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화
<일단락된 악연>
"이거나 먹어라!"
뒤에 있던 마법사는 권우철을 향해 소리치며 팔을 뻗었다.
그의 손짓에 주먹만 한 화염구가 권우철을 향해 날아들었지만, 동시에 요란한 소리를 그와 가까워졌다.
부우웅. 부우웅.
위협적인 소리에 뒤늦게 시선을 돌리자, 두꺼운 도신이 둥근 원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콰직.
뒤에서부터 날아온 도신이 마법사의 몸에 꽂혔다.
끔찍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끈 떨어진 연처럼 밀려난 그 모습에 놀란 자들이 시선이 절로 뒤로 향했다.
"그, 그 새끼다!"
"씨발! 윈드 커…… 끄윽!"
빠르게 달려드는 강준우의 모습에 남은 자가 캐스팅한 마법을 쏘아내려고 했지만, 그보다 강준우의 동작이 더 빨랐다.
그대로 팔을 내뻗자, 소리치던 자의 몸이 꺾여 나갔다.
한기에 노출된 것처럼 잘게 몸을 떠는 그 모습에 함께 있던 둘이 절로 뒤로 물러났다.
그 와중에도 강준우는 크게 도약하며 그들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혔다.
갑자기 뛰어 오르는 그의 모습에 뒤에 있던 송영훈이 크게 소리쳤다.
"위험해! 천마군림보다!"
"피, 피해."
그저 크게 도약한 것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지레 겁을 집어 먹으며 바닥을 굴렀다.
갑자기 뛰어 오르는 모습을 확인한 강준우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뭐지?'
그가 내려서기 무섭게 그들은 위로 뛰어올랐다.
잘 짜인 안무의 한 동작처럼 남은 넷이 펄쩍 뛰어오르자 강준우는 뒤늦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설마, 천마군림보를 이런 식으로 파훼할 수 있는 건가?'
천마군림보 자체가 그가 내뿜은 힘이 바닥을 타고 상대에게 전해지는 방식이었다.
허공으로 뛰어 오르면 흘러간 힘을 피할 수 있었다. 매개체가 없으면 힘을 전달하지 못 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몰랐다.
그전까지는 생각도 못한 방법이었다. 어마어마한 위력에 가려 이렇게 간단한 파훼법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이들의 동작으로 이제야 그 약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여자가 미친 듯이 떠올라서 공격을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건가?'
불현듯 오영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움직였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상대의 시선을 끌고, 뛰어오르는 것을 막아내기 위했던 것 같았다.
오영미를 통해서 천마군림보의 단점을 파악하고 있던 그들은 유연하게 대처했다. 다만, 문제는 강준우가 처음부터 천마군림보를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뭐, 뭐야? 우리를 속인 거야?"
"……."
지레 겁을 먹고 뛰어 올랐던 오정태는 황당해 하며 소리쳤다.
강준우의 손짓에 괴로워했던 동료의 상태가 멀쩡했다. 제때 몸을 피하지 못한 그는 처음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몸을 피하면서 쓰러진 동료를 버린 상황이었다.
강준우는 쓰러진 사내를 걷어찼다.
내공이 가득 실린 일격에 그가 튕겨져 나가며 바닥에 처박혔다.
"끄윽."
상당한 충격은 입었는지 그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우는 김연희를 향해 전음을 날렸다.
- 처리해.
"……."
간단한 말이었지만, 김연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방비 상태에 놓인 사람을 마무리 짓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강준우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마법사를 넘겨줬는지 잘 알았다.
"매직 미사일!"
그녀는 준비한 마법을 날렸고, 쏘아낸 매직 미사일이 마법사의 몸에 꽂혔다.
그 충격에 들썩이던 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직접 마법을 날렸지만, 충격을 떨쳐낼 수 없던 김연희는 생명의 무게를 감당해야만 했다.
김연희에게 마법사를 떠넘긴 그는 뛰어 오른 다른 마법사를 향해 장력을 뿌렸다.
공중으로 몸을 날린 상황에서 그의 공격을 피하는 게 쉬울 리 없었다.
"끄읍!"
은밀한 장력에 마법을 사용한 자의 몸이 꺾여 나갔다.
"막아!"
"나도 손이 안 닿는다고!"
이대로라면 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을 모두 잃을 판이었다.
제대로 붙어보지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쓰러지는 일행들의 모습에 송영훈은 이를 악물었다.
"개자식아! 덤벼!"
"……."
송영훈은 그런 강준우를 도발하듯 소리쳤지만, 굳이 이런 유리한 상황에서 그를 상대할 이유가 없었다.
강준우는 바닥에 처박힌 남자를 향해 움직였다.
마저 그를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순간 섬뜩한 느낌이 그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상함을 느끼기 무섭게 보법을 밟으며 몸을 피했다.
쉬이익. 피잇.
다행히 야생의 감각으로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지만, 순간, 그의 얼굴에서 피가 튀었다.
'뭐야?'
엄청난 빠르기였다.
번뜩이는 섬광과 함께 오정태의 검격이 아슬아슬하게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철포삼의 힘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운이 좋은 새끼네."
회심의 일격을 피한 강준우의 행동에 그가 아쉬워하며 뇌까렸다.
당황한 강준우는 급하게 그와의 거리를 벌렸지만, 오정태는 다시 빠르게 달려들며 검을 뿌렸다.
쉬이익.
다시 한 번 날아든 일격.
번뜩이는 섬광과 함께 날아든 공격은 직접 보고도 쉽게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나마 처음부터 공격을 할 것을 예상하며 물러났기에 피해는 없었지만,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엄청난 빠르기였다.
'이 새끼 뭐지?'
강한 내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순간적은 가속도는 그조차도 힘들어 할 정도로 엄청난 것 같았다.
놀란 그를 향해 다시 오정태가 쏘아졌다.
빛으로 변한 그의 일격이 다시 강준우를 노렸지만, 뒤로 물러나던 강준우는 보법을 밟으며 방향을 바꿨다.
우선 쓰러진 놈을 마저 처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달려들던 오정태의 어색한 움직임에 생각을 달리했다.
'꼭 고블린 족장처럼 움직이잖아?'
순간 방향을 바꾸자, 오정태는 그를 쫓아오지 못 했다.
어색한 몸놀림에 약점을 확인한 강준우는 더욱 복잡하게 움직이며 그를 괴롭혔다.
"으아아! 덤벼! 이 개새끼야!"
"…… 병신. 그게 전부냐?"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강준우의 행동에 참지 못한 오정태가 분기를 터뜨렸다. 그리고 확실히 상대의 약점을 파악한 강준우의 비웃음이 뒤를 이었다.
그런 그에게 송영훈이 달려들었다.
거대한 도끼를 앞세운 그가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했지만, 돌기둥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콰앙. 후두두두.
"씨발! 잔챙이들은 빠져!"
끼어든 백선화의 방어에 놈이 흥분하며 소리쳤고, 강준우는 거리를 벌리며 크게 소리쳤다.
"다 죽여주지. 천마군림보!"
"미친! 뛰어!"
커다란 외침과 함께 그의 발이 바닥을 찍었다.
놀란 그들이 급하게 몸을 날렸지만, 그들이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를 잡은 강준우는 그들의 행동을 비웃듯 소리쳤다.
"페이크다. 병신들아!"
"개 같은……"
바닥을 찍는 그의 행동은 멍하니 서 있는 마법사에게 달려가기 위한 동작이었다.
파앙.
순식간에 그와의 거리를 따라잡은 강준우의 장력이 그의 가슴을 때리자,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를 뿌리며 쓰러져 나간 그는 그대로 목숨을 잃었는지 움직이지 못 했다.
남은 사람들이 분개하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이어지는 강준우의 동작에 그들은 다시 위로 뛰어 올라야만 했다.
그는 별다른 말없이 발을 내디뎠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천마군림보를 펼친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그는 방향을 바꾸며 물러날 뿐이었다.
"이런 씨발!"
당하는 그들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천마군림보를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그 무공이 가진 위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경계했지만, 오히려 그런 압박이 그들을 옭아매고 있었다.
거리를 벌린 강준우는 쓰러진 자의 가슴에 박힌 족장의 대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놀란 듯이 바라보고 있는 세 사람을 일깨웠다.
"뭐해? 구경만 할래?"
"도, 도와줄까?"
"한 놈만 맡아."
"아, 알았어."
굳이 전력을 놀릴 필요는 없었다.
혼자서 저들을 처리한다고 필요한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마법 같은 건 거의 못 얻었잖아?'
피어 같은 능력이 마법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힐이나 마법을 얻은 적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 그는 남은 셋을 향해 대검을 겨눴다.
"무식하게 무기만 커졌다고 달라질 것 같아?"
"두고 보면 알겠지. 덤벼!"
"이 개자식이!"
이미 전의를 상실했지만, 이제 와서 물러난다고 살아날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정태의 공격이 강준우에게 통한다는 점이었다.
'일섬'이라는 능력을 운용하며 펼친 공격이 효과를 보자, 그는 다시 한 번 강준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앗!"
그는 커다란 기합을 떨치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다시 선점 같은 검격을 뿌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과 달랐다.
강준우 역시 마냥 당하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부우웅.
오정태가 뛰쳐나오기도 전에 그는 대검을 내던졌다.
힘을 가득 실으며 내던진 대검이 정확히 오정태를 향해 날아갔다.
"미친 새끼!"
이런 식의 공격은 생각도 못 했다.
무기를 던지는 무식한 방법에 오정태는 곧바로 검을 내질렀다.
빠르게 쏘아지던 그가 방향을 바꾸는 것은 힘들었다. 그나마 몸을 비틀며 검격을 뿌리는 게 최선이었다.
까드득.
그나마 의도했던 대로 대검을 맞췄지만, 힘에서 차이가 났다.
작정하고 내던진 중병기를 가느다란 철검이 막아낼 수는 없었다. 그것도 쾌를 중점으로 한 공격이었기 때문에 강한 힘이 실리지도 않았다.
"미친……"
콰직.
오정태 역시 처음 죽은 마법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처 밀어내지 못한 대검이 그대로 그의 가슴에 꽂혀들었다.
"끄윽. 개 같은……"
그는 채 말을 끝맺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고, 강준우는 생각지도 못한 능력을 손에 넣으며 놀라워했다.
[일섬(一閃)을 획득하였습니다.]
'일섬?'
아마도 오정태가 사용하는 수법인 것 같았다.
새로운 능력이 그에게 나쁠 것은 없었다. 더군다나 꽤나 유용한 능력은 오히려 반길만한 일이었다.
새롭게 얻은 능력을 뒤로한 그는 아직 남은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나마 남은 한 명은 권우철을 필두로 한 세 사람이 상대하고 있었다.
그는 송영훈과 마주했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개새끼."
"나도 마찬가지다. 이 새끼야."
"씨발! 죽인다!"
지지 않는 강준우의 반응에 그는 바닥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부르카의 도끼를 앞세운 그는 곧장 혈염부법의 절초를 사용했다.
가진 힘을 모두 쏟아냈는지 도끼에 붉은 기운이 어렸다.
혈염부법이라는 초식 중에 그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초식을 펼치자 생겨난 현상이었다.
그대로 머리를 쪼갤 것처럼 달려드는 그 모습에 강준우는 바닥을 굴렸다.
쿠웅.
"크헉!"
이제야 제대로 된 천마군림보가 펼쳐졌다.
이번에는 피하지 못한 송영훈이 걸음을 멈췄다.
굳게 다문 입술 사이라 붉은 피가 새어나왔지만, 그는 힘겹게 걸음을 옮기며 강준우를 향해 다가왔다.
상당한 의지였다.
기필코 그를 죽인다는 일념이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죽어!"
그는 눈앞에 있는 강준우를 향해 도끼를 내리찍었다.
쩌정. 콰과광.
내지른 일격에 바닥이 뒤집혔다.
강력한 기운이 전방으로 뻗어나갔지만, 그 자리에 강준우는 없었다.
어느새 옆으로 비켜선 그는 송영훈의 얼굴에 철사장을 꽂아 넣었다.
콰앙.
강한 굉음과 함께 송영훈이 피를 뿌리며 튕겨져 나갔다.
이미 많은 힘을 소진한 그는 그대로 늘어져서 움직이지 못 했고, 그를 바라보던 강준우는 권우철을 바라봤다.
남아 있던 한 사람도 이미 그들의 손에 쓰러진 상태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도 더 이상 가망이 없어보였다.
'흐음.'
잠깐 고민하던 그는 따로 권우철을 불렀다.
"우철이 형?"
"응? 왜? 무슨 일이야?"
"형이 끝내요."
"……."
그는 송영훈의 처우를 권우철에게 맡겼다. 그리고 남아 있는 또 한명은 백선화에게 떠넘겼다.
두 사람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식으로 무력화 된 사람을 처리하는 것은 그들로서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강준우의 말에 마음을 정해야만 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많아질 거야. 어차피 맞을 일이라면…… 미리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지만……"
"굳이 강요는 안 해. 대신…… 이걸로 확실히 하자고."
"화, 확실히 하자니?"
"앞으로 함께 할지. 그만 찢어질지."
"……."
단호한 말에 두 사람도 결정을 내렸다.
언젠가는 맞아야 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쓰러진 둘을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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