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천마신공-58화 (58/254)

제 58화

<각양(各樣)>

복잡하게 얽힌 동굴의 통로들.

오크들을 몰아넣고 도망가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통로가 좁은 만큼 뒤따르는 놈들은 목표를 잃을 수밖에 없었고, 남겨진 놈들은 다른 곳에 관심을 가졌다.

"크아아아."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동족의 함성들.

싸움을 알리는 소리에 놈들의 관심이 돌아갔다. 그렇게 놈들이 향한 곳은 여전히 오크들과 싸우고 있는 권우철과 일행들이 있는 곳이었다.

'후우. 도망간 놈들하고 일행이었나?'

김기철의 행태에 강준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식의 복수를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확실히 양립할 수 없는 놈인 것은 분명했다.

'문제는 세 사람인데.'

몰려든 오크들이 향하는 곳에 세 사람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향한 곳은 그 끝이 막힌 구석으로 그곳에 고립됐다고 봐야했다.

그들의 상태를 알고 있는 강준우는 고민했다.

당연히 세 사람을 도울 생각이었다. 지금 가진 힘으로 충분히 그들을 도울 수 있었지만, 문제는 뒤에 있을 김기철과 일행들이었다.

작정을 하고 움직인 것 같았다.

오크들과의 싸움이 끝나면 놈들이 공격을 해 올 것은 당연했다.

'차라리 다른 길로가서 그놈들을 먼저 칠까?'

먼저 그놈들을 처리하고 움직이는 것도 고민을 해 봤지만, 그 사이 세 사람이 오크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지가 의문이었다.

아무리 성장을 했다지만, 저 많은 놈들을 상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통로가 좁기는 하지만……'

입구를 막으면 버틸 수 있을 지도 몰랐지만, 모험을 걸 수는 없었다.

지금은 저들이 고립된 곳에서 빠져나오게 돕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는 곧 마음을 정했다.

유령보까지 얻은 상황에서 오크들을 스쳐서 합류하는 건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강준우는 다시 통로로 향하면서 입구로 모인 오크들을 확인하며 기운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커다란 기합과 함께 광풍이 몰아쳤다.

"하압!"

쿠아아아!

모인 오크들을 향해 쏟아진 광풍에 놈들이 쓰러져 나갔다.

갑작스러운 광경에 강준우의 시선이 저절로 전방을 향하자, 도를 쥔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한 사람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저 놈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미 죽은 줄로 알았던 놈은 바로 정민국이었다.

권우철과 김연희가 계속해서 걱정했던 그 사람이었다.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해진 놈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강준우를 직시했다.

"드디어 찾았네."

"……."

환하게 웃는 그의 웃음이 왠지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당연히 권우철을 돕기 위해서 극적으로 도착한 거라고 여겼지만, 아마도 그런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싸늘한 웃음을 보이는 그의 시선에는 적의가 가득했다.

'뭐지?'

아직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 그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한순간 많은 힘을 쏟아낸 정민국은 무언가를 꺼내들면서 입으로 집어넣었다.

그게 단약이라는 사실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오크들을 도륙한 도법으로 봐서 상당한 내공을 소진했을 게 분명했다.

'광범위한 곳을 휩쓰는 검풍이라. 아니, 도풍이라고 해야 하나?'

생각보다 정민국이 펼친 도법이 대단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일전에 봤던 그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정민국의 행동에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 해? 공격해!"

"아, 알았어."

정민국의 명령에 뒤에 있던 자들이 마법을 사용했다.

당연히 오크들을 노릴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들의 마법은 강준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미친놈들!"

콰과광. 터엉. 콰앙.

그가 있던 자리에 강력한 공격이 꽂혔다.

뒤로 물러난 강준우는 황당한 눈으로 정민국을 바라봤고, 그는 비릿한 웃음을 보이며 천천히 다가왔다.

"왜? 놀랐냐?"

"무슨 짓이냐?"

"무슨 짓은 무슨 짓? 다 네가 벌인 죗값이지."

"…… 죗값? 미친놈."

"씨발! 조금 뒤에도 그딴 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따로 정민국과 다툰 기억은 없었다. 그저 열등감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대치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무시한 게 전부였지만, 그가 생각한 것과 받아들이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차이는 컸다.

정민국은 그런 강준우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런 식으로 그때의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강준우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지금은 화를 내는 것보다 권우철과 김연희를 돕는 게 먼저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놈은 둘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덤벼!"

그는 도를 앞세우며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고, 살기를 가득 품은 공격에 강준우는 뒤로 물러났다.

서걱. 서걱.

그저 도를 휘두르는 것뿐이었지만, 동굴 벽에 기다란 흔적이 새겨졌다.

가벼운 공격에도 도풍이 이는 것을 보면 상대가 최소 일류에 이른 무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준우는 그런 정민국을 바라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버리는 거냐?"

"씨발! 어쩌라고!"

"…….'

정민국은 강준우의 말에 격하게 반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을 생각해주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옹졸한 그의 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래도 다행인가? 이런 놈하고는 안 엮여서.'

어쩌면 이놈과도 함께 했을 지도 몰랐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웃음을 흘리자, 정민국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씨발!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냐?"

"그럼 울까?"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얍삽한 새끼! 뒤에서 남이 다 잡은 놈을 쳐 잡으면서 포인트만 빼간 새끼가, 무슨 영웅 행세야?"

"너도 그러지 그랬냐?"

"개새끼! 죽인다!"

그는 강준우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며 가진 힘을 끌어 올렸다.

어느새 혈랑심법의 광폭한 기운이 도신으로 흘러들었다.

거친 바람이 도신을 휘감았고, 요란한 소리가 마치 늑대의 울음처럼 주변을 가득 채웠다.

우우우우.

그는 스스로의 힘을 자랑하듯 도를 겨눴다.

얼굴에 가득 찬 자신감에 강준우의 표정이 절로 찌푸려졌다.

"네가 내 손에 죽으면 그년 얼굴도 볼만할 거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뭐?"

"내가 너한테 질 것 같냐?"

"이 새끼가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못 하네. 그냥…… 죽어라!"

말을 마친 그는 곧장 강준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도를 앞세운 그가 빠르게 움직이자, 그의 주변으로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하압!"

거리를 좁힌 정민국이 도를 내지르자, 강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도신에서 쏟아진 바람은 강준우를 노렸고, 그는 뒤로 물러나며 공격을 피해냈다.

콰과광.

상당히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강한 일격에 바닥이 쓸려 나갔다. 마치 늑대가 물어뜯은 것처럼 거친 흔적이 새겨졌다.

혈랑도법은 늑대 중에서도 가장 거칠다는, 붉은 털을 가진 늑대의 공격을 형상화한 도법이었다.

수많은 도풍을 쏟아내며 상대를 찢어발기는 수법으로 사파의 무공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위력적이면서도 잔인한 무공이었다.

하지만 그런 도법도 1성의 유령보를 잡을 수 없었다.

"피, 피해?"

나름 작정을 하고 쏟아낸 공격이었지만, 강준우는 생각보다 쉽게 공격을 피해냈다.

자연스럽게 물러난 그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지만, 정민국은 이를 악물며 보법을 밟아나갔다.

'그냥 단순한 도법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거지?'

그는 다시 힘을 끌어 올렸다.

혈랑심법과 연관된 혈랑보를 밟자, 그의 발자국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불규칙적인 움직임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늑대의 날랜 움직임을 흉내 낸 보법이 강준우의 눈을 현혹시켰다.

강준우는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주시했다.

정민국의 눈에는 그가 그대로 얼어붙은 것 같았다.

겁을 잔뜩 집어 먹었는지 쉽게 움직이지 못 하자, 정민국은 다시 거리를 좁히며 도를 휘둘렀다.

"하압!"

작정을 하고 휘두른 도에서 다시 강한 바람이 일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에 맞춰, 강준우도 검을 뻗었다.

번뜩이는 섬광과 함께 그의 검신에서 흘러나온 검풍이 정민국의 공격을 받아냈다.

파앙.

공기가 터져 나갔다.

자신의 공격이 막혔다는 사실에 정민국의 눈이 커다래졌다.

'거, 검풍?'

일류 무인으로 올라서야 사용할 수 있는 수법을 수월하게 펼치는 그의 모습에 정민국은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도를 휘둘렀다.

어차피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더 많은 도풍을 쏟아냈고, 강준우는 다시 검을 뿌리며 그 공격을 받아냈다.

파앙. 파앙. 파앙.

계속해서 터져나가는 공기에 주변의 이목이 집중됐다.

상당한 실력을 가진 두 사람의 공격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정민국이었다.

'이 빠르기는 또 뭐야?'

분명히 삼재검법을 쓰고 있었지만,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확실히 쉽게 볼만한 놈이 아니었다.

마음을 달리 먹은 그는 더욱 많은 기운을 쏟아냈다. 그저 단순한 공격만으로는 상대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혈랑도법의 절초를 펼치며 소리쳤다.

"죽어라!"

달라진 기세가 여실히 느껴졌다.

도신에 일던 바람이 점점 크기를 늘려 나갔고, 이내 주변을 가득 채웠다.

정민국을 중심으로 광풍이 일었다.

그게 모두 도에서 일어난 바람이라는 게 놀라웠다.

우우우우우.

몰아치는 바람은 마치 수많은 늑대가 울부짖는 것처럼 들렸다.

앞에 있는 정민국의 모습을 통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등급이 높은 무공이 아니더라도 조합을 이룬 무공만으로도 충분한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높은 등급의 무공도 대단했지만, 등급이 낮더라도 같은 심법을 기초로 한 무공의 성취를 높이면 상당한 위력을 낼 수 있었다.

그래도 천마신공에 비할 바는 못 됐다.

"그게 다냐?"

"…… 씨발! 어디서 허세야?"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라는 듯한 모습에 정민국은 곧장 달려들었다.

수많은 오크들을 가볍게 찢어발겼던 혈성참천(血聲慘天)이라는 초식이었다.

여러 마리의 혈랑으로 변한 도풍이 그대로 강준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맹렬한 기세가 수많은 늑대를 만들어내는 것 같았지만, 그 역시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강준우도 아직까지 자신이 어느 정도의 힘을 내는지 확인을 한 적이 없었다.

그저 검기를 뽑아낸다는 게 전부였지만, 지금까지 그 척도가 될만한 놈은 오크뿐이었다.

그마저도 어렵지 않게 상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기회를 빌어서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우우우.

어느새 근접한 광풍에 그는 발을 굴렀다.

쿠웅.

강한 진각에 달려들던 늑대의 움직임이 멈칫거렸다.

가볍게 펼친 천마군림보에 정민국이 휘청거렸다. 그저 흐름을 끊기 위한 일보였지만, 파고드는 이질적은 기운에 놀란 그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그런 그의 눈을 부릅떴다.

서걱. 서걱.

앞으로 걸어오며 가볍게 휘두르는 그의 검격에 사력을 다해 펼친 절초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대로 상대의 목을 물어뜯을 것 같았던 혈랑들이 그의 검에 베이며 쓰러져 나갔다.

"거, 검기?"

정민국도 고블린을 독식하면서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여러 개의 도풍을 펼치는 게 최선이었다.

절초를 펼치면서 그는 승리를 장담했다.

비록, 강준우도 검풍을 사용할 수 있다지만, 그가 펼치는 검술은 너무나 단순했기 때문이다.

고작 삼재검법으로는 사방에서 몰아치는 광풍을 받아낼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지만, 놈은 그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이 개새끼야!"

자신하던 무공이 허무하게 깨져나가자, 이성을 잃었다.

그는 남은 모든 힘을 쥐어짰다. 가진 모든 힘을 쏟아내서 일초에 모든 것을 걸었다.

사그라들던 바람이 다시 강하게 몰아치기 시작했지만, 강준우도 제대로 된 힘을 끌어냈다.

작정하고 끌어 올린 천마신공의 내기가 검신을 가득 채웠다.

영롱한 빛에 달려들던 정민국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순간, 회색의 검기가 전방을 꿰뚫었다.

쉬이익. 콰과광.

빛을 향해 달려들던 광풍이 터져 나가며 굉음을 흘렸다.

유령보와 일섬을 섞으며 내뻗은 단순한 검격이 정민국을 스쳤다.

"크윽."

"뭐야? 생각보다 더 허접하잖아?"

"개 같은……"

억울해하던 정민국은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졌다.

새삼 힘을 자각한 강준우는 한 곳에 몰린 오크와 뒤에 있던 사람들을 보며 유령보를 밟았다.

연기처럼 흩어진 그가 몰려 있는 사람들의 뒤를 잡았다.

[작품 후기]

남겨주신 코멘트 잘 읽었습니다.

답답해 하는 분이 많은 것 같네요. 저도 처음과 같은 느낌이 덜하다는 생각이듭니다.

이후에 나올 내용들은 수정을 해야 할 것 같네요.

애정 어린 조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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