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화
<각양(各樣)>
곧바로 오크들을 공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기회에 귀찮은 사람들을 깔끔하게 처리할 생각이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그는 어렵지 않게 모여 있는 사람들의 뒤를 잡았다.
이미 수많은 오크가 그들의 눈을 가리고 있었고, 유령보까지 익히고 있는 상태에서 그들의 뒤로 움직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S등급의 보법이 빛을 발했다.
고작 1성이었지만, 그의 움직임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아직 강준우의 존재를 모르는 그들은 꽤 많이 모인 오크들을 견재했다. 하지만 개중에 한 사람이 유난히 불안해하며 중얼거렸다.
"뭐지? 왜 이렇게 찝찝한 거지?"
"네가 과민반응을 보이는 거야."
"정말로 괜찮겠지? 지친 상태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겠지?"
"오크까지 있잖아. 지금은 저놈들을 밀어내는 것만으로 충분히…… 흐읍!"
"왜? 왜!"
"가, 강준우! 뒤에 강준우!"
기겁한 일행의 말에 놀란 그가 뒤를 돌아보자, 강준우가 그들을 맞았다.
그가 사신처럼 서 있었다.
손에 쥔 검에 길게 늘어난 검기가 유난히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미, 미친! 아아악!"
회색빛의 매끈한 검신이 그들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이렇다 할 대처도 할 수 없었다. 딱딱하게 굳은 몸은 그의 의지를 배반했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콰과광.
작정하고 휘두른 검격에 전방이 터져나갔다.
소진되는 내기가 늘어난 만큼 그는 빠르게 움직였고, 유령보를 밟으며 떨쳐내는 검격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 나갔다.
"아아악!"
"뒤! 뒤에…… 씨발!"
어느새 뒤를 잡은 강준우의 모습에 그들은 겁을 집어 먹었다.
짧지만 강력한 공격에 이미 마법을 펼칠 수 있는 일행들은 모두 쓸려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를 견제할 수 있는 건 무공을 익힌 자들뿐이었지만, 이미 강한 위력을 경험한 만큼 쉽게 걸음이 떼지 못 했다.
그렇다고 도망을 갈 곳도 없었다.
그들의 앞은 오크들로 가득 차 있었고, 뒤는 괴물 같은 놈이 살기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오히려 오크들을 상대하는 게 더 나았다.
적어도 살아나갈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오, 온다!"
한 차례 휘몰아치며 후방을 초토화시킨 강준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퇴로를 막은 상황에서 따로 보법을 밟을 필요도 없었다.
그저 통로로 몰아붙인 자들을 향해 검만 휘두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쐐에엑. 콰과광.
가볍게 휘두른 검에서부터 회색빛 검기가 날아들었다.
이전과는 또 다른 형태의 공격이었다.
정작 검을 휘두르던 강준우도 놀랄만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뒤늦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검법도 영향을 끼치는 거였네.'
마법을 사용하는 자들 중에도 무공을 익힌 사람들이 끼어 있었다.
혹시 모르는 상황에서 지키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까지 강준우의 공격에 휩쓸린 것이다.
그들을 통해서 얻은 무공이 바로 삼재검법이었다.
동일한 능력을 얻은 만큼 숙련도로 대체되면서 삼재검법의 성취가 올랐고, 이런 식으로 검기를 날리는 것도 가능해졌다.
새로운 사실을 확인한 만큼 거칠 것이 없었다.
적의를 가진 자들이 빠르게 쓰러졌고, 뒤에 있던 오크들도 휩쓸려 나갔다.
유형화된 기운.
검에서 흘러나오는 회색의 기운은 단단한 오크의 몸을 너무나 쉽게 베어냈다.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그동안 효율적인 움직임을 지향하며 내공을 아꼈던 그에게는 또 다른 느낌을 전해줬다.
통로를 가득 채웠던 오크들이 빠르게 쓰러져 나갔다.
어렵지 않게 놈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 한쪽에 모여 있던 오크들이 튕겨져 나갔다.
"크와아아!"
오크 한 놈이 거칠게 포효하며 튀어나왔다.
권우철과 세 사람이 있던 곳에서 뛰쳐나온 오크의 모습에 강준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무 늦었나?"
남은 놈들까지 모두 처리하려고 했던 게 시간을 지체한 것 같았다.
차라리 오크들을 먼저 쓰러뜨리는 게 나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밖으로 튀어나온 오크의 모습이 이상했다.
"크와아아!"
다시 한 번 포효한 놈은 주변에 있는 오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놈은 동족을 공격하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강준우의 머릿속에 한 가지 능력이 떠올랐다.
'매혹?'
아마도 백선화가 오크를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말은 적어도 백선화는 멀쩡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매혹에 걸린 오크의 모습은 일반적인 오크와는 또 달랐다.
"설마?"
"크와아아!"
도를 쥐고 있는 놈의 외형은 평범한 오크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놈의 움직임은 일반적인 오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놈의 도는 빠르게 주변을 휩쓸었다.
마치 그놈 혼자서만 쾌도를 쓰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특출난 모습을 보였다.
"오크한테…… 헤이스트를 걸어 준 건가? 미친년!"
몹한테 버프를 걸어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는 신박한 김연희의 창의력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 광경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광분하며 날뛰는 놈도 곧 약발이 떨어졌는지 움직임이 굼떠지기 시작했다.
달라진 몸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적응을 못 하는 느낌이었다.
"크아아!"
순식간에 동료들에게 휩쓸리며 무너지는 그 모습에 강준우는 다시 검을 뿌리며 오크들을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콰과광.
오크들을 베어낸 검기가 벽을 때리면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왔다.
소리가 사그라들기 무섭게 반으로 잘린 오크들이 무너져 내렸다.
"후우."
작정하고 뽑아낸 검기에 오크들이 썰려나갔다.
일검에 단체로 쓰러지는 놈들의 모습에서 묘한 쾌감이 들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막다른 곳에 몰린 세 사람이었다.
그는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뒈질 거라고 했지. 이 개새끼야."
'김연희?'
김연희의 목소리였다. 거친 말과 함께 굉음이 뒤를 이었다.
콰과광.
뭔가 터지는 소리가 뒤를 이었고, 그곳에서 검은 인형이 튀어나왔다.
수직으로 꺾인 곳에서 튀어나온 그는 초토화 된 주변에 깜짝 놀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강준우를 확인하며 경악했다.
"다시 보니 반갑네."
"……."
"선물은 잘 받았다. 꽤나 쏠쏠하더라고."
"…… 씨발!"
강준우의 말에 기겁한 김기철은 곧장 바닥을 박차며 뒤로 내달렸다.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는 그의 모습에 강준우도 기운을 끌어 올렸다. 여기에서 저놈을 놓칠 생각은 없었다.
"준우야!"
그렇게 움직이려는 순간, 권우철이 그를 불렀다.
스치듯 지나가며 확인한 세 사람은 무사한 것 같았다.
꽤나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크게 다친 사람은 없다는 사실에 그는 속도를 높였다.
파앗.
유령보에 일섬의 힘을 더하자, 그의 몸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작정을 한 그는 빠르게 김기철과의 거리를 좁혔다. 하지만 김기철도 필사적이었다.
여기에서 강준우에게 잡히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씨발!"
다시 한 번 욕설을 내뱉은 그는 힘을 쥐어짜며 방향을 바꿨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일전에 한 놈을 쓰러뜨리면서 S등급의 신법을 손에 넣었다는 것이었다.
'근데, 저 새끼는 왜 저렇게 빠른 거야?'
강준우는 그와 비슷한 속도로 통로를 내달리고 있었다.
정민국까지 상대했지만,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 통로에서 그를 봤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정민국. 그 새끼도 상대가 안 된다고?'
그가 생각하는 정민국도 상당한 강자였다.
그로서도 한 수 접어줄 정도였다. 고작 B등급의 도법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강한 힘을 내보이고 있었다.
무지막지하게 쏟아내는 도풍에 휩쓸린 오크들이 무기력하게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를 상대로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강준우가 문제였다.
그는 정민국보다 더한 괴물이었다.
'내가 미쳤지. 저런 놈을 죽이려고 했으니!'
상대의 실력을 너무 낮게 잡은 게 가장 큰 실수였다.
스스로를 자책한 그는 남은 포인트를 모두 신법에 몰아넣었다.
조금 더 높은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 아껴뒀던 포인트가 모조리 투자됐지만, 고작 1성을 올리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2성으로 올라선 신법은 그의 속도를 더욱 끌어 올렸다.
'여기에서 속도가 더 빨라져?'
점점 김기철과의 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유령보에 일섬을 섞으며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김기철 역시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그의 손을 빠져나갔던 사람의 무공을 강탈한 게 확실했다.
그렇다고 그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줄어드는 내공을 확인한 강준우는 곧바로 단약을 구입하며 입으로 가져갔다.
아무리 신법에서 차이가 난다고 해도, 그걸 사용할 힘이 없다면 무용지물이었다.
신법에서는 뒤지지 모르지만, 내공에서는 앞설 자신이 있었다. 가진 내공은 자신이 월등할 거라는 생각에 강준우는 내공을 회복하며 그를 뒤쫓았다.
"허억. 허억."
내달리는 김기철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뒤따라오는 강준우와의 거리를 벌렸다지만, 문제는 내공이었다. 신법의 성취를 올리면서 포인트를 다 쏟아 넣었기 때문에 내공을 회복할 여력이 없었다.
점점 속도가 줄어들자 멀리 떨어져 있던 강준우와의 거리가 좁혀졌다.
이대로라면 그 끝은 확실했다.
"미친 새끼야! 그만 좀 쫓아와!"
"받은 선물을 되돌려 주려고."
"씨발!"
여유로운 목소리에 김기철은 좌절했다.
수시로 방향을 바꾸면서 미친 듯이 내달렸지만, 뒤에 있는 놈은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거머리도 저런 거머리가 없었다.
강준우도 나름 작정을 하고 움직였다.
이미 칼을 드러낸 놈이라면 언제 다시 이런 짓을 벌일지 몰랐다.
계속해서 방향을 바꾸며 발악을 하던 김기철도 이내 걸음을 멈췄다.
더 이상 도망가 봤자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미미하게 남아있는 힘을 끌어 모아서 작은 상처라도 남기는 게 나으라는 판단이었다.
"씨발! 너도 잘한 건 없잖아!"
"그래? 그렇다고 너도 잘한 건 없지."
"네가 권현수를 죽이지만 않았어도…… 후우."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져봤자 달라질 건 없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강준우의 눈빛에 그는 검을 겨눴다.
일이 이 지경까지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만 더 있었으면 나중에 빛을 발할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능력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죽는다는 사실이 아쉬웠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가만히 강준우를 노려보던 김기철은 이를 악물었다.
"이걸 너한테 넘겨주느니 그냥 죽는다! 씨발!"
어차피 죽는다면 남 좋은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그는 겨눈 검을 역수로 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목에 겨누며 힘을 줬다.
하지만 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무언가가 날아들며 그의 팔을 꿰뚫었다.
쉬이익. 채앵.
"끄아악!"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밀려난 그의 팔이 벽에 박혔다.
팔뚝을 꿰고 벽에 박힌 것은 화살이었다.
파르르 떨리는 깃대가 꽤나 강함 힘이 실렸다는 것을 알려왔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런 공격을 감행한 놈들이었다.
"크와아아!"
"…… 오크?"
포효하는 놈들은 지겹게 마주했던 놈들이다.
다만 일반적인 오크와는 또 달랐다. 도를 들고 있는 게 아니라 활을 들고 있었다.
다시 시위를 재는 놈의 모습에 김기철은 다급해졌다.
하지만 오크들보다 강준우가 먼저 움직였다.
쉬이익. 푸욱.
번뜩이는 섬광과 함께 김기철의 몸이 축 늘어졌다.
힘이 빠져나간 그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지만, 벽에 박힌 화살이 그를 붙잡았다.
그 말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강준우는 그의 죽음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김기철이 넘겨줄 수 없다면서 자결을 택한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무공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건곤대나이를 획득했습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거, 건곤대나이?'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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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