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화
<급작스러운 변화>
밖에 있던 고블린이 모두 마을로 들어선 것 같았다.
제대로 된 구심점이 없는 만큼 큰 효과를 거둘 수 없는 놈들은 순식간에 궤멸됐고, 곧장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모든 일들이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났다.
새로운 임무는 순식간에 달성이 됐고, 부르카를 쓰러뜨린 공을 인정받아서 생각지도 못한 보상까지 얻어냈다.
위험을 감내할 이유가 충분했다.
보상만 생각한다면 무조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했다.
새롭게 얻은 사기적인 능력은 당연히 천마신공의 성취를 올리는 것에 사용돼야만 했지만, 보상을 확인하기도 전에 다른 소식이 알려왔다.
**
적응 기간이 끝났습니다.
숨겨졌던 지형이 드러납니다. 이제부터 다른 지역과의 이동이 가능해 집니다.
달라진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목표 : 숨겨진 통로 발견.
전체 보상 : 10포인트.
개인 보상 : 무한의 식량 주머니.
**
또 다른 임무였다.
새로운 소식을 겸한 임무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분주해졌다.
"저, 적응기간? 그럼 지금까지 했던 게 다 튜토리얼이었던 건가?"
"튜토리얼?"
"연습이었다는 거잖아? 그 고블린 새끼들이 겨우 연습상대였다고?"
연습 상대치고는 과한 놈들이었다.
생각했던 것과 큰 차이를 보였던 고블린의 강함에 대부분이 깜짝 놀랐지만, 지금은 놀랄 겨를이 없었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숨겨져 있는 통로를 발견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임무를 완수하고 주어지는 개인 보상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최소한 식량을 얻기 위해서 포인트를 소비할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강준우 역시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개인 보상을 손에 넣는다면 나쁠 것 같지 않았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그도 채비를 갖췄다. 하지만 한 사람이 눈에 걸렸다.
'권우철.'
아직도 충격을 떨쳐내지 못 했는지 그는 넋이 나간 채, 구석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어차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지만, 권우철의 반응은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은 권현수와의 관계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던 그는 씁쓸해했다.
"걱정하지 마요. 내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
"그쪽은 빨리 통로나 찾아봐요."
김연희는 권우철을 바라보는 강준우를 안심시켰다.
불편해하는 그의 표정을 다른 의미로 해석한 것 같았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런 두 사람을 뒤로한 그는 곧장 마을을 벗어났다.
먼저 산을 오를 생각이었다. 산 정상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의심이 가는 곳이 있다면 그곳을 찾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강준우 혼자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산으로 향했다. 부르카라는 위협이 사라지고 고블린들이 궤멸되자, 더 이상 거칠 게 없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의 이동에 그는 의도적으로 자리를 피했다.
괜히 경쟁하듯 몰려봐야 시비만 일어날 뿐이었다. 지금도 몇몇은 언성을 높이며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강준우는 일부러 인적이 드문 곳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못다 한 일을 이어나갔다.
염두에 뒀던 C등급의 무공을 익힐 생각이었다.
새로운 임무와 보상이 쏟아지면서 뒤로 미러뒀던 일이었다.
우선 광염신결을 익히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얻은 보상을 수령한 이후에 무공의 습득이 가능합니다.]
부르카를 처리하면서 소급 적용됐던 보상을 먼저 얻어야만 했다.
기존에 익힌 무공들의 성취를 올리는 것으로 보상이 제한된 것 같았다.
당연한 제약이었지만, 큰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그가 올릴 무공은 정해져 있었다.
[천마신공의 성취가 올랐습니다. 심법에 대한 이해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단전의 크기가 확장됩니다. 가진 내공의 총량이 증가합니다.]
[내공의 운용이 더 정교해집니다. 하위 마공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집니다.]
4성으로 오른 천마신공.
성취가 오른 만큼 단전의 크기는 더욱 커졌다.
배는 늘어난 크기가 여실히 느껴졌지만, 이상하게 내공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동안에는 심법의 성취가 오르면 부족했던 내공이 모두 채워졌었다.
내상까지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단전이 커진 것을 제외하고 별다른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뭐지? 왜 내공이 그대로지?'
뭐가 달라진 건지 알 수 없었다.
전과는 달라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항변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상함을 뒤로한 그는 다시 광염신결을 떠올렸다.
천마신공은 모르겠지만, 다른 심법을 익히며 부족한 내공이 다시 채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천마신공의 성취를 올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다시 들려온 소리에 여실히 무너졌다.
[새로운 심법은 제대로 된 위력을 낼 수 없습니다.]
[익히고 있는 다른 심법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 역시 예상하지 못 했다.
아마도 양기를 모으는 심법이라 귀음심공과 부딪치는 것 같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그는 다른 무공을 택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음한 계열의 무공을 익힐 생각이었다.
한 가지 속성만 파고 들어서 힘을 극대화시킬 생각이지만, 예의 경고가 다시 이어졌다.
[익히고 있는 다른 심법과 충돌한 가능성이 높습니다.]
'뭐야? 충돌이라고?'
지금까지는 이런 제약이 없었다.
삼재심법은 물론이고, 천마신공을 익힌 상황에서도 귀음심공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때는 나타나지 않은 현상에 그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 조금 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설마, 완화됐던 조건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게 이런 거였나?'
낯선 세계에 떨어져서 생존을 한다는 것은 모두가 처음 겪는 낯선 상황이었다.
살의를 가진 놈과 싸워야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점을 주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제 그 상황이 끝난 것이다.
대부분이 적응을 한 상황이라고 판단을 했는지 그동안 통했던 편법을 완전히 막힌 것 같았다.
"씨발! 어떡하라는 거야!"
손에 들어온 보상은 충분히 만족할 정도였다. 하지만 완화된 조건이 다시 돌아간 것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제는 내공을 사용하는데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내상을 치유할 수도 없었고, 부족한 내공을 바로 채울 수단이 없어졌다.
당연히 초반에 보였던 무모한 싸움은 자제해야만 했다.
'상황이 더 어려워지겠는데.'
그는 물론이고, 살아남은 모두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앞으로 상대할 놈들이 지금까지 상대했던 놈들보다 강해질 것은 당연했다.
그런 놈들을 상대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이런 편법까지 막혔다면 앞으로가 암담할 수밖에 없었다.
걸음을 멈춘 그는 상점창을 바라봤다.
C등급에 나열된 무공 대부분이 제대로 된 심법을 익혀야만 위력을 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물론, 삼재심법이나 천마신공으로 무공을 펼치는 것도 가능했지만, 특정 무공의 특성까지 제대로 끌어낼 수는 없었다.
일부 무공은 그 파괴력보다 특성이 더 중요해 보였다.
"완전히 그림의 떡이네."
눈앞에는 많은 무공이 있었다.
그것들을 익힐 충분한 포인트도 있었지만, 쉽사리 익힐 상황이 아니었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심법을 익힐 정도로 위급한 상황도 아니었다.
이미 분수에 맞지 않은 무공을 사용하면서 어떤 식으로 자멸하는지 봐왔던 그인지라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은 익히고 있던 다른 심법을 극성으로 끌어 올려야 할 것 같았다.
그때가 되면 또 어떤 식으로 변할지 알 수 없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어차피 익힐 심법이었다.
삼재심법은 안전성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필요했다.
그래도 막상 이런 제약을 확인하자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심법이 아닌 다른 것들을 살폈다.
쓸만한 수법이나 다른 능력이 있다면 그것을 익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전음? 전음도 익힐 수 있는 건가?'
몇몇 능력은 별다른 제약 없이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전음 같은 경우는 싸움에서는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굳이 전음이 아니더라도 독문심법이 필요 없는 강력한 초식도 익힐 있었다.
이름만으로도 강한 위력을 낼 것 같은 수법도 습득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익힌 심법의 성취를 높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나중을 기약한 그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제약이 상당히 아쉬웠지만, 지금은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게 먼저였다.
***
생각했던 것보다 산은 높지 않았다.
그의 몸이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상태였기 때문에 더 수월하게 느낀 건 지도 몰랐다.
그렇게 올라선 산의 정상.
그들이 있는 곳이 어떤 생김새인지 충분하기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이였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던 강준우의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먼저 도착한 다른 사람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뭐야? 서, 섬이었어?"
"사방이 안개로 가려져 있잖아? 통로가 어디 있다는 거지?"
"……."
주변을 확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이 있는 곳은 사방이 뿌연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구름이라는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섬과 같은 형세였다.
뿌연 안개 같은 걸로 주변이 가려져서 이곳이 바다인지 허공인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고립된 것만은 분명했다.
'안개로 덮인 곳에 통로가 있다는 소린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말을 떠올린 그는 혹시라도 비슷한 장소가 있는 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뒤덮인 안개는 그의 시야를 제한했다.
힘들게 정상으로 올라왔지만, 크게 얻은 건 없었다.
'숨겨졌던 지형이 드러난다고 했는데. 어딜 말하는 거지?'
처음부터 정상으로 올라와서 전체를 확인했다면 변화를 찾아낼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고블린들의 마을만 확인하고 움직인 게 결국 발목을 잡았다.
강준우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소득 없이 산을 내려가야만 했다.
그러던 그때, 그 순간, 멀리서부터 새하얀 빛이 치솟아 올랐다.
뿌연 안개를 뚫고 길게 솟아난 빛기둥에 모두가 놀라며 그곳을 바라봤다.
"뭐, 뭐야? 저건 또 뭐야?"
[숨겨진 통로가 발견됐습니다.]
[전체보상으로 1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빛과 함께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보상이 주어졌다는 말은 누군가가 임무를 완수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개별 보상으로 주어지는 무한의 식량 주머니라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간 것이다.
'완전히 다른 곳을 찾고 있었잖아?'
그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산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면 숨겨진 통로를 찾을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뒤늦게 후회가 됐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강준우는 여전히 치솟아 오른 빛기둥을 바라보며 그 위치를 가늠했다.
그가 올라와 있는 산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빛기둥은 안개로 가려져 있는 곳 인근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저기에 그 통로라는 게 있다는 거겠지?'
마치 모두를 그곳으로 이끄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꺼림칙했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달갑지는 않았다.
야생의 감각 때문인지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이대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통로라면 저곳을 통해서 다른 곳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거잖아?"
"굳이 다른 곳으로 갈 이유가 있나? 위험하지 않겠어?"
"하긴, 거기에 뭐가 있을 줄 알고."
정작 통로를 발견했다지만, 그곳으로 움직일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고블린도 겨우 잡은 그들이었다.
굳이 그곳으로 움직이면서 위험을 자초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들이 나서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움직일 거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잡히지 않을 것 같았던 부르카도 송영훈과 그 일행들에 의해서 잡혔고, 그 많던 고블린들도 결국 다른 사람들의 손에 쓰러졌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개별 보상에 혹해서 움직였던 많은 사람들도 뒤늦게 현실을 자각하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부르카라는 괴물이 죽었다는 사실에 한껏 높아졌던 자신감이 다시 제 자리를 찾았다.
체념하는 그들의 모습에 강준우는 씁쓸해했다.
마냥 구석에 숨어있는다고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통로가 있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곳으로의 이동만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을 통해서 다른 곳에 있는 놈들이 침입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미 고블린이라는 놈들을 상대한 만큼 적의를 가진 다른 놈들이 있을 거라는 사실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얼마나 더 흉악한 놈들이 나타날 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놈들이 숨어있는다고 그냥 지나칠 것 같지는 않았다.
'뭐 나한테는 다행인 건가?'
적어도 다른 경쟁자들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은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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