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화
<족장 부르카>
다행히 고블린 워리어도 일격에 쓰러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크와아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천마신공의 공능이 홉고블린의 마력을 이겨냅니다.]
'홉고블린? 어지간한 놈은 다 몰려있네.'
근처에는 워리어보다 더 강한 놈이 있었다.
마력이 담긴 포효가 뒤를 이었지만, 부르카라는 놈이 아니라면 크게 걱정할 상대는 아니었다.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은 강준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순간, 쓰러진 워리어 근처로 커다란 불덩이가 날아들었다.
콰과광.
터져 나가는 불덩이는 마법이 분명했다.
주변을 밝히는 불길에 남아 있던 고블린 한 마리가 휩쓸리며 괴로워했다.
'누구지?'
아무래도 그와 비슷한 사람이 있는 게 분명했다.
사냥감을 빼앗긴 느낌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강준우의 위치가 발각될 가능성이었다.
잘못하면 그에게도 불똥이 튈지 몰랐다.
강준우는 곧바로 불덩이가 날아온 곳을 살폈다.
옮겨 붙은 불길이 주변을 밝히자, 희미하게 윤곽이 드러났다. 하지만 마법을 날린 놈의 정체는 그가 생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고블린이잖아?'
희미하게 드러난 형태는 고블린이 분명했다.
지팡이를 들고 있는 고블린 샤먼과 놈들을 지키기 위해 모인 고블린들의 형체가 드러났다.
"미친!"
멀지 않은 곳에 모여 있는 놈들의 규모에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앞에 있던 고블린들의 역할이었다. 워리어를 포함한 세 놈은 미끼인 것 같았다.
동족을 미끼로 적들을 불러내는 행위.
쉽게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만큼 상대하는 고블린들의 힘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의미했다.
놀란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다시 불덩이가 떠올랐다.
주변을 밝히려는 듯 불덩이가 곳곳에 떨어지며 불길을 키웠다.
콰과광. 콰과광.
무차별적인 공격이었다.
아직 숨어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지 못 했는지 막무가내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그나마 쓰러진 놈들과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공격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상황이 마냥 유리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화르르르.
주변에 옮겨 붙은 불길이 그가 있는 곳까지 환하게 밝혔다.
어렴풋이 그의 모습이 드러나자 고블린들이 흉성을 토해냈다.
'미친 고블린…… 뭐, 뭐지?'
합창을 하듯이 괴성을 지르는 놈들의 행위에 절로 얼굴이 구겨졌다. 하지만 갑자기 느껴지는 섬뜩함에 그는 곧장 보법을 밟으며 뒤로 물러섰다.
쐐에엑. 콰앙.
그가 있던 곳으로 거대한 도끼가 박혀들었다.
먼 거리에서 날아온 도끼는 정확히 그가 있던 자리에 떨어졌고, 간신히 공격을 피해낸 강준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앞에 있는 도끼를 확인하며 표정을 굳혔다.
'족장이다! 부르카라는 놈!'
도끼의 형태가 낯설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렇게 위력적인 공격을 날릴 수 있는 놈은 많지 않았다.
천마신공이 3성으로 오르면서 감각이 더 예민해졌는지 다행히 어둠 속에서 날아온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위험한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크아아아!'
[천마신공의 공능이 부르카의 마력을 이겨냅니다.]
존재감을 드러내는 놈의 외침에 강준우는 곧장 뒤로 물러났다.
뒤늦게 어둠 속에서 달려드는 거대한 덩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놈과 부딪쳐야만 했다.
아직 확신을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위험을 감내할 필요는 없었다.
굳이 싸울 생각은 없었지만, 상대는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뒤로 다시 부르카의 도끼가 날아들었다.
콰앙.
놈의 도끼가 절묘하게 퇴로를 막았다.
동시에 커다란 덩치를 가진 놈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놈의 움직임이 놀라웠다.
무작정 도망을 가기만 했던 때는 몰랐지만, 지금 마주한 부르카의 움직임은 다른 고블린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민했다.
'확실히 뭔가를 익히고 있구나!'
마력이라는 것을 사용하는 것만 봐서는 그에 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홉고블린이라는 놈을 워낙 어렵게 상대했었던 터라, 당연히 족장이라는 놈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곧 죽을 것 같았던 부족장도 모든 힘을 소진하다시피 해서 겨우 잡았기 때문에 더 불안했다.
그를 향해 뛰어든 부르카는 곧장 주먹을 내질렀고, 놈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강준우는 제때 보법을 밟으며 위협적인 주먹을 피해냈다.
파앙.
허공을 때린 주먹에 공기가 터져나갔다. 그 소리만으로도 실린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부르카라는 놈도 권풍을 쏘아낸 듯한 느낌이었다.
공격은 성공하지 못 했지만, 놈의 의도는 성공을 거뒀다.
그를 스친 부르카가 강준우의 퇴로를 막자 남은 고블린들이 그를 압박하려는 듯이 움직였다.
'함정을 파놨다는 건가? 고블린이?'
마냥 본능에 충실한 놈들이 아니었다.
놀라운 감정을 뒤로한 그는 곧장 앞으로 튀어나갔다.
도망을 택하는 게 당연했지만, 강준우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그는 귀음신법을 펼치면서 빠르게 고블린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최대한 고블린들 사이로 파고 들어야 부르카의 공격을 덜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크아아!"
"카아악!"
과감한 그의 행동에 앞에 모여 있던 놈들이 흉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놈들의 품을 파고들며 허리춤에 채워둔 철검을 뽑아들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내공은 최대한 아껴야 했다.
그 사이를 파고든 강준우는 곧장 삼재보법으로 바뀌면서 검법을 펼쳤다.
서걱. 서걱.
천마신공의 성취가 늘어나면서 검술이 더 예리해졌다. 위력이 더 늘어났다.
일반적인 고블린이 검에 베이며 쓰러져 나갔고, 고블린 워리어도 그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바빴다.
살귀라는 별호와 일류 무인의 경지는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고블린들 사이로 파고들면서 뒤늦게 뒤를 쫓아온 부르카도 쉽사리 공격을 이어갈 수 없었다.
"크아아!"
강준우를 잡기 위해서 움직이는 고블린들이 그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몇 번을 머뭇거리던 놈은 마음을 정했는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그 외침에 고블린들이 빠르게 물러났지만, 강준우는 집요하게 놈들을 쫓았다.
물러나는 고블린을 쫓던 그는 계속해서 살수를 펼쳤다.
[고블리을 처치했습니다. 1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고블린 샤먼을 처치했습니다. 1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알림음과 함께 고블린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이제야 판타지에서 최약체로 평가되던 고블린을 상대하는 것 같았지만, 아직 만만치 않은 놈이 남아 있었다.
파앙. 파앙.
어느새 그를 따라잡은 부르카가 주먹을 뻗어왔다.
이제는 앞을 가로막은 고블린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놈들을 무시하며 공격을 감행하자 놈의 손에 쓰러지는 고블린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무식한 새끼.'
어떻게든 고블린의 수를 줄이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르카라는 놈의 분노는 더욱 강력해졌다.
마냥 놈을 피했던 강준우도 결국 잡힐 수밖에 없었다.
부우웅.
다른 고블린을 쓰러뜨리는 사이, 홉고블린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교묘하게 날아드는 놈의 몽둥이를 피해낼 수 있었지만, 공격을 피하는 사이, 부르카의 주먹이 그를 후려쳤다.
터엉.
삼재보법으로 주먹을 피해내려고 했지만, 놈의 움직임은 그의 생각보다 더 빨랐다.
그나마 검신을 세우며 놈의 주먹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주먹에 실린 힘은 경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크윽.'
정확히 공격을 받아냈지만, 그의 몸이 크게 밀려났다.
내기를 끌어 올리며 단단히 준비를 마쳤다. 그래도 충격을 떨쳐낼 수 없었다.
크게 휘청거리는 그를 향해 부르카는 손을 뻗었다.
그대로 목을 틀어쥐려는 모습이었다.
스으윽.
그 공격을 마냥 당하고 있을 강준우가 아니었다.
그는 급히 귀음신법을 펼치며 뒤로 물러났다. 누군가 그를 잡아당긴 것처럼 자연스럽게 물러나는 그의 행동에 부르카의 손은 허공을 갈랐다.
그런 부르카에게 강준우의 장력이 날아들었다.
은밀하게 쏟아지는 벽공장은 천마신공의 힘이 가득 실려 있었다.
3성의 천마신공으로 펼쳐진 귀음신장.
'퍼억'소리와 함께 부르카의 몸이 주춤거렸다. 구겨지는 놈의 표정으로 봐서 공격이 제대로 먹힌 것 같았지만, 이미 예상했던 것처럼 놈은 고통을 참아내며 그와의 거리를 좁혔다.
'괴물 같은 새끼!'
단단한 놈의 몸뚱이에 놀란 그는 다시 귀음신법을 펼치며 뒤로 물러났다.
귀신이 움직이는 것처럼 빠르게 땅 위를 미끄러진 그는 부르카와의 거리를 벌렸다.
3성에 오른 귀음신법에 천마신공의 힘이 더해지자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 와중에 귀음신법의 특성까지 가미되자 그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신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다급하게 뒤로 물러난 강준우는 스스로의 상태를 확인했다.
먼저 소진되는 내기를 채울 필요가 있었다. 천마신공을 토대로 힘을 사용하면서 부르카의 공격을 쉽게 피해낼 수 있었지만, 줄어드는 내공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강준우는 곧장 획득한 포인트로 곧장 귀음심공의 숙련도를 올렸다.
4성에 오른 귀음심공은 포인트당 1%의 성취가 올랐다. 아직까지는 삼재심법보다 효율이 좋았지만, 문제는 포인트였다.
5성으로 올라설 포인트가 부족했다.
'나름 많이 모은 것 같았는데.'
계속해서 들려오는 알림음에 충분한 포인트가 모였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성취를 올리면서 늘어난 포인트에 미치지는 못 했다.
이대로는 무리였다.
강준우와 부르카의 치열한 공방 속에 주변에 있던 고블린들이 물러나자, 전과 같은 꼼수도 쓸 수 없었다.
남은 내공을 걱정하며 귀음심공으로 내공을 바꾸기 무섭게 부르카가 거리를 좁혀왔다.
파앙. 터엉.
터져나가는 공기와 함께 그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의도적으로 놈의 힘을 이용하며 거리를 벌리려고 했지만, 아직 상대의 힘을 역이용할 정도의 경험이 쌓이지는 않았다.
강준우는 오히려 균형을 잃으며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크아아아!"
처음으로 걸음을 멈춘 강준우의 모습에 놈이 크게 포효했다.
그대로 목숨을 거두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 같았지만, 그런 놈에게 익숙한 형태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퍼엉. 콰앙.
어둠을 밝히며 날아든 구체가 부르카의 몸을 뒤흔들었다.
의기양양해 있던 놈의 몸을 불태우고 얼려버릴 정도로 강한 마법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부르카의 몸이 휘청거렸다.
생각지도 못한 도움에 뒤늦게 고개를 돌리자,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무리를 이룬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은 그에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권현수?'
얼마 전까지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을 이끈 채로.
'설마, 밖에 있던 사람들을 다 끌어 모은 건가?'
그와 일행들의 능력이라면 진즉에 마을로 들어왔어야만 했다.
그가 늦게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이었다.
어느새 사람들을 규합한 그는 곧바로 명령을 내리며 주변의 고블린들을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르카를 공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구리에 장사가 없다는 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르카라는 놈도 계속 이어지는 공격에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수많은 사람들의 다발적인 공격은 그만큼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놈도 마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크아아아!"
예의 외침이 주변을 뒤흔들었다.
강한 마력이 실린 포효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머뭇거렸고, 부르카는 그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어림없다! 이 고블린 새끼."
다가오는 그에게 강한 마법이 날아들었다.
누군가는 피어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놈이 주춤거렸고, 그 사이 경직이 풀린 사람들이 뒤로 물러나며 공격을 준비했다.
부르카라는 놈에게는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부르카라는 놈도 역시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고블린들을 이끄는 족장이었다.
"뭐, 뭐야?"
"고블린들이다! 고블린이 몰려오고 있어!"
"대열을 유지해. 무인들은 앞에 서서 놈들을 막아!"
당황한 그들에게 권현수의 지시가 떨어졌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런 식으로 대처를 한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다만, 상황이 마냥 유리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뭐, 뭐야? 저 새끼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사, 사람들이잖아? 미친!"
나타난 고블린의 모습에 모두가 경악했다.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을 앞세운 놈들이 조금씩 그들과의 거리를 좁혀왔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