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화
<급작스러운 변화>
"저걸 생각 못 했었네."
근처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김연희는 옆을 돌아봤다.
그리고 씁쓸한 표정을 보이는 강준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왔어요?"
"족장이라는 놈이 잡혔네요. 이제 한시름 놓을 수 있겠어요."
"……."
강준우를 발견한 두 사람은 곧장 상황을 알렸다.
담담한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는 강준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상황을 주시할 뿐이었다.
"점점 힘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나봐요."
"힘이요?"
"처음에 얻은 힘이요. 이제 제대로 된 힘을 쓰게 된 거 아닐까요? 저렇게 족장이라는 놈을 잡은 것을 보면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권우철의 말에 강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천마신공을 손에 넣었다지만, 그런 힘을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른 이능을 쥐고 있었다.
오히려 처음에 얻은 힘이 낮은 등급이라면 지금 상황에서 큰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성장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나타날 또 다른 놈들을 상대하게 된다면 큰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권우철의 말에 그동안 간과했던 부분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그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준우야?"
"……."
그를 찾아온 사람은 익숙 얼굴이었다.
김기철이 무리를 뒤로하고 그를 찾아왔다.
"몸은 어때? 괜찮아?"
"무슨 일이지?"
"아니. 그냥 겸사겸사."
"……."
냉랭한 반응에 김기철은 멋쩍어하며 말했다.
"사실 황당해서 이렇게 온 거야. 억울하지 않아? 우리가 도와줄까?"
"돕다니?"
"자기들이 한 일도 아닌데, 마치 자기들이 한 것처럼 말하고 있잖아. 진실을 알려야하지 않을까?"
부르카가 강준우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는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말에 옆에 있던 김연희가 놀라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진실이라니요?"
"어? 설마, 모르고 있었어요?"
"뭘요?"
"사실 족장을 죽인 건 저 사람들이 아니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강준우는 그의 말을 일축했다. 굳이 지금 이 사실을 알려봤자 좋을 것은 없었다.
괜히 주목을 받는 것보다 그냥 조용히 묻혀서 움직이는 게 편했다.
여전히 냉랭한 태도에 김기철은 그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 나는…… 그냥 네가 가져야 할 걸, 저놈들이 가지니까."
"……."
"필요하면 도움이 될까 그랬지."
"상관 없어."
"그, 그래? 그럼 뭐…… 어쩔 수 없고."
"……."
강준우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권현수라면 난리를 쳤을 일이었지만, 그는 담담한 반응이었다.
강준우에게 줄을 대려고 했던 김기철은 그런 그의 반응이 답답해했다.
'어제 그 일 때문에 마음이 상한 건가? 일이 너무 꼬였어!'
아무래도 이런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족장을 두고 벌였던 신경전 때문인 것 같았다. 권현수가 그를 잡으려고 했었고, 일행들 모두가 그의 뜻에 따라야만 했다.
당연히 당사자였던 강준우가 좋은 감정을 가질 리 만무했다.
그렇다고 강준우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족장을 잡을 정도로 힘이 있는 놈이잖아? 거기에 포인트도 엄청날 텐데.'
적어도 이런 강준우와 척을 지는 것은 피해야만 했다.
어색한 분위기에 잠깐 고심하던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기분 상했다면 풀라고. 우리도 어쩔 수 없었어. 너도 알잖아. 권현수한테 끌려다녔던 거.
"……."
"그리고 권현수 그놈은 죽었어.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별다른 반응이 없는 강준우의 모습에 김기철은 권현수의 죽음을 알렸다.
그와 부딪쳤던 당사자가 사라진 만큼 더 이상 적의를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강준우보다 옆에 있던 권우철이 더 격한 반응을 보였다.
"무, 무슨 소립니까? 권현수가 죽다니요?"
"족장하고 싸우면서 무리를 했어요."
"무리라니요?"
"족장을 잡으려고 욕심을 부렸던 거죠. 내상이 생긴 채로 도망가다가 죽었어요."
"……."
권우철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권현수와 마주했을 때 보인 반응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흐음. 형제라도 원수처럼 대하던데.'
정작 권현수를 쓰러뜨린 사람이 바로 강준우였기 때문에 그의 반응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동요하는 그의 모습에 옆에 있던 김연희가 그를 위로했지만, 권우철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부르카를 처리했다던 송영훈이 있는 곳과는 다르게 그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 앉았다.
김기철은 괜한 말을 꺼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자책하면 말했다.
"아무튼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어. 너한테 감정은 없으니까."
"그래."
그는 비굴해 보일 정도로 자세를 낮췄다.
죽은 권현수에게 보인 모습을 이제는 강준우에게 보이고 있었다.
정말로 감정이 남아 있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강준우는 그의 본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상황에 따라서 몸을 낮출 수 있는 놈이었다.
오히려 음흉한 속내를 가진 놈들이 더 위험했다.
"그. 그만 가 볼게."
"……."
"아! 우리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알았지?"
별다른 말이 없는 강준우의 모습에 김기철은 웃음을 보이며 물러났다.
그리고 권우철의 모습을 확인하며 강준우도 자리를 피했다.
권현수를 처리한 사람이 바로 강준우였다. 그로서는 당연히 충격을 받은 권우철의 모습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
"뭐야? 어떻게 됐어?"
다시 돌아온 김기철에게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그동안 그와 함께 움직였던 사람들이었다. 이제 권현수가 사라진 마당에 강준우라는 든든한 줄을 잡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김기철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냥 냉랭했어."
"그게 다 죽은 그 새끼 때문이야!"
"괜히 미운털 박힌 거 아니야?"
"몰라. 최대한 좋게 말했는데. 아무튼…… 졸라 무뚝뚝했어."
"원래 아싸라면서? 원래 성격이 그런 거 아니야?"
같은 과라지만, 친분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고블린 족장을 사이에 두고 한 차례 신경전을 벌였던 그들이었기 때문에 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 만큼 강준우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그와 무리를 이뤄서 안전을 도모할 생각이었지만, 불편한 감정을 떨쳐내는 것도 요원해 보였다.
"이제 어떡하냐? 우리끼리라도 사람을 모아야 하는 거 아냐?"
"그래! 쪽수라도 있었지. 지금은 개털이잖아."
"……."
고블린들을 상대로 도망가는 과정에서 그나마 있던 사람들도 흩어져 버렸다.
남은 사람이라고는 권현수 옆에 붙어 있던 여섯 명이 전부였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애매한 수였다.
친구들의 말에 김기철은 고민했다. 그리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입을 열었다.
"기다려 봐. 방법이 있으니까."
"방법? 그게 뭔데?"
"우리도 저기로 붙자."
그는 송영훈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강준우에게 황당하다던 김기철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붙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기 들어가 봤자, 그냥 소모품만 되는 거 아니야?"
"맞아. 워낙 많이 몰렸잖아. 차라리 우리끼리 사람을 모으는 건 어때?"
"그냥 백선화 밑으로 들어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아니야! 저놈들도 우리를 무시할 수는 없을 거야."
김기철은 자신 있게 말했다.
평소와 다른 그의 모습에 그를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유가 뭔데? 우리를 무시할 수 없다니?"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잖아."
"진실? 무슨 진실?"
"고블린 족장을 누가 죽였는지 알고 있잖아."
"그럼 그걸로……"
"이제부터 대화를 해 봐야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은 김기철은 곧장 송영훈에게 다가갔다.
주변에 몰린 사람들을 뚫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힘들게 송연훈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의 관심을 끌었다.
"재밌네요. 족장을 죽인 사람이 둘이었던가?"
"……."
***
움집으로 들어온 강준우는 곧바로 팔뚝만한 빵을 꺼냈다.
포인트로 음식을 사며 허기를 달랬고, 남은 포인트를 확인하며 고심했다.
'306포인트라.'
부르카와 권현수를 처리하면서 얻은 포인트였다.
괜히 손에 쥐고 있는 다고 해봤자 좋을 것은 없었다. 어차피 죽는다면 사라질 포인트였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바로바로 사용하는 게 나았다.
포인트를 확인한 그는 곧장 상점창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잠겨있는 무공을 확인했다.
C등급 이상의 무공들은 모두 잠겨 있었다.
[C등급의 무공을 열람하기 위해서 100포인트가 필요합니다.]
D등급 무공을 해제하는데 필요한 포인트의 두 배였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필요한 포인트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한 번에 그 상위에 있는 무공을 풀어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아래에 잠겨 있는 등급이 먼저 풀려야만 다음 등급의 무공을 해제할 수 있었다.
강준우는 먼저 잠긴 C등급을 풀었다. 그리고 배울 수 있을만한 무공을 살폈다.
이미 높은 등급의 무공이 가진 효율을 확인했기 때문에 괜찮은 무공이 있다면 배울 생각이었다.
'그래도 여분의 포인트는 남겨두는 게 좋겠지?'
혹시라도 내상을 입을 때를 대비해서 심법의 성취를 높일 정도는 남겨둬야 했다.
대략 100포인트의 여유가 있다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여긴 그는 남은 포인트를 확인했다.
205 포인트.
C등급 무공 하나를 배울 정도는 충분할 것 같았다.
'흐음.'
확인한 등급에는 여러 무공이 나열되어 있었다.
대부분이 내공심법으로, 유명한 문파의 심법은 물론이고 처음 보는 심법도 여러 가지였다.
소양신공(小陽神功), 삼음기공(三陰氣功), 취팔선공(醉八仙功), 소천성공(小天星功) 등.
정(正)과 사(邪), 마(魔)의 무공이 모두 나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C등급에 등재되어 있는 것들은 대부분이 입문심법이었다.
익히고 싶어도 쉽게 익힐 수 없을 정도로 귀한 무공들이었지만, 여기에서는 포인트만 있으면 쉽게 익힐 수 있었다.
그래도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있는 것들은 절반뿐이었다.
강준우가 익히고 있는 천마신공의 힘과 부딪치는 정파의 심법이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었다.
굳이 제대로 된 힘을 낼 수 없는 무공을 배울 이유가 없었다.
우선 절반이 넘어가는 무공을 배제해야 했다.
그나마 익힐 수 있는 것은 사파나 마교라고 불리는 곳의 무공이었지만, 딱히 끌리는 것은 없었다.
남은 무공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강준우는 결국 마음을 정했다.
위력은 알 수 없었지만, 가지지 못한 속성의 무공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광염심결(狂炎心訣)이라.'
C등급에 있는 양강의 무공심법이었다.
귀음심공으로 음한 계열의 무공을 펼칠 수 있게 된 만큼 반대되는 기운을 가지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히려는 순간,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보호기간이 끝났습니다. 거주지를 보호하던 보호막이 사라집니다.]
[이제부터 거주지가 습격 받을 수 있습니다.]
[완화됐던 능력의 사용조건이 정상화됩니다.]
'완화됐던 사용조건?'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말이 거론됐다.
아직 확실한 것들을 확인하기 전이었지만, 왠지 찝찝한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왠지 그 말 자체가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그가 잠깐 고민하는 와중에도 새로운 임무가 전해졌다.
**
마을을 빠져나간 고블린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적의를 가진 놈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목표 : 남은 고블린 처리.
전체 보상 : 10포인트. 통로 개방.
개인 보상 : 기여도에 따른 차등 보상.
**
'마을 밖에 있는 고블린들?'
이미 족장이라는 놈은 처리한 상황이었다.
남은 고블린들이 있겠지만, 부르카 같은 놈이 더 있다면 모를까 큰 걱정은 없었다.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순간 밖이 소란스러웠다.
"고, 고블린이다!"
"놈들이 달려든다!"
놀란 사람들의 외침이 뒤를 이었다.
강준우는 곧장 밖으로 나가며 상황을 살폈다. 혹시라도 다른 변수가 있을지 몰랐다.
다급히 밖으로 뛰쳐나왔지만, 달려들던 고블린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콰앙. 콰앙.
이제는 그런 고블린들의 싸움에 익숙해졌는지 모인 사람들은 곧장 공격을 이어나갔다.
강한 마법이 터져 나가며 고블린을 휩쓸었고, 힘겹게 마을에 도착한 고블린들은 무공을 익힌 사람들에게 쓰러졌다.
평소보다 더 빨리 끝났다.
고블린 족장이 없다는 사실이 모두의 사기가 높아진 점도 있었지만, 송영훈을 필두로 한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자 생각보다 상황이 빨리 정리됐다.
[부르카 부족을 궤멸시켰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숨겨진 통로가 개방됩니다.]
[1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뛰어난 공을 인정받습니다.]
[가진 능력들 중에 하나의 숙련도를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100%상승)]
[작품 후기]
코멘트, 추천, 선작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