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화
<남은 고블린>
콰앙. 콰앙.
밖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강준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미 고블린들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밖으로 나서자 어두워진 날이 그를 맞았다.
소란이 일자 마을 안에 들어왔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도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며 그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온 것이다.
"무슨 일이죠?"
"아마도 밖에 있던 사람들이 고블린하고 부딪친 것 같아요."
"밖에 있던 사람들?"
안에 있던 누군가의 말에 모두가 울타리 밖을 바라봤다.
전과 다르게 고블린들의 움직임이 달라져 있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놈들의 모습에 놀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고블린들이 움직이고 있어!"
"누군가를 쫓고 있잖아?"
콰앙. 콰앙.
"아아악!"
"……."
어둠 속에서 보이는 거라고는 순간 번뜩이는 불빛과 처절한 비명뿐이었다.
아무래도 밖있는 자들은 고블린을 상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꽤나 심각한 상황인 것 같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밖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전히 울타리 주변은 고블린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조금만 밖으로 나간다면 그대로 찢겨 죽일 정도로 고블린들의 기세는 흉흉했다.
"어떡하지?"
"그, 글쎄."
상황이 상황인지라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밖을 살필 뿐이었지만, 그 순간 김연희가 앞으로 나섰다.
"너 뭐하는 거야?"
"위험해. 함부로 나설 때가 아니라고!"
갑작스러운 행동에 권우철과 정민국이 그녀를 막았다. 이 상황에서 괜히 나서봤자 좋은 꼴을 보지 못 했다. 하지만 김연희는 개의치 않으며 손을 뻗었다.
"매직 미사일!"
그녀의 손끝에서 시작된 빛무리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울타리 근처에 있는 고블린에게 적중하며 굉음을 터뜨렸다.
퍼억.
정확히 머리를 강타하자 고블린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생각보다 그녀의 매직 미사일 위력이 더 대단한 것 같았다. 마치 둔기로 후려친 것 같은 효과를 보였다.
처음 고블린을 상대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염두에 둔 그녀는 공격이 통하자, 뒤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공격해요!"
"아, 알았어요."
백선화를 따르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녀와 같이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이었다.
순식간에 속성마법이 휘몰아쳤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고블린을 향해 기초적인 마법들이 쏟아졌다.
콰과광. 콰과광.
불과 얼음, 바람과 땅 속성의 마법이 주변을 뒤흔들었다.
마법에 휩쓸린 고블린들의 괴성이 뒤를 이었고, 놈들은 울타리를 후려치며 흉성을 드러냈다.
"크와아아!"
"효과가 있어! 계속 마법을 날려!"
백선화의 외침에 남은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마법을 캐스팅했다. 하지만 곧바로 마법을 날릴 수는 없었다. 위력이 큰 만큼 시간이 필요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정민국은 아쉬운 마음을 내비췄다.
"젠장! 나도 저런 공격이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이 기회를 살리지 못 한 것이 아쉬웠다.
가지고 있는 혈랑도법을 사용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그가 가진 무공은 근접해서 펼쳐야만 하는 무공이었다.
그런 그의 시선이 강준우에게로 향했다.
본능적으로 그를 살폈지만, 강준우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설마, 밖으로 나가지는 않겠지?'
가만히 고블린을 살피는 그의 모습에 정민국은 다행이라고 여겼다.
어느 순간 그에 대한 질투심이 앞섰다. 김연희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그런 감정은 더욱 커져만 갔다.
스스로도 그 감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상황을 살피던 정민국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움집으로 들어갔다.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이럴 시간이 있다면 삼재심법의 숙련도라도 올릴 생각이었다.
그가 들어가고 남은 사람들이 밖의 고블린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 강준우 역시 아쉬워하며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귀음신장이라.'
D등급의 무공을 익혔지만, 지금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장풍이라도 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정도의 수법을 사용하기에는 귀음신장은 물론이고, 귀음심공의 성취가 너무 낮았다.
그가 방관하는 사이,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콰앙. 콰앙.
마법에 휩쓸린 고블린들의 수가 늘어나고, 안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꽤나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들은 웃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지만은 않았다.
울타리 주변에 있던 고블린들이 그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놈들도 마냥 당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지금이야 보호막에 막혀서 공격을 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보호막이 사라질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굳이 그 자리를 지키면서 당하느니, 밖에 있는 놈들을 처리하는 게 나은 선택이었다.
"크와아아!"
족장이라는 놈의 외침과 함께 놈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괜찮을까?"
"모르지. 그래도 그 많은 사람들이 마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지."
"…… 하아."
권우철의 말에 김연희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힘을 합치면 쉽게 상대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적어도 희생을 줄이고, 상황을 빨리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제 목숨을 연명하기에 바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는 놈들과 싸운다는 사실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만약 그들 중에 일부라도 뜻을 함께 했다면 보호막 속에서 조금 더 편하게 놈들을 상대할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혹시 다친 사람 있습니까?"
권우철은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혹시라도 다친 사람이 없는지 찾아다니고 있었다.
꽤나 헌신적인 모습이었지만, 정작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준우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건가?'
권우철은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 큰 것 같았다. 그래서 정민국이라는 놈과 함께 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하지만 저런 선의가 언제까지 계속 갈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마냥 선의를 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결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준우는 그런 권우철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어두워진 산중의 밤은 오직 달빛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간 고블린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그는 기운을 끌어 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스으윽.
가벼운 걸음이었지만, 순식간에 거리가 멀어졌다.
은밀하면서도 부드러운 움직임은 마치 귀신이 지나가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귀음신법! 삼재보법하고는 비교가 안 되잖아?'
이번에 얻은 무공을 살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은밀한 움직임에에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힐이 필요하신…… 어억! 씨발!"
"……."
"뭐, 뭡니까? 간 떨어질 뻔 했잖아요!"
"미안합니다."
"……."
갑자기 나타난 강준우의 모습에 권우철은 기겁하며 소리쳤다. 소리도 없이 근접한 그의 행동에 깜짝 놀란 것이다.
그런 권우철의 반응을 살피던 강준우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효과에 만족하며 입을 열었다.
"날이 너무 어두워서 이곳 위치를 모를 것 같던데. 불을 피우는 건 어떨까요?"
"부, 불이요?"
"밖에 있는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주변을 밝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아! 그렇겠네요. 근데…… 그걸 왜 저한테 말하는 건가요?"
"저 사람들하고 친분이 없어서."
"……."
따로 무리를 짓고 있는 자들에게 상의를 해 보라는 말인 것 같았다.
직접 나서지 않는 그의 행동에 권우철은 씁쓸해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강준우의 생각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불을 피운다면 밖에 있는 사람들이 불빛을 보고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백선화를 향해 움직였다. 처음에는 연예인인 그녀와 대화하는 것 자체가 떨리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상태였다.
오히려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강준우가 고맙게 느껴졌다.
권우철이 백선화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강준우는 자신의 장비를 점검했다.
손에 쥔 철검과 조잡한 단검. 그리고 고블린 워리어에게서 얻은 놈들의 장검까지.
균형이 맞지 않은 고블린들의 검은 배제했다.
철검을 손에 쥔 그는 불을 피우는 사람들을 확인하며 안도했다.
'이제 밖에 나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가진 무공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가질 수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지금이 적기였다. 이번에 익힌 D등급 무공의 특성을 활용할 생각이었다.
귀음심공을 통한 귀음신법으로 은밀한 움직임이 가능했다.
어둠 속에서 소리 내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효율적인 기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고블린이 얼마나 밤눈에 밝은지 알 수 없었지만, D등급에 이른 무공이라면 놈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뭐, 뭐하는 거예요?"
"……."
"이, 이봐요?"
강준우는 울타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돌발적인 그의 행동에 우연찮게 그의 모습을 발견한 김연희는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하지만 강준우는 개의치 않으며 울타리 밖으로 향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보호막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괜찮겠지?'
일렁이는 보호막과 마주한 그는 조심스럽게 팔을 집어넣었다.
뭔가 느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뒤로한 그는 밖에 조잡한 단검을 두며 다시 팔을 거뒀다.
몇 초의 시간을 지켜보는 그의 모습에 뒤에 있던 김연희는 말을 아꼈다. 강준우가 무엇을 하려는 생각인지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불을 피우기 위해서 나무를 모으며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그의 행동이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시간을 가늠하던 그는 다시 보호막 밖으로 팔을 빼며 단검을 손에 쥐었다.
별다른 저항 없이 단검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밖으로 몸 전체를 빼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니다 싶으면 도망가면 되겠지.'
다행히 인근에는 고블린이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놈들은 공격을 피해서 모습을 감춘지 오래였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조심스럽게 보호막 밖으로 몸을 빼냈다.
과감한 그의 행동에 오히려 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괘, 괜찮겠죠?"
"모르겠네요. 우선은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그의 행동에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온 강준우는 다시 보호막 안으로 팔을 뻗었다. 그리고 수월하게 들어가는 팔을 확인하며 몸을 집어넣었다.
'고블린이나 다른 적을 제외하고는 출입하는데 지장이 없는 건가?'
다행히 보호막을 통과할 수 있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 그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뒤로하고 다시 밖으로 향했다.
"어, 어디 가는 겁니까?"
"……."
"혼자서 괜찮겠어요?"
"한 번 둘러보고 오죠."
걱정스러운 김연희의 물음이 어색했지만, 강준우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도움을 주려는 듯한 그 모습이 부담스러웠다. 지금은 여러 명이 함께 움직이는 것보다 혼자서 움직이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가 따로 움직이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은 날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달빛에 의지해서 움직여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귀음신법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D등급 무공이라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로 옆으로 다가갈 때까지 권우철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움직임이 가능했다. 당연히 고블린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 같았다.
보호막을 마음대로 통과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부담은 없었다. 여차하면 마을로 다시 돌아와서 몸을 피하면 될 일이었다.
아직까지 제대로 사용하지 못 해본 귀음신장.
문제는 그 장력이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였다.
'슬슬 움직여 볼까?'
철검을 다잡은 그는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 모습에 마을에 남은 사람들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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