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화
<새로운 힘>
두 사람과 떨어져 앉은 강준우는 남은 내공을 확인했다.
펼친 무공의 위력은 뛰어났지만, 그만큼 사용한 내공도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절반은 넘게 빠져나간 내공을 확인한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김연희와 권우철이 그와 떨어진 입구 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뒤쪽에는 짙은 어둠이 남아 있었다.
'오크라는 놈들이 언제 나타날 지도 모르는데.'
문제는 동굴 깊숙한 곳에 남아 있을 오크들이었다.
오히려 입구에서 들어오는 자들보다 오크라는 놈들이 더 위험할 것 같았다.
되도록이면 빨리 내공을 채우는 게 좋았지만, 여기에서 운기를 할 수 없었다.
어쩔 수없이 앉은 상태로 소진한 내공을 회복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굳이 운기를 하지 않더라도 조금씩의 내공을 회복할 수 있었다.
천마신공이 신공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대체로 상승심법이라는 것은 그만큼 효능이 뛰어났다. 그 중에서도 수위에 꼽을 수 있는 무공이 바로 천마신공이었다.
가만히 호흡을 하고 있어도 기운을 회복할 수 있었다.
비록, 제대로 된 운기조식에 비할 바는 못 됐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아직 위험한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벽에 기대서 호흡을 고른 그는 조금 전에 얻은 것들을 살폈다.
'천마군림보와 전음이라. 전음은 언제 얻은 거지?'
그들과 부딪치면서 얻은 것은 천마군림보가 다가 아니었다.
일전에 상점창에서 확인했던 '전음'도 손에 들어왔다.
'전음이라.'
무공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공짜로 얻다시피한 능력이 나쁘지는 않았다.
C등급에 등재되어 있는 능력이라면 어떻게든 쓰임새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의도치 않은 능력을 얻은 그는 고대하던 힘을 확인했다.
천마군림보.
각법과 연계하여 상대를 격살할 수 있는 상승 기공.
성취가 높아질수록 기공이 미치는 범위가 늘어난다.
범위를 좁힐수록 파괴력을 더욱 극대화 시킬 수 있다.
'상승 기공? 그냥 단순한 발차기가 아니라는 소린가?'
그저 강한 위력을 내는 각법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기공으로 나타나 있었다.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은 설명에 그는 일전에 오영미에게 받았던 그 공격을 떠올렸다.
'분명히 공간을 건너뛰고 타격을 가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기공인 건가?'
등급 외에 놓인 능력이 평범한 발차기일 리가 없었다.
내부를 파고드는 낯선 힘을 떠올린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시험해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내공을 아낄 필요가 있었다.
부족한 내공.
지금은 그것을 채우는 게 중요했다.
가만히 그 방법을 모색하던 그는 번뜩이는 생각에 곧장 상점창을 확인했다.
'분명히 뭔가를 먹었던 것 같은데.'
그는 천마군림보를 사용하고 뒤로 물러선 오영미의 행동을 떠올렸다.
천마군림보 역시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무공이었다.
어떻게 한번은 펼칠 수 있을 무공이었지만, 곧바로 움직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꽤나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그녀가 짧은 시간에 다시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뭔가를 섭취했기 때문이었다.
'음식을 얻을 수 있는 상점창이라면…… 다른 것도 충분히 얻을 수 있겠지?'
뒤늦게 상점창을 살피자, 여러 종류의 물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모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꽤나 중요한 물건들이었다.
영약은 물론이고 여러 종류의 약이 나열돼 있었다.
'내상약까지 있었네.'
오영미가 먹었던 것은 아마도 영약의 한 종류인 것 같았다.
짧은 시간에 소진한 내공을 일정부분 회복할 수 있었지만, 필요한 포인트가 만만치 않았다.
'가장 싼 게 50포인트라니.'
최하급 단약.
소진한 내공의 회복을 돕는다.
지금은 어느 정도의 내공을 회복할 수는 없었지만, 복용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위급한 상황이라면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선뜻 살 수 있을 만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그는 과감하게 최하급 단약을 손에 넣었다. 괜히 아껴봤자 좋을 것은 없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지금은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강준우는 곧장 단약을 복용했다.
운기를 하면 가장 좋겠지만, 지금은 그 상황에서는 내공을 회복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상황이었다.
'확실히 효과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곧바로 모든 내공이 차오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공이 회복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이 상황을 계속 유지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상당한 내공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유리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놈들이에요!"
동굴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의 모습에 김연희가 크게 소리쳤다.
그녀는 곧장 마법을 캐스팅했고, 권우철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순식간에 대처를 했지만, 안으로 진입한 자들이라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선두로 진입한 자가 크게 소리쳤다.
"조심해! 놈들이 기다리고 있어!"
"막아! 우선 마법을 못 날리게 막아!"
캐스팅하는 그들의 모습에 뒤따른 자가 크게 소리쳤다.
아직 마법을 완성하지 못한 김연희가 다급해하자, 권우철은 마른침을 삼키며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힐 밖에 없는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줄 생각이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씨발! 고작 몽둥이로 우릴 막겠다고?"
오히려 그 모습에 안으로 들어온 자들이 코웃음을 치며 거리를 좁혔고,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매직 미사일에 김연희는 다급히 강준우를 찾았다.
"뭐하는 거예요. 빨리……"
"닥쳐!"
그녀의 외침에 그들은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괴물 같은 놈이 개입하기 전에 두 사람을 먼저 처리할 생각이었다.
쿠웅.
하지만 그들이 달려들기 무섭게 묵직한 소리가 동굴을 뒤흔들었다.
작은 흔들림과 함께 뛰어들던 사내의 몸이 꺾였다.
"커헉."
"뭐, 뭐야? 갑자기 왜 그래?"
달려들던 사내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남은 사람들이 당황했다.
사내는 그저 피를 토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잘게 몸을 떨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움직임이 멈췄다.
"지금 장난하는 거지? 뭐하자는 거야?"
"서, 설마 죽은 거야?"
"……."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주변에 있는 거라고는 고작 두 사람뿐이었지만, 사내는 힘없이 쓰러진 것이다.
놀란 그들이 당황했지만, 그런 그들에게 밝은 구체가 날아들었다.
김연희가 만들어낸 매직 미사일이었다.
그들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마법을 완성했고, 당황하는 자들을 노리며 공격을 감행했다.
무방비라고 할 수 있던 자들이 다급하게 그녀의 공격을 받아냈다.
콰앙. 콰앙.
터져 나가는 마법에 충격을 입었지만, 그렇다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들이 다시 김연희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직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수 없었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예의 울림이 다시 전해지면서 한 명의 무릎이 꺾였다.
"뭐, 뭐야! 씨발, 너까지 왜 그래?"
"끄으윽."
선두에 선 사람이 다시 피를 흘리며 괴로워했다.
그 모습에 겁을 집어먹은 자들이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김연희와 권우철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뭐야?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아무래도…… 흐읍!"
권우철은 강준우를 떠올렸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지만, 그를 언급하기도 전에 무언가가 빠르게 옆을 스쳐 지나갔다.
기척도 없이 나타난 그 모습은 일전에 마을에서 봤던 그 모습과 똑같았다.
귀신같은 움직임에 권우철은 헛바람을 집어 삼켰고, 귀음신법으로 그를 스쳐 지나간 강준우의 장력이 쓰러진 자를 후려쳤다.
콰앙.
굉음과 함께 사내의 몸이 축 늘어졌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그의 모습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동굴을 빠져나갔다.
"후우."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강준우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다 채워지지 않는 내공으로 천마군림보를 펼치면서 무리를 한 것 같았다.
생각보다 천마군림보의 위력은 대단했다.
천마신공을 바탕으로 쏟아낸 힘은 오영미가 펼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위력을 내보였다.
고작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게 전부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펼치자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때는 일부러 위력을 낮춘 건가?'
일양지도 그렇고 천마군림보도 그렇고 어느 정도 위력을 조절하는 게 가능했다.
물론, 내공 소모를 줄이면 제대로 된 위력을 낼 수는 없었지만, 내공만 온전하다면 어렵지 않게 펼칠 정도는 충분했다.
"괜찮…… 아요?"
"뭐, 대충은요."
"……."
이전과는 또 달라진 그의 모습에 두 사람은 말을 잇지 못 했다.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상대는 아마도 강준우가 손을 쓴 게 분명했다.
그런 강준우를 바라보는 권우철은 씁쓸해했다.
강준우는 그런 두 사람을 뒤로하고 다시 뒤로 물러났다.
'아직 약효가 남아 있나?'
다시 내공을 회복해야만 했다.
하지만 뒤에서 내공을 회복하려는 그에게 김연희가 다가왔다.
"뭡니까?"
"앞쪽은 너무 위험한 것 같더라고요."
"……."
"어차피 자리는 넓잖아요?"
그녀는 강준우의 옆에 주저앉았다.
뻔뻔한 그의 행동이 황당했지만, 강준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와 거리가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무슨 남자가 저렇게 비싸게 굴어.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
"……."
김연희는 민망한 상황에 작게 투덜거렸다. 하지만 권우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심각한 그의 모습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전부터 왜 저러는 거지?'
***
"상대가 안 된다니까! 그놈이 움직일 때마다 한 명씩 죽어나가!"
"……."
"동굴도 좁아! 두 사람도 제대로 못 선다고."
"그래. 다시 들어가도 상황은 똑같아."
동굴로 진입했던 사람들의 말에 송영훈의 표정이 굳어졌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오히려 상황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갔다.
'강준우라.'
일행들 중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오영미를 쓰러뜨린 놈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이대로 그냥 넘어간다면 일행들의 반발이 있을 것은 당연했다.
작은 욕심이 결국 화를 키웠지만, 이제 와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대로 덮을 수도 없는데.'
어렵사리 주도권을 잡은 상황에서 조금만 잘못하면 모든 게 무너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려했던 말이 떠도는 상황에서 조금 더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어떡하면 좋을까?"
"어떡하긴? 무조건 놈을 잡아야지."
"……."
김기철의 말에 송영훈은 말을 잇지 못 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다. 문제는 그를 잡을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미 동굴로 들어갔던 사람들은 모두 겁을 집어먹은 상태였다.
"그러니까 놈을 잡을 좋은 방법이 있냐고?"
"계속 밀어붙여야지!"
"……."
"그놈도 지칠 게 뻔하잖아? 움직일 때마다 사람이 쓰러진다면 그만큼 내공을 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고, 체력이 깎였다는 소리잖아. 이렇게 대책을 세운답시고 시간을 주는 것보다 최대한 놈을 압박하는 게 더 나을 걸?"
"씨발! 그걸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잖아?"
김기철의 말이 맞았다. 지금은 동굴로 숨은 놈들을 압박하는 게 먼저였다.
하지만 앞으로 나설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렇다고 내가 앞장설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모든 상황을 전해들은 마당에 앞장서서 그 공격을 받아낼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송영훈은 넌지시 김기철을 바라봤다.
뭔가를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김기철이라고 앞으로 나설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의 압박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백선화가 잡히고 이제 저 새끼 세상인데.'
송영훈에게 밉보여서 좋을 것은 없었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백선화!"
"뭐?"
"그년을 잡아놨잖아?"
"여기에서 백선화가 왜 나와?"
대립하던 백선화와 부딪치면서 결국 그녀를 잡을 수 있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송영훈으로서는 지금 백선화를 언급하는 게 달갑지 않았지만, 김기철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라면 이런 식으로 이용하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년을 앞세우면 되겠네."
"배, 백선화를?"
"그래. 고블린들이 했던 것처럼 방패로 세우면 되잖아? 어차피 그년도 그 셋하고 안면이 있는 것 같던데."
"……."
생각지도 못한 말에 송영훈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씨발, 그년은 따로 시킬 게 있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은 제안이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미 주변에 있는 사람들 역시 김기철의 의견을 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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