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천마신공-25화 (25/254)

제 25화

<남은 고블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밖에 있는 부르카를 노리며 분주히 움직였다.

"자그마한 상처라도 입혀야 해요! 모두 공격하세요."

"아, 알았어요."

백선화의 말마따나 놈에게 작은 상처라도 만들어야만 했다.

보호기간이 사라지면 본격적으로 놈을 상대해야만 했다. 지금은 최대한 놈들의 수를 줄여야만 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조금씩 충격을 준다면 괴물 같은 놈도 영향을 받을 게 분명했다. 어차피 지금 힘을 아껴봐야 큰 소용도 없었다. 상대할 놈은 족장이라고 불리는 놈뿐이었다.

그들은 다시 마법을 날렸고, 공격을 받아내던 부르카는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래도 효과가 있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마법인데, 놈도 무적일 수는 없겠지!"

물러나는 놈의 모습에 남은 사람들은 자신감을 회복했다. 하지만 그 시간도 길지만은 않았다.

"아아! 도와줘요."

"살려주세요!"

많지 않은 수였지만, 몇몇 사람들이 고블린을 피해서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들 역시 거주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불빛을 확인하고 거주지를 목표로 움직였지만, 주변에 남아 있는 고블린들의 마수를 피할 수 없었다.

"어, 어떡하지?"

"……."

고블린을 피해서 도망 온 사람들은 마을을 발견하며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 소리가 주변에 있던 놈을 자극했다.

공격을 받고 물러난 부르카의 눈빛이 달라졌다.

"크아아!"

시도 때도 없이 부르짖는 놈의 목소리에는 역시나 마력이 담겨 있었다.

마을을 향해 달려온 사람들은 경직된 채 고블린의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었고, 순식간에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개 같은 새끼들!"

눈앞에서 쓰러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발만 구르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전부였고, 강준우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후우. 지금은 상황을 지켜보는 게 최선인가?'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마을을 향해 뛰어 오는 사람들이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바라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가만히 호흡을 고르던 그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려고요?"

"잠깐 쉴 생각입니다."

"…… 아! 그, 그렇군요."

김연희는 멋쩍어하며 얼굴을 붉혔다.

강준우가 또 밖으로 나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를 막을 생각이었지만, 너무 많이 나간 것 같았다.

그런 그녀를 뒤로한 그는 처음 자리 잡았던 움집으로 향했다.

따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만큼 제대로 휴식을 취하고, 천마신공의 성취를 올릴 생각이었다.

강준우(23세).

별호 : 살귀(殺鬼).

이류 무인.

〈무공〉

천마신공(2成) - 84.55%.

삼재심법(7成) - 1.31%.

-삼재권법(2成) - 43%

-삼재검법(2成) - 41%

-삼재보법(2成) - 87%.

피어(1成) - 5%.

철포삼(1成) - 73%.

철사장(1成) - 92%.

귀음심공(4成) - 1%.

-귀음신장(2成) - 46%

-귀음신법(3成) - 3%

포인트 : 21.

강준우는 스스로의 상태를 확인했다.

생각보다 천마신공의 숙련도가 많이 올랐다. 아무래도 귀음심공의 성취를 올리면서 영향을 받은 게 컸지만, 이제는 다른 심법을 올릴 포인트가 부족했다.

'이렇게 되면 싸우면서 내공을 회복하는 것도 어려워지겠네.'

그 많던 포인트의 대부분을 귀음심공의 성취를 올리는데 사용했다.

어둠 속에서 기습을 감행하며 상당히 많은 고블린을 잡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다른 무공들의 숙련도가 조금 올랐지만, 정작 중요한 천마신공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다른 심법이라도 익히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나?'

이제 남은 21포인트로는 가지고 있는 심법의 성취를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심법을 배울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운기를 통해서 천마신공의 성취를 올려야 했다.

그나마 천마신공이 2성으로 오르면서 제대로 된 운기가 가능했기 때문에 시도라도 해볼 수 있었다.

한 차례 족장과 부딪쳤기 때문에 뭐가 부족한지 잘 알았다.

최소한 천마신공을 3성까지 끌어 올려야 놈에게 제대로 된 피해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운공이 아니라면 다시 고블린들을 상대해야겠지만, 밖에 있는 족장이라는 놈이 부담스러웠다.

'우선 시도라도 해 봐야지.'

결정을 내린 그는 허름한 움집 안에서 조심스럽게 운기를 이어나갔다.

안전한 장소라고 할 만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를 찾아올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부족하지만 모습을 가려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흐음. 괜찮겠지? 여차하면 운기를 멈추면 될 테니까.'

천마신공이 신공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운기의 중단이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깐 시험을 해본 그는 마음먹은대로 운기의 중단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자리에 앉았다.

가부좌를 틀면서 단전에 잠들어 있는 주먹막한 내기를 깨우자, 가진 기운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맥을 타고 여러 혈도를 거쳐서 복잡하게 움직이는 내기들.

그렇다고 처음 시도하는 운공이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과 낯설고 복잡한 기운의 움직임에 속도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느릴 수밖에 없었다.

'흐음. 생각보다 더 느린 것 같은데?'

자연스럽게 운기가 이어졌지만, 삼재심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일주천을 하는 속도는 천마신공이 더 느렸다. 내공이 닿지 못한 길을 개척하면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는 내기의 흐름에 더욱 집중했다.

내공 역시 그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지금이야 자동적으로 움직인다고 하지만, 그 흐름을 확실히 각인시켜두면 앞으로 더 수월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한 번의 운기만으로 복잡한 움직임을 각인시킬 수는 없었다.

천마신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의 움직임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기운을 직접 움직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후우우."

힘겹게 숨을 내뱉은 그는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일주천을 마쳤다.

피로가 조금 풀리고 소진한 내공도 조금 채워진 느낌이었다. 확실히 삼재심법과는 차이를 보였지만, 그렇게 많은 변화를 느낄 수는 없었다.

겨우 한 번의 운기만으로 많이 달라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운기를 통한 변화가 아니라 상태창에 떠오를 천마신공의 상태였다.

'85.65? 운기만으로 1.1%만 올랐다는 건가?'

들인 공에 비하면 생각보다 올라간 숙련도가 많지 않았다. 거의 3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운기에 매달렸지만, 겨우 1.1%가 오른 것이다.

2성이라는 낮은 경지에 겨우 1.1%만 오른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0.01%도 오르지 않았던 때와 비교하면 엄청난 성장이었다.

"그래도 이대로는 부르카라는 놈을 상대할 수 없겠는데?"

점점 동이 터오는 것 같았다. 듬성듬성 드러난 움집의 빈틈 사이로 밝은 빛이 스며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끔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려왔지만, 밖에서 들려왔던 커다란 굉음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조심스럽게 밖을 확인한 강준우는 자신이 있는 움집 근처로는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움집의 정중앙에 가부좌를 틀며 앉은 그는 다시 눈을 감으며 내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3성이라. 15%만 올리면 된다. 15%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당연히 움직이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더군다나 부르카라는 놈의 눈을 피해야 하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강준우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지금으로서는 운기를 통해서 성취를 높이는 게 최선이었다.

다시 끌어 올린 기운이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준우는 내기의 움직임을 각인시키며 조금씩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

"언제까지 저 새끼 뒤를 봐줘야 하는 거야?"

"쉿! 목소리가 너무 커! 조용히 하라고 했잖아."

"그냥 내버려둬! 괜히 우리만 여기에서 뭐하는 거야? 이럴 시간에 다른 사람들처럼 고블린을 잡자고. 포인트를 올려야 뭘 해도 할 수 있을 거 아니야?"

정민국은 짜증 섞인 말로 언성을 높였다.

계속해서 안에 있는 놈의 편을 드는 김연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연히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막무가내인 그의 행동에 김연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저 사람은 우리를 구해준……"

"씨발! 말은 바로 해! 우리를 구해준 게 아니라 포인트를 쉽게 얻으려고 했다고! 그 과정에서 구해준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그만! 그만해!"

"……."

계속되는 정민국의 불평에 결국 참고 있던 권우철이 그를 막았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힘이 실려 있었다. 날카로운 그의 말에 정민국의 시선이 권우철에게로 향했다.

"형도 지금 저 새끼를 편드는 거야?"

"그만하라고!"

"후우. 왜 이렇게 답답해? 이런다고 뭐가 달라져? 저 새끼가 고맙다는 말이라도 할 것 같냐고?"

"……."

"우리가 저 새끼 꼬봉도 아니고 이게 무슨……"

"그만 하라고 이 새끼야!"

계속되는 정민국의 불평에 권우철도 참지 않았다.

"혀, 형?"

"응석 좀 그만 부려. 그냥 웃으면서 넘어가주니까 네 말이 모두 맞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 그게 무슨 소리야?"

평소와는 너무 다른 권우철의 반응에 정민국이 당황했다. 이렇게 화를 내는 권우철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너도 지금 어떤 상황인지 직시하라고! 우리가 언제까지 네 응석을 받아줘야 할까?"

"으, 응석이라니. 내가 지금 형한테 응석을 부리는 것 같아?"

응석이라는 단어가 거슬렸다. 어쩌면 너무 정확해서 당황한 건지도 몰랐다.

정민국은 그 말에 발끈하며 소리쳤지만, 권우철은 개의치 않았다.

정민국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겠거니 생각했지만, 그의 실망스러운 모습은 앞으로도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단단히 마음을 먹은 그는 그동안 참고 있었던 말을 끄집어냈다. 언젠가는 해야 할 말이었다.

여기가 평범한 사회였다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여기는 위험한 곳이었다.

괴물이 나타나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판에 정민국이 조금이라도 달라져야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당히 이기적인 건 상관없어. 어차피 그때는 그냥 웃어넘길 정도로 이해하면 끝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네 투정을 받아주면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고! 조금만 잘못하면 죽어나가는 마당에, 언제까지 네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생각인데?"

"……."

"솔직히 말해서 네 불평 때문에 좋았던 일이 있었어?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도 시답잖은 텃세나 부리면서 괴롭히질 않나, 깜냥도 안 되면서 괜히 저 사람한테 시비를 걸지 않나! 제발 생각 좀 하고 행동하라고. 그 모습을 보는 우리라고 편할 것 같냐?"

차가운 그의 말에 정민국은 말을 잇지 못 했다.

그렇다고 권우철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까지 보인 정민국의 모습을 정확하게 꼬집고 있었다.

불편한 진실에 정민국은 주먹을 꽉 쥐었다.

뭐라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모두가 옳은 소리였다.

직설적인 그의 말이 달가울 리가 없었지만, 그는 간신히 화를 참아내며 말했다.

"그동안 참…… 힘들었겠네. 이렇게 병신 같은 놈하고 같이 다니느라."

"내 말 뜻은 그게 아니라……"

"됐어! 그동안 몇 년을 봐왔던 나보다 고작 하루도 안 된 놈이 더 좋다는 거잖아?"

"……."

정민국의 말에 두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 이 와중에도 질투의 감정을 드러내는 정민국의 모습이 너무 부족해 보였다.

"씨발, 결국에는 힘 있는 새끼가 중요하다는 거지?"

"권 선배 말은 그게 아니라……"

"씨발! 그만 하라고! 나도 다 알아 들었으니까."

"……."

"그래. 두고 보자고. 내가 저 새끼보다 더 강해지고 말 테니까! 그때도 이렇게 나올 수 있을지 보자고!"

울분을 쏟아낸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옹졸한 그의 행동에 권우철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김연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을까요?"

"괜찮겠지. 어린애도 아닌데."

"어린애 같던데."

"……."

"생각이."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성인이라지만 대학 생활이 전부인 그들이었다.

특히나 그동안 봐왔던 정민국은 두 사람이 걱정을 할 정도로 배려가 부족했다. 그렇다고 그를 모른 체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앞으로도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권우철도 어려운 말을 꺼낸 것이다. 비록, 그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걱정은 무슨! 애도 아니고."

"…… 언제는 애라며?"

"생각이 애라고 했지. 근데, 선배도 답답하긴 답답했나 봐? 그렇게 화까지 낼 정도면?"

"……."

권우철이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인 적은 많지 않았다. 그만큼 정민국의 행동이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김연희의 말에 권우철은 씁쓸한 표정을 보였다.

그 모습이 김연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괜히 말했나? 분위기만 더 어색해진 것 같네.'

그녀 역시 정민국에게는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강준우라는 사람이 그의 말처럼 포인트를 노리고 그들을 도왔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 이유야 어찌 됐든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이유는 강준우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많은 포인트를 가지고 있었다.

'생각 없는 새끼. 우리라고 좋아서 이곳을 지키고 서 있겠어?'

너무 계산적일 지도 몰랐지만, 강준우와의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그만큼 중요했다.

모두의 생존이 달린 일이었다. 더군다나 밖에는 무시무시한 놈이 남아 있었다. 족장이라는 놈을 상대하는데 강준우가 정민국보다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거지? 벌써 이틀이나 지나가는데."

"……."

"뭔가 잘못 된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우선은 지켜보자."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