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화
<통로가 연결된 곳>
"말도 안 돼! 우리처럼 갑자기 여기 떨어진 사람들이 더 있다는 거야?"
"애초에 우리의 경우도 말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
강준우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들 역시 이런 상황이 황당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갑자기 불려온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알 수 없는 괴물들과 싸워야만 했다.
불가사의한 일이었지만, 이런 일이 그들에게만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럼 여기에 나타났던 고블린들은?"
"아마 저기에서 들어온 놈들일 가능성이 높지 않겠어요?"
"그 말은…… 저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는 건가요?"
"……."
충격적인 말이었지만, 꽤나 합당한 추리였다.
그들 사이에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이런 처지에 처한 사람들이 그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겪었던 일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린데.'
아직 다른 사람들을 직접 만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곧 조우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던 강준우는 정신을 차렸다.
마냥 이대로 서 있는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모르지.'
송영훈을 비롯한 다른 놈들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다른 곳으로 빠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고블린이 여기까지 나타난 것을 보면…… 이곳 상황도 좋지 않은 것 같고.'
아마도 고블린 족장을 처리하지 못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가만히 고민을 하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심각하게 고민하던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어디 가요?"
"여기로 나가보는 건 어때요?"
"여기로 가자고요?"
"고블린들이 여기에서 들어온 거라면…… 살아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겠죠."
"……."
"그래도 고블린만 있다면 밖은 여기보다 안전할 지도 모르죠."
오크보다는 고블린을 상대하는 게 더 나았다.
이미 고블린과 싸운 경험이 있는 그들이었기 때문에 적절한 대처가 가능했다.
"어떻게 할 건가요?"
"뒤쫓는 놈들을 피해서 저쪽으로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흐음."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던 권우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섰다.
"선배? 뭐하는 거야?"
"뭐하긴, 이제 내가 나설 차례잖아."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밖에 대한 불안함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정령이 밖을 살폈다고 하지만, 사람이 직접 움직인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밖에 고블린이 모여 있거나 위험한 생명체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밖으로 가도 안전할 지를 몰랐기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자리한 네 사람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생각이었다.
권우철은 그 점을 걱정하며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사실 내가 한 게 없잖아. 이런 거라도 나서야하지 않겠어?"
"……."
"정령이 움직일 수 있는 걸보면, 사람도 움직일 수 있겠지."
비장한 그의 말에 김연희는 말을 아꼈다.
"별일 없을 겁니다. 들어갔다 나올 게요."
"조심하세요."
백선화의 말을 뒤로한 권우철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옅은 웃음을 보이며 조심스럽게 팔을 밀어 넣었다.
불투명한 막을 통과하는 팔을 다시 거둬들였고,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확실히 몸을 집어넣었다.
권우철은 불투명한 막을 수월하게 통과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뭐야? 왜 돌아오지 않는 거야?"
"……."
"어떡해요? 뭐라도 해 봐요!"
권우철에게서 아무 소식도 없자 김연희는 불안해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대로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뭔가 위험이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뭐지?'
밖에 고블린이 있다는 말은 없었다.
백선화가 노움을 통해서 이미 밖에 별다른 위협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우철은 돌아오지 않았고, 강준우는 백선화를 향해 다시 물었다.
"정령을 다시 보내보죠."
"아, 알았어요."
그녀 역시 권우철이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시 정령을 소환하며 밖으로 보냈고, 밝은 얼굴로 상황을 전했다.
"무사한 것 같아요."
"정말요? 선배가 무사한 거예요?"
"예. 밖에서 주변을 살펴보고 있는 것 같아요."
"흐음."
별다른 위협이 없다는 사실은 다행이었다.
강준우는 자리에 앉으며 부족한 내공을 채웠고, 두 사람도 안도하며 소진한 마력을 채워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다시 권우철이 모습을 드러냈다.
꽤나 긴장한 표정으로 다시 나타난 그는 자신을 향한 세 사람의 시선을 느끼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제가 너무 늦었죠?"
"뭐야? 기다린 거 몰랐어?"
"미안. 잠깐 바깥을 살펴보느라."
"……."
씁쓸해하며 말하는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를 알아낸 것 같은 그의 모습에 강준우는 그를 향해 물었다.
"알아낸 거라도 있는 겁니까?"
"예. 예상했던 것처럼……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도 이곳으로 온 것 같아요."
"저, 정말이야?"
"그리고…… 밖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은 것 같고요."
"주, 죽다니요?"
모두 죽었다는 말에 백선화는 깜짝 놀랐다.
"아마도 그 족장이라는 놈을 죽이지 못 한 것 같아요."
"족장! 그럼 저기에도 고블린 족장이 남아 있다는 소리잖아?"
이미 먼발치에서나마 부르카라는 놈의 모습을 확인한 그들로서는 걱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준우는 그 사실을 반겼다.
'족장이 남아 있다고?'
상당한 포인트와 능력을 넘겨준 놈이었다.
비록,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놈이었지만, 그 역시도 상당한 성장을 이룬 만큼 놈을 상대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잘 된 건가?'
야생의 감각이나 피어의 성취를 올릴 수 있을 계기가 될 지도 몰랐다.
잠깐 고민하던 그는 남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쪽으로 넘어가죠."
"괘, 괜찮을까요?"
"족장도 족장이지만, 고블린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을 거예요."
"그래서 더 좋겠네요."
"조, 좋다니요?"
"포인트는 얼마 안 되지만 적당한 놈들일 것 같네요."
"적당한 놈들?"
"세 사람이 힘을 키우기에 적당한 놈들이요."
"……."
그의 말을 곱씹던 셋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그들에게는 오크보다 고블린이 어울렸다.
"족장은 제가 잡아보죠."
"…… 괜찮겠어요?"
"여차하면 도망가야죠. 굳이 무리를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아, 알았어요."
"우선 내공을 회복하고 다시 움직이죠."
***
네 사람은 다시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널브러진 시체를 확인하며 얼굴을 구겼다.
"멀쩡한 사람이 없잖아?"
"고블린들에게 우리는 먹이일 뿐이니까."
"……."
불편한 진실을 꼬집는 권우철의 말에 김연희는 눈을 흘겼다.
"지형은 전에 있었던 곳과 엇비슷한 것 같네요."
"이제 어디로 가죠?"
그런 둘을 뒤로한 강준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방향을 정했다.
"산으로 움직이죠. 근처에 놈들 마을이 있을 테니까."
"그 족장이라는 놈이 있다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우선 움직여보죠. 이렇게 탁 트인 곳보다는 산으로 들어가는 게 더 나을 테니까."
"그래요. 그게 좋겠네요."
그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주변은 어두컴컴해졌다.
기운을 회복하면서 시간을 소진할 수밖에 없었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이번에도 백선화는 자처하며 앞장섰다.
동굴에서와는 다르게 바람의 정령을 통해서 전방을 살폈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근데, 정령술은 어떻게 얻은 거예요?"
"그냥…… 처음 얻은 힘이 큰 도움이 됐죠."
"처음 얻은 힘이요?"
"…… 매혹이라는 능력이었어요."
김연희의 물음에 백선화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전에 강준우에게 매혹을 사용했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그거랑 정령술이랑 무슨 차이가……"
"아, 매혹으로 정령들하고 친화력을 높일 수 있더라고요."
"아! 그럴수도 있구나."
"마법보다는 더 빨리 사용할 수 있더라고요."
그래도 몇 시간을 함께 했는지 두 사람은 꽤 친해져 있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통해서 그들에 관해서 알게 된 강준우는 셋의 능력을 떠올렸다.
마법사라고 할 수 있는 김연희는 헤이스트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제대로 사용할 깜냥이 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꽤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권우철은 힐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아직 제대로 된 힘을 내는 것보다는 그저 상처 치유하는 물약이라고 할 수 있었고, 백선화는 정령술을 사용했다.
그나마 셋 중에 가장 큰 도움이 되고 있는 사람이었다.
'겹치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인가?'
가진 능력만 보면 나중에 다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문제는 아직 제대로 된 힘을 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지만, 여기에서 힘을 키우면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뭔가 있어요!"
그렇게 움직이던 그들은 백선화의 말에 걸음을 멈췄다.
강준우는 기운을 끌어 올리며 앞으로 나섰고, 김연희는 곧장 마법을 캐스팅했다.
고작 매직 미사일을 만들어내는 게 전부였지만, 고블린들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최대한 힘을 아끼세요."
"아, 알았어요."
강준우의 당부와 함께 앞에 있던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고블린이 무리를 이루며 나타난 것이다.
"캬캬캭!"
예의 웃음을 흘리며 다가온 놈들이 오히려 반갑게 느껴졌다.
강준우는 놈들을 바라보며 몸 곳곳에 내공을 둘렀다.
"키아악!"
고블린 무리도 그들을 발견했는지 달려들기 시작했다.
멀리서부터 촐싹 맞게 뛰어오는 놈들에게 김연희의 마법이 날아들었다.
퍼엉. 퍼엉.
평범한 고블린들이 그녀의 공격에 나가떨어졌다.
한 놈이 축 늘어지며 움직임을 멈췄고, 김연희는 다시 마법을 캐스팅했다.
백선화도 불의 정령을 불렀다.
비록, 최하급이었지만, 불덩이처럼 생긴 놈이 떠오르며 고블린들을 덮쳤다.
콰앙.
터져나가는 불길에 고블린들이 흥분하며 더욱 빠르게 달려들었다.
개중에 한 놈은 그들을 향해 마법을 날렸다.
'샤먼도 있었나?'
시뻘건 불덩이가 날아들었다. 하지만 강준우의 손짓과 함께 날아들던 불덩이가 터져 나갔다.
귀음신장이었다.
순식간에 사라진 마법에 뒤에 남은 세 사람의 표정이 밝아졌다.
더 이상 고블린들이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만큼 더욱 힘을 끌어 올렸다.
남은 셋을 바라보던 강준우는 뒤에서 멀뚱히 서 있는 권우철의 모습에 씁쓸해했다.
"잠깐 자리를 비우죠."
"예? 그게 무슨……"
"앞에서 놈들만 막아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갑자기 선두에 서게 된 권우철은 몽둥이를 들어 올리며 김연희와 백선화의 앞을 가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우는 곧장 고블린 사이로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달려드는 그의 모습에 남아 있던 고블린들이 흥분하며 그를 노렸다. 하지만 이미 격차가 벌어진 그를 잡아낼 수 없었다.
터엉. 터엉.
그는 평범한 고블린들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냈다.
내기를 돌린 철포삼은 놈들의 공격을 수월하게 받아냈다. 별다른 피해도 없이 공격을 튕겨낸 그는 곧장 고블린 샤먼을 노렸다.
"크아아!"
놈의 주변을 지키던 워리어가 검을 휘둘렀다.
쉬이익.
그대로 목을 베어내려는 듯이 날카로운 검이 날아들었지만, 강준우는 내공을 두르며 날아오는 검을 쳐냈다.
콰앙.
오히려 고블린의 검이 밀려났다.
철사장이 놈의 검을 쳐냈고, 빈틈이 드러나는 순간 귀음신장이 그대로 놈의 가슴에 꽂혀들었다.
고블린 워리어가 잘게 몸을 떨며 무너져 내렸다.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놈을 뒤로한 그는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뜬 고브린 샤먼을 확인하며 놈의 목을 틀어쥐었다.
"끄으으."
그 악력을 이기지 못한 놈이 괴로워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강준우의 주먹이었다.
퍼엉. 콰앙.
그가 고블린 샤먼을 붙잡는 사이에도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권우철은 달려드는 고블린을 상대로 몽둥이를 휘둘렀고, 비교적 수월하게 놈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확실히 큰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우는 손에 쥔 고블린 샤먼을 질질 끌며 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 그놈은 뭐예요?"
"죽여요."
"…… 네? 주, 죽이라니요?"
"잡고 포인트를 얻으라고요. 이대로라면 성장은 뻔할 것 같으니까."
강준우가 어떤 이유로 샤먼을 사로잡아 왔는지 깨달은 권우철은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지금은 민망해하는 것보다 힘을 키워서 도움이 되는 게 먼저였다.
"고, 고맙습니다."
감사의 뜻을 밝힌 그는 고블린 샤먼의 머리통을 후려치며 포인트를 얻어갔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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