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화
<남은 고블린>
'도대체 뭐가 잘못 된 거지?'
당연히 눈에 보이는 자들을 쫓아야 했지만, 놈은 오히려 그를 쫓아오고 있었다.
거리도 멀리 떨어져 있었고 몸까지 숨긴 상황이었다.
그것을 제외하고 딱히 그를 노리고 달려들 이유가 없었지만, 부르카라는 놈은 정확히 그를 특정해서 움직였다.
강준우는 곧장 내기를 끌어 올리며 바닥을 박찼다.
이렇게 된 이상, 지금은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크아아아!"
물러나는 그의 모습에 부르카라는 놈은 다시 피어를 터뜨렸다. 하지만 강준우에게 큰 영향은 없었다. 오히려 피어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그의 모습에 놈은 괴성을 지르며 한 손에 쥔 도끼를 내던졌다.
부웅. 부웅.
요란한 소리에 이상함을 느낀 강준우가 뒤를 돌아보자, 족장이 내던진 도끼가 빠르게 회전하며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콰아앙.
상당히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무시할 수 없을 놈의 공격에 급하게 방향을 바꾸자, 그가 있었던 자리에 부르카의 도끼가 꽂혔다.
미미하게 떨리는 바닥의 진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것만으로도 놈의 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족장이라서 다르다는 건가?'
졸지에 족장이라는 놈의 목표가 됐다는 사실에 그는 이를 악물었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놈의 모습에 강준우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우선은 놈을 따돌리고 몸을 피할 생각이었다. 나름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지만, 좀처럼 놈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극성으로 펼치고 있는 귀음신법으로도 놈을 어쩌지 못 한다고?'
그는 계속해서 따라붙는 족장의 모습에 경악했다. 하지만 지금은 놀라고 있을 할 때가 아니었다.
빠르게 따라붙는 놈의 모습에 당황한 나머지 너무 생각 없이 움직인 것 같았다.
무작정 물러나다 보니 마을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죽도 밥도 안 되잖아?'
우선 마을을 목표로 움직여야만 했다.
대충 방향을 가늠한 그는 곧장 방향을 바꾸며 마을로 향했다.
직각으로 꺾는 그의 행동에 뒤를 쫓던 족장도 방향을 바꾸자, 둘의 거리는 더 좁혀졌다.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방향을 바꾸는 놈의 모습에 강준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인지한 것이다. 마을로 향하면서 크게 우회한 그와 다르게 족장이라는 놈은 살짝 방향을 트는 게 전부였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족장은 힘을 끌어올리며 바닥을 박찼다.
쿠웅.
땅이 흔들릴 정도로 바닥을 박찬 놈의 몸이 탄환처럼 날아들었다.
강준우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인지 족장은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끌어 올렸다.
순식간에 둘의 거리가 좁혀지고, 족장의 도끼가 강준우의 목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당연히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공격을 받아내기에는 족장의 기세가 너무 흉흉했다.
짧은 순간 고민하던 그는 급하게 허리를 숙였다.
쉬이익.
등위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도끼.
강한 바람이 느껴졌다. 그만큼 놈의 공격은 위협적이었다.
비록, 부르카의 공격을 피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강준우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곧장 내기를 끌어 올리며 곧바로 장력을 뿌렸다.
파앙.
귀음신장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위력이 달랐다.
귀음심공을 토대로 공격을 펼친 것이 아니라 천마신공의 힘을 끌어올리며 귀음신장에 힘을 더했다.
굳이 은밀하게 공격을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파괴력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균형을 잃은 족장의 몸에 조금이라도 강한 충격을 남겨야만 했다.
쿠웅. 촤아악.
장력에 적중당한 놈은 그대로 밀려나며 바닥에 처박혔다.
달려오던 속도를 죽이지 못한 놈이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며 기다란 흔적을 남겼다.
손끝에 남은 묵직한 감각으로 봐서 꽤나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족장의 상태는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정도 공격에도 끄떡없다고?'
귀음신장에 맞은 것치고는 너무나 멀쩡한 것 같았다.
곧바로 몸을 일으키는 놈의 모습에 얼굴을 찌푸린 강준우는 다시 놈과의 거리를 벌렸다.
시험 삼아서 한 번 공격을 감행해봤지만, 지금의 힘으로는 놈에게 작은 상처도 남기지 못 할 것 같았다.
멀쩡한 놈의 모습에 그는 곧장 도망을 택했다.
하지만 커다란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이번에 족장을 공격하면서 대부분의 내공을 소진했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기운을 조절하게 되면서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신법을 펼칠 내공이 부족했다.
소진한 내공을 회복하기 위해서 귀음심공의 성취를 올려야 했다.
'46포인트! 더럽게 많이도 들어가네!'
성취를 올리는데 필요한 포인트가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9%의 숙련도가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였지만, 가진 포인트의 대부분을 소진해야만 했다.
'아껴봤자 똥 되지!'
어차피 죽으면 무용지물이었다.
강준우는 과감하게 포인트를 투자하며 귀음심공의 성취를 올렸다.
[귀음심공이 4성으로 올라섭니다. 심법의 안정성이 더욱 강해집니다.]
[운용하는 공력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심법의 영향으로 천마신공의 이해도가 6.64% 상승합니다.]
성취를 올리자 부족한 내공이 차올랐다.
세부적인 알림음이 들려왔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다.
족장이라는 놈이 몸을 일으키며 머뭇거리는 사이에 최대한 놈과의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
'그래도 헛짓은 아니었나?'
충격이 남았는지 놈은 곧바로 움직이지 못 했다.
귀음신장의 한기가 나름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강준우는 귀음신법을 극성으로 펼쳤다.
보법과 다르게 경공의 묘를 가지고 있는 귀음신법은 순식간에 놈과의 거리를 벌렸지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족장의 속도를 무시할 수 없었다.
'뭐야? 오히려 거리가 더 좁혀지잖아?'
놈은 더 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제대로 된 한 방을 얻어맞고 화가 났는지 달라진 속도로 그를 쫓았다.
점점 좁혀지는 둘 사이의 거리.
다행히 희미하게 보였던 마을의 불빛이 점점 가까워져왔지만, 문제는 체력이었다.
"후우. 후우."
강준우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 반면, 족장의 상태는 처음과 다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잡히겠는데?'
등 뒤까지 쫓아온 놈의 모습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불안함을 느낀 그는 다시 방향을 바꿨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나름 계산을 해가며 방향을 틀었고, 그의 판단과 함께 족장과의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역시 그랬던 건가?'
족장의 움직임은 너무 단순해 보였다. 바닥을 박차며 그 힘으로 속도를 높이는 모습이었다. 방향이 바뀌면 놈은 다시 한 번 바닥을 밀어내야만 했고, 체력은 물론이고 속도까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강준우는 그 점을 노렸다. 그 판단이 주효했는지 효과가 있었다.
약점을 파악한 그는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부르카와의 거리를 벌렸다. 물론, 최종적으로 도착할 곳은 보호막이 펼쳐진 마을이었다.
"크아아아!"
약을 올리듯 멀어지는 그 모습에 족장은 다시 포효했다.
마력이 섞인 피어로 그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천마신공의 공능은 계속해서 놈의 피어를 이겨냈다.
점점 가까워져 오는 마을.
이미 그곳에 펼쳐진 보호막의 존재를 알고 있는 부르카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부족장을 죽인 놈을 이대로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놈은 손에 들고 있는 도끼를 내던졌다.
휘리릭.
둥근 원을 그리며 쏘아진 도끼가 유려한 궤적을 그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 도끼는 강준우의 길목을 막아섰다.
콰앙.
하늘에서 떨어진 도끼가 대뜸 그의 앞에 꽂혔다.
빠르게 내달리던 그는 급히 방향을 바꿔야만 했고, 그 순간을 노린 부르카는 힘을 폭발시켰다.
바닥이 울리는 굉음과 함께 커다란 덩치가 그를 향해 쏘아졌다.
작정을 한 부르카는 두꺼운 팔을 활짝 벌리며 강준우를 잡아채려고 노력했다.
일반적인 고블린은 흉내 낼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상대를 묶는 수법은 물론이고, 행동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았다.
달빛을 막아내며 드리워진 그림자.
작정하고 움직인 놈의 행동에 강준우도 바닥을 박찼다.
'집요한 새끼!'
짧은 순간 판단을 내린 그는 곧장 몸을 띄웠다.
양 옆은 물론이고, 놈이 내던진 도끼로 앞까지 막힌 상태였다. 크게 양팔을 벌리며 달려드는 놈을 피해낼 적당한 방법은 앞에 있는 도끼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크아아!"
회심의 수를 너무나 쉽게 파하는 강준우의 움직임에 부르카가 울부짖었다.
어떻게든 강준우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그보다 강준우의 행동이 더 빨랐다. 그대로 바닥에 박힌 도끼를 뛰어넘은 그는 울부짖는 부르카를 뒤로하고 놈과의 거리를 벌렸다.
[귀음신법이 3성으로 올라섭니다. 신법의 소진되는 내기가 줄고 신법의 효과가 증진됩니다.]
절묘한 순간에 올라선 귀음신법에 그의 속도를 더욱 끌어 올렸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다행히 놈과의 거리를 더 벌릴 수 있었다.
"크아아아!"
분한 듯 포효하는 놈의 괴성이 주변을 뒤흔들었다.
강준우는 그런 놈을 뒤로하고 보호막이 펼쳐진 마을로 몸을 날렸다.
'후우. 완전히 괴물이잖아?'
다행히 놈을 따돌리면서 마을로 들어올 수 있었지만, 잠깐 부딪친 족장이라는 놈의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D등급의 무공으로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놈인 것은 분명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잡을 수 없겠어.'
모두가 힘을 합쳐서 상처를 입히고, 기회를 노리는 게 가장 좋은 선택 같았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자 피곤이 몰려왔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선 그는 호흡을 고르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괘, 괜찮아요?"
"예. 보시다시피."
"다친 곳은 없습니까?"
권우철이 걱정하듯 물었지만, 강준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따로 상처를 입은 곳은 없었다. 작은 상처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권우철의 도움은 거절할 생각이었다.
계속해서 그의 도움을 받는 것도 부담이었다. 어차피 그런 호의는 빚이었고, 언젠가는 갚아야 할 것 같았다.
주변을 살피던 그는 모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휴식이 필요했다.
'사람이 더 늘었네?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나?'
15명 정도였던 사람들의 수가 배로 늘어나 있었다.
그가 나갔다 온 사이, 밖에 있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거주지를 확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합류는 반가웠다.
이미 족장인 부르카의 힘을 확인한 그인지라 놈을 상대할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무사한 강준우의 모습에 마을에 들어선 사람들은 안도하며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마을 안을 노려보고 있는 족장의 모습이 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콰앙. 콰앙.
부르카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강준우를 노려보던 놈은 손에 쥔 도끼로 보호막을 후려치며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펼쳐진 투명한 막이 크게 흔들리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불안해하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보호막은 무지막지한 놈의 마수로부터 안에 있는 사람들을 지켰다.
그 모습에 용기를 얻은 사람들은 과감하게 움직였다.
"지금이에요. 화력을 집중시켜요!"
"파이어 볼!"
"죽어라. 괴물 새끼. 매직 미사일!"
콰과광. 콰과광.
계속해서 보호막을 두들기는 부르카의 모습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놈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마법이 부르카가 있던 공간을 터뜨렸다. 보호막에 근접한 놈을 잡기 위해 수많은 마법이 쏟아지자, 그 위력에 놀란 놈은 다급히 거리를 벌렸다.
다행히 놈을 떨쳐낼 수 있었지만, 큰 상처를 남길 수는 없었다.
멀쩡한 놈의 모습에 정작 공격을 감행한 사람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완전 괴물이잖아? 그 많은 마법을 맞고도 멀쩡하다니!"
"저, 저런 놈이랑 싸워야하는 거야?"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놈을 막아낼 보호막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상대할 놈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었다. 고블린 족장의 강함을 확인한 그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강준우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저놈이 잡히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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