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천마신공-35화 (35/254)

제 35화

<영악한 놈들>

주머니는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 중에서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형태였다.

당연히 다른 것들에 비해서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통로를 발견하고 개인 보상으로 얻었을 식량 주머니인 것 같았다.

'보상을 얻은 사람이 여기에서 죽은 건가? 아니면…… 그 사람이 직접 움직인 걸까?'

그 주머니는 유난히 그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천장에 난 불빛이 마치 그것만을 비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실제로 그 주머니는 가장 빛이 많이 모이는 곳에 놓여 있었다.

마치 일부러 눈에 띈 곳에 놓아둔 듯한 느낌이었다.

누군가가 미끼를 던져놓은 것 같이 어색했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여차하면 저것만 손에 넣고 움직이면 될 것도 같은데.'

고민하던 강준우는 마음을 정하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디뎠다.

그 와중에 주변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지만, 동굴은 여전히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그는 최대한 벽에 붙어서 움직였다.

혹시라도 근처에 누가 숨어 있다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까지 들키지 말아야 했다.

그런 그의 시선에 공동의 모습이 가득 들어왔다.

공간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넓었다.

둥근 원 형태의 공간은 모두 네 개의 통로와 이어져 있었고, 사방으로 뻗은 통로는 그가 들어온 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길을 잃어버릴 정도로 비슷했다.

생각지도 못한 두 개의 통로가 더 드러나자 강준우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함정이네. 그것도 너무 눈에 뻔히 보이는 함정!'

과감하면서도 노골적이었다.

아무래도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낚기 위한 미끼인 것 같았다. 하지만 강준우는 내공을 끌어올리며 지체 없이 움직였다.

스으윽.

귀음신법을 펼친 그가 바닥을 미끄러지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 와중에 내기를 끌어올리면서 철포삼에 힘을 더했다. 만약에 있을 지도 모를 급습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순식간에 주머니를 손에 넣은 그는 곧장 방향을 바꿨다.

"크아아!"

거침없이 움직이는 그의 행동에 서로 다른 세 방향의 통로에서 커다란 포효가 들려왔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괴성과 함께 요란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왔다.

부웅. 부웅.

세 방향에서 도끼가 날아들었다.

함정이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자, 강준우는 바닥으로 납작 엎드렸다.

콰과광.

그의 위로 지나간 도끼가 바닥에 꽂히며 굉음을 흘렸다.

다행히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지만, 숨어 있던 오크들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기민한 움직임을 보였다.

놈들은 순식간에 그를 포위했다.

나타난 오크들은 모두 여섯 마리였다. 개중에 셋은 맨손이었지만, 남은 세 놈은 도끼를 쥐고 있었다.

'약은 새끼들.'

사람을 방패로 쓰던 고블린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단순히 힘만 센 놈들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오크들은 엎드린 그가 일어나기 무섭게 달려들었고, 놀란 강준우는 뒤로 물러나며 크게 소리쳤다.

"씨발!"

기합처럼 내뱉은 욕설과 함께 내공이 빠져나갔다.

동시에 그를 향해 달려들던 오크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피어였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3성의 피어가 놈들의 움직임을 막아섰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놈들의 목을 꿰뚫고 싶었지만, 여섯을 한꺼번에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언제 다른 놈들이 나타날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강준우는 지체 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가 다시 통로로 뛰어들기 무섭게 오크들도 경직에서 풀려났다.

"크아아!"

이대로 그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놈들은 흉성을 토해내며 강준우를 뒤쫓았다.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여섯 마리의 오크들.

다행히 통로가 넓지 않았다.

많아야 두 놈이 설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었지만, 덩치가 있는 놈들 둘이 나란히 서서 움직이기에는 불편한 모습이었다.

여섯 마리의 오크들이 나란히 일렬로 서며 그를 쫓았다.

놈들을 피해서 빠르게 물러나던 강준우는 그 모습을 확인하며 곧바로 몸을 돌렸다.

다수가 아닌 소수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싸운다면 그에게 크게 불리할 것은 없었다.

더군다나 이 상황을 이용하면 놈들을 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는 지체 없이 뒤로 돌았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선두에 선 오크가 당황했지만, 놈은 예의 흉성의 터뜨리며 도끼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런 오크의 눈에 강준우의 손가락이 가득 들어왔다.

검결지처럼 손가락을 모은 강준우는 두 눈을 부릅뜬 놈의 미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뒈져라!"

그의 외침과 함께 붉은 기운이 쏘아졌다.

붉은 섬광이 번뜩였고, 강준우가 날린 일양지가 그대로 오크의 미간을 꿰뚫었다.

"끄아아아!"

처절한 괴성이 뒤를 이었다.

너무나 쉽게 뚫린 미간에 오크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쿠웅. 쿠웅.

일격에 목숨을 잃은 오크들이 통나무 넘어가듯 쓰러졌다.

쓰러진 오크는 한 놈이 아니었다.

비슷한 키를 가진 놈들 넷이 동시에 넘어갔다. 그만큼 일양지의 위력은 대단했다.

"후우. 후우."

한 번에 상당한 힘을 쏟아낸 강준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천마신공의 힘을 가득 담은 일양지는 그대로 앞에 있는 오크를 관통하며 뒤에 있는 오크들의 미간까지 꿰뚫었다.

겨우 살아남은 두 놈은 급작스러운 동료들의 죽음에 당황한 듯한 모습이었다.

개중에 한 놈은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낸 것 같았다.

조금 전에 비명을 질렀던 놈으로 한쪽 귀가 날아갔는지 어깨는 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아깝네. 더 쉽게 갈 수 있었는데.'

극성으로 펼친 일양지는 오크 다섯 마리를 꿰뚫을 정도로 강력했다.

기운의 소모가 크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A등급 무공의 위력은 확실히 대단했다.

거친 숨을 몰아쉰 강준우는 남은 두 놈을 주시했다.

놈들 역시 당황한 것 같았다.

순식간에 동료 넷이 쓰러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 했는지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며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아!"

이런 상황이라면 겁을 집어먹을 만도 했다. 하지만 놈들은 오히려 전의를 불태웠다.

'독한 새끼들.'

그는 호전적인 오크들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고블린이라는 놈들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들이었다. 가진 힘은 물론이고, 본성 역시 더 거칠었다.

부웅. 부웅.

멀쩡한 놈이 부상당한 놈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서며 도끼를 휘둘렀다.

공기를 가르며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잘못 막으면 그대로 몸통이 쪼개질 것 같은 흉흉한 모습이었다.

강준우는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손가락으로 놈의 미간을 가리켰다.

"크아!"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놈이 몸을 움츠렸고, 놈을 스친 붉은 기운이 뒤에 있던 오크의 눈을 관통했다.

오히려 동료가 시야를 가리면서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동굴 오크를 처치했습니다. 2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예의 알림음을 듣기 무섭게 그는 몸을 움츠린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장을 뻗으며 놈의 몸통을 가격했다.

투욱.

가볍게 닿은 손길에 오크가 잘게 몸을 떨었다.

살을 맞은 듯 괴로워했지만, 놈은 고통을 참아내며 그대로 도끼를 휘둘렀다.

부우웅. 촤아악.

두터운 도끼날이 강준우의 팔을 밀어냈다.

욱신거리는 고통이 전해졌다.

그나마 철포삼이 유지되면서 피해를 줄였다지만, 고통이 작지 않았다.

쉽게 쓰러지는 오크들의 모습에 순간 방심을 한 것 같았다.

고통에 얼굴을 찌푸린 그는 발에 내기를 두르며 그대로 오크의 몸통을 후려쳤다.

터엉. 쿠웅.

충격을 이기지 못한 오크가 밀려나며 벽에 부딪쳤다.

균형을 잃은 놈의 모습에 강준우는 철검을 빼들며 놈의 목에 쑤셔 넣었다.

"후우. 후우."

검을 사용했다지만, 오크의 가죽은 생각보다 질겼다.

남은 놈을 처리한 그는 절로 얼굴을 찌푸렸다.

긴장이 풀리면서 팔의 고통이 더 커졌다. 그래도 큰 상처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던 강준우는 손에 넣은 주머니를 확인했다.

무한의 식량 주머니.

3시간에 한 번씩 부족한 음식이 채워진다.

채워지는 음식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신비한 주머니다.

투명한 창이 떠오르면서 손에 넣은 주머니의 정체를 알려왔다.

그가 생각했던 대로 개별 보상으로 얻은 주머니가 확실했다.

오크 여섯 마리의 함정을 뚫고 손에 넣은 귀한 보물이었다.

'이걸로 음식 걱정은 사라진 건가?'

의도적으로 걸려든 함정이었지만, 꽤 힘든 싸움을 치러야만 했다.

그로서도 여섯 마리의 오크가 이렇게 움직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내심 오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영악한 짓을 오크들이 자행하고 있었다.

확실히 이곳에 있는 놈들은 만만한 놈들이 아니었다.

그저 무식하게 힘만 쓰는 놈들이라고 알려졌던 오크들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그래도 목표했던 주머니를 손에 넣은 것은 다행이었다.

주머니뿐만 아니라 상당한 양의 포인트까지 얻을 수 있었다.

'후우. 우선 좀 쉬어야겠는데.'

언제 놈들이 다시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계속 그 자리에 머물 수는 없었다.

이제 막 동굴에 들어선 그로서는 놈들이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는지 알 지 못 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소진한 내공의 회복이었다.

피어와 일양지를 사용하면서 소진한 내용이 전체의 2/3가 넘어갔다.

그나마 천마신공의 성취가 오르면서 내공의 1/3정도를 남길 수 있었지만, 이것만으로는 이 동굴에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본 그는 널브러진 무기들 중에서 쓸만한 철검을 주워들며 자리를 옮겼다.

우선 입구로 움직이면서 내공을 회복할 생각이었다.

***

획득한 포인트로 곧장 삼재심법을 8성으로 올렸지만, 내공은 회복되지 않았다.

부족한 내공은 어쩔 수 없이 천마신공의 운기를 통해서 채워야만 했다.

동굴 안에서 눈치를 살피며 조금씩 내공을 회복한 그는 한참의 시간을 소비한 이후에야 밖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흐음.'

밖으로 나오자 밝은 빛이 그를 반겼다.

여전히 빛기둥은 유지되고 있었고,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 누가 나왔다!"

그를 발견한 누군가의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동굴로 들어선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밖으로 나온 사람이 바로 강준우였다.

처음에 밖으로 나온 그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게 당연했고, 입구에서 걸어 나오던 강준우는 모두의 시선에 걸음을 멈췄다.

'뭐지?'

그가 동굴로 들어가던 때와는 왠지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입구와 멀지 않은 곳에서 무리를 나눈 사람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오크와 싸워도 모자랄 판에 서로가 싸우고 있는 듯한 모습에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이런 식의 자중지란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너무 일렀다.

'뭐, 나랑은 상관없겠지.'

그들을 무시한 강준우는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며 걸음을 뗐다.

하지만 그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앞을 막은 세 사람의 행동에 의아해하며 바라보자, 개중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잠깐 기다리세요."

"…… 뭡니까?"

"잠깐 협조를 좀 해줘야겠습니다."

"협조요? 무슨 협조를 말하는 거죠?"

"정보든 뭐든 서로 공유하기로 했거든요. 생존을 위한 겁니다. 협조해주세요."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말에 말문이 턱 막혀왔다.

강준우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앞서 한 사람들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선 가진 걸 모두 꺼내놓으세요."

"……."

"순순히 협조하는 게 좋을 겁니다. 괜히 일을 키우기 싫다면요."

너무나 당당한 모습이 더 황당하게 느껴졌다.

어처구니없는 그의 반응에 앞에 있던 셋 중에 한 명이 얼굴을 잔뜩 구기며 언성을 높였다.

"우리들이 고블린 족장을 잡으면서 너도 안전할 수 있던 거야. 알아?"

"뭐라고?"

"그러니까 순순히 협조를 하라고!"

대충이나마 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앞에 있는 놈들이 무슨 이유로 이런 강요를 하는지 눈치챈 그는 다시 한 번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구라도 상대를 봐가면서 쳐야지."

"뭐, 뭐라고? 이 새끼.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냐?"

"니들이 고블린 족장을 잡았다고?"

"씨발! 우선 가진 거 다 꺼내라고! 뒈지기 싫으면."

"꺼져라. 뒈지기 싫으면."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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