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화
<허탈한 결과>
강준우는 다시 마을로 향했다.
따로 고블린을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얻은 것들을 확인해 볼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권현수를 처리하고 얻은 능력을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일양지라는 무공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낼 수 있고, 얼마나 많은 내공이 필요한지 확인을 해보는 게 먼저였다.
그는 김기철과 남은 사람들이 도망간 곳과는 반대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따로 떨어져 있는 고블린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놈 같았다.
외형만 봐서는 평범한 고블린으로, 일양지를 시험하기에 적당한 놈이었다.
"크아아!"
거리가 가까워지자 놈도 그를 발견했는지 흉성을 터뜨렸다.
날카로운 이빨을 내보인 놈은 조잡한 단검을 쥔 채 그대로 강준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처음이라면 질겁했을 놈이었지만, 이제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냥 제 죽을 날을 모르고 달려오는 한 마리의 불나방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일양지라.'
얻은 무공을 떠올리기 무섭게 단전에 있던 내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쪽 손가락으로 빠르게 모여드는 내공들.
상당한 양의 내공이 손가락 끝으로 모여들었다. 마치 끌어 올린 기운을 압축시키는 듯한 느낌이었다.
모인 기운은 손끝에 머물며 그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강한 힘을 확인한 강준우는 긴장하며 입술을 적셨다.
'이정도면 귀음신장하고 맞먹는 힘이잖아?'
최대한 힘을 줄인다는 생각으로 기운을 움직였다.
그저 시험만 해볼 요량으로 최소한의 기운을 모으려고 노력했지만, 일양지를 펼치면서 모이는 내공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았다.
가장 약하게 모은 힘이 제대로 된 귀음신장을 펼칠 때의 힘과 비슷했다.
'이래서 권현수가 힘들어 했던 건가?'
손가락 끝에 모인 흉폭한 힘이 여실히 느껴졌다.
응축된 기운을 가늠하던 그는 어느새 지근거리까지 달려온 고블린을 확인하며 그대로 손가락을 겨눴다.
"크아!"
미간을 가리키는 그의 행동에 고블린은 단검을 들어 올리며 바닥을 박찼다.
하지만 강준우의 손가락에서 튀어나온 양력의 기운이 고블린의 미간을 꿰뚫자, 도약하며 달려들던 놈이 그대로 꼬꾸라졌다.
쿠웅.
뛰쳐나온 힘을 이기지 못한 고블린이 바닥에 처박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강준우는 드러난 흔적에 놀라며 뇌까렸다.
"엄청나잖아!"
일양지가 왜 A등급에 등재되어 있는 무공인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그가 쏘아낸 기운은 고블린의 미간을 꿰뚫은 것도 모자라서 그 뒤에 있는 바닥에도 확실한 흔적을 남겼다.
놀란 그는 다시 일양지의 설명을 살폈다.
일양지.
지법(指法)으로 분류된 무공들 중에 상위로 분류되는 수법.
성취가 높아질수록 응축되는 내공의 양을 늘릴 수 있다.
손끝에 모으는 힘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위력이 증가한다.
간략한 설명이었지만, 충분한 정보를 내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손끝에 더 많은 힘을 모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제대로 펼치면 내공을 얼마나 잡아먹는다는 소리지?'
시험 삼아 가장 약한 위력의 일양지를 펼쳤지만, 그것만으로도 작지 않은 내공이 필요했다.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 효율이 좋은 무공인 것 같았다.
등급에 비하면 무공을 사용하기 위한 내공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봐야했다.
'온전한 상태라면 대여섯 번은 사용할 수 있겠네.'
그나마 내공이 늘어났기 때문에 그 정도의 공격이 가능했다.
대략이나마 일양지에 관해서 알아봤지만, 그렇다고 이 힘을 대놓고 사용할 수는 없었다.
아직 권현수의 일행들이 남아 있었다.
아무리 그들이 권현수를 이용할 생각을 가졌다지만, 권현수와 함께 했던 놈들이 이 무공을 모를 리가 없었다.
비록, 권현수를 은밀히 처리할 수 있었지만, 이 무공을 드러내면 의심을 살 뿐이었다.
그가 죽기 전에 대립하던 강준우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빌미를 제공할 이유는 없었다.
'당분간은 숨기는 게 좋겠어.'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감추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일양지가 아니더라도 귀음신장이라는 효과적인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은밀하게 펼치는 귀음신장이 더 나을 지도 몰랐다.
점점 밝아지는 날에 그는 상념을 떨쳐내며 다시 움직였다.
지금은 마을로 들어가는 게 먼저였다. 완전히 날이 밝고, 오후가 되면 보호막도 사라질 게 분명했다.
외부의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 되기 전에 따로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소진한 체력을 다시 회복하는 게 중요했다.
그나마 안전한 곳은 마을이었고, 우선은 그곳에서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
날이 밝자, 거주지로 자리 잡은 마을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밤사이 밖에서는 처절한 괴성과 비명이 들려왔다. 하지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들도 이어질 결전에 대비하며 준비를 갖춰야만 했다.
밖에 있던 사람들이 속속 거주지로 들어왔다.
그런 그들을 쫓아오던 고블린들은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의 손이 명을 달리했다.
아직까지는 보호막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보호막 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 안전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은 사람들 대부분이 마을로 모일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로 사람들이 모였다면 족장이라는 놈도 잡을 수 있겠는데?"
"모르지. 이 사람들이 얼마나 도움을 줄지는."
"그렇기는 하지."
수가 많다고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설프게 힘을 합치다가는 서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았다.
더군다나 곧 죽을 위기에서도 소극적으로 움직인 사람들이 다수였다.
그래도 김연희는 모여드는 사람들의 모습에 안도했다.
사람이 많아지면 그만큼 자신이 죽을 확률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숨겨야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마음이었지만, 그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근데 민국이가 안 보이네?"
"글쎄. 어딘가에 있겠지."
"내가 너무 심했나?"
"선배가 아니었으면 내가 말했을 거야. 언젠가 한 번은 했어야 할 말이었어."
"……."
권우철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이후로 정민국이 보이지 않았다.
권우철은 그 사실이 못내 미안했는지 말을 잇지 못 했고, 김연희는 그런 그의 모습에 쓰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근데, 그 사람은 아직 자고 있는 거야?"
"날이 밝고 나서야 들어왔다며?"
"그건 그렇지만. 도대체 혼자 무슨 짓을 벌이고 다닌 거지? 해가 중천에 떴는데."
"……."
혼자서만 움직이는 강준우.
두 사람은 그에게 공을 들이고 있었다.
처음에 보여줬던 그 모습이 모두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홉고블린을 잡고, 혼자서 고블린의 마을을 찾았던 그의 행보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움직일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나저나 선배?"
"왜?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근데, 왜 그 사람한테 목을 매는 거야?"
"목을 매다니?"
"유독 그 사람한테는 친절하잖아. 다칠 때마다 힐을 해주는 것도 그렇고."
"그야 당연히……"
"혹시, 남자 좋아해?"
"미친년!"
황당한 소리에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격한 반응에 자신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한 김연희는 멋쩍어하며 말했다.
"아니면 말고. 그렇다고 욕까지 할 건 뭐야?"
"너라면 그런 말을 듣고도……"
"미안하다고! 근데, 왜 그 사람한테 유독 친절한 건데?"
"그건 너도 똑같잖아. 너는 이유가 뭔데?"
"그야…… 포인트가 가장 많아서? 가장 강할 것 같아서? 같이 있으면 살아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서?"
"나라고 다르겠냐?"
"……."
성의 없는 권우철의 대답에 김연희는 입술을 삐쭉였다.
"그나저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곧 족장이라는 놈이랑 싸워야 할 텐데."
"모르겠다. 그래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마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나름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 분주히 움직였지만, 일전에 본 놈이라면 다른 대책을 세워도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그나저나 무슨 고블린이 이렇게까지 강하지?'
아무리 목숨을 내건 싸움에 경험이 없다고는 하지만, 고블린이라는 놈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것은 사실이었다.
판타지 내에서는 최약체라고 할 수 있는 놈의 강한 힘에 권우철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의 일이 막막했다.
고블린이 이 정도인데 오크나 트롤 같은 놈이 있다면 얼마나 강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계속 이어지지 못 했다.
"우와아!"
"살았어. 이제 살았다고!"
갑자기 마을 한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누군가의 환호는 남아 있던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두 사람도 그곳에 관심을 보였다.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건장한 체격을 가진 사람들이 서 있었다.
"정말로 그 족장이라는 놈을 죽인 겁니까?"
"이걸 보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 그건?"
"족장이 쓰던 도끼! 맞죠? 그 도끼!"
그 남자는 도끼를 들고 있었다. 부르카라고 불리던 족장이 사용하던 도끼였다.
그 정체를 알아본 누군가가 크게 소리치자, 주변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고블린을 이끄는 족장이 죽었다면 걱정을 떨쳐낼 수 있었다.
"대단하네요. 어떻게 그런 놈을!"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러요. 아직 어떤 놈들이 더 남아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모두 뜻을 모아야 합니다. 다른 놈들과도 싸울 수 있게 힘을 합쳐야 해요!"
부르카의 도끼를 내보인 사람은 모인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말에 관심을 가졌다.
사내는 부르카를 처리한 사람들을 이끄는 무리의 대장 격이었다. 그런 그의 옆이 마을에 있는 그 어떤 곳보다 안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도 그 사람의 말에 깜짝 놀랐다.
"정말일까? 그 족장이라는 놈이 죽은 게?"
"저 도끼. 그놈이 쓰던 도끼였어."
쉽게 믿기지 않은 말이었지만, 권우철은 그 도끼가 족장이 사용하던 도끼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놈이 죽지 않았다면 저들이 저 도끼를 들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 괴물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결과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어도 족장이라는 놈은 강준우의 손에 쓰러질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바로 강준우였다.
그래서 그에게 호의를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긴, 각자가 얻은 힘이 다 다르니까.'
아마도 저 사람들 중에 꽤나 괜찮은 능력을 얻은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마냥 가진 능력의 등급이 높다고 좋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 얼마나 적합한 힘을 쏟을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아무래도 몇몇 사람들은 그 힘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부르카를 잡은 무리들은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그런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가장 강한 사람이 있는 무리에 끼어야 안전할 수 있었다.
고블린 족장을 잡은 무리라면 당연히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마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기를 희망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백선화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저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이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이점이 사라진 것이다.
얼마 전까지 그녀와 뜻을 함께 했던 사람들도 어느새 다른 쪽에 붙어서 함께 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영웅 취급을 받게 된 무리들.
그 중심에 선 송영훈은 환한 웃음을 보였다.
우연찮게 고블린 족장의 무기를 손에 넣을 수 있었고, 그걸로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게 됐다.
"우리 이래도 괜찮은 거야?"
"알게 뭐야?"
"그래도 이게 거짓말이라는 게 들통나면……"
"도끼는 우리들 손에 있어. 우리 힘으로도 그 족장이라는 놈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고!"
"괜찮을까? 그놈을 잡은 사람이 나타나면 어떡하지?"
"너는 그냥 지켜 봐.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송영훈의 말에 불안해하던 일행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췄다. 비록, 족장을 잡은 게 거짓이었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이제 와서 어떡할 거야?'
일행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을 본 그는 걱정을 떨쳐냈다.
이 정도 수라면 진짜가 나타나도 큰 탈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손에 족장을 쓰러뜨린 증거가 있었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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