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화
<빈집털이>
기지를 발휘해 부족장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놈을 잡고 나자 진이 빠졌다.
'엄청난 놈이었잖아?'
홉고블린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놈이었다.
놈을 처치하고 100포인트를 얻은 걸로 봐서 최소한 홉고블린보다 5배는 더 강한 게 분명했다.
강준우를 그런 부족장을 쓰러뜨렸다.
물론, 부족장이라는 놈은 불이 붙은 건물의 잔해에 깔려 죽었지만, 그 일을 만들어낸 것은 강준우의 힘이었다.
그 공을 인정받아서 부족장이 남긴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우르르르. 콰과광.
일부가 무너지기 시작한 건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와 함께 예의 알림음이 몇 차례 더 들려왔다. 그 열기 속에서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놈들이 남아있었던 것 같았다.
완전히 무너진 건물과 함께 더 이상 포인트를 얻었다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후우. 이제야 끝난 건가?'
고블린 부족장을 잡으면서 체력이 모두 소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쉽지 않은 싸움은 엄청난 심력이 필요했다. 긴장이 풀리자 뒤늦게 피곤이 몰려왔지만, 아직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
크와아아!
알 수 없는 괴성과 함께 남아 있던 고블린들의 상태가 달라졌다.
마치 울분에 찬 포효 같았다.
꽤나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지만, 그 포효를 들은 고블린들은 화답하듯 소리쳤다.
"크아악!"
[천마신공의 공능이 족장 부르카의 마력에 저항합니다.]
'족장? …… 부, 부르카?'
아마도 밖으로 나간 고블린을 이끄는 놈인 것 같았다. 새로운 알림이 놈의 존재를 알려줬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놈이 이곳에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다만, 알려온 내용이 문제였다.
전과 다르게 천마신공이 놈의 마력을 이겨냈다는 말이 아니었다.
부족장의 마력은 이겨냈지만, 족장이라는 놈은 저항한다는 말로 바뀌어 있었다.
그만큼 족장이라는 놈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놈의 포효였다. 꽤나 거리가 있는 것 같았지만, 멀리서도 놈의 분노가 느껴졌다.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놈이 이런 식으로 포효하는 이유는 한가지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이곳의 상황을 알아챈 것이 분명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포효와 함께 광분하는 고블린들.
남아 있던 놈들은 전의를 불태우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달려드는 놈들의 모습에 강준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상당히 지친 상황에서 놈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부우웅.
강한 파공음을 내며 휘둘러지는 둔기에 그는 고개를 숙이며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고 빈 고블린의 가슴에 주먹을 내지르며 놈을 후려쳤다.
퍼억.
제대로 된 내공이 실리지 않았다.
소진한 내공을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고블린의 몸이 꺾여나갔다.
전보다 힘이 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놈의 반응이 이전과는 또 달라졌다는 게 문제였다.
"크아아아!"
놈은 고통을 참아내며 아가리를 벌린 채 달려들었다.
최소한 어디 한 군데라도 물어뜯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전보다 더 흥분한 놈의 모습에 그는 급히 고블린을 떨쳐냈다. 하지만 그 순간, 시뻘건 화염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미친!'
콰과광. 화르르르.
터져나가는 불덩이에 주변이 휩쓸렸다.
남아 있던 고블린이 강준우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고블린 샤먼이라는 놈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강준우를 죽이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다.
아군을 무시한 강력한 마법에 강준우는 남은 힘을 쥐어짜며 보법을 밟아 나갔다.
물러나는 용도로 보법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나름 기민한 움직임이 가능했다.
터져 나가는 불길에 다른 고블린들이 휩쓸리며 비명을 쏟아냈다. 그래도 놈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무식한 새끼들!'
겨우 공격을 피했지만, 상황은 끝이 아니었다.
남아 있던 고블린들은 여전히 많았고 놈들은 그를 노리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맹목적인 움직임이었다.
위험한 상황도 마다하지 않고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놈들의 행동에 강준우는 이를 악물었다.
부족한 내공은 심법의 성취를 올리면서 채울 수 있었지만, 체력은 아니었다.
"후우. 후우."
상당한 체력을 소진한 그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거칠어진 숨을 몰아쉰 그는 고블린의 파상적인 공격을 받아내야만 했다. 더군다나 남은 고블린들의 눈은 이미 돌아간 상태였다.
어린 고블린과 암컷들을 몰살시키고, 부족장까지 죽인 강준우는 고블린들의 원수였다.
고블린들은 오직 그를 죽인다는 생각을 가진 채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왜 이렇게 수가…… 많아?'
마을에 남아 있는 모든 고블린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밖에 있는 놈들까지 모여든 것 같았다.
두 자릿수는 가볍게 넘어가는 놈들의 무지막지한 공세는 기겁한 그는 혀를 내두르며 힘을 쥐어짰다.
"크아아!"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고블린들.
이대로는 놈들을 모두 막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마냥 당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저 심법의 성취를 올린 그는 차오른 내공으로 놈들을 상대했다.
퍼엉. 퍼엉. 촤아악.
계속해서 철사장으로 놈들을 떨쳐냈다.
맨손인 그에게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놈들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블린들은 피를 뿌리며 떨어져 나가면서도 작은 상처라도 입힐 요량으로 손톱을 세웠다.
떨어져 나가는 놈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그 죽음을 알리는 소리도 계속 들려왔지만, 달려드는 놈들의 수가 줄어드는 것 같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씨발!"
집요한 놈들의 행동에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뒤늦게 도망을 택하려고 했지만, 그럴 기회를 잡는 것도 어려웠다.
콰과광.
다시 날아드는 화염구에 급히 보법을 밟아야만 했다.
간신히 공격을 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만 갔다.
'이제 남은 포인트가 없는데.'
삼재심법을 7성까지 올렸지만, 8성으로 올리기에는 부족했다.
6성을 7성으로 올리기까지 100포인트가 필요했다. 1포인트로 1%만 올릴 수 있었고, 100에 가까운 포인트를 소진하면서 심법의 성취를 높인 상황이었다.
여전히 100이 넘어가는 포인트가 남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심법의 성취를 올릴 수 없었다. 9성까지 올리기 위해서는 사용했던 포인트보다 더 많은 포인트가 필요했다.
"허억. 허억."
점점 호흡이 거칠어졌다. 이미 한계를 넘어선 것 같았다.
꽤 많은 놈들을 때려죽였지만, 아직도 남은 고블린의 수는 많았다. 그를 향한 고블린들의 적의는 줄어들지 않았다.
부족장을 잡으면 이곳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적어도 이곳에 놓인 놈들을 모두 죽여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상황이 여의치 않자 머릿속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찼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붙잡은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 했다.
철포삼으로 최대한 버티면서 도망가는 길을 찾아야 했다.
우선 휴식을 취하고 이후에 놈들을 상대하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놈들은 그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이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캬아아!"
지치지 않는 놈들의 집요함에 그는 다시 한 번 남은 힘을 끌어 모았다.
다시 달려드는 고블린들.
날카로운 이를 앞세우며 달려들던 한 놈이 무언가에 부딪치며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콰앙.
새하얀 빛에 적중당한 놈이 피를 뿌리며 바닥을 굴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그가 주변을 둘러보자,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 들어왔다.
"괜찮아요?"
"……."
"조금만 버텨요. 우리가 도울 테니까."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에게는 지원군이라고 할 수 있는 무리였다.
김연희가 마법을 날리며 고블린을 견제했고, 정민국과 권우철이 울타리를 넘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캬아아!"
낯선 자의 침입에 고블린들이 적의를 드러냈다.
놈들은 안으로 들어오는 그들을 위협했지만, 그런 고블린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또 다른 몇 개의 화염구였다.
콰과광. 콰앙.
화르르르.
놈들이 모여 있던 공간이 터져 나갔다.
멀리서부터 날아온 화염구는 그들을 휩쓸었고, 강력한 열기가 고블린들을 불태웠다.
역한 냄새가 퍼져나갔다. 마법에 적중당한 놈들의 누린내였다.
화염 마법을 날린 자들.
그 중심에 선 사람 역시 낯선 얼굴이 아니었다.
'백선화?'
그녀를 위시한 몇몇 사람들까지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밖으로 나갔던 고블린을 모두 쓰러뜨린 건가?'
100여 마리가 넘어가는 놈들을 모두 쓰러뜨렸을 리가 없었다.
적어도 그 정도의 시간이 되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무엇보다도 족장이라는 놈까지 쓰러졌을 것 같지는 않았다.
"괜찮아요?"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상처를 먼저 치료하죠. 힐!"
권우철의 손에서 흘러나온 빛이 그의 상태를 회복시켰다.
자잘한 상처와 화상이 치유되면서 고통이 줄었지만, 아직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권우철은 두 번의 힐을 더 사용했고, 꽤나 지친 듯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나중에 다시…… 확인하는 게 좋겠네요. 그래도 여분은 남겨둬야 할 것 같아서요."
"네.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당연한…… 일인데요."
그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이, 정민국은 달려드는 고블린을 상대했다.
그 역시도 전과 달라진 모습이었다.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며 고블린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기초적인 보법과 검법을 익힌 것 같았다. 그의 공격에 놈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져 나갔다.
콰앙. 콰앙.
김연희의 마법이 정민국을 도우면서 그들은 전보다 쉽게 고블린을 상대했다.
백선화를 비롯한 마법사들도 거리를 유지한 채, 고블린에게 마법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들의 개입과 함께 놈들이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각자가 그에 걸맞은 힘을 키운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간 고블린들은?"
"지금쯤이면 남아 있는 사람들하고 부딪쳤겠네요."
"……."
권우철도 자세한 상황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그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권우철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같은 생각으로 움직였거든요."
"같은 생각이라니요?"
그들 역시 고블린 마을을 손에 넣기 위해서 움직였다.
거주지를 확보한다는 생각은 강준우 혼자만 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사람은 강준우였지만, 몇몇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남은 사람들만으로는 놈들을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거죠."
"……."
"그나저나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혼자서 여기까지 쳐들어올 생각을 가졌는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무리 마을이 비었다지만, 이곳으로 혼자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권우철도 일행들을 설득하고 움직이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정민국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 역시 그의 생각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힘겹게 끌어들인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강준우는 혼자서 이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주변에 쓰러진 고블린을 바라보던 권우철은 그런 강준우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포인트가 앞선다고 하지만, 어떻게 혼자서……'
그로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강준우의 행동은 마치 모두를 위해서 나선 것처럼 비춰졌다.
권우철이 스스럼없이 그를 치료해 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비록, 모두를 위한 마음은 없었지만, 그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모두를 위한 선의로 포장됐다.
대단하다는 권우철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이들의 개입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작은 여유도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조, 족장이 오고 있어요!"
"족장이 오다니요?"
"밖으로 나갔던 놈들이 다시 회군하고 있다고 해요."
"……."
족장의 귀환.
이 상황에서 놈들을 상대하게 된다면 답은 하나였다.
"놈들이 오기 전에 이놈들을 모두 잡아야 해요!"
"얼마 안 남았어요. 죽여요!"
급박한 상황에 그들은 힘을 쥐어짰다.
강준우 역시 지친 몸을 이끌고 남은 고블린을 상대했다. 떨어진 철검을 주워들며 놈들의 수를 줄여나갔고, 결국, 남아 있던 놈들을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쿠구구궁.
마지막 놈이 쓰러지기 무섭게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주어진 조건이 완수됐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거주지가 설정됩니다. 3일간의 보호기간이 주어집니다. 보호기간 동안 거주지가 습격 받지 않습니다.]
[보호기간 이후, 완화됐던 능력 사용의 조건이 다시 정상으로 적용됩니다.]
[지대한 공을 인정받아 100포인트가 추가됩니다.]
[가진 능력들 중에 하나의 숙련도를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100%상승)]
마을 중심에서부터 빛이 뿜어져 나왔다.
불타버린 나무집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빛이 울타리까지 뒤덮었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