무슨 개소리야? 네 덕에 살다니?"
"홉고블린을 처리한 건 나고, 너는 그걸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 그건 뒤에 있는 당신들도 마찬가지고."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앞에 나선 사내를 대신해서 뒤에 있던 자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네가 아니어도 잡았을 놈이었어."
"그런가?"
"좋게 말할 때, 쉽게 가자고. 10포인트 정도면 충분 할 거야. 그걸로 음식을 대신 구입해주면 이대로 물러가도록 하지."
드러난 본색에 강준우는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나선 자들을 노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좆까!"
강준우의 대꾸에 사내는 검을 꺼내들었다. 그의 주변에는 여러 동료들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한다면 앞에 있는 놈도 어렵지 않을 게 분명했다.
딱히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그저 윽박을 지른 뒤에 포인트만 나눠가질 생각이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용기를 불어 넣어줬다. 앞으로 함께 하자고 약속한 사람들이었다.
거기에 앞에 있는 강준우는 정상이 아니었다. 아무리 홉고블린을 처리했다고 하지만, 내상을 입은 상태라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강하게 나오면 꼬리를 말 거라는 생각은 틀어졌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에서 물러나면 다른 사람들한테 얕보일 거야. 개새끼! 그냥 순순히 말을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는 강준우의 욕설과 함께 검을 뽑았다. 동시에 섬광이 번뜩였다.
촤아악.
"아아악!"
"이런 개 같은!"
강준우는 시비를 건 사내의 옆에 있던 자에게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아무래도 그가 옆에 있는 놈을 종용한 것 같았다.
고블린 워리어에게서 얻은 검이 앞선 자의 가슴을 베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황한 사내는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지만, 온전히 피하지는 못 했다.
순식간에 가슴이 베이며 피가 튀었고, 놀란 사내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얕다. 보법으로 피한 건가?'
작정을 하고 휘두른 검격이었다. 하지만 손끝에 남은 감각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짧은 순간 물러나는 모습으로 봐서 사내는 제법 뛰어난 보법을 익히고 있는 것 같았다. 마저 그를 끝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았지만, 이미 겁을 집어먹은 채로 덜덜 떨고 있는 모습으로 봐서 큰 위협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수적으로는 불리했다.
시간을 끈다면 오히려 당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한 놈을 확실하게 잡고 기선을 제압해야지!'
작정을 한 그는 철검을 빼든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옆에 있던 동료가 피를 뿌리며 무너지자, 검을 꺼내든 자는 강준우를 향해 급하게 검을 겨눴다. 하지만 그때는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위, 위험해!"
"아래다. 조심해!"
뒤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뒤늦게 시선을 돌려자, 강준우의 모습에 가득 들어왔다.
어느새 거리를 좁힌 강준우가 검을 앞세우며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뭐, 뭐야?"
정상이 아닐 놈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오히려 멀리서 지켜봤던 것보다 더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고작 2성에 오른 삼재보법이었지만, 천마신공의 힘을 끌어올리자 상대가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을 내보였다. 순식간에 품을 파고든 강준우는 과감하게 움직였다.
푸욱.
"흐읍!"
"뭐야?"
그의 검은 정확히 사내의 가슴을 찔렀다. 하지만 내지른 검은 그의 피부를 파고들지 못 했다.
단단한 무언가에 막힌 느낌이었다.
급하게 시선을 돌리자, 부들부들 떨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대의 표정이 가득 들어왔다.
'뭐지? 무공인가?'
이상함을 감지한 그는 다시 내공을 끌어올리며 삼재검법을 펼쳤다.
촤아악.
횡소천군의 초식으로 가슴을 베어내자 피가 튀었다.
"아아악!"
뒤늦게 고통과 공포가 섞인 비명이 뒤를 이었지만, 강준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얕잖아?'
따로 뒤로 물러난 것도 아니었지만, 손에 남은 감각이 얕았다.
마치 딱딱한 바위를 베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리도 멀지 않았다. 곧장 피를 뿌리고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고작 살갗을 베어낸 것이 전부였다.
사내의 몸에서 피가 새어나왔다. 그렇다고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 했다.
뭔가에 막힌 듯한 공격에 그는 다시 사내의 목에 검을 찔러 넣었다.
"끄으윽."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남자.
강준우의 검은 사내의 목을 파고들지 못 했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나름 체중을 실으며 그를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검첨이 상대의 목을 아주 조금 파고들었을 뿐이었다.
'무공이 확실한 것 같은데.'
"끄으아아아!"
힘을 쥐어짜낸 사내는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점점 힘에 부친지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런 그를 돕기 위해서 뒤에 있던 자들이 분주히 움직이려고 했지만, 강준우는 더 강한 힘을 쏟아냈다.
삼재심법을 운용하던 힘에 천마신공의 힘을 조금 더했다.
힘을 조금 끌어냈을 뿐이지만,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이 전해졌다.
푸욱. 푸욱.
"끄아…… 커억!"
힘겹게 버티던 자는 결국 목이 꿰뚫린 채 쓰러졌다.
꽤나 끈질겼지만, 천마신공의 힘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의 검을 힘겹게 막아내는 사이 그를 공격이라도 했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사내는 그럴만한 경험이 없었다.
'후우. 이 정도는 끌어내도 괜찮은 건가?'
다급한 상황이라 작은 힘을 빌렸지만, 이전과 같은 사단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퍼져 나오는 비릿한 혈향이 그를 일깨웠다.
사내가 쓰러진 주변이 피로 흥건해졌다.
목에서 새어나오는 붉은 피에 놀란 자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강준우는 그런 그들을 쫓지 못 했다.
새로운 알림음에 도망가는 자들을 쫓을 겨를이 없었다.
[처음으로 동족을 처리한 것에 대한 대가가 주어집니다.]
[쓰러뜨린 상대의 모든 무공이 100% 확률로 귀속됩니다. 동일한 보상은 다시 주어지지 않습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을 처리했지만, 이런 보상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그런 보상과 별개로 강준우는 얼굴을 절로 찌푸렸다.
고블린을 처리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담담했다.
살아 숨 쉬는 생명체였지만, 그래도 같은 동족은 아니었다.
적의를 가진 놈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자책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상대한 자는 달랐다.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살인은 살인이었다.
본보기를 보이면서 이런 일을 다시 만들지 않을 요량으로 과감하게 손을 썼다.
자신을 건드리면 좋지 못한 꼴을 볼 거라고 알리고 싶었지만, 막상 쓰러진 자를 보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씨발!'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은 그는 흔들리는 마음과 다르게 의연하게 행동했다.
잘게 떨리는 손을 감추며 쓰러진 사내의 손에서 검을 빼앗아 들었다. 지금은 동요하는 모습보다 냉정한 모습을 보여야 할 때였다.
사내의 죽음에 그를 부추겼던 자들은 질겁하며 도망갔다.
행여라도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하며 도주를 택했고, 처음 강준우의 공격에 가슴이 베인 자도 사력을 다해서 물러났다.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며 물러나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뛰어난 경공이나 보법을 익힌 게 분명했다.
겁이 질린 사람들의 시선.
그 안에 담긴 두려움과 경멸의 감정을 뒤로한 강준우는 쓰러진 시체를 담담히 내려다보며 몸을 돌렸다.
'후우. 후우.'
애써 호흡을 고른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 거야. 그냥 적을 죽인 것뿐이니까…… 괜찮아.'
겉으로는 침착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썼다.
담담한 표정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애써 내색하지 않은 그는 사람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
"괜찮은 겁니까?"
"괜찮지 않을 이유라도 있을까요?"
"그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강준우를 찾아온 사람은 권우철이었다. 그는 김연희와 함께 그를 찾으며 조심스럽게 상태를 물었다.
딱딱한 말투로 봐서 괜찮은 것 같았다.
오히려 걱정해서 찾아온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미 사소한 일로 엮인 자의 악의로 황당한 꼴을 겪은 강준우였다. 그런 그를 찾아온 것도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선례가 있었고, 권우철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강준우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웠다.
"무슨 일입니까? 그걸 물어보려고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그걸 물어보려고 왔는데요?"
권우철을 대신해서 김연희가 답했다.
앞선 놈들과 같은 사람으로 보지 말라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말투였다.
"걱정해줘서 고맙군요. 보시다시피 괜찮습니다."
"……."
김연희의 말에 멋쩍어하던 강준우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애써 여기까지 찾아온 그녀는 그의 반응에 입술을 쌜룩였지만, 그렇다고 그런 불만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다치신 곳이 있으면 제가 도움을……"
"괜찮아요. 다친 곳은 없습니다."
"…… 예."
어색한 상황이 이어졌다.
아직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없는 강준우의 이런 반응은 당연했지만, 그와 함께 하려고 생각했던 두 사람도 선뜻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할 말이라도 있는 겁니까? 조금 전에 있었던 놈들처럼 보상이라도 바라는 건가요?"
"아, 아니요! 그럴 리가요!"
"그것 때문에 온 거 아니에요."
보상이라는 말에 놀란 두 사람이 손을 가로저었다. 하지만 강준우의 눈초리가 곱지 않자, 다급하게 자신들의 뜻을 밝혔다.
"사실, 그쪽 생각을 묻기 위해서 왔습니다."
"생각이라니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강준우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권우철은 마저 설명을 이어갔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이런 일이 이번 한 번으로 그칠 것 같지가 않아서요. 아무래도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요?"
"서로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무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나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결국 동료가 되자는 말이었다.
강준우 역시 그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앞에 있는 권우철의 힐이라면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여겼지만, 개중에 내키지 않은 사람이 섞여 있었다.
'한 놈은 어디 있지?'
유난히 적대적인 모습을 보인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살피자, 그들과 멀리 떨어진 구석에서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민국이는 일부러 두고 왔어요."
"……."
"좀 싸가지는 없어도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닐 거예요.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요? 앞으로 사람들을 모을 생각에요. "
김연희의 말에 그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아직 둘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뜻 그들의 손을 잡는 게 내키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김연희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저는 마법사…… 아니, 마법을 익혔어요."
"마법?"
"선배처럼 신성마법은 아니고. 기본적인 서클 연공법하고, 처음에 얻은 헤이스트라는 마법을 가지고 있어요."
헤이스트라는 말이 솔깃하게 들렸다.
'신성마법과 일반마법인가? 나쁜 조합은 아닌데.'
권우철과 김연희는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봤다.
강준우는 누구보다 인상적인 활약을 보인 사람이었다. 그와 힘을 합친다면 생존하는 게 어렵지 않으리라는 판단이었다.
비록, 정민국이 내켜하지 않았지만, 그들 셋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나름 파벌을 형성해 나가고 있었다.
이미 여러 명이 뭉쳐서 세를 형성하는 곳도 눈에 띄었다. 크기가 커진 만큼 몰려드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되자 그들은 사람들을 가려서 받기 시작했다.
고블린과의 싸움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있었다.
'혼자서는 무리가 있겠지?'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괜한 분란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과 섞이는 게 더 골치 아팠다.
대충 마음을 정했지만, 그런 그를 향해 또 다른 무리가 다가왔다.
그들은 강준우도 얼굴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권현수?'
권현수가 무리를 이끌고 그에게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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