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화
<새로운 힘>
"물어볼 게 있는데요."
"……."
의도적으로 거리를 벌린 채, 앉아 있던 강준우에게 권우철이 다가왔다. 꽤나 진지해 보이는 그의 표정에 강준우 역시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딱딱하게 굳은 권우철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뭐죠? 물어본다는 게?"
"……."
자리에서 일어난 강준우가 이유를 물었지만, 정작 그와 눈을 마주한 권우철은 쉽게 말을 잇지 못 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권현수를 죽인 사람이…… 당신이었습니까?"
"……."
갑작스러운 질문에 이번에는 그가 말을 잇지 못 했다.
'눈치 챈 건가? 일양지 때문이었나?'
강준우도 여기까지 생각하지는 못 했다.
천마군림보를 얻는다는 생각에 일양지를 드러낸 게 문제였다.
권현수가 썼던 그 무공을 권우철이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던 강준우는 굳은 얼굴로 권우철을 바라봤다.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어색해진 분우기에 그 질문을 곱씹던 김연희는 깜짝 놀라며 두 사람의 얼굴을 살폈다. 하지만 강준우는 쉽사리 답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권우철은 씁쓸해하며 다시 물었다.
"일양지라는 무공. 현수에게서 얻은 게 맞습니까?"
"…… 가만히 있었으면 내가 곤란해졌을 테니까요."
"흐음."
"족장을 잡는 과정에서 부딪쳤거든요."
이제 와서 감출 수도 없었다.
순순히 시인하는 강준우의 말에 권우철은 침음을 흘렸다.
강준우라고 그런 권우철의 반응이 편할 리는 없었다.
그 역시도 권현수와 권우철이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썩 좋은 사이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형제라면 그의 죽음에 동요하는 게 당연했다.
'어쩔 수 없나?'
되도록이면 두 사람과 함께 할 생각이었지만, 그렇다고 불안을 남겨둘 수는 없었다.
나름 마음을 먹은 그는 천천히 준비를 갖춰나갔다.
하지만 이어지는 권우철의 말에 강준우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쉽네요."
"서, 선배?"
"……."
그가 생각했던 반응과는 많이 달랐다.
권우철은 권현수의 죽음에 분노하는 게 아니라, 아쉬워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을 것을!"
"적극적으로 움직이다니요?"
"선수를 빼앗긴 것 같네요."
"……."
말하는 것만 봐서는 그가 권현수를 어떻게 했을 거라는 듯한 반응이었다.
의아해하는 강준우의 모습에 그는 힘들게 말을 이어갔다.
"복잡한 가정사죠. 쉽게 꺼내놓기 힘들 정도로 더러운 가정사."
"……."
뭔가 사정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불안함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 강준우의 생각을 잘 알고 있었는지, 권우철은 마저 말을 이어갔다.
"그놈과의 관계는…… 조금 더 친분이 쌓이면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네요."
"……."
"믿기 힘들겠지만, 제가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잘 생각해 보세요. 언젠가는 털고 가야 할 일이었으니까요."
권우철도 고심 끝에 내린 힘든 결정이었다.
굳이 아는 체를 하지 않아도 강준우와 같이 움직인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이 사실이 발목을 잡을 거라고 생각했다.
괜히 묻어뒀다가 더 곪기 전에 털고 가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동안 말없이 고민을 했던 이유는 쉽게 마음을 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묻어두고 가는 게 나은 지, 강준우에게 밝히는 게 나을 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막상 그에게 밝히더라도 강준우가 어떻게 나올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김연희와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주저한 면도 있었다. 괜히 자신과 권현수와의 관계로 그녀가 피해를 입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그의 말을 곱씹던 강준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권우철을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제 와서 그를 내치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어차피 힐을 사용하는 쪽이라면 위협은 덜 하겠지.'
무엇보다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울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굳이 이 사실을 끄집어내는 것보다 감추는 게 더 유리한 것은 당연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시간이 필요하겠죠?"
"아마도요."
그래도 완전히 불신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차피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강준우가 그들을 온전히 믿고 있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근데, 계속 여기에 있는 거예요?"
가만히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김연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꿔볼 생각이었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요?"
"안으로 들어가는 건 어때요?"
"앞장서세요. 오크들을 상대할 자신이 있다면 말리지 않을 테니까."
"…… 마나를 채우라는 거죠? 그나저나 이 새끼들은 언제 오려나."
오크라는 말에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눈을 감았다.
부족한 마력을 채우려는 그 행동에 권우철은 옅은 웃음을 흘리며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고, 강준우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내공은 부족했다.
'이참에 영약을 먹어볼까? 지금은 상황이 별론가?'
내공을 채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을 사용하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었다.
***
송영훈은 무리를 이끌고 직접 동굴로 들어섰다.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하지만 그들이 찾던 사람들은 자리에 없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이 새끼들 도망간 것 같은데?"
"씨발, 너무 늦었나?"
나름 대책을 세우고 움직인 그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 했다.
당연히 있어야 할 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씩 더 움직여 봐. 멀리 가지는 못 했겠지."
송영훈은 일행을 다그쳤다.
작정하고 들어온 마당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의 말에 앞에 선 자는 목에 겨눈 칼에 힘을 주며 백선화를 움직였다.
"뭐해? 움직여!"
"흐읍."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날붙이에 백선화는 어쩔 수 없이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순식간에 고기방패로 전락한 자신의 상황이 믿기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백선화를 앞세우며 어두운 통로로 향했다. 하지만 앞으로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불안함은 커져만 갔다.
당연히 앞장 서는 백선화도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공격을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들과 안면이 있다지만, 그렇게 친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저 마을을 공격할 때 힘을 합치고, 몇 차례 대화를 주고받은 게 전부였다.
불안해하며 걸음을 걷던 그녀였지만,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 인질? 저놈들과 같은 편이 아니라면 고개를 좌우로.
누군가 그의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지막한 목소리에 고민하던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당연히 겨눠진 칼에 살갗이 베일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악."
"뭐하는 거야?"
갑자기 자해를 하려는 그녀의 행동에 놀란 사내가 칼을 뗐다.
나름 작정을 하고 백선화를 앞세웠다지만, 돌발적인 상황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뭐해?"
"아니. 이년이 갑자기 고개를……"
걸음이 멈추자 뒤에서 상황을 물었다.
앞에 선 사내는 그에 대한 답을 이어갔지만, 멀리서 들리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꺾였다.
- 숙여!
다시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
칼을 겨눈 자가 갑자기 쓰러지자, 백선화는 그의 지시에 따라 고개를 숙였다.
그와 함께 전방에서 두 개의 구체가 날아들었다.
쉬이익. 퍼엉. 퍼엉.
매직 미사일이 그녀를 스치며 뒤에 있는 자들에게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그들이 무기를 꺼내며 공격에 맞섰다.
"조심해! 그 새끼들이야."
기습이 이루어지자 백선화는 앞으로 뛰쳐나갔다.
"저년 먼저 잡아! 도망간다!"
앞으로 뛰쳐나가는 백선화의 모습에 김기철이 크게 소리쳤다.
앞에 있던 자는 그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손에 쥔 창을 내지르며 그대로 백선화의 등을 노렸고, 백선화는 그 움직임에 깜짝 놀라며 크게 소리쳤다.
"노움!"
누군가를 찾는 소리에 돌연 바닥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벽이 만들어졌지만, 그것만으로는 상대가 내지른 창을 막아낼 수 없었다.
터엉. 우두두두.
얇은 돌 벽이 순식간에 부서져 나갔다. 남은 힘을 쥐어짜며 힘겹게 만든 수단이 무력화 된 것이다.
상대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바닥에 처박힌 백선화의 가슴을 노리며 창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행동도 계속 이어질 수 없었다.
- 멈춰!
갑자기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그의 몸이 빳빳하게 굳어졌다.
'피. 피어라니? 이게 뭐야?'
오직 그에게만 들리는 소리였고, 그의 몸만 딱딱하게 굳었다.
피어에 노출된 그가 움직임을 멈추자, 그에게 새하얀 구체가 날아들었다.
퍼엉. 퍼엉.
매직 미사일에 적중당한 그가 피를 뿌리며 튕겨져 나갔다.
무방비 상태로 맞은 매직 미사일은 그의 머리통을 부쉈고, 그 모습에 기겁한 백선화는 바닥을 기며 멀어지려고 노력했다.
처절한 몸부림이었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새가 없었다.
"시발! 멍하니 서서, 뭐하는 거야?"
"조심해. 최대한 간격을 벌려!"
이미 일양지의 힘을 잘 알고 있는 김기철은 일행들을 향해 소리쳤다.
상당히 위협적인 기습이었지만, 수는 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희생이야 있겠지만, 지금은 이대로 밀어붙이는 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송영훈도 그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개자식들!'
이미 두 명이 쓰러진 상황에서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는 도끼를 고쳐 잡으며 옆에 있는 김기철을 향해 말했다.
"우리가 같이 앞으로 나가자."
"뭐, 뭐라고?"
"이대로라면 얘들만 다쳐!"
"……."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신도 직접 나서겠다는 송영훈의 말에 김기철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앞으로 나서는 순간, 김기철의 귓속에 짜증 섞인 욕설이 날아들었다.
- 개새끼!
낯선 전음과 함께 그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그를 노리며 매직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두 번째로 쓰러졌던 사람처럼 김기철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과 달랐다.
콰앙. 콰앙.
옆에 있던 송영훈은 경직된 김기철을 보며 곧장 그를 도왔다.
휘두른 도가 매직 미사일을 터뜨렸고, 송영훈은 황당해하며 소리쳤다.
"시발! 뭐하는 거야? 그렇게 넋 놓고 있으면 어쩌자고?"
"피, 피어야!"
"뭐?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놈이 피어로 사람을 묶어둔다고!"
"……."
사뭇 진지한 말에 송영훈은 마른침을 삼켰다.
'피어라니. 도대체 어떻게?'
강준우라는 놈은 알면 알수록 더 많은 능력을 내보이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상대를 잘못 건드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미 내친걸음이었다.
"내공을 끌어 올려. 어느 정도 대항할 수 있으니까."
"내공?"
"그래. 마법사는 마력으로 몸을 보호해! 잘하면 공격을 피할 수 있어."
뒤에 있던 박형선이 대비책을 알려줬다.
하지만 궁극적인 대책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 움직이면 마력이나 내공이 빠르게 소진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마냥 당하고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송영훈은 내공을 끌어 올리며 도끼로 앞을 가린 채, 그들을 압박해 나갔다.
앞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
피어에 관한 대비를 해나가는 그들의 대응에 강준우는 씁쓸해했다.
'그렇게 대비가 가능한 건가?'
나름대로 전음의 쓰임새를 찾아낼 수 있었다.
전음에 피어를 섞으면 작은 내공으로도 한 명의 적을 묶을 수 있었고, 여러 명을 대상으로 피어를 쓰는 것보다 내공의 소모를 줄일 수 있었다.
좁은 통로라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에 효과적인 방법이었지만, 이제 그 이점이 사라진 것 같았다.
- 물러나세요. 미리 말했던 대로 움직여요.
강준우의 말에 세 사람이 분주히 움직였다.
권우철은 백선화를 부축했고, 김연희는 매직 미사일을 캐스팅하며 만약의 경우에 대비했다.
강준우는 그런 그들을 뒤로하고 조금씩 다가오는 사람들을 살폈다.
'작정을 했네. 이 기회에 모두 처리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여전히 내공은 부족했다.
시간이 길지 않았던 터라 많은 내공을 회복할 수 없었지만, 굳이 내공이 아니더라도 저들을 상대할 방법은 많았다.
'조금 빨리 움직여야하나? 타이밍을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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