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화
<빈집털이>
강준우는 과감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긴장을 떨쳐낼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디딘 그는 입구로 보이는 곳과 반대편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그는 최대한 소리를 줄여야만 했다. 이곳에서 소리를 흘린다면 수많은 고블린을 한꺼번에 상대해야만 했다.
묘한 긴장감이 가득한 곳에서 움직이던 그는 다른 움집과는 동떨어져 있는 곳으로 들어섰다.
조잡하게 만들어진 움집이었다.
이곳에 있는 건물은 대부분이 비슷한 형태였다. 뻥 뚫린 입구라 밖에서도 안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검을 뽑아들고 언제라도 공격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했다.
하지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뭐지?'
분명히 마을에 남은 고블린이 존재했다.
그 수도 작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텅 빈 안을 살핀 그는 근처에 있는 다른 움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곳 역시 텅 비어 있었다.
'너무 바깥쪽에 있는 곳이라 고블린이 없는 건가?'
잔뜩 긴장한 그는 허무함을 느끼며 다시 밖으로 향했지만, 그가 있던 곳으로 고블린 한 마리가 들어섰다. 아무래도 이 움집의 주인인 것 같았다.
"……."
있을 수 없는 생명체가 떡 하니 집에 있자, 고블린의 움직임이 멈췄다.
낯선 생명체의 침입은 그들로서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고블린은 놀란 눈으로 강준우를 바라봤고, 그는 곧장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끄륵!"
그대로 목을 꿰뚫린 고블린이 쓰러졌다. 다른 성인 고블린과 비슷한 키를 가지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왜소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1포인트 획득하였습니다.]
무장도 하지 않은 놈을 쓰러뜨리자, 예의 알림음이 상황을 알려왔다.
한 놈을 쓰러뜨린 그는 그 소리에 만족하며 쓰러진 놈을 움집 안으로 끌어당겼다.
되도록이면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만 했다. 은밀하게 움직이면서 놈들의 수를 줄이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죽은 놈을 숨긴 그는 다른 움집으로 향했다.
인근에 있는 움집을 차례차례 방문하면서 수를 줄여나갈 생각이었다.
최대한 들키지 않고 놈들을 처리하려고 했지만, 이번에 들어선 곳은 전과 다르게 네 마리의 고블린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수였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덩치를 가진 놈들이었다.
그는 곧장 다른 고블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싸움에 대한 경험이 없었는지 놈들은 그를 마주하고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조금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지만, 언젠가는 그의 목숨을 위협할 놈들이었다.
푸욱.
강준우는 곧장 어린 고블린의 가슴을 찔렀다. 동시에 예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어린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1포인트 획득하였습니다.]
어린놈들이라도 고블린은 고블린이었다.
다른 고블린과 똑같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반겼다. 하지만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에 일이 복잡하게 꼬였다.
쓰러진 놈을 확인한 세 놈이 괴성을 질러댔다.
"끼악! 끼악!"
남은 고블린들이 크게 소리치자, 당황한 그는 곧장 놈들을 향해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세 놈을 처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가 예상했던 것처럼 어린 고블린은 너무나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문제는 놈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새어나간 소리였다.
비명을 들었는지 다른 고블린들이 모여들었다.
대략 10마리 정도의 수였다. 저마다 무기를 들고 있는 걸로 봐서 이곳을 지키는 놈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개중에 몇 놈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는 점이었다.
'워리어? 고블린 워리어가 남아 있었나?'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나타난 고블린들은 바로 덤비지 않고 움막 입구를 포위하며 무기를 겨눴다.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놈들의 모습에 확실히 성인이 된 고블린을 상대하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강준우도 놈들의 행동에 맞춰, 적절한 대응을 했다.
그는 입구를 사이에 두고 뒤로 물러났다. 공격이 날아오는 공간을 줄일 생각이었다.
좁은 입구에서 상대할 놈들은 많아야 두 마리였다. 놈들이 허술한 움집을 부수며 달려들면 더 많은 놈들을 상대해야겠지만, 다행히 놈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움집 안으로 들어서는 것 자체가 퇴로를 버리는 격이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 자체가 요원했다.
'어쩔 수 없지. 여기에서 놈들을 상대하는 수밖에!'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되도록이면 남겨진 놈들을 은밀하게 상대하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그럴 능력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을을 지키는 고블린들의 수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곳에 모인 놈들이 전부인 건가?'
적어도 이놈들을 쓰러뜨리면 여유를 찾을 수 있을 지도 몰랐다.
개중에 워리어라고 불리는 놈이 섞였다는 게 문제였지만, 지금은 날아드는 검을 막아내는 게 먼저였다.
채앵.
갑작스러운 기습이었지만, 일반적인 고블린의 공격을 막아내는 게 어렵지만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힘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고블린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섬뜩한 소리와 손끝에 남은 묵직한 감각.
축 늘어진 고블린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포인트를 얻었다는 소리에 놈이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보다 더 수월한 것 같은데?'
삼재심법의 성취가 높아지면서 힘이 더 많이 실리는 것 같았다.
일전에는 그저 고블린의 공격을 막아내는 게 전부였지만, 지금은 평범한 놈을 압도하고 있었다.
한 놈이 쓰러지자, 남은 놈들이 경각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홉이라.'
이전에는 상대하기 버거운 수였지만, 이제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달라진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워리어가 끼어 있다면 말은 달라졌다.
일반적인 고블린들이야 어렵지 않았지만, 워리어는 아니었다.
이미 놈들의 힘을 겪은 그였기 때문에 워리어가 어느 정도의 힘을 내는지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을 끌면 다른 놈들이 더 나타날 지도 몰라.'
고블린 마을이 점점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확실히 밖을 살필 수 없었지만, 곳곳에 숨어있던 고블린들이 어딘가로 뛰어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이 어린 고블린들이었다. 아마도 어린 고블린을 보호하려는 것 같았다.
대피하는 그 모습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을 드러낼 여유도 없었다. 대치하고 있던 놈들 중에 일부가 그를 노리며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쉬이익. 채앵.
'흐읍!'
다시 달려든 놈은 다른 고블린보다 머리가 하나 더 큰 놈이었다.
워리어라고 불리는 놈이었다. 묵직한 힘에 뒤로 물러났지만, 그런 그를 향해 다시 한 번 날카로운 일격이 날아들었다.
부우웅.
그저 검을 휘두르는 것뿐이었지만, 확실히 일반적인 고블린과는 다른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강력한 공격에 강준우는 뒤로 물러나면서 다시 놈들의 공격을 받아냈다.
채앵. 채앵.
놈들의 공격이 끊임없이 날아들고 있었다.
문제는 워리어로 보이는 놈의 수가 한 놈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모두 세 마리의 워리어가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후우. 후우.'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 놈들의 공격은 육체적인 힘만으로 받아낼 수가 없었다. 그나마 내공을 끌어 올려서 공격을 수월하게 막아낼 수 있었지만, 내공이 무한한 것은 아니었다.
채앵. 채앵.
틈을 노리고 달려드는 고블린 워리어들.
그런 놈들의 협공을 막기 위해서 움집 안으로 들어섰지만, 허름한 집은 고블린 워리어의 공격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퍼억. 퍼억.
튕겨져 나간 놈들의 검이 움집을 부수기 시작했다.
보법을 이용해서 최대한 공격을 흘리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입구는 더 넓어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힘들겠는데?'
상황은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 같았다. 생각보다 움집 안에 고블린의 수가 많았고, 놈들의 비명을 간과한 것이 실수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지금은 이곳에 자리한 놈들의 수를 줄이는 게 먼저였다.
'어쩔 수 없이 천마신공을 써야하나?'
홉고블린을 처리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꽤나 위험한 힘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 힘을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시간이 지체되면 그 방법을 써보지도 못하고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마음을 정한 그는 기회를 노렸다.
채앵. 채앵.
다시 날아드는 세 워리어의 검격을 받아내던 그는 찔러 들어오는 고블린 워리어의 검을 확인하며 마음을 굳혔다.
촤아악.
강준우는 보법을 밟으며 워리어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일반적인 고블린보다 빠른 몸놀림을 내보였지만, 놈들의 공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살짝 스친 공격에 피가 튀었다.
그나마 철포삼을 익히고 있어서 피해를 더 적게 받았지만, 살이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크아아!"
갑자기 달라진 그의 행동에 고블린 워리어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도움을 청하는 소리인 것 같았다. 옆에 있던 놈들이 동료를 돕기 위해서 움직이려고 했지만, 강준우는 이를 악물며 숨겨놨던 힘을 끄집어냈다.
"하압!"
[피어 사용. 천마신공의 공능이 피어의 힘을 키웁니다.]
[피어가 고블린들을 제압합니다.]
작정하고 펼친 피어와 함께 주변에 있던 고블린들의 몸이 굳어졌다.
홉고블린이 사용했던 그 기술을 흉내 낸 것이다. 다행히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크윽.'
문제는 빠르게 빠져나간 내공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소진한 내공이 더 많았지만, 그렇다고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작정을 한 그는 곧장 앞에 있는 고블린 워리어의 가슴에 검을 박아 넣었다.
푸욱.
[고블린 워리어를 처치했습니다. 1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됐다! 크윽.'
생각했던 대로 한 놈을 쓰러뜨릴 수 있었지만, 몸에 부담이 갔다.
피어를 사용하고 곧장 삼재검법을 펼치자, 가진 내공의 2/3가 그냥 날아갔다. 그나마 삼재심법을 3성으로 올렸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2성의 상태였다면 곧장 주화입마에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한 놈을 쓰러뜨린 그는 곧장 바닥을 박차며 방향을 바꿨다.
경직된 몸으로 놈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을 때, 한 놈이라도 더 처리해야만 했다.
남은 내공을 다리에 흘려보낸 그는 보법을 사용해서 거리를 좁혔고, 그대로 검을 내지르며 다른 고블린 워리어의 가슴을 꿰뚫었다.
푸욱.
다행히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었지만, 놈을 쓰러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가 한 놈을 쓰러뜨리는 사이 경직된 놈들의 몸이 풀린 것이다.
'너무 늦었…… 흐읍.'
마저 한 놈을 더 쓰러뜨리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몸이 풀린 다른 놈이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절묘한 순간에 날린 공격에 그는 바닥을 굴렀다.
흔히 말하는 나려타곤이라는 수법이었다.
기겁하며 바닥을 굴렀지만, 그 판단이 목숨을 살렸다.
검에 살짝 스친 등에서 낯선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철포삼이 피해를 줄였다.
뒤로 물러선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 한 놈이 멀쩡한 상태였지만, 가슴에 검이 꽂힌 다른 놈은 곧 쓰러질 듯한 모습이었다.
"후우."
숨을 고르는 와중에도 그는 상황을 살폈다.
'남은 고블린은 8마리. 개중에 한 놈은 치명상을 입은 상태.'
세 놈의 워리어들을 상대로 이런 결과를 만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생각보다 피어라는 힘이 더 대단한 것 같았다.
다만, 소진한 내공이 문제였다.
'우선 한 놈을 확실히 처리하고!'
남은 내공을 가늠하던 그는 다시 움직였다.
멀쩡한 고블린 워리어를 향해 움직이자, 놈이 검을 들어 올리며 그를 겨눴다.
잔뜩 긴장한 놈의 표정이 가득 들어왔다.
강준우는 그대로 다른 검을 휘두르며 놈의 머리를 노렸다. 기겁한 고블린 워리어가 뒤로 물러나자, 기회를 잡은 그는 곧장 검을 내던지며 방향을 바꿨다.
"크아아!"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에 놈들이 크게 소리쳤다.
그가 뛰어든 곳에는 비틀거리는 고블린 워리어가 힘겹게 서 있었다.
콰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고블린이 피를 토하며 무너졌다.
[고블린 워리어를 처치했습니다. 1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삼재권법이 2성으로 올라섰습니다. 권법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영향을 받은 철사장의 숙련도가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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