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화
<갈등>
생각을 정리한 그는 남은 포인트를 이용해서 허기를 채웠다.
고작 1포인트를 사용한 것뿐이었지만, 팔뚝만한 빵을 얻을 수 있었다.
소진한 체력을 회복하면서 음식을 섭취한 강준우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포인트로 음식까지 얻어야 한다라.'
포인트를 마냥 무공이나 능력을 키우는 것에 투자를 할 수만은 없다는 뜻이었다.
따로 음식을 구할 방법이 없다면 포인트를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당연히 포인트의 가치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포인트를 얻는 방법이 고블린 같은 놈들을 사냥하는 것뿐이라는 점이었다.
목숨을 걸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만큼 걱정이 일었다.
허기를 채우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관심은 그에게 집중됐다.
아무래도 눈에 띄는 행동을 보인 만큼 여러 사람들의 방문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그에게 또 다른 사람이 찾아왔다.
"제가 너무 늦은 건 아니겠죠?"
"……."
의미심장한 말에 시선을 돌리자, 낯이 익은 여자가 그를 향해 다가오면 손을 뻗었다.
"백선화라고 해요."
"……."
백선화.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그리고 얼굴 역시 낯설지 않았다.
'연예인?'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여배우였다. 이 자리에 연예인도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 했다.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인물이 나타나자 그는 빤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만큼 의외였고, 놀라웠다. 무엇보다 직접 마주한 연예인의 얼굴은 처음이었다.
'괜히 연예인이 아닌가?'
그런 강준우의 시선이 낯설지 않았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처음 그녀와 마주하면 쉽게 말을 잇지 못 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겠어.'
썩 달가운 시선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런 강준우의 반응이 반가웠다.
적어도 생각한 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민망하네요. 악수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
여전히 손을 내민 그녀의 환하게 웃어 보였다. 가지런한 치아가 눈에 도드라져 보였다.
싱그러운 느낌이 가득한 미소에 다시 한 번 앞에 있는 백선화가 왜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지만, 그 순간 천마신공이 경종을 알려왔다.
[천마신공의 공능이 상대의 힘을 간파합니다.]
[매혹이 무효화 됩니다.]
'히, 힘? 매혹?'
자연스러운 행동 안에 인위적인 힘이 담겨 있었다.
경각심을 가진 그는 달라진 눈빛으로 백선화를 바라보며 차갑게 물었다.
"무슨 짓입니까?"
"……."
"무슨 짓이냐고 물었는데요?"
예상과 다른 그의 반응에 오히려 백선화가 당황했다.
남들과는 다른 외모와 매혹이라는 마법으로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었지만, 강준우에게는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싸늘한 눈빛에 그녀는 뒤늦게 얼버무리며 말했다.
"무, 무슨 짓은요. 저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온 거죠."
그녀 역시 강준우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 직접 그를 찾았다.
이미 상당한 사람을 모았는지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일련의 무리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끌어 모은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강준우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혼자 그를 찾았다. 이미 그에게 일어났던 일을 지켜봤던 만큼 괜한 오해를 사지 않으려는 생각이었지만, 오히려 더 큰 실수를 한 것이다.
아직 그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지 못한 그녀는 다시 한 번 그의 뜻을 물었다.
"우, 우리와 함께 하는 건 어때요?"
"……."
"모인 대부분이 마법을 사용하고 있어요. 가만히 지켜봤는데, 당신은 아마도 무공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우리와 함께 한다면 당신을 충분히 도울 수 있을 거예요."
백선화의 말투에서도 강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 말을 곱씹던 강준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부분이 마법사라면 전방에 나서야만 하는 사람은 본인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백선화 역시 권현수와 마찬가지로 이미 무리를 장악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매혹이라는 힘을 은밀하게 사용했다는 사실이 찝찝했다.
누군가에 의해서 강압적으로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리를 이룬다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다. 조금 더 안전할 지도 몰랐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싸운다는 보장도 없었다.
'머릿수만 많은 건가? 고블린하고 싸웠던 사람은…… 많아보이질 않네.'
백선화의 뒤에 있는 자들을 확인한 그는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그렇다고 굳이 각을 세울 필요는 없었다.
"아직은 혼자가 편할 것 같네요."
그런 강준우의 반응에 백선화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은 강준우를 끌어들이는 게 가장 중요했다. 홉고블린을 잡으면서 인상적인 모습을 남긴 것도 컸지만, 누구보다 많은 포인트를 얻었을 그였다.
그녀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그를 이대로 놓칠 생각이 없었다.
"서로가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여러 면?"
"알 수 없는 타지에서 서로 위로가 될 수 있지 않겠어요?"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은연중에 팔짱을 끼며 가슴을 도드라져 보이게 만드는 그녀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강준우는 헛웃음을 보이며 다시 한 번 확실히 했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군요."
"……."
다시 밝힌 거절의 뜻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런 노골적인 말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름 큰마음을 먹고 그를 끌어들이려고 했지만, 거절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 했다.
'이 새끼. 게이 아니야?'
제안을 거절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민망함에 붉어진 얼굴을 뒤로한 그녀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아쉽네요. 그래도 앞으로 힘을 합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굳이 서로가 적대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요."
"적대할 필요는 없겠죠."
"그럼 잘 부탁해요."
강준우는 백선화가 내민 손을 다잡았다.
이런 식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비록 같은 무리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적대적인 관계보다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게 나았다.
백선화도 그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지금은 강준우를 끌어들이지 못 했지만, 언젠가는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무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앞서가고 있었지만, 이런 운과 활약이 언제까지 이어질 거라고는 보장할 수 없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때도 독보적인 모습을 보이면 그때 손을 내밀어도 충분했다.
***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주시하던 권현수의 입술이 비틀렸다.
백선화 역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비싼 놈이네."
"제 분수를 모르는 놈이지. 미친놈. 백선화를 마다하고……"
"그렇게 좋으면 너도 저년한테 가지 그러냐?"
"그, 그게…… 그럴 리가 없잖아. 나야 현수 너한테 충성을 맹세했으니까."
비굴한 그의 모습에 권현수는 헛웃음을 흘렸다.
현실에서나 여기에서나 아래에 있는 놈들의 이런 모습은 자연스러웠다.
그는 무시하지 못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일양지라는 무공을 손에 넣었다. 비록, 다루기 힘든 놈이었지만, 이제 두어 번은 사용할 수 있었다.
단발성에 그친 공격이었지만, 그것만으로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을 토대로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고, 현실에서의 경험을 살리며 사람들을 대하자 무리를 이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강준우라는 놈이었다.
자신이 직접 한 제안을 거절한 강준우의 행태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그냥 거절을 한 거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문제는 다른 무리들도 놈을 노린다는 점이었다.
'저런 놈한테 너무 큰 관심이 돌아간단 말이지.'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놈이 모두의 이목을 끌고 있다는 것.
그 중심에 서야 할 사람은 본인이었지만, 제 것을 강준우에게 빼앗긴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다고 지금 그 불만을 내보일 수도 없었다.
지금 왜 이 상황을 마주하게 됐는지, 또 여기가 어디인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끌려오다시피 한 낯선 장소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낯선 생명체.
적의를 가지고 달려드는 놈들의 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강준우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노골적인 적의를 보일 필요는 없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감정만 앞서서 그와 마찰을 만든다면 오히려 낭패를 겪을 수 있었다.
괜히 전력이 깎이면 도태될 것이 분명했고, 다른 무리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런 상황은 피해야만 했다.
지금은 불만이 있더라도 참아야만 했다. 그렇다고 그들을 마냥 지켜볼 생각은 없었다.
"강준우라는 놈. 어떤 놈이냐?"
"글쎄. 저놈도 워낙 아싸라. 그냥 수업 때만 간간이 봐서 잘 모르겠는데."
"……."
"그냥 무시해도 될 놈 같아. 운이 좋아서 좋은 걸 얻었나보지."
지금이야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앞으로가 중요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는 여기 있는 누구도 알지 못 했다. 중요한 것은 힘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처음이야 겁을 집어먹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이 상황에 순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모으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놈이 마음만 먹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를 게 분명했다.
아직 무리에 들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었다. 기회가 되면 그가 만들 무리에 들어가려는 눈치였다.
'저놈들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결국에는 쪽수가 중요했다.
그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느냐가 큰 힘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아직은 제대로 된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모두가 작은 능력이라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큰 힘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먼저 모인 사람들을 토대로 세를 불려갔다.
권현수를 주축으로 해서 모인 사람들은 가볍게 두 자리가 넘어가고 있었다.
백선화와 권현수가 주축이 된 곳이 가장 많은 인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각자의 힘을 합치고 있었지만, 인원만 따지자면 그들에 비할 바는 못 됐다.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는 없지. 우리 중에 가장 포인트를 많이 얻은 놈인데."
"……."
"사람을 붙여야겠다."
"사람을 붙이다니?"
"어떻게 움직이는지 감시하라는 거야."
"가, 감시?"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에 김기철이 당황해하며 물었고, 권현수의 미간이 절로 구겨졌다.
"한 번 말하면 그냥 알아들어라! 붕어도 아니고."
"아, 아니. 괜히 잘못하다고 저놈 심기를 건드리면 어떡해?"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되냐?"
"그, 그건 아니지."
"걸리면 그냥 꼬리를 자르면 되잖아. 왜? 싫어?"
"아, 아니야. 알았어. 네 뜻대로 할 게."
권현수는 뒤늦게 답을 하는 김기철의 모습에 답답해했다. 하지만 그를 버릴 생각은 없었다.
김기철 역시 꽤나 괜찮은 무공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이런 병신하고 함께 해야 하다니. 쯧'
크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이미 일양지의 위력을 확인한 김기철은 오히려 그의 눈치를 살폈다. 권현수는 그런 그에게 도 다른 지시를 내렸다.
"정민국이라고 했던가? 형선이가 정민국하고 잘 안다고 했지?"
"아마 그랬던 것 같아."
"형선이를 불러 와."
"정민국을 끌어들이려고? 그놈은 큰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오히려 강준우하고 각을 세우려고 하지 않았어?"
"……."
권현수는 김기철의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신,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니, 나는 걱정이 돼서."
"너는 그냥 시키는 것만 잘하면 돼. 알았어?"
"아, 알았어. 바로 형선이를 불러 올게."
급하게 움직이는 그 모습에 권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실에서는 상대도 하지 않았을 놈의 오지랖에 절로 얼굴이 구겨졌다.
"씨발, 어쩔 수 없나? 저런 새끼들하고 같이 지내야 한다니."
내키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은 저런 놈이라도 아쉬웠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