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화
<각양(各樣)>
건곤대나이(乾坤大挪移).
천마신공처럼 등급 외로 분류되어 있는 무공이었다.
너무나 유명한 그 무공을 모를 리가 없었다.
김기철이 이 정도로 높은 등급의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등급만 놓고 보자면 오히려 정민국보다 더 대단했지만, 무공 자체가 초반에 강한 위력을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신중한 그의 성격 상, 높은 등급의 무공을 제대로 사용했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의 잠재력을 끌어올려주면서 남들보다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한 번에 적을 사살할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순간 힘을 쏟아내는 무공이라기보다는 보조적인 성격이 강했다.
낮은 성취에서는 그 정도의 효능에 그쳤지만, 무공의 성취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강한 위력을 낼 수 있은 무공이 바로 건곤대나이었다.
김기철의 말마따나 나중에 빛을 발한 신공이었고, 그런 무공이 강준우에게 돌아온 것이다.
'건곤대나이라니! 운이 좋은 건가?'
강준우는 새로운 무공에 흡족해했다.
그를 끝내기 위해서 쫓아온 결과가 이런 식으로 보답을 받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계속 이어갈 수 없었다.
그에게도 예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쉬이익.
야생의 감각이 경종을 알려왔고, 그는 곧바로 유령보를 밟으며 뒤로 물러났다.
투웅.
날아든 화살이 그가 있던 자를 스치며 벽에 박혔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대가 부르르 떨렸다. 생각보다 더 강한 위력이었다.
벽에 반 정도 박힌 화살을 본 그는 침음을 흘렸다.
"흐음. 다른 종류의 오크들인가?"
오크 전사를 필두로 활을 든 사냥꾼과 지팡이를 든 샤먼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새 동굴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그는 낯선 놈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문제는 교묘하게 균형을 이룬 조합이었다.
마주한 놈들이 쉽게 상대할 놈들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강준우는 뒤로 물러났다.
넓은 공간에서 싸우는 것보다 좁은 통로에서 놈들과 마주하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모습을 감추고 유령보를 적극 활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놈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그가 다시 밖을 살피자, 나타난 놈들이 물러나고 있었다.
'뭐, 뭐야?'
호전적인 놈들이 돌아간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연히 뒤쫓아 와야 했지만 놈들은 참아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기다란 다리 앞에 도열하며 자리를 지켰다.
'문지기들인가?'
길게 이어진 다리 뒤로 어두운 동굴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입구처럼 보이는 곳으로 돌아간 놈들은 그 자리를 지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뒤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 만큼 저쪽을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강준우는 남은 내공을 확인했다.
김기철을 쫓으면서 먹었던 단약의 효과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지금 차오르는 내공의 속도가 전보다 더 빨라졌다는 사실이다.
'뭐지? 갑자기 달라진 것 같은데?'
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단약이었지만, 회복하는 내공의 힘이 더 커졌다.
'건곤대나이?'
김기철에게서 그것을 얻고 난 이후로 단약의 효과가 더 커진 듯한 느낌이었다.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끌어주는 힘이 단약을 소화할 수 있는 그의 회복력도 더 증진시킨 것 같았다.
결국, 잠들어 있던 그의 힘을 이끌어 내면서 상황이 유리해졌다.
달라진 몸을 느낀 그는 옅은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곧바로 유령보를 밟으며 모습을 감췄다.
이 움직임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몰랐지만, 어차피 성취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스으윽.
순식간에 사라진 그가 모여 있는 오크들을 향해 다가갔다.
가만히 거리를 가늠하던 그는 먼저 오크 사냥꾼을 노렸다.
마법을 사용하는 오크 샤먼이 더 위협적일 수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더 빠른 공격이 가능한 사냥꾼을 처리하는 게 나았다.
잠깐 고민하던 그는 귀음신장을 날렸다.
유령보로 모습을 감춘 채 날리는 은밀한 벽공장.
소리도 없이 날아간 귀음신장에 오크 사냥꾼의 몸이 움찔거렸다.
확실히 고블린에 비해서 맷집은 있는 것 같았지만, 중요한 것은 놈들이 그의 모습을 보지 못 한다는 점이었다.
'암습에 특화된 공격이라.'
상황에 맞춰 사용하면 어지간한 무공들보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지금 상황이 바로 그랬다.
"크륵?"
[오크 사냥꾼을 처치했습니다. 5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평범하게 싸웠다면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이 분명했지만, 오크 전사와 다르지 않은 포인트를 남겼다.
그래도 아무 흔적 없이 놈들을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었다.
강준우는 곧바로 자리를 옮겼다.
혹시라도 발각됐을 경우를 염두에 두며 다시 유령보를 밟았고, 남아 있는 샤먼과 사냥꾼들을 차례대로 쓰러뜨렸다.
"크르륵."
제대로 된 대처도 하지 못 하고 쓰러지는 오크들의 모습.
꽤나 중한 무장을 하고 있는 놈들 치고는 너무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감이 있었다.
'전보다 위력이 더 증가한 것 같기도 하고.'
자신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달랐다.
아마도 건곤대나이가 이런 무공을 사용하는 것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았다.
없었던 능력이 생겼기 때문에 그 차이를 더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숨어 있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 자체가 그의 힘을 전보다 크게 키우는 것을 의미했다.
그 효과에 만족한 강준우는 기다란 다리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동굴을 바라봤다.
'뭐가 있는 거지?'
까만 어둠이 자리 잡은 그곳은 좋은 느낌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대로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여기로 향해야 할 게 분명했다.
그 앞에서 잠깐 고민하던 그는 조심스럽게 다리 위를 걸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 위로 드리워진 다리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곳 같았지만, 꽤나 넓고 튼튼해 보였다.
오크 다섯 마리는 함께 설 수 있을 정도의 너비였다.
'중요한 곳을 지킨다고 보기에는…… 오크들이 많아보이지는 않던데.'
왠지 모를 불안함을 뒤로한 그는 다리를 넘어서 어둠과 마주했다.
마치 검은 장막이 쳐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까이에서도 그 뒤를 확인할 수 없었다.
"…… 벽인가?"
닫힌 동굴의 입구를 처음 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 자리에서 잠깐 고민하던 그는 내공을 끌어올리며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손을 뗄 생각이었지만, 그의 손끝이 검은 장막에 살짝 닿기 무섭게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
동굴 오크들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경각심을 가집니다.
침입한 자들에게 강한 적의를 가진 그의 명령으로, 동굴에 있는 오크들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집니다.
목표 : 구역을 지키는 정예 오크들 처리.
전체 보상 : 우르치의 방 개방.
개인 보상 : 처리한 적의 수에 따라 차등 지급.
**
"흐음."
오랜만에 확인하게 된 임무였다.
새로운 임무에 절로 침음이 새어나왔다.
드러난 정보만 봐서는 굳이 이 임무를 완수해야 할까 고민이 되는 내용들이었다.
"우르치의 방이 개방 된다?"
아마도 동굴 오크들을 이끄는 우두머리의 이름 같았다.
놈의 방을 개방한다는 말이 위험하게 들렸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계속 이어갈 수 없었다.
그 임무가 주어지기 무섭게 검은 장막으로 가려졌던 동굴 안의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친!'
그 광경에 놀란 강준우는 급히 바닥을 박차며 뒤로 물러났다.
극성으로 유령보를 펼친 그는 일섬을 섞으며 다리 위를 내달렸다.
피잉. 피잉. 후두두두두.
뒤로 물러나기 무섭게 그가 있던 곳에 화살이 꽂혀들었다.
계속 날아드는 화살은 빠르게 물러나는 그의 앞에 계속 꽂혀들었다.
"크와아아아!"
커다란 괴성과 함께 움직이는 오크들.
장막 뒤에 있던 놈들이 일제히 동굴 밖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앞에 서 있는 강준우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저 많은 수를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었다.
'저건 완전히 군대잖아!'
오크 전사가 앞장서고, 그 뒤를 사냥꾼과 샤먼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오크 사냥꾼은 계속해서 화살을 날렸고, 지팡이를 들어 올린 오크 샤먼이 그를 노렸다.
[천마신공의 공능이 오크 샤먼의 저주를 이겨냅니다.]
'저주?'
일반적인 마법과는 또 다른 공격이었다.
다행히 천마신공의 힘으로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좋다고 할 수만은 없었다.
쉬이익. 콰과광.
후두두두두.
날아드는 불꽃과 화살들이 여전히 그를 위협했다.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던 강준우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이 상태로 저놈들이 쏟아져 나오면 도저히 막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작정을 한 그는 다리 끝에 서며 곧바로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강하게 발을 내디뎠다.
쿠웅.
천마신공의 내기를 담은 천마군림보의 힘이 전방으로 쏘아졌다.
강력한 공격에 선두에 선 오크 전사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효과가 있나?'
멈춘 놈들의 모습에 혹시나 하는 기대가 일었지만, 그에게 날아든 것은 뒤에 있는 놈들의 화살이었다.
걸음을 멈추기 무섭게 놈들의 공격이 그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위협적인 공격에 급히 뒤로 물러났지만, 그래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쿠웅.
"크아악!"
강력한 힘을 쏟아냈다.
다수를 상대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수법이 바로 천마군림보였다.
가진 내기가 빠르게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선두에 선 놈들이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콰과광. 후두두두.
연신 날아드는 공격을 피한 그는 다시 한 번 발을 내디뎠다.
강한 울림과 함께 결과가 나타났다.
[오크 전사를 처치했습니다. 5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오크 전사를 처치했습니다. 5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오크 전사를 처치했습니다. 5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앞에 있는 다섯 놈은 물론이고, 그 뒤에 있는 놈들의 수까지 빠르게 줄여나갔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나?'
최대한 강한 힘을 쏟아내면서 그대로 다리를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놈들이 건널 곳을 무너뜨린다면 위협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튼튼한 다리는 미미하게 흔들리는 게 전부였다.
아무리 천마군림보로 충격을 준다고 하지만,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다리를 무너뜨리기 전에 내가 무너지겠는데.'
먼저 자리를 피해야 할 것 같았다.
생각을 달리 먹은 그는 곧장 뒤로 내달렸다. 지금은 놈들에게 휩쓸리기 전에 물러나는 게 최선인 것 같았다.
그런 그를 쫓으며 수많은 화살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를 잡을 수는 없었다.
***
강준우가 새로운 놈들과 마주하고 있는 동안, 세 사람은 계속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김기철을 쫓아간 강준우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운을 회복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강준우 대신 새로운 임무가 그들을 찾아왔다.
"응? 이건 뭐야? 갑자기 임무가……"
"이게 왜 여기에서 나오지?"
"가, 갑자기?"
동굴로 들어오면서 생기지 않았던 임무가 다시 나타나자 그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뜬금없는 소식에 그 내용을 확인하던 김연희가 얼굴을 찌푸렸다.
"우르치는 뭐지?"
"오크들 우두머리 같은데?"
"우두머리 방이 개방된다니. 굳이 문을 열어서 놈을 상대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
"……."
실없는 김연희의 말에 두 사람은 말을 아꼈다.
이런 물음에 일일이 대꾸를 할 가치를 느끼지 못 했다.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이 시스템이 어떤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어떤 이유로 이런 상황을 맞는 건지 알지 못 했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괜히 버텨봤자 좋을 건 없었다.
차라리 임무를 수행하면서 보상을 얻는 게 앞으로를 위해서 유리했다.
"그나저나 이놈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지?"
"김기철을 확실히 처리하고 돌아오려는 것 같은데?"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진즉에 다시 돌아왔어야 할 강준우였다.
불안해하던 그들은 계속해서 자리를 지켰지만, 시간이 지나도 강준우는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괜히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부정 타니까."
"아니. 그놈이 누구한테 쓰러질 리는 없잖아."
"그, 그건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혹시, 길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
"미친!"
생뚱맞은 말에 권우철은 황당해하며 소리쳤다.
진지하게 김연희의 말을 듣던 그는 그 말을 일축하며 고개를 돌렸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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