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2화
<각색(各色)>
"뭐냐? 저 사람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와! 완전 혼자서 다 해먹는데?"
"……."
오크들의 적진을 헤집고 다니는 강준우의 모습에 힘겹게 오크를 상대하던 자들은 말을 잇지 못 했다.
그들로서는 같은 사람이 저런 식으로 힘을 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정신 차려! 뭐하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강준우의 행동에 넋을 놓던 그들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말을 아꼈다. 그리고 자신들이 맡은 일을 떠올리며 다시 캐스팅을 이어나갔다.
순간, 동요했던 그들이 다시 평정심을 찾았다.
그들이 상대하는 놈들은 평범한 오크들과는 달랐다. 더 강력했고 조합 역시 위험했다.
하지만 그런 오크들을 상대하는 그들의 희생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크윽!"
"전방에 부상자 발생!"
"예비대 투입해. 부상자는 뒤로 빠져."
그 지시에 뒤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이 방패를 들며 앞으로 나섰다.
다친 사람과 순식간에 자리를 바꾸자, 뒤에 있던 사람이 힐을 사용하며 부상당한 사람을 치료했다.
그렇게 여유를 찾은 사람은 체력을 비축하면서 나중을 기약했다.
계속해서 자리를 바꿔가며 오크 전사들을 막아내는 그들의 모습이 놀라웠다.
상당히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그들은 마치 잘 훈련된 병사들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것도 평범한 병사들이 아니었다. 저마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다.
'저런 사람들끼리 뜻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고작 스무 명이었지만, 그들이 힘을 합치자 오크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았다.
뒤에서 놈들을 쓰러뜨리는 강준우도 감탄할 정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움직임은 느려졌다.
강준우는 의도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존재감을 지웠다.
지금은 오크들을 상대하고 있지만, 곧 다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할지도 몰랐다.
소진한 내공을 가늠하던 그는 다시 단약을 구입하며 부족한 내공을 채워나갔다.
"크아아!"
그런 그에게 오크 샤먼이 지팡이를 내질렀다.
이제 와서 물러나는 모습에 흥분을 한 듯한 광경이었지만, 저주를 피한 강준우는 그대로 귀음신장을 날리며 놈을 쓰러뜨렸다.
그는 다시 유령보를 밟으며 존재감을 지웠다.
연기처럼 흩어지는 그의 모습에 잠깐 시선을 돌린 오크들이 의아해했다. 하지만 밖에서 멀리서 들려오는 동족의 괴성이 그들의 관심을 끌었다.
"수가 너무 많습니다."
"마력이 부족한데?"
"…… 이대로는 힘들 것 같아요!"
오크들과 잘 싸우던 그들이었지만, 강준우와 부딪치던 놈들이 다시 개입하자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유기적으로 움직인다지만, 개개인의 능력에 차이가 있는 만큼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뒤에서 사람들을 움직이던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준비해! 곧 물러날 테니까."
"아, 알았어요!"
"퇴각 준비!"
남자의 외침에 마법을 날리던 자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터엉. 터엉.
앞에서 방패를 든 사람들이 오크의 공격을 받아냈고, 뒤에 있던 정령사들이 날아오는 화살의 방향을 바꿨다.
방어를 제외한 다른 공격은 하지 않았다.
따로 힘을 비축하려는 그들의 모습에 강준우도 관심을 가지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무슨 생각이지?'
그동안 그가 접했던 상황과는 많이 달랐다.
저 정도로 사람들이 모인 것도 신기했지만, 한 사람의 말에 전적으로 따르며 움직이는 것도 평범하지만은 않았다.
'설마…… 캐스팅을 하는 건가?'
가만히 서서 기운을 모으는 듯한 모습이었다.
조금 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을 제외하면 김연희가 마법을 사용할 때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렇게 마력을 모으던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을 뻗으며 뭔가를 외치자 전방에 강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그 기운은 뜨거운 불길로 변하며 치솟아 올랐다.
'파이어 월?'
생겨난 마법은 불의 장막이었다.
다리에 생겨난 파이어 월이 오크들의 움직임을 막고, 시야를 제한했다.
그와 함께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자들이 마법을 쏟아냈다.
콰과광. 콰과광.
다리가 부서질 것처럼 강력한 폭음이 뒤를 이었다.
그 남자가 사용한 파이어 월에 나뉜, 전방에 서 있던 오크 전사들이 마법에 휩쓸려 나갔다.
완벽히 퇴각을 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미리 이런 작전을 짜놓고 있던 그들은 지체 없이 뒤로 물러났다.
일사불란한 그들의 모습에 강준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저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저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혼란스러워하는 지금 더 몰아치면 놈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포인트보다는 안전을 택한 것 같았다.
강준우는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통로로 다시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혹시라도 자신의 존재를 인지한 그들이 나중을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몰랐다.
'이제는 의심이 먼저드니.'
워낙에 흉흉한 일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의를 기울였다.
구석에서 내공을 회복하던 그는 남은 오크들을 바라보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퍼억. 퍼억.
유령보와 함께 은밀히 사용하는 귀음신장에 남아 있던 오크들의 수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오크들 역시 꽤나 지친 상황이었다.
상처를 입은 놈들도 여럿이었고,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마력을 소진한 샤먼들도 기진맥진해 있었다.
개중에 유일하게 멀쩡한 존재는 강준우였다.
체력적인 부담은 물론이고, 사용하는 내공도 큰 부담이 없었다.
특별히 큰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오크들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유령보와 귀음신장의 조합은 그만큼 뛰어났다.
비록, 오크 전사의 경우에는 두어 번의 장력을 날려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움직임은 더 자연스러워졌다.
[유령보가 2성으로 올라섰습니다.]
[귀음신장이 5성으로 올라섰습니다.]
남은 오크들의 수를 줄이면서 사용하는 무공의 성취도 높아졌다.
당연히 위력도 강해질 수밖에 없었고, 효율 역시 전보다 더 좋아졌다.
계속해서 은밀한 공격을 해나가는 강준우도 조금씩 자신만의 요령을 터득해 나갔다.
"크륵?"
멀리서 벽공장으로 장력을 날리던 그의 움직임이 조금씩 과감해졌다.
활을 사용하는 오크 사냥꾼의 뒤를 잡은 그는 벽공장이 아닌 장력으로 그를 처리했다.
등에 닿는 낯선 감촉에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보는 오크 사냥꾼은 그의 존재를 알아채며 뒤늦게 경계했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다.
귀음신장의 힘을 발산하기 무섭게 오크 사냥꾼은 목숨을 잃었고, 쓰러지는 놈을 붙잡은 그는 오크 사냥꾼 등 뒤에 숨어서 다른 사냥감을 물색했다.
오크들의 수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그의 포인트는 빠르게 올라갔다.
"후우."
마지막 남은 오크가 쓰러지자, 강준우는 깊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골랐다. 하지만 방심하지는 않았다.
오크 전사를 쓰러뜨린 그는 다시 유령보를 펼치며 모습을 감췄다.
혹시라도 근처에 남아 있을 지도 모를 다른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몰랐다.
그렇게 모습을 감추며 기다렸지만, 다행히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다.
입구 구석에 몸을 숨긴 그는 다시 한 번 단약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획득한 포인트를 살피며 깜짝 놀랐다.
'이, 이렇게 많이 모였다고?'
마지막에 그가 쓰러뜨린 오크들만 해도 가볍게 10마리가 넘어갔다.
그 전에 가지고 있던 포인트와 쓰러뜨린 놈들에게서 얻은 포인트를 모두 더하자 1천이라는 수가 넘어갔다.
고블린을 잡으면서 1포인트를 얻었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치였다.
말도 안 되게 모았지만, 그만큼 앞으로 얻어야 할 것에 들어갈 포인트도 쉽게 볼 수준이 아니었다.
잠긴 A등급을 해제하는 것에만 500포인트가 필요했고, A등급의 무공을 얻는 것만으로도 동일한 포인트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무공을 배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높은 등급에 있는 무공의 성취를 올리기 위해서는 숙련도는 물론이고, 이해도까지 끌어 올려야만 했다.
낮은 등급의 무공도 필연적으로 올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1천은 결코 많은 포인트가 아니었다.
포인트를 확인한 그는 고민했다.
얻은 포인트로 삼재심법의 성취를 올릴 것인지, 새로운 무공을 배울 것인지에 대하여.
'무공이라.'
잠깐 고민하던 그는 결국, 잠긴 A등급의 무공을 풀어냈다.
지금은 삼재심법의 성취를 올리는 것보다 부족한 무공을 얻는 게 더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어차피 천마신공의 숙련도가 한 자리에 머물고 있었다.
따로 영약을 이용해서 성취를 늘여야했고, 심법에 관한 이해도도 얼마나 필요할지 몰랐다.
삼재심법만으로 끝날 상황이 아니라면 필요한 것을 얻는 게 더 나았다.
'지금은 검술이 가장 시급한 건가?'
아무리 일섬을 이용해서 삼재검법의 힘을 극대화한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었다.
정민국이 사용했던 B등급의 혈랑도법처럼 높은 등급의 검술을 손에 넣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왕이면 등급이 높을수록 좋았다.
이제 내공이 부족해서 죽을 일은 없었기 때문에 A등급에 있는 검술을 익히려고 했다.
'매화검법. 소청검법. 대청검법…… 죄다 정파 무공이네.'
검술은 확실히 정파라고 불리는 곳의 무공이 많았다.
많은 무인이 검과 도를 사용하고 있었고, 구파와 오대 세가라고 불리는 유명한 가문의 무공은 검술이 주를 이뤘다.
문제는 그것과 관련된 심법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가 익힌 무공과 상충되기 때문에 좋은 효과를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오히려 먼저 익히고 있는 천마신공과 부딪치면 그가 위험했다.
제법 이름난 무공도 여럿이었지만, 마교나 사파 쪽의 무공이 필요했다.
그나마 그 검술들은 천마신공과 어느 정도 합이 맞았다.
비록, 독문심법으로 펼치는 것과 차이가 있겠지만, 천마신공으로도 강력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천마신공이 신공이라고 불리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
'혈풍검. 귀곡마검, 마랑…… 혈(血)하고, 마(魔)는 빠지질 않는구나.'
이름만 보면 모든 무공이 마공 같았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강한 위력을 낼 수 있는 게 사파 무공의 특징이었다.
가만히 검술을 살피던 그의 눈에 한 가지 무공이 가득 들어왔다.
"무영검(無影劒)?"
지금 익히고 있는 유령보와 꽤나 상성이 좋을 것 같았다.
가장 좋은 것은 유령마제가 익힌 무공이라는 것을 익히는 것이었지만, 그의 무공에 검술은 없었다.
그는 암습에 적합할 것 같은 무공을 확인했다.
무영검(無影劒).
대대로 귀영대의 대주에게 전해지는 무공.
그림자도 남기지 않다는 말처럼 극의에 이른 쾌검술은 빛과 소리, 그림자까지도 남기지 않는다.
A등급에 등재되어 있는 무공들 중에서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남은 포인트를 확인한 그는 500포인트를 이용해서 무영검을 배웠다.
'흐음. 다시 개털인가?'
마냥 무한할 것 같았던 1천이라는 포인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 A등급의 검술을 얻었지만, 이 검술이 얼마나 큰 효과를 보일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따로 암습에 적합한 검술을 익힌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의 귀음신장으로도 충분한 힘을 낼 수 있었지만, 조금 더 강한 위력이 필요했다.
귀음신장은 오크 사냥꾼을 일격에 끝낼 수 없었다.
무엇보다 맨손으로 펼치는 장력인 만큼 검이라는 도구보다 힘이 더 들 수밖에 없었다.
강준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검을 꺼내며 조심스럽게 무영검을 펼쳤다.
쉬익.
'오오!'
가볍게 뻗은 검이 엄청난 속도로 뿌려졌다.
방금 익힌 검술이라 아직까지 많이 어색하고 서툴렀지만, 고작 1성의 무영검도 삼재검법과 일섬을 응용하며 뿌린 검에 버금가는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림자까지 없앤다는 쾌검술.
고작 한 번 펼쳐본 것뿐이었지만,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성취가 오르면 더 빨라지는 건가? 여기에 일섬까지 더하면…… 대박이겠는데?'
암습은 물론이고, 정면에서 펼쳐도 어지간한 검술에 뒤지지 않는 검법이 바로 무영검이었다.
천마신공이나 건곤대나이 같이 이름만 들어도 어떤 무공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높은 등급에 있을만한 무공인 것은 확실했다.
쉬익.
강준우는 다시 한 번 검을 뿌리며 무영검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연습도 계속 이어질 수 없었다.
물러났던 자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는 곧장 유령보를 밟으며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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