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화
<새로운 힘>
"개자식들. 이 기회에 반드시 죽인다!"
언제 다시 공격이 날아올지 알 수 없었다.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 앞장서고 있었지만, 김기철은 물론이고 송영훈까지 잔뜩 긴장한 채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씨발, 이러다가 심장마비로 뒈지는 거 아니야?"
계속 긴장한 채로 움직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제 날아올지 모를 피어에 내공을 유지한 채로 움직이는 것은 고역이었다.
흐릿한 불빛에 의지해서 움직이는 그들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뭐, 뭐야? 누가 죽어 있는데?"
"이건 처음 보는 놈들이잖아?"
통로에 널브러진 시체들이 그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여섯 마리의 오크가 일렬로 늘어진 채, 쓰러져 있었다.
"이 시체들. 오크 아니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쓰러진 오크의 외형이 범상치 않았다.
꽤나 강한 놈들인 것 같았지만, 대부분이 미간이 꿰뚫린 채 죽어 있었다.
그 흔적이 일양지라는 무공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김기철은 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이놈들을 다 죽였다고?'
동등한 조건에서 같이 시작했지만, 강준우만 유독 특출 난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의 특별한 능력은 말이 되지 않았다.
왠지 모를 불안함이 전신을 옥죄었지만, 그는 일부러 그 사실을 숨겼다.
괜히 이런 사실을 알려서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보다 모른체하는 게 좋았다.
"이 흔적은…… 지금 뭐하는 거야?"
"걸리적거리잖아. 옆으로 치워야 움직이기 더 편하지."
"……."
"괜히 알려봤자 좋을 건 없다고."
나지막한 그의 말에 송영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뒤따르는 사람들만 불안하게 만들 뿐이었다. 물론, 쓰러진 놈들이 누구의 소행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지만, 그래도 굳이 거론할 이유는 없었다.
통로에 쓰러진 오크를 뒤로한 그들은 널따란 공간에 들어서면서 걸음을 멈췄다.
서로 다른 세 개의 갈림 길이 그들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어떡하지?"
"……."
그곳에도 싸운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오크로 보이는 놈이 쓰러져 있었지만, 이미 목숨을 잃은 것 같았다.
"뭐라도 찾아 봐."
"그놈들이 흔적을 남겼을까?"
"모르지. 실수를 했을 지도."
비교적 밝은 곳이었기 때문에 나름 흔적을 찾았지만, 이렇다 할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따로 발자국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떡할까?"
"왼쪽부터 가자!"
"뭐라도 찾은 거야?"
"우선 왼쪽부터 차근차근 찾아보는 게 좋지 않겠어?"
우선 한쪽 방향을 먼저 찾자는 송영훈의 말에 김기철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 새끼는 생각이 있는 건가?'
죽은 부르카를 이용한 것을 보면 생각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머리가 많이 딸린 것 같았다.
"구조가 어떨지 알고 다 뒤져봐?"
"씨발! 그럼 어떡하자고?"
"그냥 여기에서 기다리는 건 어때?"
"시간을 끌면 그놈만 유리해진다며?"
어설프게 움직이는 것보다 그냥 자리를 지키는 게 나을 것 같았지만, 서로의 생각이 달랐다.
지금까지 그 정도의 힘을 보인 강준우라면 내공을 회복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게 좋았다.
다시 고민하던 김기철은 다시 새로운 생각을 밝혔다.
"몇 명만 움직이는 건 어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나머지는 여기에서 대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게 좋을 것 같기는 한데……"
김기철의 말이 그럴 듯하게 들렸지만, 따로 움직일 사람을 뽑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뒤에서 그들을 따르던 사람들이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하아. 이런 새끼들이랑 같이 움직여야 하는 거야?'
수가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김기철은 답답해하며 송영훈을 바라봤지만, 그 역시 좋은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차라리 권현수가 더 나았다.
독선적인 면은 강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과감하고 단호하게 결정을 내릴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답답한 상황에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지만, 그때 누군가가 김기철을 가리켰다.
"그럼 네가 직접 움직이는 건 어때?"
"……."
일행 중 누군가가 김기철을 꼬집었다. 계속해서 말만 하는 놈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정확히 자신을 지칭하는 그 말에 김기철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근처에 있던 박형선이 그를 두둔했다.
"너무 편을 가르는 거 아닌가?"
"편이라니?"
"그렇잖아. 아무리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렇지. 위험한 일은 노골적으로 우리들에게만 시키려는 게 너무 눈에 보이잖아."
"언제 너희들만 시켰다고 그래?"
"지금 상황이 그렇잖아!"
갑자기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섣불리 나서지 않으려는 그들이 분열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가만히 지켜보던 송영훈이 흥분한 그들을 만류했다.
"그만!"
"……."
"정태야. 네가 갔다 와."
"우, 우리가?"
"왼쪽은 정태 네가, 중앙은 김기철. 오른쪽은 내가 차례로 움직인다. 어때? 이렇게 하면 괜찮겠지?"
따로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김기철이 어쩔 수 없이 동의하자 박정태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바로 도망 와."
"아, 알았어."
내심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양정태는 다른 네 명을 추리며 김기철을 노려봤다.
꽤나 싸늘한 눈빛이었지만, 김기철은 그의 시선을 무시했다.
하지만 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크와아아!"
"뭐, 뭐야?"
전방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그들은 다급히 무기를 고쳐 잡았다.
본능적으로 앞을 경계했지만, 앞쪽 통로에서 한 사람이 빠르게 거리를 좁히며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그 새끼다!"
"씨발, 공격해!"
갑자기 나타난 사람은 강준우였다.
무방비로 달려드는 그의 모습에 놀란 자들이 다급히 기운을 끌어 올렸다.
"죽어!"
마법을 날릴 시간이 없었다.
우선 내공을 가득 담은 무기를 휘두르며 그를 공격했지만, 그 순간, 강준우는 크게 바닥을 굴렸다.
쿠웅.
귀음신법으로 달려오던 그가 강하게 바닥을 내리 찍자, 대응하려던 자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크흑."
"이, 이건!"
바닥을 타고 파고든 은밀한 기운이 그들의 몸속을 파고들었다.
기맥으로 침투하며 내공의 흐름을 방해하자, 몇몇은 그대로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천마군림보?"
"영미가 가진 무공이잖아?"
"죽어!"
천마군림보로 대부분을 묶을 수 있었지만, 이미 대비를 하고 있던 송영훈을 옭아맬 수는 없었다.
김기철과 박형선도 파고드는 힘을 떨쳐내며 강준우와의 거리를 좁혔다.
온 몸에 내공을 가득 두른 그들의 움직임은 강준우에 못지않았다.
순식간에 그를 따라잡은 자들의 위협적인 공격에 강준우는 내공을 끌어 올리며 철포삼에 기운을 실었다.
부우웅. 콰앙.
가장 먼저 그를 공격한 사람은 송영훈이었다.
작정을 하고 휘두른 도끼가 아슬아슬하게 그를 스쳐 지나갔다.
제때 밟은 보법이 그의 공격을 피해냈지만, 아직 김기철과 박형선의 공격이 남아 있었다.
"끝이다!"
기회를 잡은 김기철이 곧장 그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별안간 그가 있던 자리가 솟구쳐 올랐다.
"뭐야?"
구석 통로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백선화가 그를 도왔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가 있었다.
휘청거리는 김기철의 공격이 틀어졌다.
강준우의 미간을 노리며 날아들던 공격이 허공을 찔렀고, 강준우는 몸을 비틀며 날아오는 박형선의 공격을 흘려냈다.
촤아악.
그의 도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철포삼이 충격을 줄였다. 입고 있던 옷이 잘려나갔지만,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뭐하고 있어! 모두 저 새끼를……"
"오, 오……"
"무슨 소리야? 모두 공격하라고!"
"오크다!"
"크와아아!"
괴성이 뒤를 이었다.
그제야 송영훈은 강준우가 막무가내로 달려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설마, 일부러 오크들을……"
게임에서 몹들을 몰아오는 것처럼 강준우는 오크들을 몰아왔다.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놈들이 흉성을 토해내며 널따란 공간으로 들어섰다.
"미친 새끼!"
"마, 막아. 오크들을 잡……"
"아아악!"
오크들은 미처 대응을 하기도 전에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강준우를 쫓아온 놈들이었지만, 비슷비슷하게 생긴 인간들을 모두 적으로 인식한 것이다.
부웅. 콰직.
오크가 내던진 도끼가 뒤에서 마법을 캐스팅하던 자의 머리에 꽂혔다.
제대로 힘도 써 보지 못 하고 무너지는 그 모습에 근처에 있던 자들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이미 기선은 제압당한 상태였다.
난입한 오크들은 다시 한 번 처절한 괴성을 질러댔고, 주변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크와아!"
"우선 저 새끼를…… 씨발!"
콰앙.
번뜩이는 도끼를 피해 바닥을 구르자, 그가 있던 자리에 오크의 도끼가 꽂혔다.
송영훈이 뒤로 물러나는 사이, 강준우는 다시 내공을 끌어 올리며 바닥을 박찼다.
귀음신법을 극성으로 펼친 그의 몸이 순식간에 우측의 통로로 향했지만, 지금은 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난입한 동굴 오크들이 본격적으로 그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아아악!"
"마법! 마법을 날려."
"놈들을 막아. 시간을 벌라고!"
그들은 저마다 사력을 다했다.
난입한 오크들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고블린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완력과 맷집을 가지고 있었다.
푸욱.
"씨발, 죽어라. 이 괴물 새…… 크흡."
"크륵. 크륵."
날카로운 검이 옆구리를 파고 들었지만, 놈들은 개의치 않으며 검을 붙잡았다.
그리고 공격을 감행한 자의 몸통에 도끼를 찍어 넣었다.
어지간한 상처는 그냥 무시할 정도로 담담한 반응이었다.
무기력하게 쓰러지는 자를 뒤로한 오크는 다른 상대를 찾았고, 공동 안은 처절한 비명과 난무하는 괴성으로 가득 찼다.
동굴 오크는 강력했다.
한쪽 통로에 비켜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연희는 절로 마른침을 집어 삼켰다.
'저 인간은 이런 놈들 여섯을…… 혼자서 죽였다는 거잖아?'
새삼 강준우의 강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기에 상황을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 머리까지 가지고 있었다.
부족한 내공을 대신하기 위해서 다른 오크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복잡한 동굴의 지형을 활용한 그의 생각이 주효했고, 그들을 잡기 위해 모인 자들은 놈들의 손에 쓰러져 나갔다.
"힐! 팔 말고, 다친 곳은 없는 겁니까?"
"괜찮아요."
권우철의 목소리에 김연희는 상념에서 떨쳐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매직 미사일을 날렸다.
콰앙. 콰앙.
가까이에 있던 자가 그녀의 공격에 쓰러졌다.
몇몇이 오크를 피해서 그들이 있는 통로로 들어섰지만, 그들의 앞을 백선화가 가로막았다.
"노움! 막아!"
그녀의 말에 다시 벽과 바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이래?"
"그년이잖아!"
순식간에 입구를 가로막자, 물러나던 사람들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가 만들어낸 벽은 순식간에 깨져나갔다.
"저게 최선이에요."
"이제 어떡하죠?"
"어쩌긴? 물러나야지."
권우철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며 강준우를 바라봤다.
강준우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굳이 여기에 남아봤자 좋을 건 없었다.
"뒤쪽은 괜찮을까?"
"…… 모르지."
"제, 제가 앞장설게요."
지친 듯한 강준우의 모습에 백선화가 자처하며 나섰다.
조금 위험한 일인 것 같았지만, 여기에서 몸을 사린다고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괜찮겠어요?"
"정령을 움직이면 위험을 피할 수는 있을 거예요."
뒤늦게 그녀가 사용하는 힘이 정령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일전에 매혹을 사용했던 그녀의 힘을 떠올린 강준우는 의외의 힘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 상황에서 앞장선다는 것만 봐서는 마냥 짐은 안 될 것 같았다.
'그래도 한 사람 몫은 할 수 있으려나?'
아직 정령술이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할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없었다면 나서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최대한 조심해야 해요."
"대충 주변은 살펴봤는데, 끝까지 살핀 게 아니라서 어디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어요."
"…… 알았어요. 최대한 조심히 움직여 볼 게요."
두 사람의 걱정스러운 말에 백선화도 긴장하며 말했다.
그런 그들을 뒤로한 강준우는 뒤에 남아서 은밀하게 귀음신장을 뿌리며 다른 사람들을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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